논단과 현장
세계 금융위기와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
김기원 金基元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저서로 『경제학 포털』 『재벌개혁은 끝났는가』 『미군정기의 경제구조』 등이 있음. kwkim@knou.ac.kr
1. 세계 금융위기의 전개
세계경제는 금융위기의 격랑에 휩싸여 있다. 써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에서 비롯한 미국발 금융위기가 2007년부터 표면화되어 2008년 가을에 접어들어서는 마침내 유럽 전역에까지 파급되면서 세계적 차원의 위기로 발전했다. 국가부도의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도 속출했는데, 선진국 아이슬란드와 개발도상국 헝가리,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초고속성장을 구가하는 중국, 인도 같은 신흥경제는 위기 초기에는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는 비연동(de-coupling)론이 유행했으나, 이제는 그들도 성장둔화를 피할 수 없다는 재연동(re-coupling)론이 부상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각국 정부는 본격적인 개입에 나서게 된다. 미국은 7천억달러의 대규모 구제금융을 조성키로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 구제금융을 부실자산 매입에 충당하기로 했으나,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은행의 부분적 국유화라는 금융사회주의(?) 수단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업 등에서 CP(단기자금 조달을 위한 기업어음)를 직접 매입하는 일도 진행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써브프라임 관련 채권을 매입한 금융기관의 부실 등이 대두되면서 비슷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의 발단인 미국의 써브프라임 모기지란 프라임 모기지나 알트-A모기지(Alt-A mortgage)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의 주택소유를 증가시키기 위해 시작된 주택담보대출이다.1 이는 1980년대말 이후 중산층의 주택소유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개발된 일종의 신흥시장인 셈인데, 초저금리 기조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과 증권화(securitization)를 통한 위험회피 수단의 발전에 의거해 무분별한 대출이 이루어졌다. 심지어는 닌자(NINJA, No Income, No Job or Assets, 수입이나 직업, 자산이 없는) 계층에까지 대출이 제공되었다.
초저금리 기조는 2000년말 IT거품이 꺼지면서 이에 따른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연방기금 금리를 6.5%에서 1%까지 떨어뜨린 것을 말한다. 그 결과 돈이 주택시장으로 몰리고 써브프라임 모기지가 보급되면서 주택가격이 폭등했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한에서는 부실대출도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투기적 거품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며, 2006년을 고비로 주택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위기로의 질주에는 자산유동화와 파생상품이라는 금융혁신, 즉 금융씨스템의 변용도 작용했다. 자산유동화란 주택담보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의 대출채권을 근거로 새로운 금융상품인 주택저당증권(MBS)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전매하는 증권화 과정을 지칭한다. 이를 통해 원래 대출해준 은행에서 대출에 따른 위험이 분리되고, 은행은 대출자금을 묶어두지 않고(유동화) 회수하는 것이다. 이런 증권화가 주택대출뿐 아니라 신용카드대출 등 갖가지 대출에 대해 여러 단계로 진행되고, 여기에 채권부도의 위험을 보장해주는 CDS(신용부도스와프) 같은 파생상품의 발전이 병행했다.
이러한 금융혁신은 기존의 은행중개 금융씨스템 대신 증권화된 금융씨스템의 비중을 높여왔고, 미국에선 그 주체가 리먼브러더스나 골드만싹스 같은 투자은행이었다. 전통적 금융씨스템의 외부에서 작동하는 이른바 그림자금융의 활약 속에 신용(유동성)이 팽창하고 저소득층도 내 집을 소유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는 듯했다. 하지만 주택가격의 거품이 꺼지자 아메리칸 드림은 악몽으로 바뀌고, 부실을 안고 있던 금융기관들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증권화나 파생상품은 원래 위험을 분산하려는 목적에서 개발되었으나 무분별하게 발전하면서 도리어 위험을 확산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신용을 팽창시킨 메커니즘이 위기상황에선 신용을 급격히 위축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역회전했다. 왜냐하면 투자의 귀재 조지 쏘로스(G. Soros)조차 난해하기 짝이 없다고 한 증권화와 파생상품에 일단 불신이 깃들자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함으로써 돈이 돌지 않게 된 것이다. 게다가 신용팽창 과정에서 자기자본에 비해 빚을 크게 늘린(leveraging) 금융기관들이 위기에 처하자 빚을 갚으려 하면서(deleveraging) 신용위축이 초래되었다.
한편 좀더 근원적으로 따져보면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린 시장만능주의도 이번의 위기 발발에 한몫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금융시장의 글로벌화와 정보화가 급진전된 데 반해 그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느슨해진 것이다. 예컨대 미국 금융을 주무르던 그린스펀(A. Greenspan)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시장의 자율규제보다 연방정부의 규제가 우월하다는 증거는 없다”고 큰소리치면서 파생상품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일축한 바 있었다. 이로 인해 자유경쟁의 시장경제와 시장의 불안정을 조절하는 민주주의적 규제 사이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그 결과 세계적 위기가 발발한 셈이다.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의 밑바닥에는 세계화폐라는 달러의 특권적 지위에 입각해 진행된 미국인의 과소비도 깔려 있다. 1990년대 전반에 8% 수준이던 미국 가계의 저축률은 2006년 이후엔 1% 이하까지 떨어졌고, 이런 과소비는 매년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로 나타났다. 그런데 다른 나라라면 이미 파산했을 적자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국화폐가 동시에 세계화폐이기에 자국화폐로 경상수지 적자를 메웠다. 이리하여 미국민의 소비거품이 주택거품과 맞물리면서 이번 금융위기로 나아간 것이다.
2008년 10월 현재 미국과 유럽 정부가 은행의 부분국유화 등 특단의 대책을 취함으로써 세계적 공황 상황은 다소 진정되었다. 대형 금융기관의 줄초상도 멎었고, 은행간 자금융통도 조금씩 원활해지고 있다. 다만 위기의 발단인 미국의 주택가격이 앞으로 10~20% 정도 더 하락한다는 예측이 지배적이고, 그리되면 처리해야 할 부실이 더 커질 것이다. 특히 앞으로 금융기관과 가계가 빚을 정리해가면서 실물부문에서 기업투자와 가계소비가 위축되고, 이는 미국경제, 나아가 세계경제 전체의 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 주가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7년 3.7%의 성장률을 보였던 세계경제는 2008년에는 2.7%, 2009년엔 1.9%로 성장률이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거품이 꺼진 데 따른 손실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한다. 그 부담 배분이 일단락되고, 각 경제주체의 자산과 부채가 재정비되면서 새로운 금융씨스템이 자리잡을 때 비로소 세계경제가 회복궤도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2. 위기 속의 한국경제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 한국경제도 출렁이고 있다. 제2의 IMF사태가 도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 것이다. 1997년 IMF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며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물론 1997년과 다른 점도 있다. 우선 20
- 써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해서는, 헨더슨·가이스 『서브프라임 크라이시스』, 랜덤하우스 2008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