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세기말에 되돌아본 한 진보적 민족주의자의 삶

강영주 『벽초 홍명희 연구』, 창작과비평사 1999

 

이준식 李俊植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107-389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을 편 것이 1월의 어느날 오전 10시였다. 그리고 결론까지 다 읽은 것은 다음날 오전 10시였다. 만 하루 만에 600면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독파한 것이다. 그렇다고 평자의 독서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평자도 공감하는 문제들이 유려한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평자로서는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을 기회를 가졌다. 더욱이 홍명희(洪命憙)와 함께 시대의 아픔을 같이한 인물들과 얽힌 사연, 서로 주고받은 글이 주는 작은 감동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진보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또 19세기말부터의 민족적 과제이던 자주적인 근대국가의 수립을 이루지 못한 채 분단상황에 놓인 오늘날 민족주의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최근에는 진보와 민족주의를 평가절하하려는 경향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동구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진보담론의 퇴조현상이 역력하다. 한때 진보세력의 저수지 역할을 하던 대학과 출판계에서 진보의 상징적 표현이던 ‘사회과학’은 이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울러 ‘국민의 정부’에서 내세우는 ‘닫힌 민족주의에서 보편적 세계주의로’라는 구호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20세기 한국사회를 움직여온 핵심담론 가운데 하나인 민족주의는 이제 소임을 다한 것으로 간주되기까지 하며, 대신 ‘세계화’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국문학자인 강영주(姜玲珠) 교수는 『벽초 홍명희 연구』를 통해 이 시대에 진보와 민족주의가 아직도 역사적 의미를 지님을 보여준다. 이 책이 갖는 첫번째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홍명희라는 “묻히고 잊힌 지 오래”(3면)된 인물을 총체적으로 조망함으로써 그를 민족해방과 민족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인 인물로 “역사적으로 복권”(11면)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홍명희의 정치노선에 대해 피지배계급의 해방이라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민족의 해방과 통일이라는 민족적 이상을 동시에 추구한 “진보적 민족주의”(605면)라는 최고의 상찬을 하고 있다. 20세기말에 새삼스레 진보적 민족주의자로서의 홍명희에 관한 대작을 내놓은 것은 남북 분단이라는 20세기 민족 비극의 해결이 새 세기를 앞둔 싯점에서도 여전히 민족적 과제로서 의미를 지님을 주장하려는 저자의 생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갖는 또하나의 의미는 추상적 담론이 유행하는 한국 학계의 상황에서 “실사구시의 정신”(3면) 아래 관련자료(문헌 및 구술자료)와 연구성과를 망라해 홍명희의 삶과 생각을 거의 완벽하게 재구성했다는 데 있다. 사실 역사학 분야에서 개인에 대한 연구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은 편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학계의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목록만 해도 30여 면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와 연구성과를 종횡으로 엮어가면서 홍명희가 시대의 아픔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자세하게 서술함으로써 인물연구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 결과 이 책은 저자가 의도한 바대로 단순히 홍명희 평전에 머물지 않고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홍명희가 살던 시대에 대한 본격적 연구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돌 한 개로 새 두 마리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이 홍명희와 그가 살던 시대에 대한 연구서라고 할 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먼저 이 책에는 개인에 대한 평전으로서의 측면과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로서의 성격이 충돌하는 것을 보여주는 서술이 간혹 드러난다. 예컨대 저자는 신간회 운동과 관련해 홍명희가 “신간회의 창립에 가장 크게 기여한 공로자”(206면)였던 것으로 서술하면서 신간회에서의 홍명희의 역할을 크게 부각시킨다. 심지어 창립 이후 1년 만에 조직(주로 지회 조직)이 크게 확대된 것도 홍명희의 공로로 돌린다(214〜15면). 이러한 인식이 역사적 사실과 크게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족운동으로서의 신간회운동을 이해할 때 신간회가 당시 민족운동의 전반적 흐름 속에서 사회주의운동 계열과 비타협적 민족주의운동 계열의 연대에 의해 결성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실제로 1927년과 1928년 두 해에 걸쳐 신간회 지회가 빠른 속도로 확대된 데는 몇몇 본부 간부의 노력보다는 지방에 있는 민족운동 세력의 흐름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단순한 평전이라면 몇몇 지도자급 인물과 중앙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구서라면 문제가 다르다.  

이와 관련해 저자가 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했음에도 최근 연구동향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를테면 저자는 홍명희가 관여한 바 있는 화요회의 주도 아래 북풍회의 일부가 가담해 조선공산당이 결성된 것으로 서술했는데(182면),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화요회는 합법적인 사상단체였을 뿐이며 실제로 화요회 안에는 독자적인 ‘공산주의그룹’이 있었고 이른바 ‘화요파’라고 불리던 이 그룹이 조선공산당의 창립을 주도했다고 한다. 따라서 홍명희, 화요회, 조선공산당의 관계를 이해하는 관건은 홍명희가 화요파 공산주의그룹의 성원이었는지를 밝히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지적처럼 홍명희가 “화요회에서 핵심으로부터 소외된 명망가로 대접받고”(183면) 있었다면 홍명희는 화요파 공산주의그룹의 성원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회학 전공자로서 일제강점기를 연구하는 평자는 국문학자로서 한국 근현대사의 문제에 천착하는 저자의 입장에 묘한 동병상련의 느낌을 갖게 된다. 학문간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현상은 시대의 흐름이며, 한국 학계에서도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이 수없이 주장되었음에도, 실제로 학제간 연구의 전형이라 할 만한 연구가 이루어진 적은 별로 없었다. 폐쇄적인 울타리를 뛰어넘어 인간의 삶과 생각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진정한 의미의 학제간 연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서 나온 이 책은 “문학과 역사와 사상을 넘나드는 학제간 연구”(4면)의 전형이 될 수 있을 학제간 연구”(4면)의 전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