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구효서 具孝書

1957년 강화 출생.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도라지꽃 누님』, 장편 『늪을 건너는 법』 등이 있음. avocado105@hanmail.net

 

 

 

소금가마니

 

 

『恐怖と戰慄』, キルケゴ-ル 著, 飯島宗享 譯, 白水社.

어머니가 읽던 책이라고 했다. 정말 어머니가 읽던 책이 맞느냐고 나는 외종형에게 되묻지 못했다. 외종형의 책장에서 그 책을 찾아냈을 때 그는 이미 사흘 전에 고인이 되어 있었다. 그의 유품인 셈이었다. 사흘만 일찍 찾아냈더라면 외종형에게 물을 수 있었을까. 정말 어머니의 책이었느냐고.

그러지는 못했을 것이다. 외종형으로부터 직접 전해받았다 하더라도, 그 책을 처음 그의 책장에서 발견했을 때처럼, 나는 말을 잃은 채 표지를 멍하니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어떤 대답을 들었더라도 그 책을 들고 있던 내 복잡한 소회가 석연해질 수는 없었으리라. 무학인 어머니가 키에르케고르를, 그것도 일서로 읽었다니.

세상을 떠나기 직전 외종형은 어머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내게 들려주었지만 어머니가 키에르케고르를 읽은 까닭에 대해서까진 말하지 않았다.

그 책 말고도 어머니의 책은 몇권 더 있었다. 『금산사 몽유록』과 『강명화의 애사』, 그리고 『김인향전』 『동정추월』 『금옥연』…… 그런 것들이라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소설이었고, 한글이었으니까. 다닐 학교도 없었고, 그래서 글을 배운 적도 없지만 어머니는 글을 읽고 쓰는 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2,30년대에 익힌 글이라 맞춤법과 띄어쓰기엔 미숙했다. 추풍령 부대에 근무하던 나에게 어머니는, 인호야 바다 보아라,라는 식으로 편지를 썼다. 소대장이 그 편지를 보고, 충청북도 영동에 무슨 바다가 있다는 거지?라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의 철자에 익숙해서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키에르케고르는 예상 밖이었다. 『공포와 전율』이라면 나도 스물두어 살에 읽은 기억이 있다. 아직도 내 책장 한 귀퉁이에 꽂혀 있지만 읽을 당시 그걸 이해했다는 기억은 없다.

어째서 키에르케고르였을까. 어머니는 과연 키에르케고르를 얼마나 이해했을까. 군데군데 밑줄쳐진 부분을 들여다보았다. 밑줄은 연필로 그어져 있었다. 가끔 짧은 메모도 보였다. 분명 어머니의 필체였다. 하지만 나에겐 일본어 해독능력이 없다. 내 오래된 번역본과 대조할 수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어머니가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과 내가 밑줄 그어놓은 부분이 심심찮게 일치했다.

어떤 자는 힘에 의해서 위대했으며, 어떤 자는 지혜로 말미암아 위대했고, 어떤 자는 희망으로 인해 위대했으며, 사랑을 통하여 위대했다. 그러나 ‘그’는 무력(無力)이라고 하는 힘에 의해 더욱 위대했고, 어리석음이라는 지혜로 더욱 위대했으며, 미친 희망과, 자기를 증오하는 방식의 사랑을 통해 더욱 위대했다.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어머니가 45세에 낳은 막내둥이였다. 신기하게도 나 또한 어머니 나이 45세에 태어난 막내였다. 어머니가 키에르케고르에 친화감을 느낄 대목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자녀가 모두 6남매였다는 것, 그리고 그중 몇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냈다는 점도 비슷했다. 아버지의 반대로 딸들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도 같았고, 나처럼 키에르케고르도 허릿병을 앓았다는 것까지 같았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읽은 거라면, 적어도 나와 관련된 유사점은 어머니가 그 책을 읽은 동기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밖의 다른 유사점들만으로도 어머니가 키에르케고르에 관심을 갖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당시 대중소설들 속에 끼여 있던 키에르케고르의 저작물이 내겐 여전히 낯설고 의아했다.

결국 내 석연찮은 의구심은, 그 책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는 이름 석자를 발견함으로써 어느정도 해소의 실마리를 얻게 되었고, 다른 차원의 의혹으로 발전했다. 실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은 아니었다. 덮어둔 채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실제로 잊고 살아왔던, 오래된 의혹이었다.

‘冊主 朴成顯.’ 그 이름은 출판년도와 발행인 따위가 인쇄된 판권란 여백에 적혀 있었다. 세련된 펜글씨였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잉크의 푸른빛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글씨. 은은히 배어나는 푸른빛은, 무언가를 애써 외면하려는 내 의중을 지그시 끌어당겼다.

당초부터 어머니의 책은 아니었던 것이다. 책주가 어머니에게 빌려주었거나 아주 줘버려 결국 어머니 것이 되었다 할지라도, 당초부터 어머니의 책이었던 것과는 사정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와 책주 사이의 실질적 관계가 증빙되는 순간이었다. 풍문으로만 듣던. 나는 풍문으로 태어난 아이였다.

무학자가 대중소설을 탐독하고, 카따까나와 히라가나를 익히고, 종당엔 키에르케고르마저 읽게 된 데는, 마을의 유일한 기독인이며 일본유학파였던, 풍문의 아버지 박성현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느꼈던 것보다, 어머니의 지적 수준은 훨씬 높았을 것이다. 거기엔 책주의 지속적인, 세심한 배려와 은밀한 지도가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교양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곧 책주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는 것과도 같았다. 내겐 낯설고 의아했던 『공포와 전율』이 정작 두 사람에겐 낯설 것도 의아할 것도 없었는지 모른다.

글을 읽고 해득하는 어머니의 솜씨가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나는 어려서부터 드물게나마 경험하긴 했다. 비록 『토정비결』―난 이 오래된 책을 아직 갖고 있다―이긴 했지만 그나마도 그걸 읽고 의미를 풀어낼 수 있는 부녀자는 마을에서 어머니가 유일했다. 육십갑자를 생년월일의 기수(基數)로 계산하여 괘상(卦象)을 찾아내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을뿐더러, 비유와 상징으로 얽힌 묘문(妙文)들을 막힘없이 읽어내려간다는 건 어지간한 독서편력이 아니고는 가능치 않은 일이었다.

정초마다 마을 아낙들은 우리집으로 몰려들었다. 토정비결 보는 일을 그들은 일년 신수를 본다고 했다. 한꺼번에 우리집으로 몰려들었던 까닭은, 마을에 한권밖에 없는 『토정비결』이 우리집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걸 읽어줄 사람이 어머니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바깥양반이 없다는 것도 아낙들을 우리집으로 쉽게 모여들게 한 이유였다.

쑥잎이며 나팔꽃잎으로 문양을 낸 창호지문에 겨울 햇살이 들이비치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책을 펼치고 돋보기를 걸쳤다.

기택이네 엄니는 기묘년 팔월생이라고 했던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든 적은 사람에게든 토정비결을 볼 때만큼은 어머니의 말투가 슬그머니 달라졌다. 반말이었다.

아, 네, 저기…… 팔월 스무아흐레……예요.

반면 나이가 적은 사람이든 많은 사람이든 토정비결을 보는 동안엔 어머니에게 말을 높였다. 명운 감별자와 의뢰인 사이에는 이처럼 권위에 대한 은밀한 촉탁과 암묵적 수락의 전단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삼월을보아하니낙시대를강호에던져서금린을낙것도다. 떼를타고바다를건느니구름이허터지고날이밝도다……

그해 한달 한달의 운세를 차례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하면 의뢰인은 긴장하게 마련이었다. 황국과단풍이목단보다낫도다(黃菊丹楓勝於牧丹)라거나, 바람이갈대를치니기러기떼가허터지도다(風打蘆荻雁陣失散) 따위의 말은 아무리 들어도 도무지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다는 말인지 나쁘다는 말인지, 한해의 운세를 몽땅 비결에 걸고 있자니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그러나 쉽게 그 뜻을 누설하지 않았다.

의뢰자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고개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둔다면 숨이라도 넘어갈 지경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볼은 굳고 누당(淚當)은 늘어졌다.

정초의 겨울 방안은 궁금증과, 무학의 참담함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한마디 귀띔이라도 해주지 않는다면 아낙들은 앉은 채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방안이 터져나갈 듯한 긴장으로 가득 차면 어머니는 그제서야, 좋군, 하고 살짝 입을 열었다. 너무 주눅이 든 나머지 의뢰자는 그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다. 가까운 데 앉아 있던 누군가가 어머니의 말을 받아, 좋대,하며 의뢰자의 옆구리를 찌른 다음에야 기사회생, 마침내 크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딱딱하게 굳었던 방안 공기가 일시에 풀어지며 아낙들의 낯은 창호지에 비쳐드는 햇살처럼 해실거렸다.

『토정비결』에 적힌 구체적인 내용들과는 상관없이, 다만 어머니의, 좋군,이라는 말 한마디가 의뢰자의 꺼져가는 숨통을 틔웠다. 좋군, 혹은, 안 좋아……라는 말 한마디로 아낙들의 생사를 희롱하던 어머니의 무한무상했던 권위. 그 범상치 않았던 모습 한켠에도 진작 키에르케고르의 책주 박성현의 존재가 잠닉해 있었던 것이다.

이 무한의 체념은, 옛날의 설화에 나오는 그 속옷과 같은 것이다. 실〔絲〕은 눈물로 짜여지고, 눈물로 바래지며, 샤쓰는 눈물로 꿰매진다. 그러나 그러기에 또한 이 샤쓰는 철이나 강철보다도 더 몸을 잘 보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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