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시종 『잃어버린 계절』, 창비 2019

소생하는 계절에 멈춰버린 삶과 기억

 

 

곽형덕 郭炯德

명지대 일문과 교수 kwakhdmyong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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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하는 계절 속에 멈춰버린 생명이 있다. 시인은 순환하는 계절에 몸을 두고 있지만 잃어버린 계절 속을 살아간다. 이 시집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압도적인 비극과 고통의 기억은 시인을 순환하는 계절에 몸을 맡기고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시인은 살아가면서 멈춰 있고, 멈춰진 채로 살아간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며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시인의 계절은 자연계의 순리를 따라 순환할 수 없다. 시인의 계절이 그들과 함께 순환한다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압도적인 비극과 고통은 희석돼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기에. 여기서 계절은 시간의 변화가 아니라 고통의 깊이를 드러내는 멈춰진 시간과 기억이다. 그렇기에 자연은 “거기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던 사람과/거기 아니면 이어갈 수 없는 목숨 사이에서”(「마을」) 말이 없다.

『잃어버린 계절』(이진경·카게모또 쓰요시 옮김)에서 김시종은 국민국가의 혹은 어느 한 민족의 서정(抒情)과도 온전히 합치될 수 없는 기억과 삶을 쓴다. 그것은 일본의 서정만이 아니라, 한국과 북한의 서정과도 온전히 겹쳐지지 않는다. 오세종이 지적하는 것처럼 김시종의 시는 일본인의 ‘탄까적(短歌的) 서정’을 농밀하게 간직하면서도 그것을 내부에서 파열시킨 것이다.(呉世宗 『リズムと抒情の詩學: 金時鐘と「短歌的抒情の否定」』, 生活書院 2010) 이를 좀더 넓혀보면 김시종의 ‘서정’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과 북한의 서정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틈새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합치될 수 없는 기억과 삶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그 틈은 일본의 패전과 ‘제주 4·3’, 그리고 망명과 한국전쟁으로 결정적인 것이 됐다. 일본의 패전도, 시인의 일본 망명도, 그리고 한국전쟁도 모두 여름의 일이었다.

『잃어버린 계절』에서 ‘여름’은 시인의 삶을 완전히 뒤집은 백일몽에서 깨어나게 한 시간이다. 시인에게 여름은 “생각할수록 눈앞이 아찔하여/조용히 눈 감아야 하는/마음의 밑바닥 계절”(「여름」)이다. 여름은 단순히 순환하는 계절이 아니라, 한반도의 비극이 몇겹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그것은 비단 식민지의 비극만이 아니라 해방 후 북으로 간 사람들이 “흔적 없이 사라진”(「잃어버린 계절」) 것과도 이어진다.

‘가을’은 시인에게 자이니찌(在日)로 살아가며 고향을 강하게 떠올리는 계절이다. 가을의 고향은 그리운 곳이지만 “살육은 언제부터인지 대숲이 되”고 “동굴에서 잇따라 마을 사람들이 나타나”(「여행」)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까만색 “가을 새는 짹짹거리지 않”(「조어(鳥語)의 가을」)고 비명만을 지른다. 새조차 울지 못하는 것은 사자(死者)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가을은 “녹슬고 있는 나의/시간 속을”(「녹스는 풍경」) 살아가며 죽은 자가 자신을 무심히 응시하고 있음을 몸서리치게 깨닫는 시간이다. 또한 주의(主義)로 분단된 조국의 어둠을 6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인식하는 시간이다.

‘겨울’은 “무자비한 살생이”(「뛰다」) 다시 반복되는 ‘초봄’ 바로 전의 계절이다. 물론 겨울은 어느 한 계절이 아니다. 해방 직후부터 안정환이 J리그에서 뛰기 위해 일본에 오고 납치 생존자 다섯명이 일본으로 돌아온 2002년까지의 많은 겨울이 중첩돼 있다. “어중간한 고향 사투리로 늙어버린”(「구멍」) 일본어와 “그림자가 길게 자라”(「그림자는 자라고」)는 시간이기도 하다.

‘봄’은 소생의 계절이 아니다. 시인에게 봄은 “언제나 붉고/꽃은 그 속에서 물들고”(「4월이여, 먼 날이여」) 피는 끔찍한 계절이다. 봄은 피로 물든 ‘제주 4·3’을 뚜렷이 다시 떠오르게 한다. ‘봄’에 수록된 「4월이여, 먼 날이여」는 시인이 4월의 기억을 직접적인 표현으로 뚜렷이 각인시킨 시다. “짓밟힌 진달래 저편에서 마을이 불타고/바람에 흩날려/군경 트럭의 흙먼지가 너울거”리는 제주도의 구덩이 속에서 죽은 사람들이 시에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그렇기에 “소생하는 계절에/올 것이 오지 않는다.”(「봄에 오지 않게 된 것들」) 봄은 계절의 끝이기에 여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여름가을겨울봄은 봄여름가을겨울처럼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어지며 다시 이어지는 계절이다.

이처럼 『잃어버린 계절』은 폐쇄적인 자연관 속에 갇힌 일본적 서정을 내부에서 파열시켜 역사적 지평으로 열어젖힌 시집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시집을 일본의 탄까나 하이꾸의 키고(季語, 계절을 상징하는 시어)의 정감을 부정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오히려 그러한 키고의 세계를 집어삼켜 내파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꽃은 피로 물들어 있고, 새는 울지 못하며, 사람들은 꽃이 피는 계절에 죽어간다. 이 시집의 계절은 이어짐을 거부하며,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악함을 드러낸다. 시어이기에 인과론적 서사를 따르지 않지만 수많은 시체를, 그리고 비극을 낳은 계절을, 잃어버림을 드러내며, 잃어버린 계절이 계속되고 있음을, 억울하게 죽은 생명이 여전히 잃어버려진 채로 남겨져 있음을 드러낸다. 소생하는 계절에 죽어가는 생명만큼 슬픈 것은 없다. 더구나 그것이 살육에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여전히 “제주도의 무고한 희생자들을 단정한 형태로, 혹은 신성한 형태로”(김시종 「경건히 뒤돌아보지 말라」, 『창작과비평』 2018년 봄호 441면) 표상하는 한, 계절을 계속 잃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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