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전삼혜

전삼혜 全三惠

1987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ishumir@naver.com

 

 

 

 

내가 기억하는 첫 순간부터 우리 집엔 엄마와 나 둘뿐이었다. 유치원에 입학할 때도,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올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대걸레로 교무실 유리창을 부순 날, ‘부모님 모셔와!’라는 호통에 나는 당당하게 ‘어머니밖에 없는데요’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호적을 떼어보면 ‘부’와 ‘모’, 합쳐서 ‘부모’가 번듯하게 있는 가정이었지만 나는 늘 우리 집이 편모가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엄마의 설명도 한몫 거들었다.

머리가 굵어지기 전에는 궁금해서, 굵어진 후에는 심술 삼아 엄마에게 묻곤 했다. 엄마, 나는 왜 아빠가 없어?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비밀이라도 말하듯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아빠는 지금 멀리에서 백화점을 만들고 있어. 해가 바뀔 때마다 아버지가 짓는 것은 다리가 되기도 했고 빌딩이 되기도 했다. 싼타클로스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무렵부터 나는 엄마 앞에서 대놓고 투덜거렸다. 차라리 로봇 기지를 짓고 있다고 하지? 매해 바뀌다시피 하는 아버지의 일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리를 짓고 있다고 한 해는 한강다리 하나가 무너진 해였고, 백화점을 짓고 있다고 한 해는 백화점 건물이 폭삭 주저앉은 해였다. 엄마는 나를 너무 어린애 취급한다니까. 멜빵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은 여섯살의 내가 엄마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엄마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내 볼을 문질렀다. 로봇 기지라. 그것도 괜찮겠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변변한 반항기마저 가질 수 없었다.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가출을 하거나 폭주족에 가담하기엔 너무 ‘쪽팔렸다.’ 코흘리개 때부터 ‘아빠가 없다는 게 뭐 대수야? 엄마 힘내’라며 엄마 어깨를 두드렸던 내가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사춘기 처방이라곤 학교 뒤 언덕에서 B와 함께 입담배를 피우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다고 B에게 질풍노도의 시기가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한 동네에서 초중고를 같이 나온 이 녀석은 어느날부터 무협지도 성인잡지도 아닌 이상한 책들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인물 이름 옆에 대사만 죽죽 써진 그 책을 녀석은 신주단지라도 되는 듯 아끼고 살폈다. 야, 나는 그렇다 치고 너는 왜 그러냐? 구멍가게에서 오백원 더 주고 사온 담뱃갑을 뜯으며 내가 묻자 녀석은 눈을 지그시 감고 대답했다. 커트 보네거트께서 말씀하시길, 부모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자신이 없으면 예술을 하라더라고. 나는 하마터면 필터에 불을 붙일 뻔했다. 이 새끼야. 그래서 게이가 되고 싶었다는 거냐? 아니. B는 멋쩍게 히히 웃으며 퉁퉁한 손으로 내 입에 물린 담배를 바로잡았다.

그러니까 내가 TV를 보다가 밥그릇을 떨어뜨린 것 정도는 애교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스물이 되던 그 해에도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는 왜 아빠가 없어? 엄마는 이제 까치발을 해야 간신히 손이 닿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는 멀리에서 도서관을 짓고 있단다. 나는 엄마를 내려다보며 대꾸했다. 여태까지 지은 것 중에 가장 학구적인 건물이네. 그 전해에는 피씨방, 그 전해에는 별장, 그 전해에는 펜션. 최근 몇년간은 아버지의 사업이 좀 퇴폐적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왕 재수하기로 한 거, 돈을 열심히 벌어 엄마를 재혼전문 상담소에 데려가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찾던 참이었다.

그런데 TV에 아버지가 나타나버린 것이다. 그것도 앞에 ‘건축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내 휴양지 펜션의 동향인지 뭔지를 다루는 아침 프로그램에 나온 그 사람은 분명 아버지였다. 호적등본에서 본 이름을 자막으로 깐 화면에 나타난, 기르다 만 콧수염에 뿔테 안경을 쓴 얼굴은 묘하게 나와 닮아 있었다. 밥그릇 깨지는 소리에 놀라 방에서 나온 엄마는 화면을 보고 딱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어머, 이번엔 저기 가 있었네. 택배를 분류하다가 주문자 이름에 ‘싼타클로스’가 적힌 걸 보면 기분이 이럴까. 나는 깨진 밥그릇 조각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B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아무래도 TV에 아버지가 나온 것 같아. 아침식사 중이었는지 우물거리는 소리로 B가 대답했다. 있잖아. 너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공통점이 뭔지 아냐? 이건 또 무슨 싼타클로스 빨간 내복 주문하는 소리야.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물 들이켜는 소리가 넘어온 후, 한결 개운해진 발음으로 B가 말했다. 남의 말에 귀가 얇아서 지 인생을 말아먹는 거란다. 네놈이 매해 세뇌당하더니 드디어 돌았구나. 아침부터 뭐 하는 거야, 끊어. 나는 끊긴 수화기를 들고 TV 화면을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뒷머리를 득득 긁으며 어느 산장 앞에서 리포터의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 매정한 새끼, 진짜라니까. 나는 구시렁거리며 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아버지가 집에 왔다. TV 밖에서는 처음 보는 건데도 설레지는 않았다. 다만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올린 아버지를 보고 멍청하게 한마디 내뱉었을 뿐이다. 진짜 아버지가 있었구나. 어머니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며 웃었다. 그러기에 엄마 말 안 믿고 뭐 했어? 나는 머쓱하게 대답했다. 동생이라도 만들었으면 내가 믿었지.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고 반박했다. 얘 좀 봐. 만들기는 했어. 낳지를 못했을 뿐이지. 아버지가 추임새를 넣었다. 두번. 네가 여섯살 때, 여덟살 때. 그때 참 미안했어, 여보. 뭘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팔짱이 더 단단해졌다. 저 아르바이트 다녀올게요. 나는 겉옷을 집어들고 집을 나섰다.

B와 나는 택배를 배송지별로 분류했다. 이건 서울, 이건 경기, 이건 경남. 크고작은 상자들을 지역별로 쌓으며 나는 투덜거렸다. 아니, 이건 뭐 서울에서 출발해서 부산 찍고 일산 오는 택배도 아니고. 무슨 아버지가 20년 만에 돌아오냐? 옆에서 B가 말을 받았다. 동생도 생겼었다며. 돌아왔는데 너 모르는 사이에 왔다가신 모양이다. 그런가 보더라. 나는 수신지가 울산인 택배를 ‘경남’ 쪽으로 밀어놓았다. B가 지금 막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런데 너 G랑은 어떻게 됐어? 요새 통 안 보이더라. 물어보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셨겠어요. 걔 부산으로 대학 갔다. 내 퉁명스러운 대답에 B가 혀를 찼다. 너, 차였구나. 나는 대답 대신 박스 하나를 B 쪽으로 밀쳤다. 재수생하고는 만나기 싫대. B가 상자를 바닥으로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대학생인데 왜 안 만나주냐. 몰라. 부산에서 캠퍼스 커플이나 하겠지. 넌? B가 멍청하게 되받았다. 내가 뭐? 나는 작업대 위의 테이프 조각을 쓸어담아 B의 등에 붙였다. 너네 학과 여자 많다며. 넌 뭐 없냐? B가 손이 닿지 않는 곳의 테이프를 떼어내느라 낑낑댔다. 여자는 많은데 내 여자는 없더라.

4월 초인데도 한밤의 골목길은 싸늘했다. 나와 B는 편의점에서 캔커피 두개를 샀다. 딱, 소리가 나며 따진 캔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며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제 너네 아버지는 뭐 하실 거래? 그러고 보니 그걸 안 물어봤다. B가 내 뒤통수를 쳤다.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새끼가. 지난주까지만 해도 몰랐거든? B가 다 마신 캔을 길옆으로 던지면서 나에게 달라붙었다. 야, 나 니네 아버지 보러 가면 안되냐? 이 새끼는 우리 아버지가 무슨 동물원 원숭이냐. 그럼 뭐 하시는지라도 알려줘. 알았어. 나는 파리를 떼어내듯 팔을 휘저어 B를 쫓았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주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마치 한 삼십년 붙어산 다정한 부부 같은 모양새였다. 나는 떨떠름하게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아버지는 휘파람을 불며 깐 마늘을 통에 던져넣었다. 아버지는 내 쪽을 보고 훅, 바람을 불었다. 입에서 마늘 냄새가 났다. 재수한다며? 아버지로서의 위엄이라곤 눈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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