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류기성 柳氣成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1988년생.
shesword@naver.com
개가 떠나는 시간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오후를 보냈지만 내가 처음 술 마시는 오후를 보내게 된 것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로, 그때 내 주변은 온통 술 권하는 사회였다. 그 시절 술이란 낯선 사이를 어색하지 않게 이어주는 다리와도 같아서 자정을 건너고 새벽을 건너 하루를 돌고 돌 수 있도록 술은 길이 되어주었다. 술을 권하는 사람 중에는 대학생의 무분별한 음주습관 탓에 복부와 둔부에 쌓여가는 지방을 염려하여 지속적인 운동을 권하는, 이른바 ‘운동 권하는’ 자들도 있었고 사회의 밑바닥에 쌓여가는 부조리를 염려해 열렬한 운동을 권하는, 이른바 ‘운동권 하는’ 자들도 있었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복부와 둔부에 쌓인 지방덩어리도, 무엇인지 또 있기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의 밑바닥에 있다고 누군가 주장하던 그 부조리도 치우지 못했다. 어쨌든 사전이란 것은 우리에게 〔다리(명사) 1. 다른 편의 높은 곳으로 건너다닐 수 있게 만든 시설물〕이라고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 시절 우리는 다리 위를 걸었을 뿐 아니라 술에 취해 개처럼 기어가기도 했고 공처럼 굴러가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것은 젊은 시절의 멋이었고 낭만이었고 즐거움이었다. 그 시절 술이 만들어준 다리란 그랬다. 어떤 다리를 걷다가 발을 헛디딘 바람에 다리 아래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곤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다.
나는 그 시절 누군가의 방 벽에 붙어 있던 한 문장을 기억한다.
인간은 책을 고달프게 하는 유일한 창조물이다.*
그 문장이 붙어 있는 허름한 방을 본 것 역시 그해의 일이었다. 오후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밤새도록 계속됐지만, 어느샌가 돈이 용납하지 않았다. 아무리 팔팔한 청춘이라 해도 돈 걱정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냥 무전유흥 한번 하고 튀면 되지 않을까. 그런 객기를 부리기엔 그 시절 우리는 어딘가 어설펐다. 술집에 갈 돈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산하기도 아쉬워 결국 편의점에서 소주 몇병을 사 들고 한 선배의 방에 가기로 했다. 대학생이라는 게 그렇다. 주변에선 하고 싶은 대로 하라지만 그따위 일에는 항상 음식비, 교통비, 생활비 같은 ‘—비(費)’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담배 한갑 주세요. 이 말을 처음으로 했던 때가 언제더라. 고등학생 때인 것 같다. 다섯번을 시도하면 네번 정도는 편의점 직원이 신분증을 요구했다. 없는데요? 그럼 담배도 없습니다. 나이를 꽉꽉 채우고 신분증을 발급받아 다시 갔을 때 편의점 직원은 말했다. 2500원입니다. 어, 그래요? 돈…… 없는데. 그럼 돈이 있으면 됩니다. 그랬다. 돈이 없으면 까짓것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은 다음, 편의점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준비해 편의점 직원에게 말했다. 한갑에 2500원입니까? 이건 제 인생의 30분입니다. 그러니까 담배 한대는 제 인생의 1.5분 정도인 셈이군요. 담배 한대를 피우면 수명이 5분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대를 피우는 데 3분 정도가 걸리죠. 결국 저는 담배 한대에 거의 10분을 쓰는 거네요. 옆에서는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담배를 보루째 사더니 말했다. 25000원입니까? 이건 제 인생의 30분입니다. 어,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말이다. 그러니까, 잠깐만……
돈을 벌고 나이를 먹고 짬밥을 먹고 머리가 어느정도 돌아가게 된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하건대 아까 그 문장은 이렇게 바뀌어야 옳다.
책은 인간을 고달프게 하는 빌어먹게 많은 창조물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창조물을 대표하는 것을 대입하자면 다음과 같다.
돈은 인간을 고달프게 하는 최고의 창조물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것을 알 리가 없는 나는 방 한구석에 방치된 듯 붙어 있는 그 문장을 별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병 든 것처럼 초췌한 형광등이 허름한 방을 밝혔고, 저 멀리 복도 끝에서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에 들어선 선배 한명이 말했다. 야,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참 하나같이 부지런해. 이 꼭두새벽에 빨래를 하지 않나, 책을 읽지 않나. 거기서 나는 그 문장의 주인을 만났다. 끼니를 잘 챙기지 않는 모양인지 양 볼은 푹 패어 있었고 안경을 쓴 두 눈은 퀭했으며 장발을 상투 틀듯 고무줄로 묶어놓은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고달파 보였다. 선배들은 곧바로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말없이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 문장을 함께 바라보던 한 선배가 말했다. 고달프게 하긴 무슨, 자식아. 너 자신이나 고달프게 하지 마라. 그러자 상투 튼 그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도 어떤 관점에서 보면 한권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뭘. 오호, 그러셔? 그러고는 한 선배가 그가 읽던 책 제목을 한번 보고는 말했다. 음, 자본론이라. 그럼, 이번에 우리 자본론님은 얼마나 고달프게 하셨나? 하하, 그래. 자본론이라는…… 한 책의 처지에서 보면 말이야, 사실 오랜 시간 외로웠을 거야. 그가 말했다. 자본주의가 몇백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이를 먹으면서 괴물처럼 몸을 불려온 가운데, 그깟 자본론이라는 책 따위가 뭘 할 수 있었겠어. 그러니 많이도 외로웠을 거야. 고달프다는 말을 그저 그 뜻대로만 받아들이지 마. 얼마나 외로웠겠어. 그렇게 위세 높던 맑스주의도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더니만, 이제는 정말 혼자가 되었지. 그러니 나라도 말을 걸어줘야 하지 않겠어? 가끔 먼지 청소도 해주고, 외롭지는 않냐고 물어도 봐주고 말이야.
다른 선배는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 모양인지 태평하게 그의 말을 듣거나 혹은 무시했지만 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정처럼 들리는 그 말을 들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그가 말했다. 내 말에 동의하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동의하지 않나 보군. 그것도 아니어서 고개를 또 저었다. 아아, 이도 저도 아니라는 거군. 그렇지. 세상엔 참 이도 저도 아닌 게 많아. 그 말에는 왠지 수긍이 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생인가 보네? 이름은? 이런저런 통성명을 하고 우리는 다시 술을 마셨고,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책을 읽었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내가 편의점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우스개 삼아 꺼냈을 때, 책을 읽던 그가 대뜸 말했다. 흠. 그런 일이 있었군. 2500원과 25000원이라. 안타깝네. 하지만 말이야. 이 세상에 숫자만큼 공평한 건 없어. 다른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숫자가 아닌 다른 언어는 너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래서 난 그런 것들은 이제 믿지 않아. 숫자는 깔끔하고 또 그래서 군말도 없고, 평등하지. 사실 생각해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숫자가 되는 일이 아닐까? 몇월 몇날 몇시에 어디에서 몇시간 동안 일하고, 거기에서 일한 보수는 통장에 찍힌 액수로 다시 환산되지. 삶은 어쩌면 사칙연산의 연속일지도 몰라. 어쨌든 그런 황당한 일이 있을 때는 말이야. 음, 진정하고 일단은 소수(素數)를 세는 거야. 소수, 알지? 나중에 한번 세봐. 이, 삼, 오, 칠, 이렇게. 거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은 들지 않게 될 거야. 그의 뜬금없는 말에 다른 누군가가 너스레를 떨었다. 무슨 헛소리야. 뭐, 그러면 숫자 세느라 정신이 팔리기는 하겠네. 어쨌든, 하고 그는 계속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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