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소설이 로컬을 말하는 방법
다시 지역화하는 시대의 문학과 로컬리티
구모룡 具謨龍
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문학/사상』 편집인. 평론집 『폐허의 푸른빛』 등이 있음.
kmr@kmou.ac.kr
1. 지방이라는 추상어
지방이라는 말이 거리낌 없이 통용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서울과 지방이라는 오랜 심상 지리를 반영하는 말이나, 말하고 듣는 이의 상황에 따라서 위계를 내포한 직시어(deixis)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그 범주가 달라져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난 여타의 공간을 지방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만큼 수도권이 여러가지 미디어—교통, 교육, 언론, 출판 등—로 통합되고 있다는 사정을 반영하는데, 이러한 지칭은 매우 추상적인 공간지각일뿐더러 어느 한쪽의 특권이 내포된 발화로 나타나기 쉬운 현실이다. 지방민, 지방도시, 지방대학처럼 지방문화, 지방문학이라는 말도 널리 쓰이고 있다. 지방이라는 말 대신에 지역이라는 중립화 어법으로 분식한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오십보백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가운데 중심주의의 해체가 문제해결의 시발이라는 주장이 빈번하다. 이는 한편으로 중심에 저항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기 고장을 내세우는 방략이나, 이분법이 만드는 순환논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본디 도성이 있던 한양을 제외한 지역을 지방이라 칭하던 중세적 습속이 근대화 과정에서 재생산되어 거의 이원론에 가까운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주지하듯이 분단으로 섬이 된 한국은 서울-부산을 잇는 축으로 수출주도형 성장정책을 펼치면서 근대화를 이뤘다. 이는 수도에 여타 지역이 충성하는 서울 중심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권과 영남권에 산재한 공업단지를 국가가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그 시기 유신체제를 타파한 부마항쟁과 그 이듬해의 광주민주화운동에 지방의 저항이라는 측면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서울 중심성은 무너지기는커녕 이어지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세계화 행진에 발맞추어 더욱 강화되는 형국으로 나타난다. 위로는 세계도시와 접속하려는 열망이 있고 아래로는 산업 재편이 진행되었다. 그동안 지역적 불균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해양경제(maritime economy)를 강화하거나 분권 혹은 분산 등을 이루려는 조치가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집중은 더욱 심화하였다. 최근에 이르러 경제, 권력, 인구, 교육, 문화 등 전부문의 지표는 수도권 일극 체제가 거의 고착되었음을 보여준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근대화에 이어 세계화를 거치면서 한국사회에서 끝없이 중심을 강화하는 시스템을 운용하였다. 벌써 ‘지방소멸’1을 예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동안 지역문제 혹은 지역모순을 우리 사회의 부차적 과제로 인식해온 입장에서 전환의 자리가 만들어져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 자본주의적 공간생산이 주요모순이라는 앙리 르페브르(Henri Lefèbvre)의 지적을 환기할 필요도 있겠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마치 원근법처럼 소실점의 위치에 지방이 자리한다. 우리는 계급모순, 젠더 불평등, 분단체제의 민족 상황을 심각하게 논의한 만큼 지역 격차와 불균등을 고민했을까? 담론적으로는 1980년대의 지방주의(localism)와 변증법적 지역주의, 1990년대의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localism)를 경과했다.2 중앙의 특권적 시선에 의해 지방은 자주 차별된 표상으로 그려지고 중심에 반발하는 지방의 심리는 그 이율배반적 정념으로 크게 왜곡되는바, 가령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지방주의(localism)가 있다. 이는 이분법 혹은 대위법적 배치는 선명하나 구체적이고 복잡한 과정과 양상을 소거하는 오류를 낳는다. 변증법적 지역주의는 지역모순을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의 다음에 두는 실천적 인식론이다. 지역에 가중된 모순을 견결하게 껴안고 가야 한다는 수행의지를 반영한다. 비판적 지역주의는 일국적 시야를 넘어서 로컬을 사유하는 방법이다. 자기를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하면서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계기를 만든다. 이와 관련해 손남훈은 ‘지역감수성’이라는 개념을 제출하면서, 많은 표상에서 지방이 타자화되는 경향이 일반화되었음을 비판하였다.3 그의 지적처럼 우리 사회는 지역에 관한 주체와 타자의 인지부조화가 심각한데 공간 리터러시가 미흡한 수준이라 하겠다. 로컬은 단순한 이미지나 표상이 아니며 내재적 시점의 구체적인 경험과 사건으로 구성된다.
어떤 의미에서 지방이라는 말은 벌써 폐기되었어야 할 단어가 아닐까?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것을 추구하는 문학에서 지방이라는 추상적인 용어의 남발은 텍스트의 질을 떨어뜨린다. 실상에 있어서 중심과 주변은 중층적이며 프랙털(fractal)과 같이 부분들과 전체의 다층적인 연관성을 지닌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체제를 하나의 틀로 활용하면서 지리학이 말하는 스케일을 겹쳐 볼 수 있다.4 세계(global)/지역(region)/국가(nation)/지방(local)이라는 지리학의 스케일은 그 모든 층위에서 중심과 주변의 형국을 반복한다. 일국 안의 로컬—서울/지방과 국가/지방을 구분하기 위하여 후자의 지방은 지금부터 로컬이라 칭한다—도 이와 같아서 장소와 사람, 사회와 이동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네 층위는 상호영향 관계에 있으며 중심과 주변을 변주한다. 마이클 크로닌(Michael Cronin)은 세계가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지시하듯이 축소되는 세계는 실상 우리 시야의 문제일 뿐이며 시점을 줄이고 스케일을 축소할 때 얻게 되는 어떤 통찰력은 다양한 장소와 목소리가 있는 생활세계의 무한한 복잡성을 만날 수 있게 한다고 지적한다.5 세계화나 지역주의(regionalism) 등 거시 모더니티보다 생활세계를 탐문하는 미시 모더니티가 문학의 생성공간이라는 말이다. 백낙청은 “어디까지나 특정한 언어에 뿌리를 둔 국민/민족/지방문학이 세계문학의 기본을 이룬다는 사실이 오늘날 지구화를 주도하는 이른바 선진국에서 곧잘 망각되고 외면되는 현실”6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학 생성의 기본 공간이 로컬과 로컬 경험의 발현인 로컬리티라는 사실이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2. 로컬리티를 발현하는 텍스트들
여기서 두가지 문제틀을 설정할 수 있다. 하나는 한국 자본주의의 하비투스(habitus)로 작동하고 있는 중심과 주변, 서울과 지방,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식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미시적으로 로컬리티의 경험을 서술하면서 거시적으로 국가(민족)와 세계를 포괄하는 서술 방법이다. 현금의 한국문학에서 이 두가지 지향은 혼재되어 있다. 장소의 감각(sense of place)을 말하는 수준이라면 이는 지나치게 시적인 지향으로 협소해진다. 이보다 지리학과 존재론이 만나고 장소(topos)가 지정학과 접속하는 과정이 더 요긴한데, 필요충분한 텍스트와 만나기 쉽지 않다.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 김혜진의 『9번의 일』, 김유담의 『탬버린』을 로컬리티의 서사로 읽을 수 있겠다.
로컬의 지속과 변화: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창비 2020)는 ‘영등포’라는 로컬을 무대로 이백만-이일철-이지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