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다시 시작하는 끝

 

 

하성란 河成蘭

소설가.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 『웨하스』 『여름의 맛』,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A』 등이 있음. rifleha@gmail.com

 

조갑상 曺甲相

1949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병산읍지 편찬약사』, 장편소설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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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풀리면서 저녁 무렵부터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그날은 좀 늦게 집을 나서게 되어 버스가 제 노선이 아닌 시청역 방향으로 우회해 승객들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이미 날이 어둑했다. 아현동 가구거리 쪽으로 올라와 종근당 아케이드 쪽으로 길을 건넜다. 교통 통제로 텅 빈 왕복 팔차선 도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녹십자병원과 강북삼성병원의 불빛이 보였다. 서대문우체국 사거리를 지나 막 문화일보 앞을 지날 때였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두 남자를 보았다. 어두웠지만 그 시간에도 벗지 않은 선글라스와 배낭에 꽂은 태극기로 그들이 ‘태극기집회’에 참석했다 일찍 빠져나온 이들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등 뒤에서 목덜미를 낚아채인 듯 상체가 몹시 부자연스러웠는데 가까이 와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커다란 배낭을 멘 위로 비닐 우비를 걸친 탓이었다. 배낭의 한쪽 어깨끈 뒤로 끼운 태극기봉이 우비를 뚫고 솟구쳤는데 빗물이 스며든 태극기가 그들이 쓴 각진 모자 위로 처지고 있었다.

쿵쿵 울리던 노랫소리는 새문안교회 앞을 지나칠 무렵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커졌다. 음반에 의무적으로 건전가요 한곡을 끼워 넣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날 광화문 일대를 들썩이던 노래는 그때 나온 건전가요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광화문사거리로 다가갈수록 태극기를 든 이들이 많아졌다. 사거리를 중심으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나뉘기 시작하면서 혹시나 모를 불미스러운 일을 차단하느라 차벽이 겹겹이 둘러쳐졌다. 촛불집회 현장을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집회 장소에서 이탈했으면서도 삼삼오오 서 있던 이들이 종북 빨갱이 척결이라고 구호를 외쳤다. 태극기집회에 나오는 이들이 선동세력에 동원되거나 단순히 ‘목욕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발적으로 동참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바로 내 앞에 태극기를 배낭에 꽂은 이가 걷고 있었다. ‘이봐요, 그쪽이 가야 할 곳은 이쪽이 아닌 거 같은데.’ 속으로 중얼거리다 다시 보니 태극기 봉에 세월호 리본이 묶여 있었다. 그제야 탄핵 반대세력에 의해 의미가 변질된 태극기를 되찾아오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두쪽의 태극기를 분별하기 위해 세월호 리본을 달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빗줄기가 굵어진데다 이리저리 흔들어대느라 리본이 떨어진 태극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어느 쪽 태극기인지 분간이 가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촛불집회는 이미 축제가 되어 코스프레에 가까운 차림으로 나오는 이들도 많았는데, 조금 옷차림이 요상하다 싶으면 다시 돌아보았다. 태극기집회의 참가자들은 혼자 잘 움직이지 않고 이른 밤이면 귀가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 생긴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집회가 끝나고 도보행진이 시작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효자동삼거리 쪽으로 삼삼오오 모여 행진했다. 그곳에서 집회 참가자들의 개인발언이 이어졌다. 곧이어 삼거리 입구 쪽에서부터 희망을 담은 커다란 풍선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머리 위로 옮겨지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곁을 지나친 태극기를 든 남자 때문에 정작 내 머리 위로 지나갈 때는 손도 대지 못했다. 결국 그날 집회는 딴 데 정신을 팔다 끝이 나고 말았다.

 

해프닝과도 같은 그날 밤의 일을 이렇듯 풀어놓는 것은, 잊고 있던 그날 밤이 기억난 게 조갑상 작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6월 말부터 작가조명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작가의 신작 원고부터 읽기 시작했다. 『병산읍지 편찬약사』는 장편 『밤의 눈』(산지니 2012) 이후 5년 만에 출간된 책이다. 7월이 되고 출간에 맞춰 서울로 올라온 조갑상 작가를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두어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은 건 작가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뒤 편집자 L에게 송고하는 일뿐이었다.

작가를 만나고 돌아온 저녁에 녹음파일을 열었다. 까페에서 틀어둔 음악과 다른 테이블의 의자 끄는 소리 사이로 부산 사투리 억양이 섞인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가는 오랜만에 나온 책을 앞에 두고 자신의 과작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부산 동구의 수정동에서 대학과 군 생활을 제외하고 27년 가까이 살았다, 초등학교 때 몸이 아파 한 학년 꿇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간 동네는 너무도 조용해서, 월사금 이야기를 쓴 원고지 30장짜리 소설이 『학원』지에 실린 건 중학교 2학년, 그때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 같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를 완성하는 일이 넘지 못할 벽처럼 다가왔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책을 다시 읽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병산읍지 편찬약사』에 실린 여덟편의 소설을 읽고, 장편소설 『밤의 눈』을 다시 읽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처음 다룬 단편 「사라진 하늘」이 실린 첫 창작집 『다시 시작하는 끝』(세계일보사 1990, 개정판 산지니 2015)을 부랴부랴 구입해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올 여름을 조갑상 작가의 소설들과 보냈다.

만남의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와 만난 그날 저녁, 그의 조촐한 출간기념 자리가 있었지만 선약이 있어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다. 한참 뒤 그 자리에 있었던 편집자 K로부터 “조갑상 선생님, 딱 부산 남자시던데요!”라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했다. 뭔가 ‘재미난 말씀’이라도 했던 것일까? 잠시 뒤 그녀가 토를 달았다. “말씀이 적으시고 부산 남자 특유의 툭툭함이 묻어나더라고요.”

녹음된 부분을 다시 들으니 한참 후배에게도 깍듯한 존댓말을 쓰던 작가가 툭 지금과는 다른 말투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묻는 장면이 있었다. “서울에 남았시몬 잡지사에 갔을라나?”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어야 했다는 후회, 그날 저녁 자리에 참석해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는 후회, 지금이라도 당장 부산으로 내려가 선생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적어도 작가를 조명한다는 글을 쓰면서 어떻게 『밤의 눈』의 옥구열이 걸어간 부산 시내를 걸어보지 않을 수 있나, 그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기 위해 멈춰 섰던 침례교회 앞에 서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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