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우리 趙羽利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4. 1987년생.
wearewol@naver.com
개 다섯마리의 밤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숨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조차 없어 버스 안은 조용했지만, 지유는 버스에 오르는 순간 모두가 상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창밖도 시계도 보지 않는 사람들. 조바심도 초조함도 없는 사람들. 멈춰 있는 버스 안에서도 벌써 저 멀리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 지유는 그 사이를 지나 버스의 맨 뒷자리까지 갔다. 마흔다섯개의 좌석에 빈자리는 없었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운전기사가 통로에서 서성이는 지유를 보고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미 피로해 보였다. 지유는 그의 구겨진 셔츠와 뻗친 뒷머리를 보았다. 늦은 오후에 출발해서 새벽에 도착하는 밤길운전은 운전대를 잡기도 전에 그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그에게 이 버스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보일까.
운전기사는 지유를 흘낏 보고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지유에게 눈을 돌렸다. 지유와 그의 시선이 잠깐 엇갈렸다. 그는 짧은 한숨을 쉬고 운전석 뒤쪽에 두자리를 차지하며 쌓여 있는 상자들을 통로 쪽 한자리로 몰아주었다. 지유는 상자 옆자리에 몸을 끼워넣듯이 앉았다. 상자에서는 식은 기름 냄새가 났다. 음식이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버스 앞바퀴의 바로 위라 바닥이 툭 불거져 있었다. 무릎을 세워 앉으니 발목에 힘이 들어갔다. 지유는 멀미를 하지 않는 체질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의자에 최대한 깊숙이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앞에는 운전석, 왼쪽엔 커튼이 쳐진 창, 오른쪽엔 켜켜이 쌓인 상자. 사방이 단단했다. 지유는 슬쩍 커튼을 열어 밖을 보았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길어진 여름해가 느리게 기울어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버스가 출발할 것이다. 시동이 걸려 있어 미세하게 진동이 느껴졌다. 몸을 조금씩 웅크리자 어느순간 등이 의자에 꼭 들어맞았다. 오목한 그릇에 담긴 갓 지은 밥처럼, 아늑한 느낌이었다. 잠이 왔다.
지유가 잠에서 깼을 때, 버스는 휴게소에 멈춰 있었다. 간이화장실과 주유소, 편의점이 전부인 작은 휴게소가 창밖으로 보였다. 간판불이 모두 꺼져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지유는 문득 폐허가 된 마을이 배경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영화를 보면서 사람이 만든 공간은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쓸쓸해지는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산이나 바다는 저 혼자서도 푸른데 왜 도시는 천천히 퇴색하는지.
드실래요?
지유의 앞으로 불쑥 손이 나타났다. 젊은 남자가 햄버거와 콜라를 내밀었다.
괜찮아요.
남자는 지유 옆자리의 상자를 풀어 그 속의 햄버거를 버스 안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 밑의 상자에는 콜라가, 또 그 밑의 상자에는 크림빵이 들어 있었다.
빵도 있어요.
괜찮아요.
배고프지 않으세요?
혹시 물 있나요?
남자가 건너편 자리에 쌓여 있는 상자들을 헤집어 생수병을 찾아냈다. 상자들 사이로 겨우 한사람이 끼어앉을 수 있는 자리가 보였다. 거기가 저 남자의 자리라는 걸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햄버거와 콜라를 받은 사람들이 차례차례 버스 밖으로 나갔다. 지유도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주차장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어쩐지 그 모습이 피난을 떠나는 행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비참함보다는 비장함이 서려 있어 마치 고행의 길을 가고 있는 수도자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차장에는 지유와 사람들이 타고 온 버스뿐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버스를 볼 수 있는 위치와 거리를 유지하며 조금씩 떨어져 앉아 있었다. 지유도 적당한 자리를 찾아 바닥에 앉았다. 운전기사가 버스 옆에 길게 누워 있었다. 잠깐이라도 온몸을 곧게 펴고 싶은 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버스에서 내내 굽히고 있던 무릎을 펴자 종아리가 저릿저릿했다.
남자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햄버거를 더 가져다주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하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이 버스를 인솔하는 사람인 듯했다. 남자는 따로 떨어져 앉아 있던 사람들을 천천히 한곳으로 모았다. 남자를 따라 모인 사람들은 버스 앞쪽으로 둥근 대형을 만들며 앉았다. 지유는 남자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떨어져 앉아 있는 사람은 어느새 지유뿐이었다.
오늘 처음 오셨어요?
네.
불편한 자리에 앉으셔서 고생하셨네요.
괜찮아요.
남자는 더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무릎을 조금 굽혀 몸을 살짝 기울인 채 지유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유는 문득 자신의 짧은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밤에는 제법 쌀쌀하죠?
네.
갈까요?
남자는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두시간 뒤에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고. 그곳 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게 대답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받는 덤덤함이 느껴졌다. 지유는 남자가 알려주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가 고개를 숙이자 모두 조용히 박수를 쳤다. 남자는 머쓱한지 헛기침을 하며 햄버거 포장지와 빈 캔을 걷으러 다녔다. 햄버거 포장지에는 웃는 이모티콘이 덧붙은 응원의 메시지가, 콜라캔에는 어느 단체의 마크인 듯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서로의 옆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할 수순처럼 대화가 시작되어서 지유도 양옆의 사람들과 몇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처음 오셨나봐요.
네.
생각보다 힘들죠?
괜찮아요.
지유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마다 처음 왔느냐고 묻는 것이 의아하고 신기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지유는 주의깊게 주변을 살폈다. 다른 사람들끼리는 그렇게 첫마디를 시작하지 않았다. 햄버거 드셨어요? 오늘은 차가 덜 막혀서 좋네요. 버스가 좀 덜덜거린 것 같지 않아요? 사소한 공감에서부터 시작하는, 동질감을 확인하는 대화들. 그런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 지유는 그들이 모두 비슷한 표정과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저들끼리만 통하는 무슨 암호가 있는 건 아닐까, 반드시 갖춰야 할 표지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신을 혹시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유는 덜컥 겁이 났다. 둥근 대형은 벌써 흐트러지고 사람들은 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대화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이상 지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지유는 멍하니 버스를 바라보았다.
불편하지 않겠어요?
인솔자 남자가 지유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네?
발이 아플 텐데.
남자가 지유의 신발을 가리켰다. 얇은 끈을 엮어서 발을 감싸는 낮은 굽의 쌘들이었다. 지유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왜 자신이 저들의 유순한 대화에 쉽게 끼지 못하는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차림새였다. 헐렁한 티셔츠와 긴 바지, 운동화, 등에 바짝 붙는 배낭. 밤을 지새우기 위한 준비가 된 복장이었다. 지유 자신만 짧은 소매의 블라우스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버스에 두고 내린 숄더백이 떠올랐다. 지갑과 휴대폰만 들어 있는 작은 가죽가방.
괜찮아요.
이제 와 별다른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괜찮다는 말을 몇번이나 했는지. 이제는 정말 괜찮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밤은 아주 길 거예요.
남자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남자의 신발은 등산화였다. 지유는 생각했다. 햄버거를 그냥 먹었어야 했나.
남자가 하늘을 향해 젖혔던 고개를 천천히 내려 지유와 눈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