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애란

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3학년.

greentongue@hanmail.net

 

 

 

노크하지 않는 집

 

이 집에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가 산다. 그중에는 대학생도 있고 직장인도 있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그런 것 같다. 아마도 그녀들은 모두 이십대 초반일 것이다. 그녀들이 어떤 일을 하고 살며,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집앞에 아침마다 신문이나 우유 따위가 배달되는 일이 없는 걸로 봐서, 이 집이 가정집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매일 아침 이곳에서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는 같은 변기를 쓴다. 나는 가끔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물을 안 내리고 간 흔적을 내려다본다. 혹은 그녀들의 빨래를 보고, 그녀들이 먹는 음식 냄새를 맡는다.

다섯 명의 여자 중 네 명은 다른 한 명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소리가 난 후에도 그 여자가 자기 방에 들어가 문 닫는 소리를 낼 때까지 모두 기다린다. 그 소리가 나지 않는 이상 네 명의 여자는 절대 먼저 문을 열지 않는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섯 명의 여자는 문 닫는 소리에 따라 움직이며, 가끔 타이밍을 놓쳤을 땐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이상하리만치 화들짝 놀라 얼른 문을 닫아버린다. 그럴 때 보는 서로의 얼굴이란, 반쪽 혹은 삼분의 일쯤으로 조각난 것이다.

물론 이곳에서도 얼굴 없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가령 몇번 방 아가씨가 어제 울었다든가, 몇번 방 여자가 세탁기를 쓴 후에는 항상 양말 한짝이 남는다든가, 몇번 방 여자는 남자를 자주 들인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한번은 삼일 내내 복도에서 술냄새가 난 적이 있었다. 밤새 어떤 남자가 현관문을 발로 차는 소동이 있었고 복도 끝방 여자는 울어댔다. 그 소음을 네 방의 여자들은 각자 잘 참고 있었거나 혹은 무관심했다. 여자는 과음을 했는지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시큼한 토사물 냄새는 내 방까지 침투했고 밖의 남자는 여자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리고 얼마 후 주위가 잠잠해졌을 때, 화장실에 가던 나는 그녀 방문 앞에 묶여져 놓여 있는 토사물 비닐봉지를 보고, 남자로 인해 알게 된 그녀의 이름을 떠올렸다.

다음날 아침 위층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내려왔다. 아주머니는 현관 앞에 서서 다섯 방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고. 반말이었다. 방안에 있던 나는 이불을 품안으로 돌돌 말며 한껏 움츠러들었다. 아주머니에게는 ‘그래서 되겠어? 어?’ 식으로 말끝마다 ‘어?’를 한번씩 더 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는 십분 이상을 혼자 복도에 서서 떠들다 돌아갔다. 당사자든 아니든 굳게 닫힌 다섯 방은 그러나 무덤처럼 조용했다.

그녀들이 언제부터 각자의 방에 살게 됐는지는 모른다. 나는 3개월 전에 이 방으로 이사왔다. 그때 나는 휴학중이었고, 편의점에 시급 25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이사왔을 때, 나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공동의 문제에 대해 효율적으로 이야기도 나눌 겸 해서 반상회 비슷한 모임을 주선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곳은 어쩐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것 없이도 평화스럽게 잘 굴러가는 것 같았고, 새로 온 사람이 너무 나대는 것도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아 나는 그 일을 곧 포기하고 말았다.

 

이곳은 대학가 근처에 있는 주택단지 안의 건물이다. 집은 반지하와 1.5층, 2.5층으로 돼 있다. 세 층 모두가 1층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2층 혹은 지하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높이이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나는 이 집이 한마리 커다란 불구의 짐승처럼 느껴졌다. 건물의 1.5층과 0.5층(즉 반지하)에는 세입자들이 살며, 2.5층에는 주인 아주머니가 혼자 산다. 그녀는 불은 몸집에 굵은 쌍꺼풀을 가진 오십대 후반의 여자다. 처음 집을 구하러 그녀의 방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내게 유자차를 내주며 벌써 대학강사가 된 자신의 아들 얘기를 꺼냈다. 그녀는 둔해 보이는 외모에 비해 빠른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가끔 못 알아듣는다.

내가 사는 1.5층 안은 거꾸로 된 기역자 모양이다. 기역의 세로획 부분에 화장실과 방 세 개가 마주보고 있고, 가로와 세로획의 접점 부분에 또 방 하나, 그리고 가로획에 해당되는 부분에 나머지 방 하나가 있다. 나는 그중 화장실과 마주한 첫번째 방인, 현관 앞의 방에 들어가게 됐다. 주인 아주머니는 나를 1번방 아가씨라 불렀다.

이사한 지 석달이 지나도록 나는 나머지 네 방의 여자들을 한번도 정면에서 본 적이 없다. 그 이유가 처음엔, 다른 여자들은 아침이면 집을 나가는데, 나만 오후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의 여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끔 나는 내 앞방에 사는 거구의 여자가 널어놓은 헐렁한 면팬티를 보고, 일곱시면 일어나 출근을 하는 옆방 여자가 방문 앞에 묶어놓은 쓰레기 봉투를 보고, 자정이 지나면 각각의 방문 앞에 놓인 슬리퍼들을 본다. 끝방 여자의 슬리퍼는 안창이 볼록볼록한 지압용 슬리퍼라는 것은, 이곳에 온 지 한달 정도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3번방 여자는 지나치게 이불을 자주 빠는 것 같고, 5번방 여자는 빨래를 세탁기에 담아놓고 곧잘 잊어버리곤 한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이 집의 길고 좁은 복도 중앙에는 우리 모두가 쓰는 빨래건조대가 하나 있다. 빨래건조대는 2번방 앞에 펼쳐져 있는데, 안쪽의 4번방 여자와 5번방 여자가 1번방인 내 방 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선 게처럼 옆걸음을 하여 복도와 빨래건조대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와야 한다. 내가 5번방 옆에 있는 다용도실에 가기 위해서도 그녀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곳을 지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는 모두 돌아가며 그곳에 빨래를 넌다. 건조대 사용에 대한 서로의 특별한 약속도 규칙도 없으나, 별 무리 없이 우리는 그것을 공평하게 잘 사용하는 편이다. 그것은 아마도 각자가 방안에서 숨죽이고 듣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나, 빨래를 터는 소리, 혹은 복도를 오고 갈 때 보이는 빨래건조대를 신호로, 서로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말에 빨래가 겹쳤는데, 건조대에 누군가의 빨래가 차 있는 경우, 하는 수 없이 우리는 각자의 방안에다 빨래를 넌다. 그럴 경우엔 아무래도 불편하고 방안이 복잡해진다.

한번은 내게 하도 건조대의 순서가 오지를 않아 입고 갈 속옷이 떨어진 적이 있다. 나는 빨래건조대의 사용 여부를 틈틈이 살폈는데, 며칠이고 빨래 걷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게으른 여자가 있었다. 좀더 기다릴까 하다가 나는 욕실에서 빨간 다라이를 꺼내어 그곳에 상대방의 빨래를 개어놓기로 했다. 네 켤레의 실내화는 모두 현관문 앞에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집에는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건조대에 널린 옷들은 대개가 평범한 기성복이었다. 싸이즈는 유난히 컸다. 아마도 내 방 맞은편에 사는 뚱뚱한 여자의 것이리라. 몸에 긴장을 주는 옷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여자의 직업은 사무직이 아닌 것 같았다. 커다란 옷들은 보풀이 일어난 채 건조대에 피로하게 걸쳐져 있었고, 늙은 팬티 앞면엔 하나같이 누르스름한 얼룩이 배어 있었다. 갑자기 ‘여자에게는 애인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래들은 모두 바삭하게 잘 말라 있었는데, 건조대 끝, 널어놓은 지 얼마 안된 코르셋 하나가 바닥에 물을 뚝뚝 흘리며 무겁게 걸쳐져 있었다. 나는 코르셋을 제외한 나머지 빨래들을 다라이에 곱게 담아 2번방 문앞에 얌전히 놓아두었다. 어쩌면 직장에서 돌아온 그녀가 곱게 개어진 이 빨래들을 보면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빈 다라이 바닥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 한장을 보았다.

–내 옷에 손대지 마시오.

 

나는 내가 아는 한 이 집의 여자들 중에 유일한 흡연자였다. 하지만 이사 후 몇주 동안, 나는 주위의 시선이나 피해를 생각해 실내 흡연 욕구를 참았다. 그러다 어느날부터 자연스레 화장실이나 방에서 담배를 피우게 됐다. 담배는 주로 화장실 창가에서 까치발을 들고 초조하게 빤다. 나는 혹 위층에서 내려오던 주인 아주머니가 우연히 연기를 보게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한다. 담배를 반도 못 태운 채 끄고, 나는 창문을 열고 바닥에 향기 나는 섬유유연제를 뿌려놓고 기다린다. 한참 후, 화장실에 계속 있기도 뭣해 나는 욕실을 나온다. 그러면 누군가 내가 어서 나와주기를, 너 때문에 배가 아파 문고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재빨리 화장실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어쩐지 그런 소리, 그런 속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