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67대산_소설_fmt

신윤희 辛潤喜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1992년생.

dynamitebox@naver.com

 

 

 

 두 사람이 서 있다

 

 

내가 이 집에 들어온 다음 날, B도 이 집에 들어왔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중이었다. 뜨개질은 내 취미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브레인칩의 데이터베이스에 ‘취미는 뜨개질’ 이라고 사전에 입력되어 있었으므로 나는 뜨개질을 했다. 어제 감시자의 안내를 받아 이 집에 들어오고, 내가 머물게 될 방의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고, 간소한 짐을 방에 푼 이후로 나는 소파에 앉아 줄곧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방 안에 붉은 털실이 있기에 그것으로 목도리를 만들기로 했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나는 뜨개질감을 소파에 그대로 두고 현관으로 나갔다. B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B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나도 B에게 인사했다. B가 자신의 손에 들린 가방을 내게 내밀었다. “이 가방 좀 받아주시겠어요?” 내가 말했다. “이 가방은 제 것이 아닙니다.” B가 덧붙였다. “제 짐을 저기 빈 방으로 옮겨주셨으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아시다시피 제가 B타입인데 신체 동기화가 덜된 상태라서요. 몸을 움직이기가 조금 불편합니다. 동기화 작업 때문에 하루 늦어진 거기도 하구요.”

나는 B의 가방을 들었다. 내 가방보다 훨씬 무거웠다. “감사합니다.” B가 말했다. 나는 B의 방문 앞에 가방을 내려다놓고 다시 소파에 앉아 뜨개질감을 들었다.

“짐 정리하는 것도 좀 도와주시겠어요?”

B가 자신의 방 쪽으로 내 팔을 잡아끌었다.

B의 방은 내 방과 거의 비슷했다. 씽글 사이즈의 침대 옆에는 협탁이, 협탁에는 작은 스탠드와 탁상시계가 놓여 있었다. 침대의 오른쪽에는 흰 커튼이 달린 창문이, 왼쪽에는 옷장이 있었다. 내 방과 다른 점이 있다면 B의 방에는 책장이 있었다. 나는 B의 가방 안에서 책을 한권 꺼냈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천천히 글자를 읽고 있는데 B가 그 책을 책장에 꽂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B의 책을 책장 맨 위 칸에 꽂았다.

“그건 두번째 칸에 꽂아야 되는데……”

B가 중얼거리며 내가 꽂은 책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B의 손이 공중에서 살짝 떨리고 있었다. B는 팔을 자기 쪽으로 거두고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고정했다. B가 다시 책장으로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그 순간, B가 들고 있던 책을 놓쳤다. 책의 뾰족한 모서리가 B의 발등 위로 떨어졌다.

“아.”

소리를 낸 것은 B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발가락을 움찔거렸다.

“아프겠다.”

“글쎄요.”

B가 웃으면서 말했다. 실리콘으로 덮인 B의 발등 위로 책 모서리에 찍힌 자국이 났다. B는 고개를 숙이고 발등의 자국을 한참 바라보았다. 곧이어 B는 허리를 구부리고 바닥에 떨어진 책을 향해 천천히 오른손을 뻗었다.

“아, 저기 제가 기름이 다 떨어진 것 같……”

B의 말은 중간에서 끊겼다. B의 동작이 그 상태에서 그대로 정지했다. 책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고, 오른손은 떨어진 책을 향해 뻗고, 고개는 숙인 채였다. B는 아무 말도,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동상처럼 책장 앞에 멈춰 있었다.

 

나는 기름에 대해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기름의 종류를 차례대로 분류한 후 이 집에서 기름 혹은 기름과 가장 유사한 성질의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석유나 경유, 등유, 휘발유 같은 광물성 기름은 찾을 수 없었다. 당장 제일 찾기 쉬운 기름의 종류는 아마도 옥수수유나 포도씨유, 쌀눈유, 해바라기씨유, 아마씨유, 아보카도 오일 같은 식물성 기름일 것이다. 그것들이라면 대부분 부엌 찬장에 있었다.

조리대의 찬장을 열었다. 바닥이 드러난 옥수수 식용유가 있었다. B의 몸집눈대중으로 봤을 때 B의 키는 대략 178cm 정도로 추정되었다를 계산했을 때 이 정도의 기름이라면 부족할 것 같았다. 옆 찬장을 열어보았다. 참기름이 있었다. 참기름은 참깨에서 추출한 기름이니 식물성 기름에 속했다. 나는 참기름을 집어들었다. 통 안에 가득 찬 참기름이 찰랑거렸다. 나는 참기름을 들고 B에게 향했다.

B는 여전히 책장 앞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오른손은 책을 향해 뻗고, 고개는 숙인 채로 멈춰 있었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B의 안구를 살펴보니 사람들이 흔히 ‘눈빛’이라고 부르는 것이 달아나 있었다. 역시 몸에 기름이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B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B가 쿵 소리를 내며 옆으로 넘어졌다. 나는 B의 몸통을 번쩍 들어보려 했다. 경직된 B의 몸은 제법 무거웠다. 나는 B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부엌으로 데려갔다.

휴머노이드 B타입의 경우 연료통이 등판 쪽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나는 B의 몸통을 뒤집었다. 옷을 걷어올리자 등 쪽에 가로 10cm, 세로 15cm 정도 크기의 덮개가 있었다. 덮개는 언뜻 보면 그냥 평평한 살색 등판처럼 보였다. B의 덮개를 열자 몸속으로 핏줄을 대신하여 어지럽게 연결된 전선들이 보였다. 가운데에는 가장 굵은 전선과 연결된 기름통이 꽂혀 있었다. 몇 방울 남지 않은 기름이 흰 통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은 기름의 빛깔이 참기름의 빛깔과 유사했다.

나는 기름통에 참기름을 가득 넣었다. 참기름이 기름통의 입구까지 찰랑거렸다. 뚜껑을 닫고 기름통을 B의 등판에 넣었다. 덮개를 닫자 B에게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나는 다시 B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제 몸에 참기름을 집어넣으셨단 말씀이세요?”

“어쨌든 기름이지 않습니까.”

어쨌든 참기름도 기름이었고, 어쨌든 B는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왔다. B는 돌아오자마자 커다란 목소리로 내게 따졌다.

참기름을 채워넣은 후에도 B는 미동조차 없었다. 기름을 넣었으니 언젠가는 움직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목도리도 길어졌다.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으로 접어들 무렵, 나를 이 집으로 데려온 그 감시자가 찾아왔다. 감시자의 손에는 큰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감시자는 높은 굽의 구두를 신은 채로 집 안까지 들어왔다. 감시자의 구두 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 검은 발자국이 찍혔다.

“이게 무슨 냄새죠.”

“참기름 냄새입니다.”

“설마 B499에게 참기름을 주입하신 겁니까?”

감시자가 엎어져 있는 B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예. 참기름입니다.”

“참기름이라……”

감시자는 무어라고 작게 중얼거린 후 B의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감시자가 한숨을 쉬었다. 감시자는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감시자는 내게 작은 드라이버를 건넸다.

나는 감시자가 시키는 대로 B의 셔츠를 벗기고 B의 관절을 연결하는 나사를 풀었다. B의 성별은 남성으로 설정되어 있었고, 감시자의 생물학적 성별은 여성이었다. 내가 B를 분리하는 동안 감시자는 내내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B의 목과, 팔 두짝, 다리 두짝, 그리고 몸통이 따로따로 분리되었다. 분리가 끝나자 감시자는 B가 담긴 가방을 질질 끌고 나갔다.

다음 날 B는 다시 돌아왔다.

“참기름이 온몸에 다 스며들었단 말입니다. 손가락 끝까지요! 저를 고철덩어리로 만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 동기화 작업을 끝냈는데!”

“그렇습니까.”

“사과하세요!” B가 소리쳤다. “무엇을요?” 내가 물었다. “제 몸에 참기름을 넣은 일을요!” “기름이 떨어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반문했다. “그렇다고 참기름을 넣으면 어떡합니까!” “참기름도 기름이지 않습니까.”

아오. B가 뜻을 알 수 없는 모음들을 내뱉으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B는 아오 열불나, 하면서 얼굴에 손부채질을 해댔다. 나는 내 방에서 해열제를 찾아 B에게 건넸다. “지금 장난하세요?” B가 물었다. “장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이 나신다면서요.” 내가 말했다. B가 주먹을 쥐고 자신의 가슴을 쿵쿵 쳤다.

“그냥 사과하시면 됩니다. 미안합니다, 하고요.”

“기름이 떨어졌다고 해서 기름을 넣었을 뿐인데, 그게 어째서 미안한 일이 됩니까.”

“이래서 A타입은 안된다니까…… 머리가 이상하잖아.” B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제 머리가 이상합니까?” 나는 머리카락을 만지며 B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A씨.” B가 말했다. “A씨의 의도는 나쁜 것이 아니었지만 A씨가 제 몸에 기름을 넣었는데, 그 기름이, 그 참기름이! 제 첨단 안드로이드 신체 시스템하고는 맞지 않는 식용기름이라서! 갓 동기화를 끝낸 제 신체 시스템이 중대한 오류를 일으켰어요. 엔지니어 분들은 방금 전까지도 날밤을 깠고.”

“밤을 까서 먹은 것입니까?”

A씨, 시스템 사용 언어가 대체 어느 나라 말로 설정되어 있어요?”

“한국어입니다.”

“다행이네요. 제가 하는 말도 한국어니까 말귀를 좀 알아들으세요.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면서까지 시스템 오류를 수정했다는 거예요.”

“제가 A씨의 시스템에 오류를 불러일으킨 것입니까?”

“그렇죠. 엔지니어 분들께서 저 때문에, 아니 A씨 때문에 잠도 못 주무셨어요.”

“잠을 못 주무시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까? 잠을 못 주무시면 어떻게 됩니까?”

“사는 게 좀 힘들어져요.”

“모든 결과의 원인이 저입니까?”

“네. A씨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결과가 안 좋게 나타난 거예요. A씨가 참기름을 넣어서 이렇게 된 거라고요.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나는 B의 말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과해요. 미안합니다,라고.” B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나는 B에게 사과했다. “알았어요. 됐어요. 어쨌든 이제부터 같이 살게 될 텐데.” B가 내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악수해요. 악수.” 악수하자는 말에 나도 손을 내밀어 B의 손을 잡았다. “제 소개가 이틀이나 늦어졌네요. 휴머노이드 B타입 499번이에요. 줄여서 B499,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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