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87_445

이재은 李在恩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1996년생.

jaenini@naver.com

 

 

 

마음과 생활

 

 

오렌지를 씻던 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내게 집이냐고 운을 떼며,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와서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 시간이 되면 와달라고 덧붙였다. 나는 가겠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내게 무언가를 부탁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렌지는 껍질이 두꺼워서 표면을 깨끗이 씻어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잼을 만들 생각이었다. 냄비에 으깬 과육과 설탕을 붓고 채를 썬 껍질까지 올려둔 다음 불을 켰다. 조금씩 방울이 생기며 과육이 끓어오르자 불의 세기를 줄였다. 이제 걸쭉해질 때까지 저어가며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이런 건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일이었다.

엄마의 이사는 목요일이라고 했다. 목요일에는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매니저에게 보낼 문자를 고치다 무심코 전화를 걸었다. 양해를 구하는 동안 아쉬운 소리를 몇번 했다. 매니저는 알겠으니 잘 쉬고 다음주에 보자며 인사했다. 그럼 저 대신 이번주에 일해주실 분이 계시나요? 그냥 끊기 뭐해서 건넨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아니요. 이번주는 할 수 없이 제가 나가야지요. 할 수 없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몹시 미안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다음주에 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얼마 전부터 일하게 된 곳은 매트리스 전문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쇼룸에 딸린 까페였다. 스웨덴 회사라고 했다. 침대와 커피 이미지가 로고에 함께 있었는데,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침대와 커피를 동시에 떠올리면 하얀 이불 위에 엎질러진 커피만 떠올랐다. 까페 구인공고에는 경력자를 우대한다는 조항이 쓰여 있기 마련인데 이곳에는 그런 제약이 없었다. 면접을 보면서 그것에 관해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여기는 커피를 깊게 다루는 곳은 아니어서요. 기본만 하시면 됩니다. 그 대신, 저희는 최대한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인사담당자는 새로운 사람을 뽑는 일에 이골이 난 듯 보였다. 사람이 자주 바뀌는 곳에는 이유가 있다며 주변에서 말렸지만 그즈음 하는 일이 없던 나는 뭐라도 손에 움켜쥐고 싶었다.

까페와 쇼룸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어 대부분을 혼자 일했다. 걱정만큼 어려운 일은 없었다. 문제는 까페에만 손님이 없다는 것이었다. 매트리스를 보러 오는 손님은 하루에도 스무 팀이 넘는데 까페를 찾는 손님은 많아야 한두명이 전부였다. 아예 매출이 없는 날도 있었다. 그거 커피 돈 주고 사야 해요? 묻는 손님에게 그렇다고 대답하면 대부분 돌아서서 나갔다.

나는 종일 포스기 앞에 앉아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몸으로 맞으며 꾸벅꾸벅 졸거나 분쇄도를 맞춘다는 핑계로 그라인더의 눈금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우유로 스팀 연습을 하기도 했다. 땀에 젖은 쇼룸 직원들이 물을 마시러 오면 눈치를 보며 일어나 무언가 닦는 시늉을 했다. 하루 중 마감 청소를 할 때가 가장 바빴다. 쓰지 않아 깨끗한 기계를 광이 날 때까지 닦고 포타필터를 분리해 솔로 문질렀다. 퇴근할 때는 몸에서 주방세제 냄새가 났다.

어느 날 출근을 해보니 내 자리에 매트리스 판매 교육용 교재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의 의미를 알았다. 그날부터 쇼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침대 시트를 정리하거나 베개의 각을 맞추며 매트리스의 이름을 외웠다. 북유럽풍으로 꾸며놓은 쇼룸은 깔끔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가장 눈길이 가는 매트리스 앞에 서서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innersta.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이라고 적혀 있었다. 발음하기 어려운 글자였다.

 

나와 엄마는 한달에 두세번꼴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내가 먼저 잘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으면 엄마가 자신의 사진을 보내오는 방식이었다. 주로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로, 그만큼 엄마는 여행을 자주 다녔다. 나는 매번 좋아 보인다고 답장했다. 여러장의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것을 골라주기도 했다.

몇년 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서로 통화한 적은 드물었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전화를 걸어 밥은 먹었냐고 묻거나,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속내를 털어놓으며 함께 화를 낸다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통화들 말이다. 내가 성인이 된 후로 우리는 반년에 한번씩은 꼭 만났는데, 만나기 직전까지도 메시지만을 주고받으며 약속장소로 갔다.

한번은 내가 엄마를 기다리게 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오분 일찍 도착해 역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깜빡 잠이 들어 두시간이나 늦게 그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연락처에서 이름을 검색한 뒤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가, 이름 아래에 뜬 전화번호가 생소해 몇번이고 곱씹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에는 차분히 엄마에게 건넬 말을 골랐다. 그것이 무색하게도 한참을 횡설수설했다. 근처 까페에 있으니까 천천히 와. 그 말을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왠지 앳되게 느껴졌다. 부리나케 택시를 타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는 동안 나는 그 목소리를 자꾸만 돌이켜보았다. 동시에, 엄마가 그렇게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처럼 굴 때마다, 오래전 보았던 엄마의 뒷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확히는 작은엄마를 통해서였다. 엄마는 그동안 나의 안부가 궁금할 때마다 작은엄마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설날이나 추석이 아니면 작은엄마를 만날 일이 없었기에 엄마가 알고 있는 나에 관한 정보는 책의 뒷면에 적힌 저자의 약력처럼 공백이 많았다. 장문의 문자 끝에는 며칟날 보자는 말이 적혀 있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로 십년 만의 만남이었다.

엄마는 신촌의 백화점 일층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상상한 재회는 멀리서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나는 그대로 달려가 엄마를 끌어안는 이미지였는데 실제론 보잘것없었다. 나는 정문 쪽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는 엄마의 메시지를 받고 일부러 후문을 통해 들어갔다. 멀리서부터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계속해서 출입구를 향해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볼 수 없는 곳에 서서 엄마를 몰래 지켜보다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천천히 다가가 옆에 앉았다. 엄마는 인기척에 돌아보았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는 헤어졌다 다시 만난 연인처럼 진부하게, 오랫동안 백화점 의자에 앉아 서로를 끌어안고 조용히 울었다.

그런 뒤에는 밥을 먹으러 갔다. 백화점 식당가를 몇바퀴 돌다가 결국 이인분의 토마토스파게티를 시켰다. 따로 나올 줄 알았는데 한 그릇에 담겨 있어 잠시 당황했다. 엄마가 앞접시에 면을 덜어가는 동안, 나는 물잔을 만지작거리며 엄마에게 건넬 질문을 생각했다. 엄마, 요즘 만나는 사람은 없고? 고민해서 고른 물음치고는 실없는 말이었다. 그런 것보다는 지금껏 엄마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더 궁금했다. 그러나 지나간 날을 캐묻는 것이 어쩐지 어색해 묻지 못했다. 엄마에게 사려 깊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자신을 스쳐 지나간 남자들이 얼마나 별로였는지에 대해 한참 얘기해주었다. 짓궂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마냥 웃지는 못했다.

엄마는 그날 자기 몸집보다 두배는 큰 쇼핑백에 한 철을 입고도 남을 옷들을 싸 왔다. 전날 집에서 내가 입으면 어울릴 것 같은 옷을 담다 보니 이렇게나 많아졌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얼핏 봐도 예쁘고 좋은 옷들이었다.

백화점에서 나와 신촌을 한바퀴 돌다가, 할 말이 없어질 때쯤 헤어져서 지하철을 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쇼핑백이 발에 차여 불편했다. 나중에는 모서리에 쓸린 맨다리가 따가웠다.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다가 겨우 의자에 앉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히터의 따뜻함이 답답하면서도 몸을 자꾸 웅크리게 했다. 들고 있는 것이 불편해 잠깐 옆에 내려둔다는 것이 그만 쇼핑백을 잊고 내렸다. 그걸 역 계단을 올라가며 깨달았다. 그렇게 큰 것을 어떻게 잊고 내렸는지 아직도 생각하면 의아하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쇼핑백을 찾지 않았다. 잠시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본 뒤, 지하로 내려가 이미 열차가 떠난 자리를 눈으로 훑는 것이 내가 한 행동의 전부였다. 물론 그런 것들은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정확한 집 주소와 함께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성북구 정릉동. 오며 가며 지나기는 했으나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였다. 내가 내친김에 전날 짐 싸는 것까지 도와주겠다고 하자, 엄마는 혼자 할 수 있다고 사양했다. 이번주 금요일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등본에서 엄마의 주민등록번호를 본 이후로 엄마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동사무소에서 등본을 떼도 그 자리에 엄마가 없다. 생일 가까이에 엄마를 만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잘 졸여진 오렌지잼을 베란다에서 식히기 위해 거실을 지나가다 구멍을 밟았다. 장판 아래 시멘트가 깨져 밟으면 움푹 파이는 바람에 구멍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티도 나지 않았는데 지나가다 모르고 한번씩 밟으니 구멍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한곳에서 오랫동안 살면 종종 생기는 일이었다.

 

*

 

정릉동에 내려 엄마의 집으로 걸어가다 개 한마리를 만났다. 회색 털을 가진 개는 목줄 끈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주인을 놓친 모양이었다. 개는 차도 근처에서 당황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다행히 차는 지나다니지 않았다. 나는 개를 잡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개는 내가 다가가자마자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언제까지고 차가 없지는 않을 텐데. 나는 큰 목소리로 개를 부르려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는 동안 개가 사라졌다. 한동안 개를 걱정하면서 걷다가 이내 잊어버렸다.

무언가 허전해 마트에 들렀다. 종합음료세트라도 사 갈까 싶어 상자째 들고 계산대로 향하다 너무 손님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려두었다. 밖으로 나오자 찬 바람이 불어 왔다. 입고 있던 재킷을 여몄다. 살갗이 차가웠다.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었으나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했다.

엄마의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잔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집이 어수선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음료세트 대신 까페에서 사 온 커피를 엄마에게 건넸다. 곧 이삿짐센터에서 사람이 올 터였다. 집을 구경할 새도 없이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봉투에 옷을 담기 시작했다.

엄마는 옷 좋아하는 건 여전하네.

이미 커다란 봉투가 한가득 쌓여 있는데도 담을 옷들이 한참 남아 있었다.

집에 엄마 옷 아직 있니? 엄마가 옷을 개며 물었다.

버렸지. 근데 그거 얼마 전에 버렸어.

아깝다. 한번도 안 입은 옷도 많았는데.

옷도 오래 두니까 색도 변하고 묵은 냄새 나더라.

다 버렸어?

다 버렸지. 어차피 그거 엄마 입지도 못해.

엄마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집에 두고 간 옷들은 몇년간 장롱 한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인이 있으니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번씩 통풍이 되도록 장롱문을 열어주었다. 가끔은 그중 세련돼 보이는 외투를 꺼내 몸에 걸쳐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옷을 빌려 입은 듯 품이 컸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곤 잊고 지내다 문득 떠올라 장롱 안의 옷들을 모두 꺼내 하나씩 입어본 적이 있었다. 몸에 맞지 않는 것은 이제 없었으나 묘하게 그전과는 달라 보였다. 꺼낸 김에 입을 만한 옷을 건지고 싶었는데 괜찮다 싶으면 한 부분이 삭거나 누렇게 색이 변해 있었다. 근사해 보였던 코트마저도 한없이 볼품없이 느껴졌다. 모두 다시 옷걸이에 걸어 장롱 속에 넣어두었다.

얼마 전 충동적으로 엄마의 옷들을 다 버렸다. 장롱 한칸이 비워졌지만 아쉽거나 슬프지 않았다.

 

폐기물 스티커를 붙인 가구들이 하나둘 빠지면서 집안이 휑해졌다. 정말 다 버리게? 내가 묻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십년도 더 된 낡은 것들이야. 바꿀 때가 됐어. 내 집이 생겼는데 좋은 것들로 채워야지. 월세와 전세를 오가다가 처음으로 마련한 엄마의 집이라고 했다. 엄마는 새집에서의 생활이 기대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 이제 이사 갈 일이 없어서 좋다고 했다.

엄마, 매트리스 살 일 있어?

전부 사야지 이제. 가구 몇개는 주문해놨어.

나 일하는 데로 와. 직원가로 살 수 있어.

엄마에게 손님이 한명도 오지 않는 까페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한참을 웃었다. 이젠 침대를 팔게 되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포장이사라 마땅히 손댈 일은 없었다. 나의 역할이라 하면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엄마의 짐을 빠뜨리거나 훼손하지 않고 안전하게 포장하여 운반하는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엄마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저번엔 그게 안 됐거든. 아주 엉망진창이었어.

그때 엄마는 사람들이 이삿짐을 풀고 떠난 뒤 어딘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분명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깔끔하게 짐을 정리하고 갔는데도 사라진 것들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를테면 몇개의 머그잔과 뜯지 않은 인스턴트커피가 들어 있던 상자, 수저세트 같은 물건들이. 엄마는 그제야 자신에게 내내 반말을 하며 불친절하게 대했던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책상다리가 긁히지 않게 조심해달라고 말한 것이 전부였는데, 어련히 알아서 하는 걸 꼭 아줌마들이 나서서 훈수를 둔다며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이었다. 엄마는 좋게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에 분위기를 바꿔보려 그들에게 샌드위치와 주스 따위를 사다 주었다. 그래서 자신을 만만하게 생각한 게 아닌가.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따져야 하나. 그런데 그들이 발뺌하면 그만이지 않나…… 그러다 갑자기 모든 것이 피로해져버렸다고 푸념했다.

나는 엄마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대답했다. 그 새끼들이 일부러 그런 거네, 엄마 혼자라고 만만하게 봐서 엿 먹이려고, 하긴 그래,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따졌다가 괜히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잘한 거야, 하며 애써 엄마를 위로했다.

나는 이사를 해본 적도, 지금 사는 집을 떠나 혼자였던 적도 없어 엄마가 겪은 일이 생경하게 들렸다. 집 현관문을 열면 늘 익숙한 냄새가 났다. 향수를 뿌리지 않고 밖에 나간 날에는 몸에서도 집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집 안의 모든 물건은 쓰임에 맞게 자리하고 있었다. 소파와 침대는 가운데가 꺼져서 앉으면 스프링 소리가 났지만 그걸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하루 중 거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바깥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을 좋아했다.

 

*

 

얼마 전에 이모부가 돌아가셨어.

이삿짐을 먼저 보낸 후에 엄마와 함께 이사할 집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엄마는 뜬금없이 이모부 이야기를 했다. 곧바로 슬픈 감정이 차오르지는 않았다. 예상치 못한 화젯거리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엄마는 가끔 이런 식으로 엄마 가족의 근황을 전해주었지만, 내가 그들에게서 느끼는 낯섦까지 고려해주지는 않았다. 내가 딸이기 때문에, 당연히 엄마의 가족을 친밀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미 멀어진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그 김에 오랜만에 부산도 갔다 오고 좋았지 뭐.

엄마는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그제야 몇년 전 엄마와 함께한 부산 여행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이모부를 만났다. 나의 제안으로 갑자기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굳이 구실을 찾자면 나의 스무살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부산역에 내려 국밥을 먹고 광안리나 해운대에 가자고 할 생각이었다. 전날 엄마와 함께 갈 만한 분위기 좋은 식당과 까페도 몇군데 알아봐두었다.

그런데 엄마는 국밥을 먹다가 갑자기 다대포에 가자고 했다.

다대포?

이모네가 거기에 살아.

거기서부터 나의 계획이 어그러졌다. 나는 여느 모녀들처럼 엄마와의 소소한 여행을 기대하며 부산에 오자고 한 것이었는데, 갑자기 엄마의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이모부는 엄마가 전화하자 이모와 함께 한걸음에 우리를 데리러 왔다. 예정에 없던 만남이었는데도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모는 나를 보자마자 곱게도 컸다며 팔을 쓰다듬었다. 우리는 이모부의 차를 타고 다대포에 내려 장어구이 식당에 갔다. 넉넉하게 시킨 덕분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모자라면 얼마든 더 시키라는 이모부를 말리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이모부는 내가 아침에 주로 무얼 먹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두서없이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나의 생활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장어를 굽고 있는 손은 바삐 움직였다. 진로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가 흘러가자 나는 어떤 충고나 조언을 들을까 싶어 아직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면서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이모와 이모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들은 어떠한 사심 없이 나를 궁금해하고 있구나. 방금까지 경계했던 것이 겸연쩍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말을 하지 않고 밥을 먹는 데에만 집중하는 식사 풍경에 더 익숙했다. 분명 호의가 가득한 자리였음에도 점점 더 앉아 있기가 어색해졌다.

엄마는 그 가운데서 편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심지어는 약간의 식탐을 부리고 있었는데, 이모는 익숙한 듯 엄마 앞에 반찬들을 놓아주었다. 그 모습이 몹시 낯설었다. 오래전 함께한 식사를 떠올리면 엄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앉아 그들을 챙기느라 제대로 수저를 들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나중에서야 반 공기도 되지 않는 밥을 조금 깨작이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엄마는 다른 사람 같았다. 혼자서 반찬그릇 몇개를 비워냈고, 틈날 때마다 이모부가 구워준 장어를 젓가락으로 집어 오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편이 훨씬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 자리를 신경 쓰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해가 저무는 중이었다. 일박 이일의 여행 중 벌써 반나절이 지나 있었다. 싫지는 않았지만 내가 기대한 여행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다대포를 떠나기 전 이모부는 자꾸만 자고 가라며 나를 붙잡았다. 이모도 연신 아쉬운 눈으로 엄마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뭐라 덧붙이지 못한 채 어색하게 웃고만 있었다. 일순간 모든 것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내가 가만히 서 있자 엄마는 이모부에게 다음에요, 다음에,라고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게 벌써 몇년 전 일이었다. 성년의 날은 이제 나에게 먼 얘기였다. 덤덤히 이모부의 죽음을 전하는 엄마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어쩌면 다음에,라는 말은 영영 없을 일을 기약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은 일정은 광안리에서 보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시간이 지나 있었다. 짐을 푼 뒤 엄마와 광안리 해변을 걸었다. 폭죽놀이를 하는 젊은이들과 그것을 말리는 고함이 번갈아가며 울려 퍼졌다. 우리는 멈춰 서서 바다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멀리 보이는 광안대교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늦은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데 바로 앞에 회센터가 있었다. 건물 전체가 네온사인에 반짝반짝 빛났다. 저기만 빼고 골라볼까? 엄마와 나는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고 웃었다. 결국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피자와 맥주를 선택했다. 식당 직원은 이왕이면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앉으라며 바깥 자리를 권했다. 테라스에 앉아 피자를 먹는데 앞이 깜깜해서 바다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소화를 시킬 겸 해변을 구경하다 호텔에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엄마가 씻을 동안 침대에 기대 앉아 자기 전 엄마와 나눌 말들을 생각했다. 어쩌면 이 여행에서 가장 기다린 시간이었는지도 몰랐다. 분위기를 빌려서라도 우리가 지금껏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엄마가 씻고 나와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사이 집에서 가져온 두장의 팩을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두었다. 그리곤 수건을 챙겨 욕실에 들어갔다. 물을 받아둔 욕조에 들어가 잠시 앉아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하루 동안의 일들이 멀게 느껴졌다. 천천히 몸을 씻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엄마는 잠들어 있었다. 몇번 옆에서 엄마를 불러보았으나 깊게 잠들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큰 소리를 내어 깨울까 하다가 관두었다. 탁자에 올려두었던 팩을 뜯어 얼굴에 붙인 뒤, 남은 한장은 엄마의 가방 안 깊숙이 넣어두었다.

엄마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처음이었다. 오래된 아파트에 누워서 엄마를 그리워하거나 미워한 적이 있었다. 있다고 표현하는 것보다 숱하게 많았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은 감각할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내게 낯설다.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태도는 내 오랜 습관이었다. 나에게 큰 잘못을 저질러서 멀어진 사람을 오랜만에 마주쳤을 때,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 상대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그런 일이 많았다.

다음 날에는 체크아웃한 뒤 호텔을 나와 계획 없이 이곳저곳을 다녔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맛집이나 명소 따위를 적어두었던 메모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한번도 꺼내보지 않았다. 하루가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지켜본 바로 엄마는 어떤 일을 계획하여 실행하는 것보다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신중한 나와 달리 엄마는 한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메뉴를 서슴없이 골라 나를 놀라게 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엄마와 진지한 대화 한마디를 나누지 못했다. 서울역에 내려 헤어지려던 찰나에, 엄마가 바로 옆 아웃렛에 새로 생긴 의류 브랜드 매장을 구경하겠다고 해서 뒤따라갔다. 엄마는 매장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몸에 대보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옷들을 대충 들춰보다가 둘 중 뭐가 더 낫냐는 엄마의 말에 다가가 더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었다. 너도 골라보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제일 가까이에 있던, 평소에 입지 않을 것 같은 페이즐리 패턴의 여름 원피스 한벌을 집어 들었다. 입어보니 썩 나쁘지 않아 이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못 입잖아?

여름에 입으면 되지.

안 입기만 해.

엄마는 원피스와 함께 내가 골라준 하얀색 니트 한벌을 계산했다. 집에 도착한 엄마는 그 니트를 입고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마음에 든다. 그 메시지를 보다가, 나도 새로 산 원피스를 꺼내 옷장 한편에 잘 개어두었다. 그 후로 몇번의 여름이 지나갔지만, 아직 입고 나가본 적은 없었다.

 

*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이사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사를 도우러 온 건지 엄마의 말동무를 해주러 온 건지 헷갈렸으나 다행히 분실되거나 파손된 물건은 없어 보였다. 조용하지만 신속하게 움직이는 직원들 덕분에 이사가 수월했다. 아직 가구가 다 들어오지 않아 집이 휑했다. 앞으로 천천히 엄마의 보금자리가 될 곳이었다. 나는 엄마가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몰래 내려와 아까 오는 길에 봐두었던 빵집으로 향했다. 쇼케이스에서 가장 달지 않아 보이는 케이크를 하나 골랐다. 초를 몇개 넣어드리느냐는 말에 고민하다 큰 초 하나만 챙겼다. 빵집 직원이 상자에 붙여준 메시지 카드에 생일을 축하한다고 적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엄마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갑자기 웬 케이크야?

케이크를 보자마자 엄마가 말했다.

엄마, 생일 축하해.

생일?

오늘 엄마 생일이잖아.

내 생일은 2월 13일인데?

무슨 소리야? 5월이잖아.

엄마는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그래서 5월마다 뭘 보냈구나. 이제 알겠네. 외할아버지가 출생신고를 늦게 해줘서 그래.

처음 듣는 얘기였다. 나는 5월이 되면 엄마에게 선물을 보냈다. 물건을 주자니 엄마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보통 기프티콘이나 상품권 따위였다. 적지만 사고 싶은 거 사,라는 메시지와 함께. 돈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넘어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일상이 바빠 잊어버린 듯 행동하다 여유가 생겼을 때 뒤늦게 챙겨주었다. 그러나 떠올려보면 내가 축하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던가? 무언가를 보내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생일이 되기 열흘 전에 월급을 받자마자 돈을 보내준 적도 있으니. 엄마는 내가 무얼 보낼 때마다 고마워하기보다 의아해했다. 나는 그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엄마의 무심한 성격 때문이라 여겼다.

그래도 사 왔으니까 먹자. 미역국 아닌 게 어디야.

미역국은 왜?

너 낳기 전에 질리도록 먹어서 싫어. 초도 켤까?

됐어. 나중에 엄마 혼자 다 먹어.

축하할 일이 생일뿐이니. 이사를 축하하면 되지.

결국 앉아서 함께 초를 불었다.

 

엄마와 케이크를 나눠 먹고 대충 집을 치우고 나니 저녁이 되어 있었다. 자고 가라는 말에 잠깐만 쉬었다가 가겠다고 대답한 뒤 휑한 거실에 앉아 깜빡 졸았다. 엄마도 피곤한지 옆에서 눈을 감았다. 그러다 먼저 깨서 엄마가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집에 오니 배가 고팠다. 왜 말도 없이 갔느냐고, 집으로 간 거냐는 엄마의 메시지에 일이 생겨서 나왔고 집에 잘 도착했다고 답장한 뒤 식빵을 구웠다. 며칠 전 담근 오렌지잼도 꺼내 왔다. 대충 주방에 서서 식빵 위에 잼을 발라 먹으려다가 까치발을 들어 찬장에서 쟁반을 꺼내고 안 쓰던 나무 수저와 사기그릇도 꺼내 식탁에 올렸다. 익숙지 않았으나 해놓고 보니 그럴싸했다. 아버지가 오면 집을 고치자 말해야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희미한 오렌지 냄새가 났다.

 

 

 

심사평

 

390여편의 응모작들을 살펴보니 가족 소재 소설과 판타지와 현실을 비유적으로 그린 상상체계의 소설이 많았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은 몸과 마음으로 접촉하는 마지막 현실인 듯하다. 세계는 급속하게 비대면화되고 많은 부분이 온라인 영역으로 넘어가 남겨진 현실은 지극히 빈약한데, 그마저 서로 낯을 가리고, 철저히 소독되고, 타자와의 거리는 기약할 수 없이 멀어졌다. 이런 현실에서 소설 쓰기란 무엇인지, 무엇을 써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 사람의 심사위원은 예심을 거쳐 아홉편을 본심에 올렸고, 최종적으로는 「마음과 생활」 「다다를 수 없는 마음」 「눈이 쌓이는 소리」 「파수꾼」을 놓고 논의했다.

「다다를 수 없는 마음」은 어릴 때 가족과 헤어져 이모의 집에 얹혀살아온 화자가 사촌언니의 자살을 애도하는 과정을 서술했다. 우리 사회 표면에 떠오른 낯익은 이야기로 구성했지만, 개별성을 파고들어 깨지고 찢어지는 세부의 단면마다 마음을 긁는 울림이 있었다. 이야기의 갈래와 부피를 늘려가는 필력이 돋보이는 데 비해 서술방식이 자의적이고, 의미있는 질서를 찾아 전체를 통합시키는 내적 구조가 취약했다.

「눈이 쌓이는 소리」는 순수성의 극점과 현대인의 공허한 인간성을 묘파한 작품으로 응모작 중에서 단연 색다른 소재였다. 외국에서 성장해 한국에 돌아온 화자를 설정해 선입견 없이 그리고 섣부른 판단 없이 서술해 중립적인 거리를 두면서, 인간의 오래된 문제를 새롭게 조명했다. 대비되는 두 사람인 화자와 오교수가 함께 장례식장을 향해가는 권태로운 현재의 선상에서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구성해, 각화된 현실과 그 아래로 흘러가는 순수하고 당혹스러운 기억들 사이에서 긴장감과 흡인력을 높였다. 순발력 있는 구성과 실감나는 상황 묘사, 서로에게 생뚱맞은 타인들의 모습을 극대화한 감각적인 대화와 서술도 소설적 재미를 주었다. 마지막 단락에 이르러서는 고뇌 속에서 죽어간 인간에 대해 끝까지 예의와 사랑을 지키며 존엄성을 구현해 현실을 뛰어넘는 소설적 비약을 이루어냈다.

「파수꾼」은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해 ‘세상이라는 괴물’을 마주한 젊은 여성의 불길한 현재와 우화처럼 맑은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기회 대신 오염된 손을 내미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꿈의 시원과 같은 과거와의 만남을 향해 가는 조용한 격렬함과 두 세계를 아우르는 청신한 문체가 매력적이다. 자기만의 글쓰기 방법이 뚜렷해서 인물과 문체와 내용이 위화감 없이 서로에게 꼭 맞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불안과 환멸을 느끼면서도 사회라는 공동의 흐름 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분투하는, 단념하지 않는 정신도 큰 장점이다. 그외에도 「별과 우주 같은 것들」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상상력으로 고안한 폐쇄적 비유체계 속에서 인간에게 닥친 꿈의 금지와 자유 상실, 비인간화와 첨예한 고립적 상황을 과학적 언어로 형상화했다. 화자가 갈망하는 ‘예스’가 단순히 ‘접촉’을 의미하는 것일 때, ‘예스’를 그토록 갈망하는 「별과 우주 같은 것들」은 바로 지금 시대에 딱 맞는 미래 재료의 옷처럼 보였다.

당선작으로 뽑힌 「마음과 생활」은 이혼하고 떠난 엄마와의 관계를 불안정하고 빈약한 그대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간혹 서술이 벅찰 때도 침묵하는 삶을 한사코 구어체로 바꾸며 나아가는 소설정신이 빛났다. 자주 낯선 여자의 면모를 보이는 엄마가 긴 유랑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이사하면서 화자의 삶도 풀려나는 전환점을 맞는데, 잔잔한 이야기임에도 기억에 오래 남을 장면들이 들어 있다. 많은 응모작이 가족을 소재로 한 것은 그만한 이유, 의미, 가치가 있을 것이다. 시대상이 급격하게 바뀌는 때인 만큼 가족의 의미를 되묻고 그 다채로운 형태와 거리를 수용하며 관념을 재조정하는 시기인 듯하다.

「마음과 생활」에는 은은한 묘미가 있다. 그것은 감상은 인물 속에 가라앉히고 뻔한 세부는 덜어내며 서술에 적절한 선을 지킨 세련미에서 온다. 당선자가 앞으로도 고유한 안목과 균형감각으로 관계의 짧은 접점들과 긴 여백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구어체로 계속 바꾸어가기를 기대한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전경린 전성태 정한아

 

 

 

당선소감

 

멀어져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주로 마음이 그렇다. 일년에 걸쳐 이 소설을 완성했는데, 고칠수록 오리무중이었다. 마음에 관해 쓰겠다고 다짐해놓고선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다른 소설을 쓰면서도 이 소설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그러던 중 당선 소식을 들었다. 그제야 결심이 섰다.

 

멀어지겠다. 모나 보여도 그런대로 사랑하겠다. 조금 일찍 읽어준 이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에게 등을 보이며 홀로 지내는 삶을 꿈꾸다가도, 누군가가 나를 부르면 곧장 뒤돌아 달려간다. 마음만큼 쉽게 허물어지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내게 의심하지 않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들에게 배운 사랑으로 이 자리를 빌려 용기를 낸다.

 

가장 먼저, 하늘에 계신 할머니, 가엾은 손녀, 이제 멋진 손녀지요? 웅크린 유년을 보듬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복작이던 집안에서 맞잡았던 손을 기억합니다. 씩씩하게 살겠습니다.

 

선후배 동기들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유진 교수님, 신수정 교수님, 박상수 교수님께는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현아언니, 끌어안으며 지켜주겠다고 말해준 덕분에, 어떤 불행도 지나칠 수 있었어. 슬아언니, 언니에게서 안온함을 배운다. 나도 그런 이모가 될게.

 

원경, 함께 꽂은 몇개의 초, 돌아보면 모든 처음에 네가 있다. 정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너를 환한 곳으로 이끌어주고 싶다. 소원, 소멸할 것이 두려워 사랑을 놓치진 말자. 사랑 앞에서 있는 힘껏 약해지자. 영강, 안개 낀 강가에서 낚싯대를 쥐고 있던 이들처럼 찰나의 기쁨 뒤에 찾아오는 아득함을 누리자. 유수, 몰래 케이크를 들고 오던 너를 떠올리면 잠시뿐일 이 행운에 기대고 싶어진다.

쓰는 가람과 쓰는 수빈. 청파동에서 여러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용기 낼 수 없었을 거예요. 중심이 되어주는 진영, 다영, 연주, 승은. 바람 빠진 스쿠터 뒤에서도 안전함을 느끼게 해준 영서언니. 선뜻 축하해준 동주. 그리고 이름을 부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이렇게 써놓고선 당신들과 영영 볼 수 없게 될까봐 두렵다. 지금의 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아빠,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 우리이길 바랍니다. 쓰면서 많은 빚을 진 엄마, 이 보잘것없는 얘기가 당신과 나를 비춰주었으면 좋겠다.

 

기회를 주신 세분의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지면에 생긴 저의 자리에 책임감을 느끼며 선한 글을 쓰겠습니다.

이재은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