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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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나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4학년. 1991년생.

hihana1224@naver.com

 

 

 

물거품이 되기 전에

 

 

1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의 여자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현재 동네에서 수영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의 한국말은 아주 어눌하다. 나와 사귄 지는 이년이 조금 넘었다. 그녀의 머리칼은 맥주와 닮은 색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재미동포라고 알고 있다. 그녀의 입버릇은 ‘이건 아니야.’ 그녀는 언제나 검은색 미용렌즈를 낀다. 렌즈를 뺀 그녀의 눈은 옅은 바다빛이다. 내가 말하는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렌즈를 뺀 눈이며,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늘씬하게 뻗은 두 다리이다. 그러나 그녀의 두 다리는 원래 그녀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이년 전만 해도 땅 위를 걷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가끔 그녀는 모래로 빚은 것 같았다는 자신의 비늘을 추억한다.

내 여자친구는 인어였다. 물론,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인어’다.

 

 

2

 

인간이 지구에 출현해 가장 잘한 일은 아마 텔레비전을 발명한 것 아닐까. 바닥에 누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보면 지구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도,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힌 고민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널은 만화 채널이다. 스물여덟해를 산 남자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낄낄거리는 꼴이 남들 보기엔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웅주의로 도색된 일본 애니메이션은 꿈과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꿈과 희망. 이번 달에만 벌써 두번째 해고를 당한 남자의 꿈과 희망이란 무엇일까. 이틀에 한번 전화를 걸어 관절통을 호소하는 부모님일까. 내 눈을 들여다볼 때 아무런 감정의 출렁거림도 없는 여자친구일까. 어쩌면 곧 걸려올 한통의 취직 통보전화일지도 모른다.

이년 전만 해도 나의 꿈은 확실했다. 나는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현 가능하다면 그것은 이미 꿈이 아니다. 두번이나 바다에 빠져 죽음을 경험한 나로서는 바다보단 차라리 지옥의 불구덩이가 나았다.

텔레비전 속 여전사는 힘차게 봉을 휘두른다. 내가 어릴 적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그래픽도 훨씬 고급스러워지고 스토리도 한층 탄탄해졌다. 애니메이션도 진화하는데 나란 인간은 어째서 퇴화를 거듭하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다. 그렇지만 그런 고민과 걱정도 애니메이션에 집중하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생각 없이 보고 있다가 다음 편 예고가 나오는 순간 텔레비전을 끈다. 찬 바닥에서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킨다. 날씨가 퍽 쌀쌀해졌으므로 보일러를 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정한 수입 하나 없는 나에게 그것은 사치다. 꽁꽁 싸매고 있던 이불도 얌전히 개어 거실 한쪽에 놓아둔다.

그녀가 돌아올 시간이다. 나는 방에 들어가 낡은 책상 앞에 앉는다. ‘인어공주’라고 크게 적혀 있는 동화책 옆에는 몇권의 소설책과 취업준비서가 있다. 그 사이에서 자기소개서를 훌륭하게 쓰는 비법이 담긴 책을 꺼낸다. 마지막으로 해고당한 날 나는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다만 서점에 들러 뻔한 내용이 적힌 취업준비서를 한권 더 샀을 뿐이다. 낡은 노트에 이름, 출신학교 등을 장난스럽게 적고 있으려니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두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해고당했던 회사의 이름들을 줄줄이 적는다. 다시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가 구두를 벗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가방이 거실 한쪽에 무자비하게 떨어지는 소리도 난다.

“나 왔어.”

그녀가 벌컥 문을 열어젖히고는 화가 난 듯 소리친다. 그녀가 정말로 화가 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언제나 화가 난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죄를 지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나는 입꼬리만 올려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는 한숨을 쉰다. 그녀가 한숨을 쉬는 순간 나는 그녀의 평화로운 생활을 갉아먹는 벌레가 된 기분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녀는 다시 사납게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노트에 별것 아닌 경력을 써내려간다. 물론 한가지 확실한 것은, 경력이라고 할 수도 없는 회사 이름 따위나 줄줄 읊고 있는 짓이 그녀가 원하는 바는 아니라는 거다.

“이건 아니야.”

이틀째 밥상에 올라와 있는 김치찌개와 사흘째 먹는 시금치나물, 다 식은 계란 프라이가 올려져 있는 식탁을 보며 그녀가 말한다. ‘이건 아니야.’ 한국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푼다. 식탁에 밥 두공기를 놓고 자리에 앉는다. 내가 앉은 의자는 한쪽 다리가 부실하다. 나는 밥을 먹는 동안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신경을 써야만 한다.

“돈 언제 벌 거야?”

그녀가 묻는다. 그녀는 내가 어디 공장에라도 나가 돈을 벌어오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최후의 보루다. 만약 그녀가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것이므로 벌써 그런 식으로 돈을 벌고 싶진 않다. 게다가 나는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물론 뉴스에 나오는 ‘이태백’이라는 단어가 나를 지칭하는 말이란 것쯤은 알고 있다.

“나 면접 봐.”

그녀의 눈. 렌즈를 뺀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일은 왠지 불경스러운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

며칠 전 서류를 넣었던 두곳의 회사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다. 아마 며칠을 더 기다려도 연락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 몇줄의 글로 심사받는 서류전형에서조차 떨어졌다는 말은 차마 뱉을 수가 없다. 차가운 시금치나물을 먹으며 곰곰이 날짜를 고른다. 면접을 보는 척하고 집을 비우기에 적합한 날은 하루뿐이다.

“다음주 수요일.”

수요일은 그녀가 가장 늦게 귀가하는 날이다. 그녀가 내 눈을 바라본다. 렌즈를 뺀 그녀의 눈이 내게는 꼭 출렁이는 파도인 것만 같다. 숟가락을 쥐고 있는 손에 땀이 난다. 나는 그녀가 계란 프라이를 먹는 것을 보며 안도한다. 몇달 전만 해도 이럴 때의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나를 위해 두 다리를 갖게 된 여자를 두 다리로 부지런히 걸어다니게 한 것에 대한 죄책감.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안도하는 것이다. 그녀가 나의 거짓말을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하여.

김치찌개를 떠먹는 그녀의 숟가락을 보며 밥을 먹는다. 그녀와 속도를 맞추기 위함이다. 그녀는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밥을 먹는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밥을 씹지도 않고 있는 나를 외면한 채로 말한다.

“나 내일 늦어.”

나는 대충 고개를 주억거린다. 왜냐는 물음이 속에서 꿈틀거린다. 내가 이유를 물으면 그녀는 사실대로 말해줄까.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 해도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 자격이라는 말은 취업할 때 필요한 몇장의 종이에서뿐 아니라 연인 사이에도 통용되는 단어인 것이다. 나는 순전히 소화를 위해 밥을 먹는 사람처럼 밥을 먹는다. 속에서 꿈틀거리는 물음을 뱉어낼 수 없으니 차라리 배설하고 싶은 기분으로 말이다.

그녀의 식사가 끝남과 동시에 나의 식사도 끝이 난다. 그녀는 화가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간다. 그녀의 어깨 끝에서 찰랑이는 머리를 보다가 나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년 전만 해도 그녀와의 저녁식사는 언제나 근사했다. 나는 밥을 먹는 것인지 행복을 먹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화 같기만 했던 감동도 채 이년을 못 넘겼다.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해고라는 말 앞에서 더이상 좌절하지 않는 남자와 살며 현실을 깨달았으리라. 그녀가 인간세계의 치열함과 박정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녀에겐 한국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지구 어디에도 그녀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법적 서류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불우한 가정사를 가진 재미동포가 되었다. 그녀가 한국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도 그녀의 과거를 날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동네의 낡은 수영장 주인은 그녀를 고용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주택의 아랫집 여자는 아예 그녀의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 사실 그녀의 과거를 조작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나나 그녀가 아니고 동네 주민들이었다. 그녀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동네를 돌아 다시 우리에게 올 때에는 수없이 많은 문장과 단어를 달고 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녀는 일과시간 내내 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도 저녁식사가 끝나면 꼭 목욕을 한다. 나는 거실의 찬 바닥에 눕는다. 그녀의 목욕시간은 아주 길다. 욕실의 문 너머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매일, 이렇게 찬 바닥에 누워 그녀가 씻는 소리를 듣는다. 코를 훌쩍거리다가 내 꼴이 너무 우스우면 멋대로 그녀를 백설공주로도 만들고 신데렐라로도 만든다. 가끔은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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