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장희태 張熙台
광주대 문예창작과 3. 1987년생. gmlxoqkqh@naver.com
시안, 쥐와 함께 잠들다
쥐는 발밑에 있었다.
그는 공장 주변 잔디밭을 걷고 있었다. 벚꽃잎은 선선한 봄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졌고, 우종은 얼굴에 달라붙는 벚꽃비를 손으로 닦으며 공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 물컹한 것을 밟은 느낌에 화들짝 그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우종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발 디딘 자리를 살폈다. 분명 발밑에서 무언가 물크러지는 느낌이 선명했는데, 잔디밭 위에는 아무것도 뭉개져 있지 않았다. 그가 발 디뎠던 자리에는 벚꽃잎만 수북하게 쌓여 있을 뿐이었다. 우종은 무덤처럼 불룩 솟은 벚꽃잎 더미를 의문스레 들여다보았다. 잎과 잎 사이 틈새로 잿빛 털 같은 것이 어른거렸다. 그는 운동화 끝으로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벚꽃잎을 걷어냈다. 화석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붓질처럼, 신중하게 발끝을 놀려 벚꽃잎을 털어냈다. 시든 꽃잎이 몇장씩 각질처럼 떨어질 때마다, 감춰져 있던 잿빛 털 뭉치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밟은 건 손바닥만 한 쥐였다. 배가 우묵하게 반쯤 꺼진 쥐가, 벚꽃잎을 솜이불처럼 덮은 채 잔디밭 위에 누워 있었다. 우종은 천천히 운동화 밑바닥을 살폈다. 하얀 운동화 밑바닥에는 마른 잔디 몇가닥과 벚꽃잎만 눌려 있을 뿐, 쥐의 어떤 흔적도 묻어 있지 않았다.
쥐는 죽어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멀쩡했다. 그가 밟아 배 한가운데가 우묵하게 꺼진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상처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살아 있을 리는 없었다. 그가 쥐를 잡으며 느낀 바에 의하면, 그것들은 예민하고 끈질긴 짐승이었다. 배를 살짝 누르는 것쯤으로 즉사하는 동물이 절대 아니었다. 살아 있었다면 진작 몸을 피했거나, 최소한 발악을 하며 이빨로 운동화라도 물어뜯었을 것이었다. 그럼 이건 뭔가. 쥐에게는 개미나 파리 한마리조차 꼬여 있지 않았고, 우종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조차 헷갈리는 쥐를 보며, 자신이 함정을 밟았다고 생각했다. 시안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우종은 이년 전 공장에서, 대머리 과장의 소개로 시안을 처음 만났다. 말하자면 그와 그녀는 직장의 파트너가 된 셈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그녀와 악수를 나누며, 그는 자신이 인형의 손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인형처럼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었다. 시안의 여윈 몸은 헐렁하고 더러운 유니폼에 감싸여 있었고, 드러난 팔다리는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처럼 앙상하게 솟아 있었다. 그와 대머리 과장 쪽으로 걸어오는 몇걸음이 위태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시안은 찬바람에 나부끼는 마른가지처럼 그에게 다가왔고, 색이 바랜 낙엽처럼 희고 건조한 손을 내밀었다. 그는 부러질 듯 가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애매하게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려요. 시안은 대답 대신 메마른 입술로 희미하게 웃었다. 양쪽으로 벌어진 그녀의 입술에서 금세 선홍색 피가 배어나왔다. 시안의 핏기 없는 입술은 터지고 갈라져 검붉은 피딱지가 굳어 있었고, 고무줄로 묶은 푸석한 머리채는 빗자루처럼 매달려 있었다. 허우적거리는 동공은 그가 아닌 허공을 더듬는 듯 초점이 어긋나 있었다. 시안의 몸에서 유일하게 빛났던 건, 붙잡은 손 검지에 끼워져 있던 반짝이는 싸구려 도금반지 뿐이었다. 인간 형상을 한 하얀 가죽부대가 숨을 내뱉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그날부터 시안과 함께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원단을 접착시켰다. 시안은 그에게 업무에 관한 말조차 건네지 않았고, 그는 출근 첫날부터 원단 한 롤을 통째로 망쳤다. 대머리 과장에게 욕설을 듣는 동안에도, 시안은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묵묵히 원단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희고 가는 팔로 원단을 안아 올리며, 그녀는 아이를 어르는 것처럼 얼굴을 붉혔다. 모두가 짜고 그에게 덫을 놓은 기분이었다.
쥐는 벚꽃들이 은밀하게 감춰놓은 덫이었다. 그는 보기 좋게 올가미에 걸리고 만 것이었다. 우종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자신이 밟은 함정을 살폈다. 양손으로 쥐의 털을 꼼꼼하게 헤집어가며 상처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쥐의 몸에는 작은 구멍 하나, 생채기 하나 나 있지 않았다. 앞니 하나, 손톱 하나도 빠져 있지 않았다. 먹이를 구할 능력이 없어진 늙고 병든 쥐가, 우연히 벚나무 아래에서 굶어 죽은 것도 아니었다. 쥐는 미세한 독침에 찔려 죽은 것처럼 어떠한 외상도 보이지 않았고, 고르게 난 잿빛 털에는 피 한방울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이토록 고스란히 형태를 갖춘 쥐가, 따듯한 봄에 왜 죽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쥐도 겨울잠을 자는지 생각했다. 겨울잠에서 깨지 못한 곰이나 개구리가, 잠든 채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생존하기 위해 택한 유일한 방법이, 스스로를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죽이는 것이었다. 쥐도 깨어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벚꽃이 이불처럼 쥐를 아늑하게 덮어주어, 봄에 짓눌린 채 안락사한 것은 아닐까. 우종은 마른 침을 삼켰다. 굽혔던 무릎을 펴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온화한 봄 햇살 아래에서 돌연 현기증이 몰려왔다. 멀쩡한 쥐의 시체는 언젠가 시안이 말해준 그녀의 엄마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영안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엄마가 누워 있던 철제 침대는 눈이 아프도록 새하얬어. 하얀 셔츠를 입은 사람이 손잡이를 움켜잡고, 냉장고 같은 침대를 천천히 꺼냈어.
냉장고?
응, 엄마의 시체가 보관되어 있는 냉장고, 엄마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하얀 천으로 된 시트를 이불처럼 덮고 있었어. 미라처럼 꽁꽁 가려진 시신을 보고서야, 엄마가 어디를 어떻게 다쳐서 죽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하얀 셔츠가 엄마 머리맡의 시트를 양손으로 구겨지도록 움켜쥐는데 세상에, 그 주름을 보며 나도 모르게 질끈 눈이 감겼어. 어둠 속에서 스르륵, 가볍고 메마른 것들끼리 마찰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아주 천천히 감은 눈을 떴어. 시트는 엄마의 툭 불거진 골반뼈까지 젖혀져 있었고 세상에, 믿기지 않게도 드러난 엄마의 창백한 알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 있지 않았어. 오히려 생전에 있던 무수히 많은 흉터들과, 왼쪽 팔목의 주삿바늘 자국까지 말끔히 사라져 있지 뭐야. 누워 있는 엄마의 말끔한 모습은 말이야. 마치 박제 같았어.
박제?
그래, 나는 하얀 셔츠에게 물었지. 교통사고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얀 셔츠가 내 의아한 표정을 훑더니, 신부처럼 엄숙한 태도로 말했어. 발견했을 땐 이미 가망이 없으셨다. 왼쪽 팔이 완전히 짓눌려 떨어질 듯 헐거웠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돌아가셨다. 있잖아. 엄마는 뺑소니 사고를 당한 거래, 신고만 제때 했으면 살 수 있었다고……
저런……
아니야 괜찮아. 내가 진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어. 나는 하얀 셔츠에게 엄마의 흉터는 다 어디갔느냐구 물었지. 짓눌린 팔은 포르말린에 적신 솜을 집어넣어 다시 부풀렸다. 터진 부분은 꼼꼼히 꿰맸다. 흉터가 많기에 몸 전체에 분도 발라놨다. 세상에, 그러고 보니 정말로 엄마의 입술에는 새빨간 루주까지 칠해져 있었어.
쥐는 죽어 있음에도 별다른 변동이나 탈이 없어 보였다. 잘 갈무리되어 있던 시안의 엄마처럼, 겉보기에는 더없이 멀쩡해 보였다. 누군가 쥐를 박제해놓은 것은 아닐까? 미세한 주삿바늘로 쥐의 내장을 몽땅 빨아내고, 텅 빈 몸속에 방부 처리된 솜을 주사해 다시 부풀려놓은 것은 아닐까. 만약 엄마의 시신이 티 하나 없이 깨끗하지 않고 처참했어도, 시안은 그 얘기를 하며 웃었을까? 아니, 엄마를 밀어버렸을까?
우종은 쥐꼬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쥐는 솜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엄마의 왼쪽 팔꿈치에서 진동했다던 소독약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는 빗질한 듯 가지런히 누워 있는 회색 털에 가만히 손을 대어 보았다. 뻑뻑하고 깔끄러운 감촉이, 꼭 우레탄과 접착시켜 만든 모피 옷을 쓰다듬는 것 같았다. 쥐의 머리와 가슴을 거쳐 배를 만지는데 갑자기 손이 눅눅해졌다. 손바닥에 녹색의 진득거리는 액체가 가득 묻어 있었다. 그는 축축한 손바닥을 코에 가져다댔다. 식초와 계란이 뒤섞여 썩는 냄새가 났다. 우종은 벚꽃을 한 줌 뜯어 손바닥을 닦았다. 손금 사이사이에 낀 걸쭉한 녹색 점액을 꼼꼼히 끄집어냈다. 그토록 멀쩡해 보였던 쥐는, 내장이 터진 채 뱃속부터 젖어가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는 쥐를 만지지 않은 손으로 조심스레 자신의 마른 배를 더듬었다.
쥐가 물건이나 모피 옷이 아니라는 사실에 새삼스레 비위가 상했다. 이처럼 바싹 마른 몸뚱이 안에, 번들거리는 젖은 내장기관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속이 울령거렸다. 쥐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기름진 호두알처럼 자글자글 주름진 뇌가, 여전히 두개골 속에 들어 있을 것이었다. 움푹 팬 뱃가죽 위로 튀어나온 갈비뼈를 바라보았다. 쿵쾅거리며 요동치던 심장, 풍선처럼 부풀어오르고 줄어들길 반복하던 횡격막, 끊임없이 숨이 드나들던 폐가 지금도 불거진 갈비뼈 속에 담겨 있을 것이었다. 녹색 점액을 흘리고 있는 반쯤 꺼진 배를 바라보았다. 소화되다 만 음식물이 삭은 채 고여 있을 소장과 대장이, 뱀처럼 똬리를 튼 채 아직도 쿨렁거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여태 젖어 있는 채로, 메마른 쥐의 용기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속이 메슥거렸다. 울컥 위액이 뿜어지고, 배 속에서부터 신물이 올라와 침이 고였다. 우종은 치미는 위액을 토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큼한 침을 삼켰다. 역류해 올라왔던 밥풀 몇알이 목구멍을 간질였다.
우종은 잔디밭 쓰레기통을 뒤져 검은 비닐봉지를 찾아냈다. 쥐를 담자 무게에 눌린 봉지가 목이 헐렁한 티셔츠처럼 늘어졌다. 쥐를 다시 꺼내 윤곽이 드러나 보이지 않도록, 쓰레기통 위에 버려진 무가지로 먼저 쥐를 감쌌다. 신문지에 감싸인 쥐는 군고구마처럼 먹음직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그는 두번 매듭지은 봉지를 들고 공장 휴게실로 들어갔다.
“새벽에 어디 갔었어요?”
웃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