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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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현 南宜賢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3학년. 1995년생.

other9s0hyeon@gmail.com

 

 

 

오래된 청소년 길미와 선생님들

 

 

올저는 근면한 관광 해설자였다.

올저가 근면한 관광 해설자인 것과 별개로 그 사람은 질 낮은 범죄자였다. 나는 올저를 사랑했는데 그 사람의 근면함이나 질 낮음과는 무관하게 기억력에 매혹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올저는 어떤 것을 훔치는 장면을 마치 사진처럼 떠내와서 그대로 나에게 묘사해줄 수도 있었다. 한편 올저는 단 한번도 장물을 나에게 선물한 적이 없었는데, 나는 그것이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만일 장물을 선물받게 된다면, 정말이지 낭만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올저와 범죄에 대해 비밀스럽게 두런거리는 순간을 몹시 사랑했다. 그 두런거림의 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수만 있다면 나 역시도 올저의 범죄에 가담하여, 함께 오래오래 귀중한 것들을 훔치면서 살아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다 운 나쁘게 올저만이 혼자 감옥에 들어가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 오래오래 기다리면서 오래오래 원치 않는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올저는 약을 복용했고 불면에 시달렸다. 불면 때문에 약을 복용하는 것인지 약 때문에 불면에 시달리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여하튼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약을 복용해도 잠들 수 없는 것 같았고 잠들 수 없어도 약을 끊지 않는 것 같았다. 올저의 약과 잠. 그 둘은 좁은 길 위에서 대립하는 사나운 개들처럼 늘 이빨을 세우고 으르렁거렸다. 올저가 건강하지 않고 나는 굉장히 건강하니까 하루에 한번씩 죽음이나 자살에 대해 생각하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하루에 한번 죽음이나 자살,이라고 백지에 써두고 그것을 몇분간 들여다보기도 했던 것이다. 나에게 죽음은 그 정도로 멀리 있었다. 나는 죽음이 어떤 형태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그것을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하기로 해버렸다. 그러나 때때로 죽음이라는 공간 안에 자신을 놓아두어야 하는지, 자신이라는 공간 안에 죽음을 놓아두어야 하는지 헷갈려하기도 했다.

올저는 근면한 관광 해설자로 금경포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금경포를 둘러싼 삼면에는 물살이 약한 강이 흘렀고 나머지 한면인 뒤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었다. 그러니까 금경포는 마치 섬처럼 조성된, 배를 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정원이 열명인 작은 규모의 유람선으로 사람들을 금경포에 데려다주고 다시 뭍으로 데려오는 일을 내가 했다. 데려가고 데려오는 업무와는 무관하게 금경포는 조선시대에 잠깐 태어났다가 죽어버린 H왕의 유배지이기도 했다. 금경포의 외부는 커다란 숲처럼 보였는데 무성한 나무들이 겨울의 빛을 흡수하거나 토해내고 있는 입구를 지나면 H왕이 생활하던 작은 한옥채가 나왔다. 그곳을 어소라고 불렀다. 어소 주변에는 비와 탑이 있었고 그 돌들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올저가 아닌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어소는 협소한 사각형의 공간이었다. 내부에는 문을 열면 바로 정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프랑수아 아모리>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어소는 <프랑수아 아모리>의 사진을 위한 거대한 액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프랑수아 아모리>라는 가명을 가진 사람은 건축물을 주로 찍는 사진작가였는데, 어소 내부에 걸린 사진도 어소를 정면에서 찍은 것으로, H의 죽음 이후 한참 동안 비워져 있던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오래오래 존재했던 어소의 빈 공간이 어소 자신의 몸으로 메워진 것이다.

 

길미는 매일같이 어소를 찾아오는 청소년이었다. 교복을 단정히 입은 길미는 뭍에 정박한 배 위에 앉아 있었다. 관리소 건물에는 시시덕거리는 매표소 직원들이 상주했는데 길미는 그 사람들의 시시덕거림을 혐오했다. 그래서 길미는 늘 조타실 뒷좌석에 앉아 출항을 기다리고는 했다. 나와 올저는 관리소에서 나와 배를 향해 걸어갔다. 올저는 길미 옆에 앉자마자 그 얼굴이 핼쑥하고 몸이 기다란 여자애의 차가운 손을 잡고 그것이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조타석에 가서 배를 출발시켰다. 배 안에는 길미 외에도 두명의 관광객이 타고 있었다. 길미 뒤에 앉은 그들은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 보였고 서로 팔을 포개어 손깍지를 끼고 있었다. 비슷한 색의 등산복을 맞춰 입은 연인인 듯했다. 강을 절반쯤 건넜을 때 등산복을 입은 남자가 내 옆으로 다가와 큰 소리로 물었다.

여기 수심이 몇 미터나 되나요.

글쎄요……

여기 이름의 유래가 어떻게 되나요.

뭐라고요……

나는 하루에 한번 죽음을 생각하는 바로 그 시간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등산복 남자의 질문을 주의 깊게 듣지도 않았다. 등산복 연인은 더이상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죽음은 H의 것이었다. H가 음독으로 즉사했던 자리를 매일 걸레로 닦아내는 사람이 나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음독사의 흔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으며 내가 닦아내는 것은 그냥 최근의 먼지나 빗물 따위였다. 금경포 쪽으로 배를 운전해가면서 H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무언가를 생각해내기에 강의 폭은 꽤나 좁았고 무엇보다도 그가 죽은 것은 너무 먼 옛날의 일이기도 했다. 때때로 나는 대걸레로 어소를 닦아대면서 H가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 상상해보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죽은 바로 그 자리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자면 어느새 <프랑수아 아모리>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산복 연인은 올저의 해설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프랑수아 아모리>의 사진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등산복 연인에게 어소는 역사적인 건축물이라기보다는 피사체 혹은 피사체였던 것으로만 인식되는 것 같았다. 등산복 연인은 깍지 낀 손을 이쪽 사람의 주머니에 넣었다가 저쪽 사람의 주머니에 넣었다가를 반복하면서 <프랑수아 아모리>의 사진을 한참 바라보고 서 있었다.

 

길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겨울이었는데 그날 나는 겁에 질린 듯 기이한 모양으로 딱딱하게 얼어붙은 대걸레를 들고 어소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입구에 놓인 들어오지 마시오 팻말을 넘어서 마루에 발을 디디려고 했을 때 안쪽에서 움직이는 검은 형체를 발견했다. 드디어 죽음을 목격한 것이 아닌지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한마리의 토끼와 한명의 길미였다. 길미는 눈에 띄게 커다란 머리통 아래로 어깨 밑까지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길미는 쪼그려 앉은 채 아직은 도망가지 않은 얼룩 토끼를 지켜보고 있었다.

너 이 새끼 귀여운 얼룩 토끼를 데리고 무슨 짓 하는 거니.

아이는 잠에 취한 눈꺼풀을 힘겹게 열듯 큰 머리통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노부부>예요.

아이의 태도는 매우 공손했다. 게다가 아이는 몇가지 귀중한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얼룩 토끼는 이 토끼의 가명일 뿐이며 진짜 이름은 <노부부>라는 것. 또 자신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토끼의 조상들을 알았고, 그들은 <노부부>의 부모이기도, 부모의 부모이기도, 이 부모의 부모는 또 부부이면서 남매이기도 했는데 여하튼 그들 부부는 죄다 늙어 죽을 때까지 오래오래 함께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노부부>의 내력을 듣다가 하나의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렸는데, <노부부>는 이 지역에서 촬영했던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그 영화의 내용을 얼룩 토끼의 내력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토끼 <노부부>의 진짜 이름을 영화의 제목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또다른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한겨울의 금경포는 한산했다. 거센 강바람 탓에 방문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그 거짓말쟁이일 수도, 진실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는 아이를 금경포에 태우고 온 적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길미는 올저가 데려온 아이였다. 올저 역시 배를 운전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당연하게도 올저에게 면허는 없었다. 올저는 금요일마다 길미의 집에 방문하여 독서를 지도하고 있었다. 올저는 책 한권을 모두 읽히는 법이 없었다. 길미가 산만해서 그렇다. 올저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길미는 눈에 띄게 조숙하고 차분했다. 여하튼 길미가 읽는 것은 하나의 완성된 책이라기보다 이야기의 파편들이었으며 길미에게 있어 모든 책은 일부분으로만 존재했다.

 

실로 올저는 길미를 과도하게 아꼈다. 올저가 그 아이를 과도하게 아끼니까 나 역시 그러고 싶었다. 함께 있으면 기분이 썩 좋아진다고는 할 수 없는 그 아이에게 흥미가 생겼다거나 해서는 아니었고 단지 그 아이를 아끼는 올저의 감정이 뭐 그다지 각별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길미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저가 그 아이에게 조각난 이야기를 읽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길미에게 배를 운전하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내가 먼저 장비를 만지면 길미가 조금씩 따라 해나가는 식이었다.

나와 길미는 조타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내가 타륜을 잡고 있을 동안 길미는 시커멓고 더러운 강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거기에 중요한 물건이라도 두고 온 사람처럼 말이다. 길미, 시커멓고 더러운 강물이 아니라 타륜을 봐야지. 그렇게 얘기했을 때 길미는 나의 무릎 너머로 손을 뻗어 엔진을 역으로 작동시켰다. 엔진이 역으로 돌아가면서 배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매우 미약해졌을 때 길미는 엔진을 완전히 정지시켰다. 엔진이 정지한 상태에서도 배는 프로펠러 소리를 내며 얼마간 계속해서 앞으로 진행했다. 배가 완전히 멈추어 강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에 불과한 상태가 되었을 때, 길미가 고백해왔다.

저는 정말로……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었어요.

뭐라고?

길미는 등을 곧게 세우고 더 자세히 이야기했다.

길미는 우연히 지역 잡지에서 <프랑수아 아모리>가 찍은 H왕 어소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이미지에서 극심한 그리움을 느꼈고 일주일간 그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했다. 일주일째 되던 날 길미는 수심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시커멓고 더러운 강물에 빠지게 되었는데 피부에 닿아오는 온도가 아주 미지근했고 잘 생각해보니 그곳은 전날 밤 스스로 뛰어든 부드러운 침대 속이기도 했다. 익사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길미는 시커멓고 더러운 강물 속에 망설임 없이 몸을 버려둔 뒤 없는 몸을 이끌고 뭍으로 올라왔다. 그곳은 금경포였다. 어둠이 무성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길미는 어소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문득 길미의 안에서, 그 오래된 건축물에 가능한 한 가까이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없는 몸을 이끌고 그 자리에 가서 섰을 때, 놀랍게도 길미는 건축물에 쏙 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건축물의 내부가 아니라, 건축물 자체에 말이다. 길미는 나의 귀에다 입술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그 건축물이 바로 제 몸이었던 거예요. 저는 그때 모든 것을 기억해냈어요.

제가 정말이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사실을요.

길미는 H라는 사람에 대해서만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혹시 H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올저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것 말고요. 길미가 물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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