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동현 朴東賢
서울예대 문예창작전공 3학년. 1994년생.
nongyakking@naver.com
죄
하루하루 늙어가는 개를 바라보며, 나는 지난 모든 잘못을 떠올리곤 했다. 그 순백색 원단에 묻은 천박한 얼룩을 지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지금보다 나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개에게 주어진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그게 망상임을 알아도 그랬다. 병원에 다녀온 날이면 개는 유난히 밤새 헐떡거렸고, 다소 떨어진 시력 탓에 느린 움직임으로 배회하다가 내 허벅지에 몸을 기대곤 했다. 맞닿은 피부로 전해진 개의 감정 중 가장 크고 묵직한 것은 무력감이었다. 그것은 놓쳐버린 유리잔처럼 추락하다 내 마음 위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죄책감이 철심처럼 박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애써 주변에 흩어진 조각들 중 가장 반짝이는 것을 찾아내 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개가 원한다면 그것만으로 밤새워 떠들 수도 있을 거였다. 하지만 개는 전혀 관심 없는 얼굴로 꾸벅거렸다. 개가 잠들기 위해 애견용 쿠션으로 돌아갈 때면 나도 무릎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그러곤 쿠션에 누운 개를 잠들 때까지 쓰다듬어주었다. 내 팔이 무거운 시계추처럼 느껴질 즈음에야 개는 잠들었다. 여전히 거친 호흡이 이어졌지만 얼굴만은 고요했다. 그런 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수의사의 충고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제 생각에, 뿌꾸에게 필요한 건 가벼운 산책이 전부예요. 괜히 무리시키지 마시고요. 그게 행복한 여생일 겁니다.”
뿌꾸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던 나는 꼭 한번 바다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지체하지 않고 날을 잡았다. 바다를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잔뜩 흥분한 뿌꾸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줄줄 흐르는 침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며 창문에 흔적을 남겼다. 불독 특유의 짧은 다리와 비대한 몸은 예전처럼 너무나도 예뻤다. 우리는 해안 근처에 길게 늘어선 횟집 중 한곳에 들어서서 산낙지를 함께 먹었다. 노을과 파도치는 바다를 등지고서 꿈틀거리는 산낙지를 기운차게 받아먹는 그 모습은 내게 무언가를 낙관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얼마나 멍청한 마음이었는지는 다음 날 깨달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들었던 뿌꾸는 아침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했다. 파도 찌꺼기 같은 거품을 입에 물고 온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으니까. 나는 뿌꾸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다다르는 동안, 품에 안긴 뿌꾸의 몸이 점점 늘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뿌꾸를 계속해서 불렀다. 안 돼, 뿌꾸, 제발……
뿌꾸는 응급조치를 받다가 깨어났다. 주사와 약을 처방받은 나는 수의사의 충고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점잖은 투로 나를 질책한 그 말. 행복한 여생. 그날 이후로 나는 뿌꾸와 함께 근처 아파트단지에서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다. 혹여나 돌아오는 길이 힘에 부칠까봐 뿌꾸를 태울 유모차도 끌고 다녔다. 느리게 걷는 뿌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때 바다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되뇜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산책은 매일 느긋했고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뿌꾸를 유모차에 태운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뿌꾸의 증상은 불독 특유의 유전병이라 어쩔 수 없다며 덤덤하게, 그러나 진실을 폭로하듯 말했던 수의사를 떠올리면서. 왠진 몰라도 그가 내게 책임을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근친교배로 만든 품종견을 선택한 책임을. 나는 유모차에 탄 뿌꾸를 바라보았다. 요새 뿌꾸는 아파트단지를 온전히 돌지 못했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산책 가자는 내 말에 꼬리를 흔들며 왕왕 짖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했다. 지금도 뿌꾸에게 산책이라는 것이 즐거운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우리에게 어떤 시간을 남기는 행위는 산책이 전부였기에 그만둘 수 없었다. 아직까지 뿌꾸가 싫은 티를 낸 적도 없었다. 내가 산책 가자, 산책! 하고 말하면 기꺼이 몸을 일으켜 현관 앞으로 향했으니까. 뿌꾸도 힘이 닿는 데까지는 내게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다. 다만 금세 주저앉아서 유모차에 태워야 할 뿐이었다.
하늘은 구름 없이 맑았고 우리의 몸은 햇살에 휩싸인 채 아주 천천히 따스해졌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환한 얼굴로 뿌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뿌꾸, 너는 어떻게 해야 행복했겠니? 내가 불독에게 새겨진 여러 질환의 이름과 증상, 그리고 나의 수많은 잘못들을 떠올리는 동안, 유모차에 앉은 개는 여느 노인들과 다르지 않은 얼굴로 자신의 산책로를 둘러보고 있었다. 혹은 침침해진 눈으로 그저 빛의 번짐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한참 해바라기를 하던 뿌꾸가 끙끙 소리를 냈다. 어디가 아픈 걸까 싶어 살피기 위해 몸을 기울였더니 뿌꾸가 나를 붙잡듯 어깨에 두 다리를 올려서 밖으로 나오려 했다. 영문을 모른 채 바닥에 내려놓자, 뿌꾸는 만족한 듯 꼬리를 흔들며 킁킁 소리를 내다가 짖었다. 그때 뿌꾸의 입가에서 튀어나온 침방울의 반짝거림은 내가 너무나 그리워했던 것이었다. 모처럼 기운을 차린 개의 모습은 내게도 힘을 주었다. 햇살 아래를 걷는 순간 모든 불필요한 생각들이 깨끗이 소독되었다. 우리는 동화의 한 장면을 연기하듯 씩씩하고 힘차게 걸었다. 주위의 소음들이 알록달록했고 거리는 크레용으로 거칠게 색칠된 것만 같았다. 놀이터의 아이들은 서툰 무늬로 변해 아기자기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뿌꾸는 다시 왕! 짖었고 그건 목이 마를 때 곧잘 하던, 우리의 약속이었다. 나는 맑은 물을 그릇에 따라 내밀었다. 혀로 물을 떠 마시는 개 특유의 경쾌한 소리가 났다. 정말 너에게 죽음이란 게 있는 거야, 아직도 난 네가 이다지도 놀라운데. 잠깐 눈을 비비자 동화의 장면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지만 젖은 입가가 반짝거리는 늙은 개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사이로 흐르는 고요한 시간에 몰두했다. 그래서 작은 남자애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가 뿌꾸의 엉덩이를 가볍게, 너무나도 가볍게 치며 ‘멍멍!’ 하고 외쳤을 때 소스라치게 놀란 건 그 때문이었다. 순간 뿌꾸가 처음 바라본 것은 자신의 등 뒤가 아니라 놀라고 있는 나였는데, 그 깊고 따뜻했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곧 몸을 돌린 뿌꾸는, 끈적한 침을 튀기면서 아이에게로 달려들었다. 늙은 불독이 아이의 얼굴을 단단히 문 채로 고개를 거칠게 흔들자, 아이는 인형처럼 무력하게 휘청거렸다. 겨우 둘을 떼어냈을 때 아이의 턱에 너덜너덜한 살점이 보였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아이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고서는 다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멍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턱에서 줄줄 흐른 피가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뿌꾸를 유모차에 태우고 달려서 아파트단지를 벗어났다. 자꾸 어깨가 떨렸는데 그러다 힘이 빠져 유모차를 놓쳐버릴 것만 같았다. 마치 모래 위를 달리듯 발이 지면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고, 추웠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핸드폰 전원을 껐다. 뿌꾸는 차량 뒷좌석에서 닫힌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며 짖었다. 뿌꾸에게 제발 진정하라고 했다. 반복해서 이름을 부른 덕인지, 거칠게 호흡하던 뿌꾸는 운전석으로 넘어와서는 내 품에 안겼다. 미친 듯 뛰는 늙은 개의 심장이 느껴졌다. 무리하지 않고 안정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의사가 그랬는데. 뿌꾸의 수명이 몇분씩, 아니 며칠씩 마모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뿌꾸의 머리를, 볼을, 턱 아래와 등을 쓰다듬으며 진정시키려 했다. 곧 내 품에서 얌전해진 뿌꾸와는 별개로, 뿌꾸의 심장은 여전히 터질 듯 뛰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피가 묻은 게 보였다. 치석 관리를 제때 못해주었을 때 이 늙은 개의 잇몸에서는 염증으로 피가 배어나오기도 했었다. 그럴 땐 치석제거용 개껌을 먹이면서 수시로 양치질을 시켜주면 됐는데, 칫솔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주로 양치질용 장갑을 끼고 이빨을 문질러주곤 했다. 정말로 그것들이 효과를 보였는지 기쁘게도 염증은 금세 가라앉았다. 나는 맨손으로 뿌꾸의 이빨과 잇몸을 문질러보았다. 그러나 피는 어디에도 묻어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뿌꾸의 입안을 살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물티슈를 꺼내 하얀 입 주위에 얇게 굳어 들러붙은 핏자국을 살살 닦아냈다. 곰팡이성 피부병이 입 주위로 조금 퍼져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뿌꾸의 얼굴은 여전히 눈처럼 희었고 특히 입 근처의 선홍색 피부가 맑고 환했다. 나는 아이의 피를 닦아낸 물티슈를 배변봉투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