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소설 형식의 시국선언과 기억의 윤리

공지영 장편소설 『도가니』론

 

정혜경 鄭惠瓊

문학평론가, 순천향대 국문과 교수. 저서로『매혹과 곤혹』『한국 현대소설의 서사와 서술』등이 있음. kornovel21@hanmail.net

 

 

1.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시대의 알레고리

 

국가인권위원회조차 독립성이 흔들리고 기구가 강제적으로 축소되는 곳에서 힘없는 사람들의 인권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하루아침에 내쳐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절규하고, 억울하게 불타버린 가족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반년을 투쟁해온 용산참사의 현장은 무관심 속에 고립되어 있다. 이밖에도 시장경제원리를 최고의 가치로 받드는 권력에 의해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생명과 인권이 내몰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민주주의를 무시한 채 강행처리된 미디어법은 앞으로 우리의 귀와 입을 막아버리려고 할 것이니,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농아(聾啞)들의 고통을 소재로 한 공지영(孔枝泳) 장편소설 『도가니』(창비 2009)는 지금 이 시대의 초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인터넷 포털의 연재를 마치고 최근 발간되어 다시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에서 교장과 행정실장, 보육교사가 청각장애아들을 성적으로 유린한 실제 사건을 토대로 했다.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가 3년여 동안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온 힘을 쏟은 결과 이 사건은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었으나, 정권이 바뀐 후 2008년 7월 항소심에서 가해자들이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었다. 작가는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기사를 읽는 순간, 그들의 비명소리를 듣는 듯했고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작가의 말」)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들의 독서공간에서‘텍스트’로 존재 전이를 한다는 점에서 모든 문학은 텍스트 발생론적 측면과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갖는다. 더구나 밀리언쎌러를 기록한 바 있는 작가 공지영의 경우는 이런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1988년 등단 이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를 시작으로 그녀의 많은 작품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켜 베스트쎌러에 올랐다. 특히 2000년대에 쓴 장편소설 가운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5)은 윤리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사형제 폐지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고, 『즐거운 나의 집』(2007)은 현실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수용하고 다문화사회로 향하는 데 필요한 담론을 제공하면서 2008년 호주제 폐지를 알리는 서막이 되기도 했다.

공지영의 최근작들이 우리사회의 변화에 따른 이슈를 포착하고 담론 생산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이른바 386세대의 자의식의 흔적을 작가가 자신의 독자층을 의식하면서 소명의식 혹은 작가의 윤리로 발전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작품이 가지를 쳐서‘위로의 수사학’을 전폭적으로 보여준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2008)와 인터뷰집 『괜찮다, 다 괜찮다』(2008)나 자신의 일상에서 소소한 에피쏘드를 건져올린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2009)의 성공이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공지영의 텍스트에는 독서시장의 출판마케팅 메커니즘이 분명히 작동했고 또 작가 스스로도 베스트쎌러에 대한 유혹 혹은 강박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러해 동안 재소자들을 만나왔고 청각장애아들과 연대하는 등의 개인적 실천에도 나타나는 소명의식의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매도할 이유는 없다.

『도가니』 역시 「작가의 말」과 각종 인터뷰를 살펴보면 “상상을 벗어나는 이 현실”(294면)을 드러내 부조리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작가의 분명한 계몽적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을 처음 구상했을 때는 낙후된 지역의 야만적 폭력과 그것에 눈감은 지방 토호들을 고발하려는 의도였는데, 소설을 쓰는 동안 나라 전체가 소설무대인‘무진’으로 변한 것 같아서 스스로도 놀랐어요. 감시 없는 권력은 필히 폭력화하고 부패한다는 점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1라는 작가의 진술은 당면한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을 표명한다. 이러한 취지에 독자들은 이미 이 소설이 인터넷에 연재될 때부터 열렬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누적 조회수 1100만을 넘는 가운데 연재물에 달린 댓글에서부터 단행본 출간 후 온라인서점 독자평이나 블로그 서평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의 가장 공통된 감상은 바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분노’다. 분노의 감정은‘공감(共感)’의 한 형식이며, 이 공감은 공지영의 글쓰기가 실천하고자 하는‘소통’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국과 관련하여‘미학(문학)과 정치’라는 화두가 다시 생성되고 있다.‘촛불’과‘시국선언’등에 나타난 민주주의의 위기의식에서 배태된 것은 물론이다. 각종 문학잡지의 기획에서부터 대중과 함께하는 인문학적 실천(지행네트워크, 연구공간 수유+너머, 철학아카데미 등의 활동), 다양한 작가들의 느슨한 연대인‘6.9작가선언’참여작가들의 용산참사 항의 릴레이 1인시위 등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사회적 역할 혹은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관심은‘시대와의 소통’이라는 맥락을 갖는다. 이 지점에서 “미학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 사이의 일치를 정립하기 위한 기준은 없다. 선택들만이 있을 뿐이다”2라는 말은 귀 기울일 만하다.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논의가 자칫 텅 빈 논의의 반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실제 텍스트들에서 그 화두를 구체화해보는 편이 생산적인 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공지영은 『도가니』에서 당대성의 문제를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가? 이 소설이 장애인의 인권이라는‘정치적 올바름’의 소재에서 출발한다면 정치적 올바름은 문학과 어떻게 만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앞서 말한 문학적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공지영의 글쓰기 행위를 좀더 천착해보는 일인 것이다. 물론‘정치적으로 올바른 문학 앞에 미학적 잣대는 무력한 것인가? 혹은 윤리적 명분 속에 또다른 이데올로기가 잠복해 있는 것은 아닌가?’하

  1. 최재봉「‘기득권의 승리’너무나 불편했던 결말」 한겨레 2009.6.30. 『도가니』 출간기념 기자인터뷰를 각 신문사가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헤드라인을 비교해보면 무척 흥미롭다. 경향신문의 경우 “나라 전체가 안개도시가 되는 느낌”, 한겨레신문은 “‘기득권의 승리’너무나 불편했던 결말”, 한국일보는 “견제 없는 권력은 폭력으로 이어져,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 주시”를 각각 표제로 삼아 소설의 당대성을 부각한 반면, 중앙일보는 “포털에 연재한 『도가니』 책으로 출간한 소설가 공지영”이라고 객관적 사실만을 뽑았고, 조선일보는 “그늘에 가려졌던 성폭력, 맞설 것인가”라고 하여 성폭력의 문제로 제한했으며, 동아일보의 경우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이 날 움직였다”고 추상화했고, 문화일보는 “독자들은 또‘신드롬’에 빠진다: 베스트쎌러 소설가 3인 신작 잇따라”라고 하여 베스트쎌러에 초점을 맞춘 저널적 관심사만을 드러냈다.
  2. 자끄 랑씨에르, 오윤성 옮김 『감성의 분할: 미학과 정치』, 도서출판 b 2008, 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