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성용 吳成龍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1984년생.
foooooo@naver.com
기다려, 데릴라
From 시하눅빌
그런 말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를 등지고 돌아서자마자 첫번째로 든 생각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훌쩍 강렬한 생각이 나를 조롱하듯,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게 아니었다고, 반복해서 읊조렸다. 나는 의식적으로 잠시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두 발을 앞으로 옮겼다. 그러자 의식하지 않았던 한개뿐인 입에서, 나도 모를 한숨이 길게 뻗어나왔고, 덕분에 잠시 허공을 장식한 입김은 뽀얀 글씨로,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게 아니었다라고 휘갈긴 뒤 증발해버렸다. 내가 그러건 말건, 나의 시야엔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그녀는, 나의 어깨 너머로 이 풍경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섬으로써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것을 내가 바라보고 있다. 기억대로라면 그녀도 먼저 돌아선 나 때문에 피치 못해 등을 돌렸기에, 방금 전에 내가 바라보고 있던 그녀 뒤의 어떤 것들과 마주쳤을 것이다. 변함없이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흔들림없이 걸었고, 그렇게 그녀와 나는 서로가 볼 수 있던 세상의 일부를, 맞바꾸어 바라보고 있다. 달라진 것은, 그녀와 나의 방향뿐. 아니 달라진 것은 나의 방향뿐,이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눈이 내려오고 있었다. 나와 달리 일정한 방향을 가진 그것들은, 나의 귀밑머리를 스쳐가고, 입김을 뚫고 지나가고, 피부에 달라붙기도 하면서, 그 끝에 도달했다. 질척해진, 거리를 에워싼 공기는 한없이 차갑고 또 무거워져, 지구가 아닌 별의 중력인 양 무겁게 나를 짓눌러왔다. 때문에 나는 손가락 사이에 고인 눈송이조차, 털어내지 못하고 그것이 물로 변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느껴야만 했다. 느낌인지 실제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나를 중심에 구겨넣은 풍경은 점점 동결되고 좁아져서, 천천히 또 싸늘하게 느려지고 있었다. 내리던 눈들이 거의 정지하다시피 허공에 부유하고, 주변의 사람들이 서서히 움직임을 잊어가는 것이 보였다. 어느새 나의 걸음도 한장의 스틸사진처럼 기형적으로 멈춰버렸고, 눈 또한 감기려 들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 본래 눈송이였던 물방울이, 눈물처럼 흘러 내려가다 맺힌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다. 세계는 점점 더 느려져만 갔고, 시간은 멈춰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움직일 수 없게 돼버렸고, 오로지 생각만 할 수 있는 상태에 직면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첫번째 생각을 곱씹는 것뿐이었다. 멈추고 싶었지만 멈춰지지가 않아서, 계속해서 곱씹고 되뇌었다. 멈춰진 시공간에서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그 생각은, 까닭없이 정수리 부근이 시려오는 것이 느껴지면서,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예상 밖으로, 나의 첫번째 생각은 그렇게 고작 대여섯걸음의 거리와 세번의 눈 깜박임, 한번의 긴 한숨을 소비하고서, 작게 뭉쳐져 어딘가로 굴러가버렸다. 아니 첫번째 생각이 차지하던 자리에 또다른 생각이 덧씌워졌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나는 한 발을 땅에 딛고 나머지 한 발은 허공을 밟은 채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여러 방향으로 걷던 사람들은 정지해 있었고, 눈송이는 공중에 못 박혀 떠 있었으며, 어딘가의 초침이 멈춰서고 있었다. 그 순간 속에서 나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게 아니었는데 하며, 그녀를,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를, 생각했다.
그런 여자
일단 예쁘고 착하면 된다는 한 친구의 도전적인 발언에서 시작된‘그런 여자’타령은, 끝을 보자는 식으로 끝도 없이 이어져 내려갔다. 때는 여느 날과 똑같은 날이었고, 장소는 술자리였으니 그것이 인생에 차지할 비중은 말할 것도 없이, 0보다 못한 소수점 열두자리 이하의 것으로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어찌됐건 여자와는 연이 없던 나에게,‘여자’라는 민감한 단어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여자’라는 말은 어쩐지 지구상에서 발견되지 않은 광물의 원소기호를 발음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나의 주변에도 XX염색체를 가진 것이 분명한, 여자라는 종은 여럿 존재하지만, 그들은 여동생이나 누나, 어머니, 아줌마라는 말로만 표현 가능할 뿐,‘여자’라는 말에 딱 떨어지는 사람은, 무슨 저주인지, 아직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따라서 아직까지 내게‘여자’란 단어는 동음다의어의 형태로 두려움, 경외, 숭배, 경계, 애정, 배척, 연구, 우호의 대상을 가리키는, 거리와 범위가 불분명한 단어이다. 오죽하면 내 입으로‘여자’라고 분명히 발음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과, 어쩐지 불경한 말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을 느낄 정도다. 결국,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은 기분은 확실히 아닌 그 행위는, 체내에 침투해 있던 술과 교묘히 결탁해, 날 예민하게 만드는 불상사를 일으키고야 말았다. 대체 기준이 뭔데? 삐딱한 나의 질문을 받은 나의 친구는 취기 때문인지 핵심을 찔려서인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글쎄,라면서 말을 흐렸다. 창피하지만‘여자’때문에 가시가 돋칠 대로 돋친 나는, 얼마 전에 읽은 책의 내용까지 인용해가며 설교하기 시작했다. 제목이‘지구에 꽁짜는 없다’란 책이었는데,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엄연한 경제처세서로서 주식과 펀드를 겸한 돈 버는 방식에 대해 나열한 것이 전부라, 아무리 생각해도‘여자’와는 관련이 없는 서적이었다. 하지만 취한 상태에서 예민해지기까지 한 나는, 그런 것을 가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혀 꼬이는 소리와 함께 무소처럼 돌진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발전이 없는 거라니까, 그건 진짜로 막연하잖아, 돈 많이 벌고 싶다란 말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사람이 계획이 있어야지, 언제까지 꿈만 꿀 거야? 실현 가능한 조그마한 것부터 차근차근 상세하게 목표를 세운다면, 착하고 예쁜 여자를 넘어선, 더 착하고 더 예쁜 여자를 얻을 수 있는 거라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예쁘고 착한 여자를 원하는지, 진정 자신이 원하는 정도를, 체크해야 돼. 안 그러면 인마, 성공 못해, 절대! 운만으로는 안된다고. 왜 그런 말도 있잖아! 계획 있는 자가 미녀를 얻는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의 주정 아닌 주장을 듣고 있던 친구가 대답했다. 용기있는 자 아니냐? 나는 대답했다. 닥쳐, 계획이 맞아.
술에 취한 내가 귀여웠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심심했는지, 나의 설교가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낄낄낄 웃으면서 나는 그런 여자, 아니 나는 그런 여자가 더 좋은데,라는 식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재밌는 것은, 저마다‘여자’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달리 말해, 각자 여자에 대한 고유의 환상을 쌓아왔다는 뜻이다. 우리는 여자와 한번이라도 사귀어본 사내라면 절대 갖지 못할, 희소성과 그로 인한 특별함을 획득한 불쌍한 환상을, 취기를 핑계삼아 조금씩 뱉어내가며, 비교를 반복하며 스스로의 위치를 가늠했다. 정상의 궤를 벗어난 건지 아닌지를 말이다. 아직, 변태의 수위에 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한 우리는, 서로와 자신에게 안도감을 표했고, 하던 일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예쁘다, 착하다, 귀엽다, 정이 많다, 싹싹하다 같은 어쩐지 어렴풋하고 두루뭉술한 추상적인 단어들의 연속이었다. 이래서야 무슨 발전이 있겠느냐라는 나의 푸념이 곁들여지고 나서야, 친구들은 굳은 얼굴로 숨기고 있던 컬러조커를 내놓았다. 그러니까, 눈매가 중요해, 난 날카로운 눈매를 원해. 나는 코가 좀 오뚝하고 작았으면 좋겠어, 그걸 통해 들숨 날숨이 오간다는 걸 생각하면, 아 진짜 행복하다. 나는 턱이 예각을 형성하고 있다면 더 바라는 게 없어, 각진 턱은 진짜 지양하는 바이다. 각자의‘그런 여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상세해지고 구체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한몫 거들고 있던 나의‘그런 여자’도 점점 더 생기를 띠게 됨은 물론이었다. 잠시 뒤 우리는, 어느새 술집 카운터에 있던 메모장과 펜까지 손에 쥔 채, 경건한 마음으로 각자의‘그런 여자’를 서술하는 작태까지 보이며, 열과 성의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것은 마치 고3 수험생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더이상 바랄 게 없이 완벽한 각자의‘그런 여자’를 설명한 장문의 글은 완성됐다. 글이 완성되면서 얻은 소득이라곤,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썼다는 뿌듯함과, 실현 불가능에 가깝게 적혀버린 이상형에 대한 무력감, 혹시 실현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전부였다. 소주병들은 이미 빈 병이 되어 탁자에 뒹굴고 있었고, 우리는 어디‘그런 여자’없나?에서 어디‘이런 여자’없을까? 하는 극미량의 성분 변화를 거친 의문을, 하릴없이 허공에 내던질 뿐이었다.
어디에도 이런 여자는 없겠군. 나는 내가 열두줄에 걸쳐 써놓은 ‘여자’를, 혹시나 오류는 없는지, 진지하게 다듬어야 할 사항은 없는지, 아니면 추가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따져보기 위해 재차 읽다가, 어렵지 않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가관이네. 다행히 모두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다시 답답한 현실에 직면한 우리는 술이나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술잔을 집어들었다. 그때 미대를 다니던 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심한데 몽따주나 그려볼까? 누구의 이상형이 제일 예쁜지 비교해보자. 은근히 경쟁심을 부추기는 친구의 발언에 모두는 들었던 술잔을 내려놓고서, 그의 오른손에 집중했다. 아니 아니 눈은 좀더 크고 그렁그렁하게, 좋아 좋아 그리고 입술은 약간 도톰해서 윤기있게, 머리카락은 웨이브지고 굴곡있는 형태의 단발! 오, 딱 이거야 이거,와 비슷한 말을 서로의 차례에 맞게 징징대길 여러번, 마침내 나의‘여자’가 윤곽을 드러냈고, 베일에 싸여 있던 얼굴이 공개됐다. 완성된 그림을 바라본 나는, 약간 놀라고 말았는데, 내가 쓴 글에서 파생된‘여자’가, 어쩐지 전설이나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는‘여자’의 맨 아랫줄에,‘한국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사항을 한줄 추가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히 깨달았다. 확실히, 어디에도 이런 여자는 없겠구나. 나는 어쩐지 세상에서 나 홀로 혜택받지 못한 기분이 들어서 굉장히 피곤해졌다. 해서 순식간에 귀찮아져버린 만사를 뒤로하고, 나의‘여자’가 그려진 종이 위에 두 팔을 포개고 머리를 조아린 다음, 두 눈을 감았다. 어디에도 없을 것이 확실한 나의‘여자’가, 나의 그늘 아래에서 표정없이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녀를 만날 확률이 좀더 높을 것이 분명한 꿈속으로 그렇게 가라앉아갔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키득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끝으로.
그런 기호들
그런 여자가 있다.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은, 나의‘여자’가 진짜 있다,라는 친구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닮을 수 있는 것이지, 결코‘그런 여자’는 현존할 수 없다는 나의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여기 이곳에 서 있는 이유는, 네가 착각한 거겠지라는 나의 불신 섞인 말에,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진짜 있다니까! 대꾸하는 친구의 역정 때문이다. 여전히 당사자인 나는 그런 여자는 없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손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나의‘여자’를 펼쳐서 되새겨 읽고, 또 한번 감동한 뒤, 다시 한번 친구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의사를 추슬렀다. Zoo미용실. 근처의 애꿎은 보도블럭의 칸을 옮겨가며 밟아대던 나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 확실하지만, 친구는 있다고 주장하는 나의‘여자’를 보기 위해 미용실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친구가 말하길,‘여자’는 이 미용실에 있다고 했다. 뻐근하게, 마음이나 생각과는 외따로이 심장이 진동하고 있었다. 간판 덕분인지 문 앞에 바짝 다가서자, 뜻 모르게 동물원에 처음으로 놀러 갔던 먼 옛날의 기억이 떠올랐고, 기묘한 기분에 괜스레 뒷머리가 간지러워져, 오른손을 들어 그 부위를 가만히 긁어냈다. 유리문에 그런 나의 모습이 비쳐왔다. 우습게도 치렁치렁한 나의 머리 위로 거대한 물음표가, 거짓말처럼 부풀어올라 있었다. 나는 그 상태를 어쩌지도 못한 채, 정수리에 붙은‘?’를 달랑달랑 흔들며, 나의‘여자’를 구경하려고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여자는 자그마한 쏘파에 앉아서 등도 돌리지 않고, 인사말부터 던졌다. 여자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는데, 그것은 곧 테이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털썩 하는 소리가 나길 바라고 있던, 나의 눈은 그 책을 훑어냈다.‘지구에 꽁짜는 없다’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묘한 기분이 발끝을 자극하려는 찰나, 머리 자르러 오셨어요? 이어지는 여자의 목소리가 나를 꺼내주었다. 아뇨,라고 대답하려던 나의 입은, 서서히 돌아서는 여자의 얼굴을 본 나의 눈 때문에, 아……를 발음하면서 끊겼고, 네! 하는 소리를 내버리면서, 나의 의사를 배신했다.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동시에 상체를 돌려세운 여자 앞에서 나는, 매우 복잡미묘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딱딱해졌고, 동시에 말랑해져버렸으며, 경직된 듯하면서도, 묘하게 늘어지는 것이었다. 예컨대 무언가를 느껴버린,‘!’느낌표의 모습이랄까. 미용실 거울 속의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이 없어 보였고, 눈빛을 잘게 흔들어대며, 어디선가 솟구쳐 올라오는 듯한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여자는, 그런 상태의 나를 향해 완전히 마주 섰다. 당연히 나의 눈에는 여자가 보여야 했으나, 나의 눈에는 여자가 아닌, 다른 무엇이 보였다. 그것은‘*’이었다.‘*’이 분명했다. 별 혹은 애스터리스크, 말 그대로 하늘 너머에 있어야 마땅한, 그것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여자는 빛을 내뿜으며, 그 빛으로 사위에 있는 모든 것을 지워내면서 스스로를 부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압도되어버린 나는, 미용실이 아니라, 아스트랄계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고, 원한다면 불과 물과 흙과 공기를 씹어 삼키는 행위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와중에 glory, 이런 수식어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알 수 없게도 나는, 이 모든 광경이 성스럽게 여겨졌고, 말 못할 따뜻함이 날 감싸안고 있는 것처럼 뿌듯해졌다. 나는 별빛에 휩싸인 채, 술에 취해 어쩐지 전설이나 신화에나 있겠구나 여겼던‘여자’를 급(急)수정했다. 여자는 성경에서 뛰쳐나와 이곳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다로.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구경만 하고 나가려고 했었다. 잠깐 스쳐보고서 다시 나와, 왜 거짓말을 해서 내 소중한 인생의 5분을 허비하게 만들었냐고 외치며 친구를 타박하려고 했다. 하지만‘여자’의 휘광은 그런 나의 생각을 가뿐하게 지워내버리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고, 나는 미용실에 그런 것이 있으리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기에,‘그런 여자’의 목소리로 이쪽에 앉으세요,라며 의자를 가리키는 여자의 말에, 애초에 의사 따윈 결여된 인간인 것처럼 기계적으로 복종하고 말았다. 여자가 지정해준 의자에 앉자, 여자는 천보다 새하얀 손으로, 하얀색 천을 나의 목 주위에 둘러주었다. 거울 속에 예상과는 자꾸 엇나가는 나의 모습과, 그 너머에 있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머리와 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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