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혜진 申惠眞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2. 1973년생. ich0314@hanmail.net

 

 

 

로맨스 빠빠

 

 

우리 동네 아침은 「어머나」로 시작된다. 마을회관 확성기가 지글지글 끓다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젖힐 즈음, 마당에서 개새끼들이 합동으로 늑대 울음 같은 코러스를 넣는다. 켁켁- 아아, 마이크 테스트, 이거 시방 나오는겨? 나온다구? 큼- 연하 일구 주민 여러분덜께 알려드리겄습니다아. 그 뭐이냐, 저 아랫녘버텀 장마가 올러오는 중이라고 헙니다아. 카악- 논두렁 단속허시는 짐에 거국적으루다가, 켁- 벼멜구 약을 한바탕 쳐주실 것을 당부드리는 바이올습니다아.

아버지가 마당 쓰레질을 하다 말고, 아이, 그늠 가래나 배앝고 나부댈 거이지, 하고는 이장 대신 카아악 퉵, 하면서 담장 쪽으로 걸찍한 가래침을 뱉어냈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에 맞춰 엉덩이를 들썩이며 화장실에 앉았다가 나온 나는 아버지의 가래침이 담벼락에 철썩 달라붙는 것을 보고는, 돼지표 본드는 저리 가라네, 생각하며 문을 걷어차 닫았다.

마당 한쪽에 붙어 있는 화장실은 작년에 아스까(明日香) 일행이 다녀간 뒤에 아버지가 사람까지 사서 좌변기를 앉힌다 세면대를 놓는다 법석을 떨며 고친 것이다. 불편하다고 엄마와 내가 아무리 고치자고 해도 꿈쩍 않던 아버지는 아스까가 푸세식 화장실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두말없이 수리를 시작했다. 금방 또 놀러온다는 그녀의 약속을 아버지가 곧이곧대로 믿은 탓이었고, 우리로서는 말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옥외 화장실이라 겨울에는 수도 파이프가 얼어 터지는 바람에 며칠 동안 옆집 화장실로 볼일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마을회관 확성기가 잠잠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교회 쪽에서 차임벨이 울렸다. 듣기만 해도 졸음이 올 것만 같은 ‘내 주 예수 그 크신 사랑은’이 느릿느릿 골목 새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학생부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아빠, 무지 한가하네? 오늘은 우리재 안 돌아? 한규네 엄마 실으러 가야지.”

“지지배 말뽄새 허구는…… 실으러가 뭐여, 모시러! 고등부 예배시간 안되았냐? 으쩌구 맨날 교회 빼먹을 궁리만 허는겨?”

“아이씨, 똥 싸느라구 그랬잖어. 있다가 으른 예배 가면 되지. 아빠, 오늘은 기도문 좀 적어갖구 가. 기도책에서 새걸루 하나 베끼란 말야. 접때처럼 또 버벅대지 말구.”

지난주 예배 때 아버지는 대표기도를 하다가 말이 딱 막혔었다. 일년 오십이주, 별로 바뀌지도 않는 내용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주여, 주여, 나라럴 위하야 기도하옵나이다…… 그후 약 삼십초 동안 기도는 중단되었고, 지잉- 마이크 소리만 울렸다. 말이 막힌 게 어이가 없어 눈을 뜨고 강대를 바라보니 아버지는 깍지 껴 모은 손을 떨고 있었다. 한참 동안 부르르 떨다가, 이 땅 우에 다쒸는 육이오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아니하도록 섭리하야 주씨기를 믿사옵고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목소리까지 울먹여가며 겨우 기도를 끝마쳤다. 식은땀 나기는 앉아 있는 교인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새삼 그 일을 끄집어내자 아버지는 빗자루로 화장실 벽채 밑을 쓸면서 말을 딴 데로 돌려버렸다.

“아잉아, 요짝으루 삥 돌라 달리아 꽃씨나 뿌리보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 아줌마 요샌 교회 봉고 타구 댕기나?”

“물러, 그걸 왜 나헌티 묻는겨? 늬나 잘허세요.”

아버지는 내 말투를 흉내내어 말했다. 한규 엄마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한규 엄마는 교회에서 반주를 맡고 있는 새댁이었다. 한규가 아직 젖먹이인데다가 우리재 쪽으로는 때맞춰 버스도 없어서 아버지는 수요 예배 때와 일요일 아침저녁으로 덜덜거리는 승용차를 끌고 한규 엄마를 데리러 가곤 했다. 이십분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아버지가 그 시간을 얼마나 즐거워하는지는, 우리재로 자동차 방향을 잡을 때의 표정에 뻔히 드러났다. 그런 아버지가 젊은 여집사 데려오는 일을 주저없이 교회 차량봉사대에 넘긴 것은 이주일 전 수요일 저녁에 한규 아빠에게 망신을 당한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자기 아내가 교회 나가는 것을 아주 싫어한 한규 아빠에게서 아버지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다구니를 들었다는 사실은 한규네와 한동네에 살고 있는 고등부원에게 전해들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 기분 좋은 행사를 선선히 포기한 데에는 다른 속내가 있을 거라고 나는 막연히 짐작했다.

사실 그 무렵, 아스까에게서 소포가 온 거였다. 누런 소포용지에는 ‘홍대식씨 앞’이라고 적혀 있었고, 편지가 들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동봉된 편지는 아주 사무적인 인사말뿐이었다. 출판사에서 대충 쓴 편지 같았지만 아버지는 드디어 아스까가 연락을 주었다며 무척 기뻐했다. 소포 안에는 아스까의 사진 한장과 얇은 책도 한권 들어 있었다. 작년 여름 아스까가 걸어서 한국을 여행할 때의 일이 씌어진 기행산문집이 번역본으로 출판된 것이었다. 표지에 파란색 비옷을 입은 작달막한 여자, 아스까의 사진이 ‘길 위에서 사랑하다’라는 제목과 함께 찍혀 있었다.

아버지는 그 책을 애지중지하였다. 일찍 온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커다란 주머니가 붙은 등산점퍼를 입고 아예 그 속에 책을 넣어가지고 다니며 동네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었다. 엄마나 내가 보자고 해도 대충 사진이나 볼 수 있을 만큼만, 그것도 자신이 직접 책장을 넘겨가며 보여줄 뿐이었다. 오빠네 식구가 살고 있는 주유소에 일하러 갈 때도 소중히 주머니에 넣어가서 틈틈이 읽었으며,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허벅지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먹었다. 아스까의 책을 들여다보는 아버지는 연애편지라도 읽는 사람처럼 행복해 보였다.

“퐁퐁 달리아 가득 주워 마음이 들떠버렸네.”

아버지가 빗자루를 들고 허공을 휘저어가며 코까지 앵앵거렸다. 아스까가 지었다는 시였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가 듣기에 그녀의 시는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보다 유치한데다, 길이는 구더기 토막 친 듯 짧았다. 짧아서 아쉽기보다는, 그래서 뭐? 그래서 어쩌라구?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시였다. 일본에서는 그렇게 짧게 짓는 시가 유행이래나 뭐래나, 하여튼 그렇다고 했다. 아스까는 그런 시를 짓는 유명한 시인이라는 게 그녀를 따라왔던 뚱뚱한 통역의 설명이었다.

일본어를 못해서 그렇지, 아스까식으로 시를 지으면 나는 십분에 열개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루비아 따먹으며 헤벌쭉 웃었네, 유리창 두드리는 빗방울의 입술, 퐁퐁 다이알 비누 요샌 아무도 안 쓰네, 이빨 사이로 뱉는 사랑노래 등등…… 시가 별건가. 초등학교 때 붓을 꺾어서 그렇지 내 안에도 천재시인이 산다 이거야. 나는 ‘이빨 사이로 뱉는 사랑노래’를 두어번 되뇌고는 이빨 사이로 침을 찍 내갈겼다.

사실 나는 일본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아스까가 떠난 다음, 아버지가 나에게 일본어 공부를 하라고 성화를 댔던 것이다. 느네 학교는 미국말도 배와주고 불란서말도 배와줌서 가차운 나라 말은 왜 안 갈킨대여? 일본말 배워설랑 아스까 언니하구 펜팔해면 재미질 거인디. 아부지가 학원비 내줄 테니께 언능 학원 알어봐. 아버지는 아스까의 소식이 무척이나 궁금했는지 싫다는 나를 붙들고 자꾸만 학원에 등록하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아스까의 이메일 주소와 학원비를 받아챙겼다.

일본만화에 미친, 같은 반 지숙이한테 대신 메일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울 아빠가 무지 보고 싶어한다는 말을 꼭 넣으라고 강조했다. 떡볶이까지 사줘가며 메일을 두세번 더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학원비는 어디다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녹아 없어져버렸다. 답장이 안 온다고 하자 아버지는 두달째 학원비를 주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거의 일년 만에 소포가 온 것이었다.

“상 채려놓구 지사 지내유? 너는 내동 있다 교회만 가라 허면 변소간에서 버팅기는겨.”

아버지가 아스까의 시 속에 파묻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틈에 엄마가 왈칵 부엌문을 열어젖히며 악을 썼다. 유리 달린 밤색 섀시문이 깨갱깽 몸살 앓는 소리를 내질렀다. 아스까의 소포로 틀어진 심사가 그예 불퉁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는 애초부터 아스까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다간 새우등 터지기 십상이므로.

나는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 밥상 앞에 조신하게 앉았다. 맞은편 벽에 붙어 있는 거대한 가족사진이 보였다. 재작년 엄마 환갑잔치 때 온가족이 쎄트로 한복을 맞춰 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금빛 찬란하던 액자에는 군데군데 파리똥이 묻어 있었다. 제자리에, 살짝 갸우뚱한 모습으로 걸려 있는 가족사진이 오늘따라 어딘지 달라 보였다. 못 보던 사진 한장이 액자 틈서리에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손바닥만한 사진을 톺아보았다.

기름한 눈을 아래로 깔고 잔뜩 분위기를 잡은 아스까의 사진이었다. 소포에 딸려온 사진인 모양이었다. 웨이브가 우아하게 들어간 긴 머리에, 수술한 게 틀림없는 높은 코, 작고 도톰해서 얄미운 입술, 뽀샵질을 했는지 주름 하나 없이 기다란 모가지. 모르긴 몰라도 아버지는 눈치코치 없이, 상구 봐두 이삠도 이쁘다, 베릴 것이 한개도 웂는겨, 어쩌구 해가면서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고, 엄마는 칼눈을 불똥 튀게 별렀을 터였다. 아무려나 아버지는 아스까의 사진을 가족사진 한구석에 보란 듯이 꽂아놓았고 엄마는 그것을 묵인하고 있었다. 오, 묵인이라니. 이렇게 어려운 단어를 다 알다니.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나도 나한테 깜짝깜짝 놀란단 말씀이야. 어쨌거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아버지야 그렇다 쳐도 사진을 그냥 내버려둔 엄마가 이상했다.

반찬을 집적대지도 않고 얌전빼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진력이 나서 나는 슬그머니 화장대 앞으로 가 앉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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