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도상 鄭道相

1960년 경남 함양 출생. 1987년 단편 「십오방 이야기」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친구는 멀리 갔어도』 『모란시장 여자』, 장편 『그대여 다시 만날 때까지』 『누망』 등이 있음. oksknk@hanmail.net

 

 

 

소소, 눈사람이 되다

 

 

오후 세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충심은 한성안마의 이층 창가에 서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탑(西塔) 연변가의 낡고 지저분하고 소란스러운 거리와 좁다란 골목을 하얗게 감싸며 눈은 소곤소곤 이야기하듯이 내렸다. 지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하얗게 뒤덮으며 가벼운 바람에 몸을 섞어 흩날리는 눈 속에서 어린 거지아이가 불쑥 고사리손을 내밀었다. 한창 재롱을 피울 네살쯤 된 여자아이의 손바닥은 까마귀 발처럼 검었다. 눈은 그 자그마한 손 위에도 내렸고, 어린 꼬맹이의 빈손을 응시하는 거지 어머니의 슬픈 눈동자에도 내렸다. 충심의 망막 깊은 곳에서 눈 내리는 연변가의 풍경과 고향의 남루한 거리가 슬며시 교차했다. 거지 모녀는 어느새 함흥역 앞 광장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누렇게 마른 솔잎처럼 가녀린 거지아이의 앙상한 뼈마디가 충심의 가슴을 가시처럼 찔렀다. 주춤, 뒤로 한걸음 물러난 충심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리다 뒤늦게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 속에는 남루와 슬픔뿐이어서 그 작은 손 위에 아무것도 놓아줄 수가 없었다. 가슴이 서늘해졌고, 그만 울고 싶어졌다.

“또 울어?”

언제 옆에 왔는지 호룡이 걱정스럽고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충심은 대답 대신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으며 가만히 눈물을 닦아냈다. 충심의 귀로 거칠게 떨리는 호룡의 숨결이 생생하고 노골적으로 흘러들었다. 팔뚝에 굵은 소름이 돋아났다. 망설이다가 슬그머니 돌아서서 안마를 하는 작은 침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침대들이 몹시도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차라리 안마라도 하고 있으면 마음이 이토록 스산하진 않을 터였다. 호룡도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충심은 껑충한 키의 떠꺼머리 총각이 겁석겁석 몸을 흔들며 다가오는 게 싫어 다시 창가로 갔다.

그래도 호룡은 눈치없이 주변을 맴돌았다. 충심은 호룡과 둘만 있는 게 아무래도 부담스러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니 스물셋 총각의 마음에 연정이 뭉클 솟구치는 모양이었지만 충심은 애써 모른 척 싸늘하게 외면했다. 지난 초가을, 고향이 하얼삔인 호룡은 충심을 좋아한다고 한성안마의 모든 복무원들에게 선언해버렸다. 호리호리한 키에 갸름한 얼굴의 호룡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선족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한족이라면 혹시라도 좋아할 수 있겠지만 조선족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충심은 다른 복무원들과 연속극 「대장금」  흉내를 내면서 수다를 떨었다.

잠시 후, 호룡이 위층에서 털레털레 내려왔다. 입이 한 자나 나와 있었다. 충심은 애써 모른 척했다. 그때, 눈을 하얗게 덮어쓴 설매(雪梅)가 양고기 뀀을 흔들며 들어왔다. 수다를 떨고 있던 복무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설매의 손에서 뀀을 뽑아들었다. 설매가 머리며 어깨에서 눈을 털어내는 동안 충심도 뀀을 하나 뽑아들었다. 그런데 호룡은 담배만 뻑뻑 피워댈 뿐 양고기 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충심은 뀀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다시 이층 창가에 섰다. 눈은 여전히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양고기 뀀을 창틀에 내려놓고 충심은 하얗게 변해가는 창밖 풍경에 눈길을 던졌다. ‘정씨구두’라고 손수건만한 입간판을 내세운 신기료장수 정씨가 궤짝에다 구두굽, 구두약, 구두솔 등을 챙겨넣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마치 눈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옆 손수레 위의 과일도 눈에 파묻혀 있었다. 정씨는 눈을 뭉쳐 통통한 눈사람을 만든 뒤 그 머리 위에 망가진 구두솔을 거꾸로 올려놓았다. 구두솔은 눈사람을 까까머리 인형처럼 보이게 했다. 정씨는 구두약으로 눈과 코와 입을 그려놓은 뒤 궤짝을 메고 총총히 떠났다. 정씨의 눈사람을 보니 괜히 마음이 포근해졌다. 충심은 눈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눈사람은 눈을 맞으며 그 자리에 마냥 서 있었다.

충심은 한성안마에서 나와 눈사람에게로 갔다. 맨손으로 눈을 길게 뭉쳐 눈사람의 다리를 만들었다. 이어서 발도 만들어 다리에 붙인 뒤 그 위에 눈사람을 두 팔로 껴안아 올려놓았다. 아주 짧은 다리였지만 보기가 참 좋았다. 다리를 만들어줬으니 녹아 사라지지 말고 어디로든 갔으면 싶었다. 더구나 그곳이 진정 원하는 곳이기를 짧게 기도했다. 충심은 시린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돌아섰다.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한성안마로 들어섰다.

그때,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전화가 부르르 떨었다. 연분 이모였다. 모레 몽골 국경으로 안내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로 했는데 부탁한 돈이 되었냐며 물었다.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제 밤에도, 공동숙소로 찾아가 겨울의 몽골 초원은 영하 사십도까지 내려간다며 제발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설득했다. 그래도 연분 이모는 안내와 일행이 있을 때 가야겠다며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중국에 있는 것보다는 아무리 고생을 해도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다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충심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국경초소를 피해 몽골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댓가로 이만 위안1을 마련해야 한다고 징징거렸다. 한국에 도착하면 정착금을 받아 꼭 돌려줄 테니 제발 부탁한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애원했다. 그게 지겨워서 빌려준 돈을 받으면 주겠다고 했더니 한시가 멀다 하고 전화를 쳐댔다. 충심은 곧장 희래등(喜來登) 안마소의 김화동 로반2한테 전화를 걸었다. 빌려간 돈을 달라고 전화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마치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한테 외상값을 받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저어, 한성안마의 미나(美娜)인데요.”

‘아, 메이나? 잘 있었어?’

김화동은 호들갑을 떨며 반갑고 다정하게 안부를 물었다.

“그럭저럭요.”

‘그럭저럭 지내면 되나, 잘 지내야지.’

“저어, 그러니까……”

돈 얘기를 꺼내자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구질구질하고 냄새나는 한성안마에 있지 말고 희래등으로 와. 오면 계약금으로 우선 천 위안 줄 테니.’

전화를 걸 때마다 하는 똑같은 말을 김화동은 오늘도 어김없이 되풀이했다.

“그, 그것보단, 이, 이만 위안이 지금 꼭 필요하거든요. 돌려준다는 날짜도 여, 여섯달이나 지, 지났고.”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말을 더듬는 스스로가 싫고 짜증났다.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늘 주눅이 들었다. 돈을 빌려주는 짓 따윈 어떤 일이 있어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연분 이모한테는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기로 했다. 연분 이모는 중국말을 몇마디밖에 하지 못해 여기선 돈을 벌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충심은 읽고 쓰고 말할 줄 알았다.

‘아, 그거? 줘야지. 희래등으로 와!’

돈을 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돈을 받으면 연분 이모한테 줘야겠지만 선뜻 내주긴 싫었다. 어쨌든 다시 한번 설득해볼 작정이었다. 겨울의 몽골은 너무 위험했다. 차라리 베트남으로 간다면, 그것은 고려해볼 수도 있었다.

‘줄 테니 희래등으로 오라고!’

김화동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왜 희래등으로? 빌려갈 때의 장소는 한성안마였는데, 돌려줄 때는 희래등이라니? 이자도 한푼 받지 못했는데 그것은 부당했다. 심지어 눈까지 이렇게 내리는데……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 8위안이지만 그것도 아까웠다.

“한성안마로 오시면 안될까요?”

충심은 조심스레 물었다.

‘오케이!’

의외로 대답이 선선했다. 돈을 되갚기로 약속한 날이 지난 뒤로 김화동이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대답한 적이 없었다.

처음 한성안마로 왔을 때, 충심을 지극히 돌봐준 조선족 최옥화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의 애인이 김화동이었다. 눈이 크고 맑아 도무지 거짓말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첫인상의 서른한살 노총각이었다. 법 없이도 살 만큼 착한 두 연인의 가난한 사랑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사랑을 나눌 방 한칸이 없어 손님이 없는 아침 무렵에야 안마용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자주 들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충심은 다른 복무원들의 접근을 막아주었다.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다가 마침내 축복 속에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결혼하면서 자그마한 발안마집이라도 차리겠다며 사방팔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녔다. 옥화 언니가 돈이 없어 쩔쩔매는 것을 보면서 만 위안을 빌려줬더니 보름쯤 지난 뒤에 김화동이 직접 와서 만 위안을 더 빌려달라고 했다.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부모님이 돈을 송금해주면 즉시 갚겠다며 간이라도 빼줄 듯이 굴었다. 그 돈 이만 위안은 충심이 지난 2년 동안 몸 파는 것을 빼놓고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악착같이 모은 전재산이었다. 충심은 두 사람을 믿었다. 그러나 돈을 빌려주고 약속한 날짜가 되자 그때부터 김화동과 옥화 언니는 슬슬 충심을 피했다. 충심은 옥화 언니를 최옥화라고 바꿔 불렀다. 그게 벌써 여섯달이 넘었다. 희래등에 손님이 제법 든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그 돈을 갚을 여유는 충분하리라 생각되었다.

곧 온다던 김화동은 오지 않고 대신 어둠이 눈처럼 내렸고 밤이 깊었다. 밤이 깊어지자 손님이 많아졌다. 전신안마와 발안마를 끝내고 세번째 손님을 보내자마자 호룡이 또다른 손님 셋을 모시고 이층으로 올라왔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풍겼다. 호룡은 남모르게 충심의 손을 슬쩍 잡았다가 놓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셋 중에서 충심이 맡은 손님은 겉보기에는 멀쩡한 신사였다. 그런데 내뱉는 말마다 음담패설이었다. 입이 아니라 음담패설을 담아놓은 항아리 구멍 같았다. 듣고 있기가 민망해서 충심은 중국말로 옆의 복무원에게 ‘왕빠딴(자라대가리)’이라고 말하며 피식 웃었다.

한참 안마를 하는데 문득 그 남자가 온다고 한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게 떠올랐다. 심양(瀋陽)에 도착했으면 반드시 전화해서 충심을 찾았을 텐데, 그동안 약속을 어긴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이라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겼는가 싶어 은근히 마음에 걸렸다. 그런저런 생각에 충심은 설렁설렁 안마를 하고 있었다. 그때, 아래층에서 호룡이 헐레벌떡 뛰어올라왔다.

“미나, 희래등 김로반이 공안을 데리고 와서 너를 찾아!”

공안을 데리고 왔다는 호룡의 말에 충심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사방이 막힌 곳이라 아래층 현관 출입구 외에는 달아날 길이 없었다. 앞이 캄캄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릎에서 맥이 빠져나가 휘청거렸다. 옆에서 호룡이 붙잡지 않았으면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느닷없이 안마를 중단하자 손님이 화를 버럭 냈다. 남자가 일어나 화를 내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 이토록 허무하게, 지난 오년의 피땀어린 고생이 막을 내리다니, 억울했다.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더러운 왕빠딴, 자라대가리보다 못한 자식! 빌려간 돈을 갚기 싫다고 고발을 하다니…… 충심은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꼭 쥐었다.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그 잘난 얼굴에 침을 뱉어줄 작정이었다. 차라리 잘되었는지도 몰랐다. 어찌되었든 함흥의 부모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니까. 아래층에서 공안과 김화동이 쿵쾅거리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치솟는 분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충심은 입술을 꽉 깨물고 김화동을 기다렸다.

  1. 중국 인민폐 1위안은 한국 화폐로 140원 내외이다.
  2. 중국말로 작은 업소의 주인, 즉 가게주인이라는 뜻. 본래는 ‘라오빤(老板)’이나 조선족들은 ‘로반’이라고 발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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