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제15회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작
속물들의 윤리학
정이현론
이경진 李京眞
1982년생.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박사과정 재학중. snowbonbon@hanmail.net
1. 속물성에 대한 단상
오늘의 한국문단에서 정이현(鄭梨賢)만큼 우리 사회의 속물성을 신랄하게 묘파하는 작가를 찾아볼 수 있을까? 정이현은‘낭만적 사랑’에 숨겨진 속물성을 적나라하게 들춰낸 작품 「낭만적 사랑과 사회」(『낭만적 사랑과 사회』, 문학과지성사 2003)를 필두로, 우리 사회의 속물적 논리를 영악하게 이용하는 당차고‘쿨’한 여성들이 등장하는 작품들로 문단에 신선하고도 불온한 바람을 불어넣은 바 있다. 두번째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 2007)에서도 물신적 세계에 환멸을 느끼지만 속물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순적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하면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확장하고 있다. 정이현 소설이 선사하는 즐거움은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부유하는 담론들의 속물적 이면을 얄미울 정도로 정확하게 짚어내는 솜씨에 연유한다. 다음은 「위험한 독신녀」(『오늘의 거짓말』)에 나오는 대목으로, 신도시 사십평형대 아파트로 이사 온 친구의 집들이에 모인 여자들의 대화이다.
“정말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거니. 기본만 시켜도 가계 경제가 휘청한다니까.” 그 집의 안주인이며 반도체회사 중견 간부의 와이프가 엄살을 떨자, 중앙일간지 정치부 차장의 와이프가 심드렁하게 받았다. (…) “다 부모의 저속한 욕심일 뿐이야.” 똑 부러지게 의사를 표명하고 나선 것은 한국에서 제일 큰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의 와이프였다. 전업주부인 다른 동창들과 달리 그녀는 심심찮게 언론에 등장하는 환경운동가인 동시에 모교의 전임강사로 일하고 있었다.“나는 우리 슬기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반듯하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잖아.” 교육방송 프로그램의 출연자 같은 그녀의 말에 좌중의 여자들이 제각각 묘한 표정을 지었다. 변호사와 환경운동가 부부가 그 외동딸의 조기 유학을 위해 보스턴의 유명한 사립초등학교와 옥스포드의 유서 깊은 귀족학교를 놓고 저울질 중이라는 소문은 이미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248면)
작가는 이 여자들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언급되는 것은 남편들의 직업과 직급이며, 이‘누구누구의 와이프’라는 호칭이 친구들간의 미묘한 위계질서를 슬쩍 드러낸다. 각자의 발언은 그들의 현실을 교묘하게 감추면서도 드러낸다. 인물들의 속물성은 친구들간의 과시와 무시가 조성하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와 그 뒤에 곧바로 따라나오는 작가의 코멘트가 이루는 묘한 불협화음으로 인해 극대화된다. 이렇게 정이현은 동시대의 입담 속에 깃든 무수한 아이러니를 정확하게 재현할 줄 아는 작가다.
또한 속물성이 근본적으로 계층들간의 차이를 생산하고 공고화하는‘구별짓기’라는 아비뛰스(habitus)에서 나온 것이라면, 정이현만큼 대한민국에서 변별적 기호로‘핫’하게 떠오르는‘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들을 민감하게 포착하여 자기 작품의 미장쎈으로 적절하게 배치하는 작가도 없을 것이다. 예컨대 2003년에 발표된 작품 「트렁크」(『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외국계 화장품회사의 9년차 차장인‘그녀’는 “막스 마라의 연회색 캐시미어 코트를 걸치고” “반듯한 커리어우먼으로 보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큼지막한 에르메스 가죽백”(42면)을 들며 “안드레아 보첼리의 꼰 떼 빠르띠로”(47면)가 흘러나오는 새로 뽑은 “2002년형 진주색 EF쏘나타 골드”(42면)를 운전하는 여자다.‘값비싼 외제 가방’이라든가‘우아한 클래식 음악’같은 추상적 설명 대신 곧바로 상품명을 대는 이러한 방식은 같은 지시체계 안에서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부(富)’라는 기의를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작가가 제시하는 이 기표들의 환영적 효과를 무리없이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도 속물적 세계의 일원임을 재확인받는 것이다. 독자는 정이현의 작품에 배치된 수많은 코드들에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이 지시체계의 외부에 대한 상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정이현의 작품을 읽을 때 느끼는 재미이자 씁쓸함일 것이다.
사실 문학에서‘속물성’이라는 주제만큼 독서의 재미를 배가시켜줄 뿐 아니라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방편으로 요긴한 소재도 드물 것이다. 예컨대 제인 오스틴(J. Austen) 소설의 변함없는 인기 요인은 사실 로맨스에 있다기보다는 영국 18세기 시골 귀족들의 속물적 사고방식에 대한 재치있는 풍자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발자끄(Balzac)에게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영광을 선사했던 것도 부르주아 속물근성에 대한 집요한 묘사였다. 그만큼 속물성은 흔하디흔한 소재인 듯하지만, 동시대의 삶에 밀착된 관찰과 탐구가 뒷받침될 때는 사회비판적 잠재력을 얻게 된다. 속물성의 내용이 부나 성공, 명예 등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따르는 현실논리라고는 하지만, 그 외피는 시대에 따라 숨가쁘게 변모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앞서 집들이에 모인 여성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더이상 강남 8학군에 있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보스턴의 유명한 사립학교나 옥스포드의 유서 깊은 귀족학교” 정도는 돼야 독자들의 시대감각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이현의 소설들을 2000년대 부유한 중산층에 대한 훌륭한 세태소설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정이현의 작품에서 속물성은 이전의 한국문학에서 드러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위상을 차지하는 듯하다. 이전의 한국문학에서도 속물성은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제였다. 작가마다 조금씩 그 양상이 다르겠지만 거칠게나마 두가지 유형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속물성이 예술가적 자의식과 대치되는 것으로, 주로 60년대 김수영(金洙暎)이나 김승옥(金承鈺)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에서 속물성은 병적인 자기혐오와 이를 극복함으로써 추구되는 예술가성이라는 변증법적 자기성찰의 중요한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주로 존재론적인 성찰의 성격을 띤다. 다른 하나는 속물성을 허위의식의 무비판적 답습으로 보고 이를 비판하려는 문학이다. 많은 작가의 작품들이 두번째 범주에 들어가겠지만,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이러한 문학세계를 추구한 대표적인 작가로 박완서(朴婉緖)와 은희경(殷熙耕)을 꼽을 수 있다. 박완서는 근 40년간 급속도로 변화하는 우리 사회의 세태풍속을 묘사하면서 주로 여성들을 옥죄는 이데올로기들, 즉 결혼이나 가정, 이웃생활 등에서 발견되는 속물근성을 꾸준히 비판해왔으며, 은희경은 대표적으로 『마이너리그』(창비 2001)에서 386세대 남성들의 속물근성과 허위의식의 기원을 유머러스하지만 날선 언어로 헤집은 바 있다.
정이현의 작품들이 두번째 범주에 들어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이현의 인물들이 지식인이거나 예술가적 자의식으로 고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이현 소설에서 속물성이 예술성이나 도덕성과 딱히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정이현의 인물들은 속물적 세계를 경멸하면서 독야청청 순수와 진정성을 부르짖는 것도 아니고 타인들의 속물성을 비판할 만큼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지도 못하다. 이것은 아마도 정이현이 파악한 작가의 위상 변화, 즉 작가는 더이상‘신’도 아니고‘천재’도 아니며 단지 한 시대의‘보고자’일 뿐이라는 데서 기인할 것이다. 작가에게 더이상 예술성과 도덕성의 우월한 고지가 허락되지 않는‘저자의 죽음’의 시대에 정이현은 작가란 이제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1 즉, 작가는 독자를 계몽하거나 어쭙잖게 판관의 위치에 서려고 하기보다는 독자의 눈높이에서 현실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녀가 창조해낸 인물들은 90년대 일본문학풍의 소설들에서 유행했던 개성 넘치는, 자의식 강하고 기묘한 매력이 있는 여성들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속물적이며 어딘가 도식적인 면까지 있는 여성들이다. 90년대에 결혼에 코웃음 치고 일탈을 일삼던 여성들이 이제는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에 집착하는 여성들로 다시‘퇴보’한 것이다. 결혼정보회사가 번창일로를 걷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고 삶의 공감대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 어
- 정이현 「작가 창작론-바보야,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문학사상』 2006년 5월호 181면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