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정애 朴正愛

1970년 경북 청도 출생.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춤에 부치는 노래』 장편『에덴의 서쪽』 『물의 말』 등이 있음. pja832@dreamwiz.com

 

 

 

술 마시는 집

 

 

싸이렌

 

싸이렌 소리는 갓밝이 숲실의 고적(孤寂)을 일순에 버르집어놓았다.

“아이고 무시래이. 으이요, 자야 아부지, 이기 다 머슨 소린교?”

요강을 타고 앉았던 동당댁이 고쟁이도 미처 끌어올리지 못하고 방바닥으로 내려앉으며 동당영감을 흔들었다. 귀 밝은 동당영감은 마누라가 요강에 올라앉느라 부스럭거릴 때부터 선잠을 깬 상태여서 그 싸이렌 소리는 진작에 듣고 있었다. 다만 누운 채로 앞뒤를 짜맞추느라 머릿속이 바빠 몸을 꿈지럭거리지 않았을 뿐이다. 싸이렌 소리는 처음에는 동당댁 오줌발에 묻혀 모깃소리만하게 앵앵거렸다. 그러다 곧 한낮의 매미소리만치 시끄러워지더니 내처 숲실 십여호를 들었다 놓을 기세로 귀청을 때렸다.

동당영감에게 싸이렌 소리란 언제나 공습경보에 다름아니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민방위 훈련용 공습경보도 아니고 이토록 이른 새벽에 느닷없이 울리는 싸이렌 소리라면 난리가 나도 단단히 난 거라고 동당영감은 사뭇 긴장한 터수였다. 동당영감은 동당댁의 떨리는 손을 꽉 눌러 붙잡은 다음, 결연한 눈빛으로 상반신을 일으켰다.

“암만 캐도 부시라 캤나, 그 부시부시한 원싱이겉이 생f는 양코배기 대통령이 무단시리 이북을 건디린 모양이다마는. 보자, 요전분에 라면 한박스 사 들라났는 거는 및개 남았디노?”

“고대로 있지를. 제주도 간다꼬 뒤숭거리미 두 개 낋이묵고는 언제 낋이묵을 새나 있었나 어데.”

“요새 전쟁은 오래도 안 걸리더라. 질어봤자 보름이마 땡이라 카더라. 카마 보제이, 라면은 있고. 자네 지꿈 당장에 누룽지를 눌우거라. 주묵밥도 한보따리 맨들고. 보자, 난리가 나마 자야 식구덜하고 헌이 식구덜이 이 집으로 피난을 올랑가 우얄랑가. 헌이는 아매 즈그 처갓집으로 갈라 안 카겠나. 즈그 처가 패덜한테 충신인 머슴아인꺼네. 그나저나 자야가 즈그 시집 패덜까지 다 끄잡꼬 니리오마 우짜꼬. 머하고 있노. 자네는 얼릉 밥버텀 해라 카이. 나는 인자버텀 우리 식구덜 행동을 우얄 낀지 이 대가리를 짜야 된다 아이가. 대가리를 씨는 사람하고 안 씨는 사람하고는 암만 캐도 사는 질이 다리거덩.”

“뜨신 밥 묵고 머슨 지랄로 온 세상을 전시이 만시이 난리판으로 맨들라 카는공. 순 미친갱이 대통령 아이가.”

“이 마느래야, 부시가 머슨 뜨신 밥을 묵겠노. 빵 묵고 쑤프 묵고 괴기 처묵지를.”

“밥이나 빵이나.”

“그기 우예 똑같노. 삼시 세끼 뜨신 밥을 묵으믄 암만 겉모양은 양코배기라도 대가빠리는 조선사람이 된다 카이. 자야 오마이 자네도 이 대가리를 좀 씨거라. 호랑이한테 잽히가도 사람이라 카는 거는 이 대가리를 써야 사람인 기라.”

미닫이를 열자 싸이렌 소리는 더더욱 귀청을 찢었다. 원체 겁이 많은 동당댁은 거푸 몸서리를 치며 간신히 겉옷을 주워 걸치고 마루로 나섰다.

“참말로 난리는 난리인갑다.”

동당댁은 푸들푸들 떨며 고방에서 쌀 한바가지를 푸다 쌀알 대여섯 개를 떨어뜨렸다. 곱은 손으로 쌀알을 주우려니 잘 되지 않아 이 난리통에 그런 것쯤 나중에 줍기로 맘을 도스른 동당댁은, 안 그래도 두더지마냥 앙바틈한 걸때를 한층 더 옹송그린 채 고방 문턱을 넘었다.

문턱을 넘으며 오만가지 방정맞은 생각을 다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잠시잠깐 사이에 싸이렌 소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동당댁은 맥을 놓고 멀뚱거렸다.

“머하노. 아이꺼정 영감님 품이라? 찰떡궁합도 좋지마는 얼른 여게 함 나와보거라. 귀경 났다, 귀경.”

담을 넘어오는 목소리는 아랫집 내동댁 것이었다. 겁은 많아도 구경이라면 죽고 못사는 동당댁이다. 꽃구경, 단풍구경뿐만 아니고 도야지 멱따는 구경, 똥개 때려잡는 구경도 만사 제치고 하는 성질인 것이다.

“와, 머슨 귀경이고?”

“일일구 왔데이, 일일구. 테레비에 나왔던 그 일일구 말이다.”

내동댁의 음성에는 분명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동당댁이 수돗가에 쌀바가지를 내려놓자니, 찰떡궁합 소리깨나 듣는 부부답게 동당영감이 어느새 문밖의 수작을 가려듣고 발에다 슬리퍼를 꿰지르며 동당댁더러 나가보자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과연 잘 말린 태양초처럼 시뻘건 119 구급차가 마을 어귀 다릿목에 떡 버티고 있었다.

해뜨기 전에 눈부터 뜨이는 건 기본이요 신장 기능이 시원찮아 오밤중에도 두어 번은 요강에 걸터앉아야 하는 늙은데기들이지만 평생 처음 물 건너 구경이랍시고 싸대치고 돌아온 뒤끝이라 내남없이 꿀 같은 새벽잠을 냠냠거리던 판국이었다. 개 짖는 소리만 같았어도 하양떡에 도꾸가 짖나 내동떡에 복실이가 짖나 음냐음냐 입만 다셨을 게고, 닭 우는 소리만 같았어도 에라이 저놈으 달구새끼 확 잡어 묵어뿌리야지 어쩌고저쩌고 쭝얼거리며 역시나 닭털 뽑는 헛시늉 두어 번 하다 말고 베개꼭지나 이불말기를 꿀단지같이 폭 끌어안았을 거였다. 싸이렌 소리는 달랐다. 도대체 이 시간에 이 동네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동 못하는 상노인을 빼고 숲실 십여호에서 나올 만한 사람은 다 나와 있었다. 동당댁 내외가 그 구경꾼 대열을 비집고 들어섰을 때는 벌써 붉은 복장의 장정들이 녹색 담요에 덮인 들것을 들고 뛰는 중이었다. 아무리 발돋움을 해봐야 장승만한 남자들 겨드랑이 냄새도 맡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동당댁은 대고 까치발을 하고 눈알을 굴렸다.

“누고? 누가 저래 실리 가노?”

종내 동당댁은 만만한 내동댁을 붙잡고 늘어졌다.

“보고도 모리나.”

“안 뷔이인까네 묻지를, 뷔이마 묻겠나. 누고?”

구경에 바쁜 내동댁은 동당댁에게 대답할 겨를을 여투기 싫었다. 두고두고 원망 들을 일이 성가셔 불러주기야 했지만, 어차피 동네가 알아주는 동당댁의 호기심이 한번의 대답으로 해결될 게 아닌 바에야 못 들은 체하고 싶었다. 입장권 내는 것도 아닌 이런 구경은 지금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못하는 것이다.

“응? 응. 저, 저, 저거 보래이.”

내동댁은 큰 볼일이라도 있는 것마냥 119 대원들의 뒤를 따라 뛰었다. 내동댁뿐이 아니었다. 구경 나온 숲실 늙은이들 모두가 관절염이고 신경통이고 언제 앓았던고 싶은 씽씽한 걸음새로 젊은 대원들의 꽁무니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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