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성란 河成蘭

1967년 서울 출생.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웨하스』 『여름의 맛』,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A』 등이 있음. rifleha@hanmail.net

 

 

 

숭어

 

 

공터에 웬 아이들이 모여 축구를 하고 있더라고 말했더니 아내가 반색하며 물었다. “그럼 봤겠네? 희수.” 공터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그중에 희수라는 아이가 끼어 있다는 것까지 아내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공터에 모텔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아파트단지 안의 젊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반대운동이 벌어졌던 게 기억났다. 피켓까지 만들어 공터에서 보름 남짓 시위를 했다. 아내도 그 일에 열심이었다. 피켓에 들어갈 문구에서 ‘모텔’을 ‘러브호텔’로 바꿔 쓰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낸 것도 아내였다고 들었다. 그때 만든 카페를 통해 아직까지 이런저런 소식들을 공유하는 모양이었다.

“거기 희수도 끼었어?” 잘 아는 애인 것처럼 물었지만 사실 그는 희수의 얼굴도 잘 몰랐다. 인사성 밝은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애라는 것, 언젠가 아내의 입을 통해 그 애 이름을 들었을 때 남자야 여자야? 물었던 것, 아내가 그 애 이름을 말할 때면 반음쯤 목소리의 톤이 높아진다는 것, 그리고 사람 이름을 외우는 데 젬병인 그가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들을 끌어들이는 버릇이 그때도 발동되어, 그 아이 이름을 희수, 즉 일흔일곱살을 뜻하는 희수(喜壽)로 기억하기 시작했다는 것 등이 떠올랐다.

그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일주일에 서너번 아파트단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난 조깅 트랙을 돌았다. 내키면 뛰고 힘들면 걸었다. 그렇게 뛰다 걷다 트랙을 돌고 있는데 여느 때와는 달리 공터 쪽이 소란스러웠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둘씩 편을 나누어 발끝으로 주거니 받거니 공을 차고 있었다. 한눈에도 축구화는 물론 정강이 보호대 위에 스타킹까지 제대로 갖추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길들지 않은 새 축구화에 며칠 발이 아플 텐데…… 그는 다시 뛰기 시작했고 공터에서 조금씩 멀어졌지만 그의 눈앞으로 붉은 유니폼의 잔상이 계속 따라붙었다. “대한민국!” 구호 뒤에 따라붙는 박수 소리, 2002년 월드컵이 떠올랐다. 광장으로 광장으로,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응원단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월드컵 붐을 타고 유소년 축구팀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열기가 사그라들면서 하나둘 사라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들은 극성이었다. 분명 서너번 공을 차다 그만둘 아이들이 생길 테고 새 축구화가 그대로 신발장에 처박힌 채 먼지를 뒤집어쓰게 될 텐데. 코끝에 돋보기를 걸친 아내가 휴대폰에서 뭔가를 한참 찾더니 그에게 내밀었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의 단체 사진이었다. 배경은 공터였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모으고 전직 축구선수를 코치로 초빙해왔지.” 아이들 곁에 선 키 크고 건장한 남자가 코치인가보았다. 아이들을 훑어보던 아내가 한 아이를 콕 집으면서 “여기 있네, 희수” 했다. “응응, 그러네.” 그는 말끝을 흐렸다. 알아본 척했지만 화면 속 아이들은 너무 많았고 얼굴은 너무 작아 누가 누군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뭔가 들어설 듯 들어설 듯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은 채 공터는 오년째 공터였다. 아파트에 입주하고 공터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한참 우러러봐야 하는 옹벽의 높이에 압도되었다. 건물터로 짐작되는 그곳은 오래전에 건물이 헐린 듯 맨땅이 드러나고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나온 자재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옹벽 중간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려놓은 그라피티로 얼룩덜룩했다.

대체 뭐가 있던 자리일까, 왜 그곳만, 아니 어떻게 그곳만 개발의 손길에서 비켜날 수 있었을까, 그의 궁금증도 오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었다. 아파트에 입주하던 그해 하자보수 등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입주자회의 같은 데 자주 불려나갔는데 거기에서 알게 된 남자가 있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호수로 서로를 소개하다보니 나중에도 통성명은 하지 않았고 그대로 호수로 부르게 되었다. 그는 그 남자를 702호로, 그 남자는 그를 305호로 불렀다.

702호는 재개발 조합원이었다. 이 동네 토박이로 동네에 재개발 바람이 불고 조합이 형성되고 오랫동안 이웃이었던 이들이 어떻게 등을 돌리는지 보았다. 어느날 용역이 밀고 들어와 노인들을 짐짝 들어내듯 끌어내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원조합원들이 프리미엄을 붙여 딱지를 팔고 터전을 떠난 것과는 달리 702호는 아파트를 분양받고 입주했다. 그런 702호도 공터에 대해서만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공터가 있는 줄 알았다면 분명 자신들의 아지트가 되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지부진 회의가 끝나면 남자들 몇이 호프집으로 몰려가 맥주를 한잔하고 헤어지곤 했는데, 술에 취하면 702호는 비 맞은 땡중처럼 주절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나고 자란 집이 막 부서지는 걸 보는데 마음이 좀 그랬어요.” 미처 치우지 못한 세간이 벽돌과 철근 등과 뒤섞이고 무너진 벽 너머로 어릴 적 자신이 벽에 그린 낙서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데 좀 그랬던 게요, 마당 구석에 플라스틱 바가지가 있는 거예요. 왜, 주황색 바가지 있죠, 이상하게 그 바가지를 보는데 좀 그런 거예요, 로봇도 아니고 사진첩도 아니고 그냥 플라스틱 바가진데요, 그걸 보는데요.”

하자보수 기간이 끝나고 더는 입주자회의에 나가지 않았다. 동이 달랐으니 702호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부딪히지 않았다. 언젠가 여름날 저녁에 딸과 아들을 데리고 나와 트랙을 돌던 702호를 본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이사를 간 모양인지 우연처럼 마주치지도 않았다. 어느날 702호는 그에게 말했다. 은근히 편이 나뉜다고, 타지에서 들어온 입주자들과 재개발 조합원들이, 재개발 조합원들도 원조합원과 원조합원에게서 분양권을 산 승계조합원으로 은근 편이 나뉜다고, 누군가의 꿈과 추억이 있던 곳에 밀고 들어와 살고 있다는 걸 모두 잊고 있다고, 305호는 어떠냐고, 부끄럽지만 심지어 자신도 그것을 잊는 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이제 이곳에 702호는 없는데 702호가 했던 말들은 툭툭 떠올랐다. 트랙을 돌 때면 102동 근처에 있었다는 불맛 나는 매운 홍합짬뽕집이 그려졌다. 107동쯤에 이르면 여기 이쯤에 우체국의 작은 출장소가 있었다지, 자리를 더듬어보는 식으로 말이다. 그럴 때면 702호의 말버릇처럼 그도 ‘좀 그래졌다’.

지난번 정기검진에서 혈압과 당뇨 수치가 약간 높게 나온 뒤로 그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려 했다. 101동에서 114동까지 연결된 트랙의 길이는 대략 1킬로미터로 네바퀴면 4킬로미터였다. 숨이 좀 가쁘게 걸으면 삼십오분 정도 걸렸다. 세바퀴째부터 등에 은근하게 땀이 배었다. 천이백세대의 대단지 아파트라 이른 아침이나 저녁이면 트랙 주변은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열심히 걷는다고 걷는데도 한참 뒤에서 뛰어온 젊은이들이 그를 앞질러갔다. 이어폰 밖으로 새어나오는 음악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이도 있었다. 자외선 차단을 위해 눈 부위에만 구멍을 낸 흰 베일을 뒤집어쓴 여자들과도 수시로 마주쳤다. 가끔 자전거가 끼어들기도 했다.

힘에 부치지 않고 약간 노곤한 정도의 적당한 운동량이었지만 때에 따라 그 일은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다. 건강한 삶을 위한 일이 어느날은 노동처럼 감내해야 하는 일로 다가왔고 그럴 때면 하루의 할당량을 채우는 노동자가 된 기분이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날에는 좀더 살겠다고 바둥거리는 것처럼 생각되고 누군가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듯 구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뛰다가 조금씩 속도를 줄였고 공터 근처에 이르러서는 아예 트랙을 벗어나 단지에 있는 벤치에 걸터앉았다. 그곳에서 공터가 한눈에 보였다. 공터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첫날보다 요령이 는 듯했다. 사진에서 보았던 코치가 아이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발끝으로 공을 토스하는 동작을 선보이면 아이들이 따라했다. 아이의 동작이 잘못되었으면 짧게 여러번 호루라기를 불었다. 희수는 누구인가, 그는 엇비슷해 보이는 아이들 속에서 희수를 찾으려 눈을 가늘게 떴다.

어린 시절 수업이 끝나고 텅 빈 운동장에 남아 아이들과 공을 차곤 했다. 체계적인 지도는커녕 제대로 된 축구공 하나 없었다. 누군가 가져온 공은 바람이 빠져 늘 찌그러져 있었다. 한번 걷어찰 때마다 공의 무게가 느껴졌다. 운동장의 모래알은 미끄러웠고 아이들의 운동화 고무밑창은 닳아서 더욱 미끄러웠다. 공을 차면 축 늘어진 공은 일이 미터 앞에 떨어지기 일쑤였고 아이들은 매번 모래 위에서 찍 미끄러졌다. 고무 탄내가 진동했다.

툭 툭툭 툭 공터를 벗어난 축구공이 바닥에서 몇번 튀면서 그가 앉은 벤치에 와 멈췄다. 공을 보고 공터를 보니 서넛 모여 선 아이들이 허리춤에 팔을 올리고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그 애들이 자신을 떠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축구공을 자신들이 있는 곳까지 차줄 실력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공을 가지러 오는 건 좀 이따 해도 늦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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