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영숙 姜英淑

1966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가 있음. bbum21@hanmail.net

 

 

 

숲속의 시간

 

 

나와 그녀는 자동차를 타고 N시의 동북쪽으로 삼십분가량 달렸다. 그녀는 운전을 했고 나는 나초칩을 먹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운전대가 비스듬히 꺾여 논으로 반쯤 처박힌 경운기, 찢어진 플래카드를 매달고 서 있는 트럭, 녹슨 철골만 세운 채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차례로 시야에서 멀어졌다. 공기는 무겁게 끈적거렸고 도로는 증발해버릴 듯 고요했다. 도로 주변의 벼들은 아직 덜 익어 푸릇푸릇했고 비에 휩쓸려 군데군데 납작해져버린 곳도 눈에 띄었다.

기점으로 삼아야 하는 과수원 지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높은 위치에 심은 과실수들 뒤로 파란 지붕 끄트머리와 주차해놓은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과수원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동서로 연결되었던 길들이 툭 끊어지면서 분지의 지형이 사방으로 무한히 팽창하는 기분이 들었다. 길은 오직 한곳으로만 가게 되어 있는 사막의 하이웨이처럼, 북쪽의 높다란 산과 연결된 일자 도로 하나만 남겨두었다.

“저 산에 그 사람들이 있대.”

십오만 킬로미터를 달린 96년식 라노스의 시동을 끄며 그녀가 말했다. 날씨가 더워 엉덩이가 짓물러터질 지경이었다. 차에서 내려 청바지에 묻은 나초칩 부스러기를 털고 눈앞에 있는 산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N시 북쪽 외곽의 한 마을에 이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군사요충지 내 환경오염 실태와 시민의식 조사—N시를 중심으로’. 그녀가 다니는 환경단체에서 행정자치부의 자금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 명칭이었다. 컨퍼런스에서 발표될 소주제별로 발제자와 논평자가 정해졌고, 이번 취재 쏘스는 몇개의 사례연구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실무적인 일에 쫓겨 도무지 글을 쓸 시간을 낼 수 없다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군사문제나 환경문제나 나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주제들이었다. 그러나 N시에서는 그런 이슈들이 아직 중요했고 그런 걸 따라다니는 게 그녀의 일이었다.

“사실은 얼마 전에 혼자 왔었는데 무서워서 못 들어갔어. 나이가 몇인데 이 덩치에 아직도 이렇게 겁이 많은지.”

우리는 다시 라노스에 올라탔다. 발밑에서 바삭거리는 빈 나초칩 봉투를 들어올려 깨알처럼 작은 글자가 적힌 스티커를 읽었다. 엄청난 칼로리가 이미 나와 그녀의 뱃속으로 들어간 상태여서 앞으로 몇시간 동안 배는 안 고플 것 같았다. 과체중 상태인 두 여자는 항상 이런 식이어서 도무지 개선이라는 게 불가능했다.

산 아래의 일자 도로까지는 바람 말고는 방해하는 것이 없어 달리는 기분이 괜찮았다. 우리는 산의 뒤쪽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쪽의 완만한 커브길로 접어들었다.

“아직도 여기 오면 그렇게 답답하니?”

그녀가 나에게 물었고 N시에 대한 나의 추억은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았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야. 넌 안 그래?”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이제 시내 한복판을 막고 있던 캠프 레이크가 사라진다니 좀 나아지겠지.”

그녀가 무심하게 덧붙였다. 나는 N시에서 태어나 열세살까지 살았으나 그녀가 태어난 서울에 정착했다. 반면 서울 출신인 그녀는 대학 졸업 후 N시의 환경운동단체에서 십년이 넘게 일하고 있다. 그녀가 N시에서 산 기간이 내가 그곳에서 산 시간보다 길었다.

N시 중앙에 거대한 장막처럼 존재하던 캠프 레이크가 사라진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나는 그런 일에는 무관심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말인가. 그러던 어느날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받은 엄마가 그 얘기를 먼저 꺼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에도, 죽은 후에도 우린 가급적 N시 얘기는 안하는 편이었다. 엄마의 척추를 찍은 흑백의 엠알아이 사진에서 일자 대열을 이탈해 약간 앞으로 밀려나 있던 3, 4번 뼈, 그리고 그 사이의 검은 허공은 오랜 시간 나의 화두였다. 3, 4번 뼈를 빼낸 뒤 어떤 종류의 인공 척추뼈를, 어떤 방법으로 심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나는 엄마를 뒷자리에 태우고 유명하다는 척추 전문병원은 거의 다 찾아다녔다. 가능하면 피를 적게 흘리게 하고 싶어서였다. 엄마는 결국 3번과 4번 뼈를 떼어낸 자리에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왔다는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받았다. 물론 피도 많이 흘렸고 두달은 거의 인형처럼 누워 지냈다. 최근엔 병원에서 허리둘레에 맞게 제작해준 플라스틱 복대를 차고 집 안에서만, 아주 천천히 왔다갔다했다.

“사람들이 즐겁게 살 만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네, 거기가. 그애도 아직 거기 살고 있잖아.”

엄마는 몸이 한쪽으로 기운 불균형한 존재가 되어 느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싱거운 광고카피 같은 말을 했다.

“제발 빨리 걸을 생각이나 하세요.”

나는 엄마의 입을 단번에 막아버렸다.

길이 좁고 울퉁불퉁해지면서 흙냄새가 진해졌다. 알록달록 칠을 한 산장 몇채가 얕은 계곡들 틈에 박혀 있었다. 늙은 라노스의 바퀴가 헛돌면서 엔진이 터지는 소리를 냈다. 차가 심하게 덜컹거렸지만 사륜구동의 새 차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이제 식상해서 꺼내지도 않았다. 차도 사람도 없는 길이 계속되자 겁이 많은 우리는 우울해졌고, 입을 꽉 다문 채 앞으로만 달려나갔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우리가 그 사람들보다 먼저 만난 것은 분홍색 연꽃잎이 수면을 가득 채운 강이었다. 강이 후텁지근한 열기를 내뿜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연꽃들 위로 반짝거리는 거미줄이 솟아올랐다가 떨어졌다. 강을 둘러싼 울창한 침엽수림 위의 높은 하늘로 종이 그림자 같은 비행기 한대가 천천히 지나갔다.

나와 그녀는 단단하게 다져진 붉은 흙길을 걸었다. 거대한 나무 그림자들이 붉은 흙길 위에 누워 휴식중이었다. 분지의 동북쪽, 도심 가까운 산자락에 신들의 사원을 둘러싼 듯한 울창한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높다란 키의 전나무, 가문비나무 들이 사원의 입구를 비호하듯 담벼락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울창한 침엽수림의 갈색 몸통들 사이로 뜨거운 여름바람이 한차례씩 지나갔다. 갈색의 나무껍질에 뺨을 대고 눈을 감았다. 어깨가 서늘해지며 코끝이 찡해지는 이곳의 공기가 매우 낯설었다.

햇볕이 담벼락의 한 지점에 머문 순간, 누렇고 거친 담벼락의 문양이 고스란히 눈앞에 드러났다. 담벼락 위로 드리운 나뭇잎 그림자가 검은 새떼들처럼, 맑은 개울의 물그림자처럼 흔들렸다.

마을 이름을 새겨넣은 표지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지?”

무성한 나뭇잎들을 감싸고 도는 양막과도 같은 거대한 원이 보였다. 흰 원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등신의 구분도 없는 작은 날파리떼였다. 날파리들이 온몸을 날려 비상했다가 수직 하강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겁 많은 두 여자는 커다란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마을 입구로 이어지는 소로만 쳐다보았다. 쩌렁쩌렁 울리는 매미소리가 주변을 장악하고 있었다. 저음을 잔뜩 끌어당겨 들려주는 우퍼 스피커에서 나오는 듯한 매미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때 나와 그녀의 발밑으로 매미의 몸통이 툭 떨어졌다. 그녀가 매미의 몸통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려 내 눈앞에 보여주었다.

“이 매미가 애벌레를 벗어나 저 나무 위에서 저렇게 소리를 내게 되기까지 몇년이 걸릴 것 같니?”

“동식물의 생태엔 관심 없는 거 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