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슬라보예 지젝의 라깡–헤겔–맑스주의

 

 

주은우 朱恩佑

미국 캔자스대학 방문연구원. 주요 논저로 『현대성의 시각체제에 대한 연구』 「들뢰즈, 시간의 이미지, 마이너영화」 등과, 역서로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등이 있음.

 

 

1. 한 농담의 운명

 

1991년 영어로 출간된 자신의 두번째 저작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의 서두에서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책의 배경으로서 한 농담이 겪어야 했던 운명에 대해 언급한다. 그것은 2년 전 출간된 자신의 첫번째 영어 저작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라깡적 기표(signifier)의 분열된 주체를 설명하며 인용했던, 라비노비치(Rabinovitch)라는 구소련의 한 유태인에 관한 농담이다.1

라비노비치는 이민을 가고 싶어했다. 이민국 관리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소. 첫번째는 소련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잃고 반혁명이 일어나 새로운 권력이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모든 비난을 우리 유태인들에게 퍼부을 것이 두렵소. 유태인 학살이 다시 일어날 거고……” “하지만”, 관리가 가로막았다. “이건 순전히 난쎈스요. 쏘비에뜨연방에선 어떤 것도 변할 수 없소. 공산주의 권력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오!” “글쎄”, 라비노비치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것이 나의 두번째 이유요.”

불과 2년 사이에 엄청난 세계사적 대격변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 농담의 농담으로서의 유효성은 상실된 반면,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소련을 떠난 유태인들의 이유는 정확히 라비노비치가 거론한 첫번째 이유였다. 그래서 지젝은 이 농담의 전후 도치를 상상해볼 것을 제안한다.

이민국 관리에게 라비노비치는 이렇게 대답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소. 첫번째는 러시아에서 공산주의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고 여기선 어떤 것도 실제로 변하지 않을 거란 점을 내가 잘 알고 있는데, 이 전망이 나에겐 견딜 수가 없소……” “하지만”, 관리가 가로막았다. “이건 순전히 난쎈스요. 공산주의는 도처에서 해체되고 있소! 공산주의 범죄에 책임있는 자들은 모두 엄중히 처벌받을 것이오!” “그것이 나의 두번째 이유요!” 라비노비치가 대답했다.

바로 이 한쌍의 농담 속에 슬로베니아 라깡학파(the Slovene Lacanian School)의 정치적 배경이 담겨 있다. 그들은 예전에 공산당의 전체주의적 통제에 대항해 진정한 맑스주의적 혁명 기획과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론적·정치적으로 투쟁했고, ‘현실로 존재했던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에는 다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부활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새로운 전체주의의 위협과 서구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침공 앞에서 근본적인 다원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2

이 목적을 위해 역설적으로 사회이론, 특히 정치이론과는 언뜻 무관해 보이기 쉬운 라깡(J. Lacan)의 정신분석학을 이론적 무기로 삼고, 이를 통해 칸트(I. Kant)와 헤겔(G.W.F. Hegel)을 비롯한 독일 관념론 철학을 다시 읽으면서 맑스주의의 혁명적 성격을 새로이 다듬어내려 하는 데 이들의 이론적 특유함이 있다. 류블랴나(Ljubljana)대학을 중심으로 포진하고 있는 슬로베니아 라깡학파는 1970년대 초부터 프랑스 철학을 전유(專有)하기 시작했고 70년대 말 ‘정통’ 라깡주의를 지향하는 ‘이론정신분석학회’(the Society for Theoretical Psychoanalysis)를 창립했는데, 라끌라우(E. Laclau)가 지적하듯이 정신분석의 임상적 차원과는 별 연계를 맺고 있지 않다. 이들 작업의 주요 분야는 앞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계몽주의 철학, 특히 독일 관념론에 대한 라깡주의적 독해, 이데올로기와 권력에 대한 라깡주의 이론의 개발, 대중문화와 예술에 대한 라깡주의적 분석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세번째 분야는 이들이 슬로베니아 바깥 세계에서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 한몫 단단히 했는데, 여기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물론 지젝이다. 1949년생인 그는 현재 류블랴나대학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는데, 공산주의 시절 체제가 비판적 지식인과 학생 간의 접촉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연구직에 붙박아둔 조치가 낳은 ‘변증법적 전도’의 덕을 톡톡히 누리면서 슬로베니아와 영미권을 오가며 활발한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3

지젝은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의 서론에서 자기 작업의 이론적 공간을 헤겔 변증법, 라깡 정신분석 이론, 그리고 현대 이데올로기 비판의 세 고리가 형성하는 라깡적인 보로매우스의 매듭(the Borromean knot)4으로 묘사한 바 있다. 세 고리 모두가 에워싸고 있는 장소인 ‘증상(징후)’은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의 향유(희열)이며, 라깡의 이론은 다른 고리들을 물들이고 고리들의 관계와 매듭 전체를 틀짓는다.

마지막으로, 그의 독자들을 항상 매료시키는 지젝의 재치(witticism)에 대해서. 지젝 자신은 자신이 이용하는 농담들이 텍스트의 재치와는 달리 자신의 사유의 노선이 가진 근본적인 ‘차가움’과 그 기계적인 전개를 가리는 데 봉사하는 ‘상징적 미끼’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 미끼는 라비노비치에 대한 농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정치적·철학적 (정신)분석들의 겉보기에 비타협적인 황량함을 발랄하고 반어적인 정치적 프로그램들로 의뭉스럽게 변형하는”[5. Elizabeth Wright and Edmond Wright, ed., The Zizek Reader, Blackwell 1999의 편집자들의 “introduction,” 4면. 이 절의 내용에 대해서는 같은 「서론」과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 라끌라우가 쓴 「서문」, 그리고 지젝과 그의 동료 레나따 쌀레끌(Renata Salecl)이 잡지 Radical Philosophy에서 가졌던 대담(Peter Osbo

  1. 이 농담은 동구권에서 잘 알려져 있던 농담이라고 한다. Slavoj Ziz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Verso 1989, 175〜76면과 Zizek, For They Know Not What They Do, Verso 1991, 1〜2면을 볼 것.
  2. 전 유고슬라비아연방의 공식이데올로기는 이른바 ‘자주관리’ 개념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지젝과 그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현실은 소련체제나 다른 동구 사회주의국가들과 별다른 차이 없이 중앙집중식 일당독재체제였고, 이데올로기와 현실제도의 이런 괴리는 국가 또는 당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현실의)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아이러니컬한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슬로베니아는 지리적으로나 종교·문화·경제적으로나 유고연방 국가들 중에서 가장 서방에 가깝다. 또 슬로베니아에서 공산주의체제에 대한 저항은 이념적 성향이 다른 여러 집단들로 나뉘어 진행되었기 때문에, 유고연방 해체 이후 상황은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세력이 완전히 헤게모니를 장악한 쎄르비아나 끄로아띠아와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
  3. 슬로베니아의 기존 학계와 정부는 여전히 지젝과 그 동료들에 대해 관대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의 학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으며, 대중적으로도 슬로베니아 내에서는 자신들의 학문적 작업보다는 정치적 활동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예컨대 지젝은 유명한 정치평론가일 뿐 아니라 1989년 최초로 치러진 대통령(5인으로 구성) 선거에 자유민주당(the Liberal-Democratic Party) 후보로 나서기도 했는데, 라깡학파가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한 것은 민족주의 우파가 정권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으며, 이들은 어디까지나 맑스주의 좌파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다른 한편, 이들은 생태주의 등 새로운 사회운동에 일관된 지지를 보낸 사람들 역시 슬로베니아 내에서는 자신들 라깡주의자들뿐이었다고 주장한다.
  4. 라깡이 후기 저작에서 심리적 존재의 위상학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것. 실재계·상징계·상상계의 세 고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의 고리가 서로 묶여 있지 않은 나머지 두 개의 다른 고리들을 연결시키며, 이 고리들 중 하나를 떼어내면 나머지 두 개의 고리들도 풀리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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