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1세기 한반도와 새로운 공동체

 

시민사회의 변화와 주권의 급진적 재편

 

 

조효제 趙孝濟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 시민사회단체학과 교수.

 

 

변화하는 국가주권의 양상

 

세계화 현상이 지방화 현상을 동반하듯, 국제 시민사회의 부상과 함께 국민국가 내 시민운동의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씨애틀의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부분적으로 국제 NGO(비정부기구)의 활동 때문에 결렬된 것처럼, 한국에서도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씨애틀사태에서, 국제 시민단체들은 확실한 의제를 바탕으로 광범위한 연대를 이뤄냈으며 철저한 대비와 미디어의 능란한 구사로 눈길을 모은 반면, 각국의 정부는 정당성과 실행력 양면에서 빈곤함을 드러냈다. 과연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에 의해 수립되어 근대화과정을 통해 대부분의 비서구권 국가에 수용된 ‘국가주권’ 원칙이 시민사회의 총궐기 앞에 위협받는 것일까?

초국적자본 앞에서 국가가 점차 무력해진다고 믿어온 사람들에게 씨애틀사태는 그 확실한 물증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믿음의 근거는 물론 세계화이다. 경제적·군사적으로 국가간의 교차 침투가 급증하고, 환경이나 초국적자본 등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국가 수준에서 대처할 능력이 없어진 반면 각종 비국가행위자(non-state actors)가 늘어남에 따라, 국가는 유일주권자에서 다수행위자 중 하나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국가주권의 약화로 인한 공백을 시민의 자발성을 제고함으로써 메울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이러한 시민사회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작금의 시민사회 만개론에서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두 가지점이 있다. 첫째, 세계화된 자본과 시대에 뒤떨어진 국가주권에 저항하는 대항세력 내부의 뚜렷한 분화현상이다. 씨애틀에서 국제 NGO들이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지만, 숙고할 만한 점이 적지 않다. 씨애틀시위에 환경, 인권, 초국적자본 반대, 공정무역 등을 주요사안으로 하는, 비교적 제도화되고 전문적인 NGO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동물해방, 대체요법, ‘세계정부 음모’ 분쇄, 레즈비언 권리, 아나키즘, 반기술문명운동 등을 추구해 본질적으로 탈체제화 세력 또는 광의의 ‘잔여적 좌파’(leftover left)1로 분류될 수 있는 이른바 ‘NGO 무리들’(NGO swarm)이 적극 가세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 탈체제화 집단의 전자네트워킹 결합방식과 역동적인 시위가 씨애틀사태를 급진화시켰고, 그 결과 잠시나마 ‘씨애틀해방구’가 형성되어 노동조합원과 농민운동가 또는 아나키스트와 극우 기독교근본주의자 같은 이질적 세력들이 ‘초교파적으로 하나가 되는’ 장이 펼쳐진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씨애틀사태는 ‘좌파와 우파의 문제가 아닌 상부와 하부의 문제’,2 즉 모든 형태의 권력을 거부하는 문화혁명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된 새로운 현상으로 볼 여지가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의 바탕에는 합리성과 전문적 지식에 기반한 제도개혁론과, 직관과 자유로운 사유 그리고 첨단기술 민주주의에 근거한 해방론이라는 서로 다른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둘째, 국민국가를 이루는 원형질은 불변하는데, 세계화 현상 이후에 국가주권의 양상이 갑자기 변형되기 시작했다는 착각이다. 1933년 체결된 ‘국가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몬떼비데오협정’은 국가라는 법인격체는 일정한 거주민과 영토, 그 경계 안에서 효과적인 지배력을 발휘하는 정부, 그리고 다른 나라와 외교관계를 수행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주권의 구체적 양상이 절대불변의 고정형인 것은 아니다. 주권의 내용과 범위는 나라와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2차대전 후 동구권 위성국가들은 주권의 실체적 내용이 빈약하기 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엿한 주권국가로 인정받았으며, ‘반국가단체’였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여러 국가와 공식적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자결권의 개념도 대체로 국가의 자조(self-help)의지의 정도에 달렸다고 보아야 한다. 군 작전통제권을 둘러싼 한국의 사정도 주권의 발육부전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의 신생독립국들 중에는 국제법적으로는 엄연히 주권을 인정받지만 국가의 실질적 내용은 결여된 ‘의사(擬似)국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주권이 안팎으로 가변적인 속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 일부에서 국가주권의 약화를 우려하는 경향은 특기할 만하다. 나아가 은연중 주권의 전통적 내용을 보전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가정도 상존함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세계화에 따른 대외적 국가주권에 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대내적 주권의 양상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미약하기만 하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제기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함의를 지닌다. 우선, 근대국가의 주권적 통치씨스템을 가능하게 해주는 특별한 전제, 즉 ‘전문가씨스템’(expert system)을 둘러싼 대내외적 변화를 시민사회가 어떻게 볼 것인지, 그리고 시민사회가 국가주권의 ‘고유권한’에 어느 정도나 개입할 수 있을지 하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전문가씨스템 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개념도를 그려보고, 세계화시대 국제 시민운동의 변화상과의 유사성 및 차이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전문가씨스템의 대내외적 변화양상의 차이를 염두에 둔다면, 우리 시민사회가 국가주권의 고유권한인 전문가씨스템 원칙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더 나아가 국가 주권속성의 급진적 재편을 견

  1. C. Krauthammer, “Return of the Luddites,” Time, 1999.12.13, 19면.
  2. J. Smith & A. Gumbel, “Activists of the world, unite!” The Independent, 1999.12.1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