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변화하는 시민사회와 새로운 민중운동
대담: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이대로 좋은가
한기욱
문학평론가, 인제대 영문과 교수, 본지 편집위원 englhkwn@inje.ac.kr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 chang@mail.ww.or.kr
때: 2004년 7월 23일
곳: 창비사 회의실
한기욱 하승창 선생도 참여한 지난호 창비 좌담에선 4·15총선 이후 기로에 선 시민운동의 새 가능성을 찾는 것에 대한 논의가 적어 아쉬웠습니다. 하선생은 지난호 좌담 이후 시민운동에 관해 진전된 생각을 여기저기서 피력해왔는데, 가령 『기억과전망』 여름호, ‘함께하는시민행동’의 게시판(http://epi.ww.or.kr/chang?cmd=txtlist&item_id=&start_id=4037&end_id=3450&page=),RTV의 인기 프로그램 ‘하승창의 아름다운 세상’을 찾아보면 이런 견해를 접할 수 있습니다. 마침 창비의 이번 특집이 ‘변화하는 시민사회와 새로운 민중운동’이라서, 시민운동이 현재 ‘변화의 여울목’에 서 있다고 판단하시는 하선생을 모시고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라는 지금의 시민사회운동 구분법을 재검토하면서 시민사회운동의 새 가능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따져보려 합니다. 향후 시민운동이 민중운동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고 거기에서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겠는가에 촛점을 맞추되, 구체적으로 두 운동의 접점을 빈곤문제와 반전평화운동 중심으로 검토했으면 합니다. 지난호 좌담에서도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자기혁신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열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에 참석자들이 대체로 동의했는데, 어떤 발상과 전망, 어떤 가치지향을 갖고 이 과제에 임해야 할까요? 지금은 4월총선을 지나 행정수도 이전과 이라크파병 문제로 전국이 격동하고 있는데, 이 싯점에서 향후 시민운동의 변화방향은 어떠해야 하고, 주요과제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말씀해주시죠.
그동안의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관계

韓基煜
‘시민’ ‘민중’범주에 대해 발상을 전환하자는 것은 그 대립적인 이분법을 양자 모두가 지니는‘노동자성’을 통해 넘어서자는 말입니다.
하승창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같은 큰 단체를 통해서 90년대 시민운동을 보는 경우가 많고 대체로 그 단체를 시민운동의 전부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시민운동 주체도 그 프리즘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특정단체 중심으로 생각하면 90년대 시민운동은 대변형(代辯型) 운동 중심이었고, 그것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은 2000년 ‘총선연대’에서 거의 정점에 달했지요. 그 영향력으로 형성된 전선 앞에는 경실련·참여연대·환경연합·녹색연합 등의 주요단체들이 있었고 전선 뒤의 넓어진 공간에서는 여러 시민운동이 성장할 수 있었죠.90년대 시민운동의 성장은 이들 큰 단체의 노력에 힘입은 바 컸고 그 단체들의 운동이 전부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공과(功過) 모두가 큰 단체들에게 돌아갔죠. 그 때문에 최근 들어 그 단체들에 대한 비판이 마치 시민운동 전체에 대한 비판처럼 되고 있는 거죠. 그들이 전선을 일정하게 담당해줘 그 안에서 시민운동이 성장하고 다양화됐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은 거꾸로 시민운동 전체가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실제로 어디를 가나 그 시민단체 외에는 이름도 안 나오고 언론에서도 그 단체를 중심으로 다루고, 사람들의 인식도 그래요. 그러나 이제는 그 프리즘이 걷혀갈 거라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이라는 변화에 따라 대변형 운동의 변화가 예상되는데, 이슈·가치지향·운동방식 등 여러 측면에서 다른 양상을 보여줄 것 같아요.
한기욱 그런 양상에서 소위 민중운동과의 관계가 좀 달라진 것은 없습니까?
하승창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사안별 연대가 중심인 것 같고요.
한기욱 그간 두 운동의 관계가 좀 소원했다고 볼 수 있죠. 양자의 협력이나 연대가 활발하지 않은 원인이나 걸림돌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하승창 90년대 초는 경실련이 시민운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출범배경에는 민중운동에 대한 비판도 있었죠. 그 점이 우선 양자가 소원해졌다고 보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죠. 물론 나중에 참여연대가 등장하면서는 관계가 나아졌죠.참여연대 출범 후 사안별로는 아주 폭넓게 연대하기도 했는데 우루과이라운드에 대항한 ‘우리쌀지키기 범국민대책위’나 노동법개정투쟁이 그런 경우예요.

河勝彰
지금부터 시민운동은 거대담론 논의가 오히려 필요한데,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자각을 전제해야만 ‘시민’ ‘민중’ 개념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한기욱 중요한 사안들에서 힘을 합쳤다가 다시 소원해진 것은, 시민운동이나 민중운동의 그간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잘 이해가 안되는 점인데요. 연대가 지속되지 않은 데는 두 운동간의 가치지향이나 체질이 다르다든지 조직작풍에서 현장활동가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졌던 것이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 같은데요.
하승창 제가 경실련에 있을 때는 거리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민중운동 방식이 90년대 초만 해도 여전히 물리력에 기초한 투쟁방식이어서 87년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합법적 운동을 하려던 경실련 입장에서는 민중운동 진영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죠. 민중운동 진영에서 볼 때도 그런 경실련이 달갑지 않은 것이었고요.그런 데서 거리감이 생겨났다고 봐야겠죠. 민중운동 내에는 여러 성향이 있고 정치적으로 발전한 경우로 민주노동당이 있지만, 그동안 진보정당 추진위도 있었고 정치권력에 대한 뚜렷한 프로그램을 가진 흐름들도 있었죠. 그 흐름들은 선거를 할 때 정당을 만드는 등 정치권력에 대한 뚜렷한 지향점을 보였죠. 그런데 경실련이나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운동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어요. 그런 점에서 같은 위상에서 뭔가 전면적인 연대를 위한 조건이 맞지 않았어요. 말하자면 운동의 지향이나 목표,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었던 거죠.
한기욱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그러리라고 짐작되는데, 사회가 어느정도 민주화되면서는 노동운동 진영이 예전의 80년대 투쟁방식 혹은 민중권력쟁취 지향에서 좀 벗어나 유연해진 측면은 없습니까?
하승창 민중권력 쟁취는 진보정당의 흐름이라고 봐야겠죠. ‘민중권력’이라는 말에 체제 자체를 변혁시키겠다는 것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진보정당이 생긴 데에는 어쨌든 체제 안에서 변화를 모색하려는 흐름이 있다고 봅니다. 정치권력의 쟁취과정을 놓고 볼 때 일정하게 유연화된 것이라고 봐야겠죠.
시민운동은 변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한기욱 ‘체제변혁’이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지금 말씀은 남한에서의 자본주의체제 변혁을 의미하시는 것 같아요. 노동운동이나 민중운동도 그걸 염두에 두는데, 저는 지금의 세계화 국면에서 일국적 차원의 자본주의체제 변혁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이런 의미의 체제변혁, 가령 남한사회에서의 사회주의적 변혁과 같은 프로그램이라면 시민운동이 변혁의 주체로 나설 여지는 별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전지구적 자본주의체제를 염두에 둔다면, 그리고 그것이 현재 한반도에서 관철되는 좀더 구체적인 양상으로서의 분단체제를 염두에 둔다면 민중운동뿐 아니라 시민운동이 해야 할 몫은 많다고 봅니다.
하승창 과거 체제변혁이란 말이 민중운동이 가지고 있던 민중권력 프로그램을 뜻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죠. 제가 민중운동 내부에 있지 않아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떤 경우든 기존 자본주의의 지향을 실현하는 체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시민운동의 경우, 예컨대 경실련에는 시장경제나 자본주의체제 극복 같은 것이 사실 없었다고 봐야겠죠. 경실련의 큰 그림이라면 초창기에 이야기되던 독일식 사회시장경제체제 정도였죠. 어쨌든 시민운동은 체제에 대한 얘기를 안했어요.90년대 들어 이전 패러다임과 냉전체제와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난 다음엔 그런 거대담론 얘기는 쏙 들어갔어요. 대신 실사구시나 시시비비 측면에서 구체적인 사안 하나하나를 중심에 두고 활동해왔어요. 거대담론이 인식체계 안에 들어오지 않은 점도 있었고, 기존의 것을 대체할 만한 패러다임이나 담론이 부재한 것도 있었고, 또 그것을 파헤치기에는 아직까지 우리의 실천이나 경험이 쌓이지 않았다는 생각도 있었을 테고요. 이런 점들이 시민운동으로 하여금 체제변혁 문제를 뒷전에 두게 한 것이라고 봐야죠. 그러나 90년대 후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생태, 평화, 인권, 분단체제 극복 등으로 문제의식이 확장되면서, 시민운동 내에서도 현 자본주의체제의 씨스템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