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인터뷰

 

시민운동의 블루오션은 어디 있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의 대화

 

박원순 朴元淳

시민운동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참여연대 사무처장 역임.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원.

 

ⓒ이영균

 

왜 박원순인가? 이미 지난 이야기가 되었지만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되었던 박원순 변호사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것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곧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의 상임이사로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그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대선 후에도 계속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그에게 한국사회와 시민운동의 발전방향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결코 급박하게 변하고 있는 정치적 상황을 외면하는 한가한 일은 아니리라는 확신을 갖고 그의 희망제작소 사무실을 찾았다.

 

이남주 도전인터뷰라고 해서 제가 꼭 도전을 해야 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는데,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서 대선후보들을 상대로 선생님께서 인터뷰하신 걸 보니까 아주 공격적으로 하셔서 부담은 많이 덜었습니다.(웃음) 호칭을 선생님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상임이사님이라고 할까요?

박원순 좋을 대로 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안한 지 오래됐는데도 그냥 박변호사라고 말하는 분도 많고요. 저도 좀 헷갈려요.(웃음) 왜냐하면 일이 바뀌면 직책도 바뀌잖아요. 제가 참여연대에 있을 때는 사무처장이었거든요. 그래서 참여연대 간사들은 지금도 저를 사무처장이라고 부르는데, 심지어는 현 사무처장도 저보고 사무처장님이라고 해요. 자기가 사무처장이면서……(웃음)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호칭이 헷갈리는 경우가 없잖아요. 예컨대 전직 장관이면‘장관님, 장관님’그러고요. 그래서 그게 아니다 싶어서 고민하다가 우리는‘씨’로 해보자, 그래서 희망제작소에서는 사실 모든 사람들더러‘원순씨’라고 부르게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거든요. 근데 나이든 사람들은 또 그걸 못해요. 영국이나 미국에서‘미스터’라고 하거나 일본에서‘상’이라고 하면 어느정도 존칭이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원순씨’라고 하면 적정한 존칭이 될 수 있고, 특별한 경우는 선생님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이왕이면‘원순씨’라고 해주시죠.

 

쏘셜 디자이너 ‘원순씨’

 

이남주 저는 선생님이라고 하려고 했는데요.(웃음)

박원순 ‘원순씨’죠 뭐. 그것도 하나의 운동이니까요.

이남주 그럼 저도 호칭을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그동안의 경력을 보면 변호사로 시작해 시민운동가로 활동하셨고, 요즘에는 쏘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는데 그 다양한 직업 여정을 설명해주세요.

박원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변호사 그만둔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변호사이기도 하고, 실제로는 시민운동가죠. 활동가, 액티비스트(activist)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그 내용 중에도 여러가지가 있으니까, 최근에 제가 쏘셜 디자이너라고 한 것은, 일부러 한국사회의 공공이슈를 좀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고민하는 사람, 이런 직업을 한번 만들어본 거죠. 이름 하나, 호칭 하나에도 창의적인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남주 그렇게 칭하시는 분이 아직은 원순씨 한분뿐인가요?

박원순 많이 있습니다. 우리 희망제작소 사람들도 대부분 명함에 쏘셜 디자이너라고 쓰고 있고요. 또 어떤 분은 제 걸 보고 가더니 에듀케이션 디자이너(education designer)라고 쓰고 계시고요. 그래서 점점 한국사회에 디자이너가 많아지고 있습니다.(웃음)

이남주 그간의 여정 중에서 가장 힘들었거나 보람있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어떤 걸까요? 지금 하는 일 빼놓고요.

박원순 글쎄요. 나름대로 다 보람있고 한계도 있고 그런데,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우선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잖아요. 지나간 건 지나간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시민운동 초창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인권변호사를 할 때는 선배들, 어르신들 따라서 했으니까 어떤 집단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건 없잖아요. 그런데 참여연대를 시작할 때는 저도 시민운동이 처음이니까, 하다못해 모금하는 것, 캠페인하는 것 하나하나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힘든 것도 많고 동시에 보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걸 통해서 경험이 생기고 사람들도 그 경험을 인정해주게 되니까, 아름다운재단을 할 때는 비교적 쉬웠던 게 아닌가 싶어요. 처음 할 때는 뭐든지 힘들고, 힘들수록 고난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하잖아요.

이남주 방금 원순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본인의 역할로서 시민운동가라는 걸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하시고, 과거 중에서도 참여연대 일을 가장 어려우면서도 보람있던 일로 지목하셨는데요. 최근에는 시민운동에 대해서 쓴소리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원순씨는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지금 하시는 일이 기존 시민운동과의 일종의 역할분담으로, 즉 다양한 활동공간을 창출해야 하고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기존 시민운동과 자신의 새로운 사업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셨지요. 그런데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지금에 이른 기존의 시민운동에 뭔가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할 지점들이 있지 않은가 하고 강조하시는 경우도 종종 봤거든요.

박원순 저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혹은 운동이든 자기혁신 없이는 언제고 정체하고, 정체하면 부패하고 만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 사회는 크게 변하는데, 운동의 내용이나 형식도 함께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봐요. 제가 흔히‘냉장고이론’같은 걸 간사들에게 많이 얘기하는데, 성능 자체가 계속 바뀌고 나아져야 할뿐더러 디자인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운동도 마찬가지로 10년, 20년 전의 운동은 우리가 당시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고, 지금은 사회가 변했는데 똑같은 내용과 형식을 가지고 하면 안된다는 거죠. 우리가 민주화운동 시기에 민주적인 정권을 만들어내고 민주화 이후의 이행기에는 사회전환기적인 운동을 했다면, 지금은 포스트 민주주의 혹은 포스트 이행기의, 좀더 본격적이고 포지티브한 시대의 담론과 구체적 제안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해요. 옛날에는 사회가 워낙 허름했고 황당했기 때문에 큰 틀에서 주장을 해도 굉장히 의미가 있고 사회에서 수용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부도 많이 바뀌고 기업도 상대적으로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담론, 새로운 형식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얘기를 계속 하는 거죠.

이남주 그러면 이전의 형식을 가지고 발전해온 시민운동이나 시민단체는, 일하셨던 참여연대나 기타 지방에 만들어진 기존 시민단체의 경우는 새로운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는 생각이신 것 같은데, 그들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요구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박원순 그렇죠. 다른 단체에 대해서는 제가 말하기가 좀 그렇고, 참여연대의 경우는 여전히 소중한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권력과 재벌 혹은 국민의 권리라는 관점에서 참 힘들지만 끝없이 계속되어야 할 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아젠다나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똑같은 게 지속되면 아무리 의미있고 아름다운 것도 재미가 없잖아요.

 

시민운동의 블루오션을 찾아라

 

이남주 그러면 아젠다로서 지금 주로 강조하는 것 중에는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논의가 많은데 좀 실사구시적이고 미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박원순 예를 들어 정치개혁은 늘 필요했으니까, 부패방지법도 만들어내고 낙선운동도 하고 그랬어요. 그게 사회에 큰 영향을 줬잖아요? 그런데 지금 낙선운동을 똑같이 하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요새 매니페스토운동이 유행인데, 이 운동의 실효성은 좀 의문이지만 아무튼 새로운 접근방법이니까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것 같습니다. 부패도 옛날처럼 거대한 부패는 상대적으로 사라졌잖아요. 최근 삼성에 대한 내부제보 사건을 보면 아직도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사회가 점점 더 투명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훨씬 미시적인 것들…… 예컨대 미국의 폴스 클레임즈 액트(False Claims Act)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부정주장법, 납세자소송법 같은 운동이랄지요. 미국 하원 윤리위원회 중에 프랭크 퍼미션(Frank Permission)이라는 게 있더라구요. 말하자면 국회의원이 보내는 편지의 우표를 정부 돈으로 쓸 수 있는 것과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것 사이의 기준을 판단하는 위원회예요. 저는 문명이라는 건 이렇게 점점 더 치밀해지는 매뉴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처럼 선진적인 나라일수록 공공의 잣대나 기준이라는 게 훨씬 치밀해지거든요. 그런 쪽으로 운동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민운동가들이 끊임없이 세상의 새로운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변화를 통찰력있게 바라보고, 이에 대한 대안적 아젠다를 갖고 있어야 사회를 어느 방향으로 가자고 요청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이남주 그런 문제의식과 관련해서 기존 시민운동에 대해 나름대로 변해야 할 지점들을 강조하시지만, 한편 위기론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으로, 이를테면‘위기가 아니다. 시민운동에 블루오션이 많다’고 하시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는요?

박원순 그건 눈에 보이죠. 왜냐하면 사회가 발전하고 합리적으로 되어간다는 증거는 그만큼 인간의 자발적인 결사체들이 많아지고 자원봉사적인 조직체들이 점점 많아지는 거거든요. 미국에는 그런 조직이 60만개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초창기예요. 과거에는 정치적인 변화, 제도적인 변화를 위해서 일하던 단체들이 시민운동의 중심으로 여겨졌지만 정부나 의회나 공공기관이 합리화되면서 애드보커씨(advocacy, 공익주장·대변) 기능이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고 공동체의 과제들이 사라진 건 아니에요.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죠. 일본도 유럽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는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은 온갖 영역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움직임은 훨씬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이남주 한국사회에서도 이미 그런 현상들이 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박원순 그렇죠.‘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 같은 것도 최근 몇년 사이의 일이기는 하지만 전세계를 휩쓰는 하나의 유령으로,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말했던 것처럼, 도처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저는 그런 변화를 조금만 살펴보면 엔지오(NGO)나 엔피오(NPO), 시민사회에 미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시민운동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든가, 시민운동을 포함하여 진보개혁진영에 실사구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반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민운동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할 때, 미시적인 대안 혹은 다양성을 강조한 그에게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설계자, 통합의 구심점으로 작용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전체 시민운동의 발전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로 말머리를 돌렸다.

 

이남주 원순씨께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 지금까지 하신 역할들을 생각할 때, 사람들은 아직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중요하거나 적어도 상당히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다고 보면서, 그런 부분에서 역할을 계속 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시는 미시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일들은 거기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하는 분들도 계신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원순 그렇진 않고요.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오히려 훨씬 더 변경을 개척하고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으로써 사실은 강력한 애드보커씨 운동도 힘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제가 참여연대에 있을 때도 아마 참여연대가 재벌을 개혁하는 경제민주화운동이나 낙선운동만 했으면 그렇게는 잘 안됐을 거예요. 저는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다가가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는데, 작은 권리 찾기라든지 사회권운동 같은 것, 이런 걸 했거든요. 저는 이런 것이 없다면, 한 조직 안에서도 이런데 하물며 사회 전체로 볼 때는 이렇게 유연하고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박는 운동들이 좀더 외연을 확장하지 않으면 운동의 고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