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시와 혁명

김수영 후기시의 ‘난해성’ 문제

 

 

임홍배 林洪培

서울대 독문과 교수. 주요 평론으로 「주체의 위기와 서사의 회귀」 「현실주의 논쟁의 교훈과 노동소설의 진로」 「괴테의 세계문학론과 서구적 근대의 모험」 등이 있음. limhb059@snu.ac.kr

 

 

1

 

한 세기가 채 되지 않는 우리 현대시의 역사에서 김수영(金洙暎)처럼 집중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시인도 드물 것이다. 근년에 와서 특히 김수영의 시세계에 대한 재조명이 전에 없이 활발해지는 것을 보면 그의 시사적 위치가 그만큼 확고해졌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김수영의 시, 그중에서 특히 4·19의 좌절을 겪은 이후의 후기시는 최근까지도 상당히 엇갈리는 해석을 낳고 있다. 알다시피 김수영의 후기시에서 시적 자아가 집단적 주체의 그것으로 고양되는 절정의 순간들은 4·19 직후 극적 정점을 노래하는 몇편의 시에서만 확인된다. 그런 이유에서 김수영 시의 궤적이 “4·19 직후의 잠깐을 제외하면 ‘비역사’에서 ‘초역사’로 이어졌”1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4·19 이후 김수영의 시를 이른바 ‘풍자’와 ‘해탈’의 이항대립으로 접근하는 그러한 시각에서 보면 김수영의 후기시에서 4·19의 기억은 실종되고 만다. 그와 달리 김수영의 시적 사유를 “삶의 생태학보다는 비극적 실존에 대한 집착으로 자기의식의 재구축 과정을 밟아나간”2 도정으로 파악하는 관점은 김수영의 후기시에서 시와 현실의 긴장이 새롭게 심화되는 과정을 적절히 포착한 것이긴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자기의식의 재구축’은 ‘삶의 생태학’과 맞바꾼 것으로 평가될 소지를 남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김수영의 후기시에 주저음으로 깔려 있는 특유의 자기의식은 현실과 시적 자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치열한 몸부림의 징후로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와 시에 관한 질문이 대등한 비중을 갖는 후기의 ‘난해시’야말로 오히려 ‘삶의 생태학’에 충실하려는 시적 탐구의 소산이 아닐까 한다.

시인 자신의 발언 중에 후기시의 난해성을 이해하는 실마리로 주목할 것은 “진정한 참여시에 있어서는 (…) 참여의식이 정치이념의 증인이 될 수 없는 것이 원칙”3이라고 한 대목이다. 4·19의 체험이 전경에 부각되는 몇편의 시를 제외하면 김수영의 후기시 대다수는 도대체 그 어떤 이념의 ‘증거’로도 읽혀지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성향을 보이거니와, 김수영이 ‘참여시’를 지향하면서도 ‘행동의 도구로서의 시’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행동의 시’를 추구했다는 것은 후기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4 다른 한편 김수영이 “새로움은 자유다, 자유는 새로움이다”5라며 자유와 동일시했던 새로움의 추구는, 그가 말한 ‘자유의 이행’이 곧 ‘완벽한 세계의 구현’을 꿈꾸는 ‘불가능의 추구’임을 다시 상기할 때, 그의 시에 필연적으로 모종의 미완의 성격을 부여한다. 이는 김수영의 시들이 한편의 시로서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시를 통한 그의 사유가 어떤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부단한 자기지양을 시도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시인 자신도 시의 ‘증인’이 될 수 없는 철저한 자기지양의 사유는 김수영에게 있어 적대적 세계와 대면하여 현실의 초탈을 꿈꾸거나, 결국 같은 이야기지만 적대적 세계인식에 갇혀 있으면서 외부세계를 차단하는 순수고독의 추구와는 무관하며, 냉철한 자기점검을 통해 현실인식의 지평을 확장·심화하려는 부단한 고투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 글에서는 김수영이 4·19의 좌절과 대결하는 가운데 자기성찰의 시적 사유가 객관적 세계인식과 맞물리는 양상에 촛점을 맞추어 시와 혁명에 관한 그의 생각을 살펴보고자 한다.

 

 

2

 

4·19의 좌절이 김수영의 시를 어렵게 만드는 사태의 일단은 ‘신귀거래(新歸去來)’ 연작을 거치며 착잡한 일상으로 하강한 시인이 ‘몸앓이’를 하는 대목에서 엿볼 수 있다.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먼 곳에서부터」(1961) 전문

 

‘먼 곳에서 먼 곳으로 몸이 아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첫 연에서 독자를 당혹스럽게 하는 그러한 의문은 이어지는 연들의 서술에서 해명되기는커녕 더더욱 요령부득의 수수께끼가 된다. 다시 1연으로 돌아가서 멀다는 말의 시공간적 의미를 상기하면, 시인은 지금 이곳의 가까운 일상 속에서는 결코 점칠 수 없는 요원한 미래에 대한 모종의 열망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1. 김명인 『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 소명출판 2002, 266면.
  2. 유성호 「타자 긍정을 통해 ‘사랑’에 이르는 도정」, 『작가연구』 5호(1998년 상반기) 220면.
  3. 김수영 「참여시의 정리」, 『창작과비평』 1967년 겨울호 634면. 이 글의 서두에서 김수영은 靑馬의 「칼을 갈라」를 ‘행동의 도구’로 쓰인 ‘참여시’의 표본으로 인용하면서, 이 시에 동원된 “‘環刀’와 ‘匕首’와 ‘식칼’로는 이승만은 처리될 수 없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4. 백낙청 「김수영의 시세계」, 황동규 엮음 『김수영의 문학』, 민음사 1983, 41면 참조.
  5. 『김수영 전집 2: 산문』, 민음사 1981, 196면. 앞으로 이 판본의 인용은 본문에서 면수만 표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