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시적 상상력, 근대체제를 겨누다

신동엽 40주기에 부쳐

 

오창은 吳昶銀

문학평론가, 지행네트워크 연구위원. 평론집으로 『비평의 모험』이 있음. longcau@hanmail.net

 

 

1. 종교와 예술 그리고 법열(法悅)

 

한 기이한 죽음이 신동엽(申東曄, 1930~69)의 산문 「금강잡기(錦江雜記)」(1963)에 담겨 있다. 이 산문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종교가 역사적 공간인 금강(錦江)과 어우러져 설화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글의 전개방식에도 사건의 결과를 미리 제시한 후 그 원인을 하나하나 밝혀나가는 미스터리 기법을 활용했다.

「금강잡기」가 품고 있는 사건의 대강은 이렇다. 1960년 즈음의 어느 새벽, 백제의 고도 B읍(부여)에 천지를 울리는 천둥과 번개가 내리쳤다. 어제저녁까지 맑았던 하늘이 갑작스런 뇌성벽력으로 조화를 부린 것이다. 새벽잠을 설친 사람들은 아침에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천둥 번개가 있기 바로 전에 세 여승(女僧)이 나란히 금강으로 걸어들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여승들은 경주의 절에서 재강습(再講習)을 받고 자신들이 소속된 무량사로 향하다, B읍의 유서 깊은 고찰에서 여독을 풀던 중이었다. 그들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사진사, 사탕장사와 어울려 농담도 주고받으며, 강가에서 조약돌을 주워 자신들의 바랑에 가득 채웠다. 마지막 날에는 절의 주지와 사진사를 청해놓고 과자와 호콩을 나누며‘내일 새벽 일찍 첫 버스로 떠날 예정이니 없으면 간 줄 알아달라’고 작별인사까지 했다.

다음날 새벽, 여승들은 “조약돌들이 가득 담긴 무거운 그 바랑 주머니들을 어깨에 걸머져 허리에 꽉 졸라매고 귀신도 모르게 조용히 일렬로 늘어서서 강의 중심을 향하여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 들어갔”다.(348면, 이하 인용면수는 『신동엽전집』, 창비 1989) 그런데 이 장면을 마을의 사공이 보고 이들을 구하려 소리를 지르자 무서운 뇌성벽력과 함께 소나기가 십여분 동안 몰아쳤다.

이 기이한 동반자살(혹은 동반열반)을 바라보는 신동엽의 태도는 경건하다. 그는 “이승 저켠 피안의 세계에 무엇을 보았길래 세 사람이 동시에 서쪽 하늘을 향해 합장하고 행렬지어 한가닥 미련 없이 점점 깊어지는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극적인 죽음 앞에 위대한 예술에서와 같은 법열(法悅)”(349면)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신동엽은 이 사건에 압도당한 듯하다. 그것은 이성의 영역을 뛰어넘은 경이로운 체험이었고, 상상을 뛰어넘는 상황전개로 인한 심리적 충격이었다.

신동엽이 “나는 요새도 가끔 그 세 여승의 죽음을 생각하면 종교·예술이 지니는 어떤 지상의 자세 같은 것을 그들의 마지막 행렬에서 느끼게 된다”(같은 면)고 말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종교와 예술을 동일한 맥락에 놓고 예술을 고민한 시인이었다. 신동엽은‘시는 세속에 몸을 섞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따스한 감성을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인생과 세계의 본질을 통찰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그였기에 “멀고 먼 그 겨냥을 향해 아무 잡티 없이 달려가는 빠른 화살”(같은 면)처럼 피안의 세계로 떠난 세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는 양가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세 여승에게 겸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세상사에 초연한 그들의 행동’에 의구심을 가졌다. 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신동엽은 종교와 예술 사이를 견디며 시의 길을 걸어갔다. 마치 세 여승이 합장하고 행렬을 지어 물속으로 걸어갔듯, 1960년대의 험한 세파 속으로 몸을 밀고 나아갔다.

신동엽은 한 글에서 시인이란 모름지기 “민중 속에서 흙탕물을 마시고, 민중 속에서 서러움을 숨쉬고 민중 속에서 민중의 정열과 지성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60년대의 시단 분포도」 379면) 그는 시와 종교를 같은 높이의 단상 위에 놓으면서도, 시정(市井)의 감각을 강조해 현실에 몸을 바짝 붙이려고 했다. 그렇기에, 1960년대와 불화하면서도 그 극복을 위해 체제에 갇히지 않는 시적 상상력의 날개를 넓게 펼쳤던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신동엽이 꿈꾼‘다른 세상’과‘민주주의적 열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보고자 한다.

 

 

2. 반체제를 넘는 비체제적 상상력

 

등단작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1959)는 신동엽의 시인정신이 농축되어 있는 원형질의 시다. 이 시에는 자연과 소통하는 인간을 향한 시인의 염원이 주제의식으로 구현되어 있다. 그것은 근대화된 세계 혹은 대지의 힘을 망각한 세계에 대한 강한 질타를 포함한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1950년대 한국시의 주류적 흐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듯한 작품이다. 한국 시사(詩史)에서 어느 시인의 등단작이 이토록 긴 호흡을 감당하며 대지와 우주를 오가는 낙차를 견뎌냈던가? 우주를 이야기하는 듯하면서도 세속의 아픔을 감싸안은 이 시는 읽는이의 감성을 묵직한 시혼(詩魂)으로 뒤흔들어놓는다.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 시임에도 시 전체를 관통하는 통렬한 기운은 도도하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신동엽 시정신의 원석이 갈무리되어 있는 시로 평가할 수 있다.

서화(序話)와 후화(後話)를 포함해 8장으로 구성된 이 시의 화자는 전쟁의 화신이었던 강한 남성, 모든 기운을 흡수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염원하는 여성, 그리고 삶의 원초적 원리 속에서 발화하는 시적 화자로 설정되어 있다. 이들은 대지와 교접하며 벌거벗은 인간의 본질을 발견하고, 인간 삶의 토대인 자연의 에너지에 자신을 의탁해간다. 특히 제5화에서 기존의 현실에 대한 전복적 태도가 압축적 언어로 표현되었다.

 

가리워진 안개를 걷게 하라,

국경이며 탑이며 어용학(御用學)의 울타리며

죽 가래 밀어 바다로 몰아 넣라.

 

하여 하늘을 흐르는 날개처럼

한 세상 한 바람 한 햇빛 속에,

만 가지와 만 노래를 한 가지로 흐르게 하라.

 

보다 큰 집단은 보다 큰 체계를 건축하고,

보다 큰 체계는 보다 큰 악을 양조(釀造)한다.

 

조직은 형식을 강요하고

형식은 위조품을 모집한다.

 

하여, 전통은 궁궐 안의 상전(上典)이 되고

조작된 권위는 주위를 침식한다.

 

국경이며 탑이며 일만년 울타리며

죽 가래 밀어 바다로 몰아 넣라.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제5화 전문

 

가까운 곳만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해도 갇힌 존재일 뿐이다. 가까운 곳과 먼 곳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어디로 향할지 가늠이 된다. 그렇다면 이 시의 화자는 어떠한가? 그는 가까운 곳만 볼 수 있는 사람도, 가까운 곳과 먼 곳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도 모두‘안개 속에 갇혀 있다’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그는 안개 밖에 있는 것이다. 안개를 걷어내지 않으면, 모두들 금기(禁忌)의 국경에 갇혀 있고, 위로만 솟은 탑 속의 수인(囚人)들이며, 기존의 체계를 고수하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