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시차로부터의 초대

이번 봄엔 가장 격렬한 시차가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왔다. 냉랭하기만 했던 남북관계가 터무니없을 만큼 진전됐고, 또 하나의 언덕을 희망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 역시 이 축제의 시간에 속하려 하지만 버성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북한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거나 불과 몇개월 사이에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정치의 언어를 불신해서가 아니다. 이 급변된 역사의 분위기에 너무도 빠르게, 투명하게 적응하고 있는 나 자신이 가장 불편했다.

『창작과비평』 2018년 봄호의 특집 원고들은 여전히 굳건하게 놓여 있는 우리 안의 ‘분단체제’를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글의 말미에는 완전히 녹여내지 못한 최근의 화해 분위기가 부록처럼 놓여 있었고, 이 미묘한 시차가 특집 원고들을 몇번이고 다시 들춰보게 만들었다. 김성경이 진지하게 비판한 분단체제의 혐오 정동은 요 몇달 사이 명징하게 찾아온 평화국면 앞에서 고개를 숙였고, 서둘러 찾아온 이 승리는 통쾌하면서도 씁쓸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묵직한 관성의 시간으로부터 조금씩 풀려나는 중이다. 다만 그 승리를 너무도 쉽게 기념하는 것이 불편했는데, 그런 허탈감을 꼬집은 김영진의 「한국현대사의 영화화: 「택시운전사」와 「1987」을 중심으로」는 인상 깊었다. 그의 말처럼 승리의 서사로는 결코 봉합할 수 없는 분열과 망각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 너무 갑자기 찾아와 미처 온전히 그 기쁨을 표하지도 못했던 이 봄날에 오히려 더 깊이 바라봐야 하는 것은 진한 꽃향기에 가려 우리가 잊어버린 지난겨울의 폐허이고 공동들일 것이다. 그것이 문학의 자리임을, 우리가 아직도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시차의 자리임을, 봄호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 다시 깨닫는다. 문학은 이렇게 또 우리를 불쑥 초대하여 현기증을 앓게 한다.

이철주 vertigo8558@gmail.com

 

절묘한 타이밍에 분단체제를 다시 생각하다

봄호 특집 ‘분단체제를 다시 생각할 때’를 눈여겨 읽었다. 논의의 타이밍이 절묘하다. 지금 남북관계는 대내외적인 조각이 딱딱 맞아서 뭔가 작품이 나올 개연성이 높다. 북한의 속내를 지레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기대감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1년을 앞둔 시점에 평창올림픽이라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북한 입장에서는 핵실험이 거의 막바지 단계에 도달해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미국 트럼프 정부는 계속된 악재에 올 하반기 있을 중간평가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 점 등이 잘 어우러졌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꾸려진 이번 특집에서는 분단체제 극복의 길, 분단체제에서 ‘사회’ 만들기, 새로운 한미관계, 그리고 북핵 문제 해법 등을 다뤘다. 특히 지금의 분단체제하에서 연합정부 구상이 가지는 의미와 현실성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북핵 문제 해법도 상당 부분 진취적이었다.

바야흐로 분단 이후 최고의 해빙 무드에 들어선 듯하다. 기대가 크다.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일이 없어야겠다.

유병순 blog.naver.com/eybs

 

화합의 장 속에서 우리는

푸른빛을 가득 담은 봄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화합의 장’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축제가 또 있으랴 했던 평창올림픽은 이런저런 사연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특히나 걱정이 많았던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경기 중 희수 그리핀 선수가 첫골을 넣었을 때, 누군가 이렇게 쓴 글을 보았다. “그래도 한골 넣긴 넣었네.” 이 시기 역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뭐가 됐든 한골 넣긴 넣었다는, 그런 역사의 한 페이지.

그러나 내가 봄호를 ‘화합의 장’이라 표현한 것은 좀더 넓은 의미에서다. 특히나 문학작품들은 다양한 부문에서의 고민을 보여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를테면 조남주는 「가출」에서 우리 사회 속 아버지와의 뿌리 깊은 갈등을 심도 깊게 그려냈다. 일흔둘 아버지의 출가가 아닌 가출. 신파적일 수 있는 소재를 그녀답게 풀어냈다. 그래서 더 ‘설득’당했다. 받는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사과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화해할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하는 듯하다. “해변을 걷다보면 내가 자꾸 떠내려온다”라는 시구로 시작하는 이영주의 「4월의 해변」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있음을, 이 땅에는 아직 사과받지 못한 억울한 이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무엇이 무엇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콕 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어찌 됐든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고,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다. 그렇기에 별다른 수식어 없이 그저 다시 생각할 때(특집 ‘분단체제를 다시 생각할 때’)라고 외치는 봄호가 더욱 반가웠다. 다만 “겨울숲처럼 아무것도 없이 투명한 재만 남으면 이 우화의 끝은 어디인가”(「광화문 천막」)라는 이영주의 물음처럼 모든 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계절이 바뀌는 동안 한명의 독자로서 창비가 세상에 던질 또다른 외침을 고요히 기다리고 싶다.

나예은 wwim0224@naver.com

 

우리가 침묵하지 않도록

분단. 표지에 새겨진 두 글자가 유난히 존재감을 발했다.

특집에서 다룬 것은 남북의 분단체제지만 곧 다른 분단들이 연상됐다. 성폭행 피해자들을 향한 인식의 분단, 가난한 우리 가정의 분단……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세상에 어지럼증을 느낀 이유였다.

그래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읽었다. 침묵하는 나와 달리 작가들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글은 침묵하는 자에게 억센 손을 내밀었다.

「가출」(조남주)의 가출한 아버지를 기다리는 자식들과 어머니는 꼭 침묵하는 자를 기다리는 것 같았고, 딸에게 닿은 아버지로부터의 결제 문자는 침묵한 자들이 할 수 있는 (소극적이지만) 최선의 대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박민규)에서 1410호와 주인공이 속옷마저 벗어던지고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과 “그러고 보면 모든 게/해결되었다는 기분도 들었다”라는 구절은 마치 침묵을 깬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축제를 표현한 것 같았다. 「윈드밀」(박서영)의 두 청춘이 갖고 있던 모든 것—모텔에 놔둔 그들의 짐, 하지만 그들 인생의 전부인—을 버리고 미국에 가겠다고 인천공항을 향해 질주하는 장면, 그들에겐 미국 그 자체인 코카콜라 트럭이 멀어지려고 하자 쫓아가 기어코 트럭과 닿아버린 그 집념은 침묵을 깨부수라고 권유하는 것 같았다.

책을 읽고 나니 입이 난데없이 근질거렸다. 침묵하지 말자. 말하자.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분단’들을 더이상 참아낼 필요는 없다. 『창작과비평』에 감사함을 느낀다. 계속 사람들의 목소리를 끌어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침묵하지 않도록.

정지호 pp031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