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배수아 裵琇亞

1965년 서울 출생. 1993년 『소설과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 인형』 『심야통신』 『그 사람의 첫사랑』, 장편 『부주의한 사랑』 『붉은손 클럽』 등이 있음.

 

 

 

시취(屍臭)

 

 

7월 24일에 특급열차 탈선과 화재 사고가 났다.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휴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P가 그 기차를 타지 않았을까 해서 그는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전화는 불통이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그날 그에겐 타인의 죽음이 자신의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사망자의 명단을 내보내고 있었다. 20대의 여자: 중키에 갈색 원피스, 전신 3도 화상, 40세 정도의 남자: 비만형에 대머리, 전신 3도 화상, 5~6세 정도의 어린아이 둘: 반바지에 흰색 운동화, 전신 3도 화상, 10대 후반의 여자: 썬글라스에 밀짚모자, 좌반신 3도 화상에 양다리 절단상, 이런 식이었다. 카나리아에게 물과 모이를 주고 새장을 청소하면서 뉴스를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부상자들의 이름이 밝혀졌지만 P의 이름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P가 그 열차를 탔을지도 모른다는 집요한 생각에 시달렸다. 병원으로 전화를 하면 (임시로 고용된 것이 분명한) 사람들은 그에게 P의 이름과 키와 몸무게와 인상착의와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 동행은 있었는지 물으며 오랜 시간 메모를 한 다음에 지금은 상황이 복잡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으니 좀더 사태가 파악되면 알려주겠노라고 친절하게 약속했다. 그러나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는 새삼스럽게 P의 이름을 바싹 마른 입술 사이에서 굴리듯이 불러보았다. 병원에 전화를 하면서 그가 P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스러워졌다. P를 세 글자의 이름으로 생각해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 P가 지금 이 시간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의식을 명료하게 만들었다. P가 그 열차를 탔든 타지 않았든 P가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도 않을 것이다. 삼십년도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은 단 한번의 연락도 없이 지냈고 아마 이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그에게 P의 생사가 무엇이 그리 중요한 문제란 말인가. 이제 죽음은 불행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빛과 어둠처럼 분명한 경계도 아니고 고통이나 나락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P에 대해서 이제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불빛을 어둡게 한 전등 아래서 몇 안되는 편지 꾸러미들을 모아놓은 바구니를 뒤적거렸다. P의 편지가 있었다. 비쳐 보이는 종이에 펜으로 쓴 P의 편지는 짧았다. 그는 이것을 버려야 하리라. 그가 죽은 뒤 누군가 이것을 발견한다면 P나 그에게 불명예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나치게 결벽한 사람이라 육십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손끝 한번 스쳐보지 못했고 오십오세가 되어서야 간신히 점심식사를 한번 같이했을 뿐인 여인 P에 대해서 유난한 경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몇 안되는 P의 편지는 짧고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이어서 친척 누이나 유료 양로원의 간호사가 보내는 안부편지와 다르지 않았다. 신기할 것도 없는 날씨 얘기며 어느 상점에서 산 케이크가 맛있다는 얘기, 주말에는 너무나 복잡해져서 큰길가로는 얼씬도 하지 못한다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P는 마지막 편지에 썼다. 늦은 봄날 마당을 서성이는 개의 눈빛이 이상하게 고독해 보인다고. 그 고독이라는 단어가 그의 마음에 오래도록 걸렸다. P는 그런 단어를 편지에 쓰지 말았어야 했다. 그에게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단어다. 그러나 그는 바구니 안의 편지를 뒤적거리며 편지를 없애버려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고독’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편지를 써보낸 P가 그 열차를 탔든 타지 않았든 P가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도 않을 것이다. 그의 복잡한 생각과는 무관하게 그의 전화기는 시치미를 떼고 침묵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어떤 연락도 없었다.

P에게서 마지막 편지를 받은 것은 일년도 훨씬 더 전의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현기증 때문에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가 P에게서 언제 마지막 편지를 받았는지, 마지막 전화가 언제였는지 하는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몇년 전부터 부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주체할 수 없는 두통과 현기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최근 몇개월 전부터는 그 빈도와 강도가 상상도 못할 만큼 높아졌다. 두통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그를 덮치고 그를 억누르고 예감 없는 강렬한 통증으로 다가왔지만 현기증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검은 어둠으로 그의 모든 감각기관에 서서히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순간 밝은 태양빛 아래서도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귀는 이명으로 가득 차고 입에는 침이 고인다. 몸은 서서히 무감각해지고 목 뒤쪽이 조이는 듯이 굳어온다. 이윽고 머리 한가운데가 쪼개지는 듯이 아프다. 그러면서 그의 눈앞이 하얗게 흐려지며 곧 칠흑처럼 깜깜해진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순간이 되면 그는 위협을 느끼고 벽에 기대거나 소파나 침대에 눕거나 버스나 지하철의 좌석에 몸을 웅크려야 한다. 그리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의 발 아래 대지가 어느 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구토증이 몰려온다. 구토증은 위장을 도려내는 듯이 맹렬하다. 대지의 회전은 점점 가속이 붙고 마침내는 멈춤장치가 고장난 세탁기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사고나 감각의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그의 머리가 신이 오른 광대처럼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도저히 가눌 수가 없을 정도다. 미칠 듯한 내장의 비틀림. 그는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 바닥에 머리를 기대고 숨을 헐떡거리고 사지를 부르르 떨게 된다. 머리를 조금이라도 들거나 움직였다가는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는 대지의 힘에 의해서 그의 몸이 산산이 원심분리될 정도이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비명을 참기 위해 계속해서 혀를 깨문다. 식은땀으로 그의 온몸이 흥건히 젖는 것을 느끼며 이 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더욱 그를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서서히 다가오는 검은 현기증의 예감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온몸으로 그 공포와 고통을 겪어내는 것 이외에는. 혈관이 수축되고 균형감각이 상실되고 온몸의 피가 미세한 붉은 가루로 변해 검은 우주공간으로 사라져간다. 그의 의지와는 별개로 내장과 안구가 춤추며 돌아다닌다. 심한 발작이 일어날 때면 그는 거의 사흘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며 지낸 적도 있었다. 처음에 그 현기증의 발작을 경험했을 때 그는 죽음이 이윽고 다가온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발작이 아닐지라도 그는 노쇠해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끓여 잔에 따를 때 사기잔이 심하게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목욕을 마친 뒤 그의 피부가 거북등처럼 조각나는 것이 보였다. 심하게 각질이 생긴 피부는 팔꿈치 안쪽이나 무릎 뒤편부터 갈라지기 시작해 찢어진 살 사이로 벌건 피하조직이 드러났다. 그는 아직 보통 남자의 평균수명에 미치지 않는 나이였지만 가까운 친척 중에 장수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유난스러운 선병질로 사십대를 넘기지 못했고 그의 어머니와 외가 쪽 사촌형제들은 심장질환을 앓았다. 그러나 젊은 시절 그와 형제들은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건강의 기준을 무슨 특별한 병을 앓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 분명히 그랬다. 거기다가 그의 경우는 스포츠에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 그의 형제들은 아직까지 단 한명만이 순환기 계통의 병으로 죽었을 뿐이다. 그러나 친척들의 부음을 받을 때마다 그는 자신이 지나치게 오래 살고 있다는 수치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뚜렷하지는 않으나 자신은 분명히 병들었으며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말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입술이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것이며 시간이 이상하게 늘어진 채 느릿하게 가는 것이며 한밤에 잠을 깨는 일이며 엉덩이 부분에 진한 핑크빛으로 살덩어리가 뭉쳐져 올라오는 증상이며 아침마다 혀가 붓고 검게 딱딱해지는 것이며 그리고 그 현기증을 생각해볼 때 그가 병들었다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의사에게 찾아가야 하나. 그는 언제나 망설이게 된다. 그는 이미 육신의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린 것이다. 허물만 남은 몸으로 수명을 연장한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일일까 그는 곰곰 생각해본다. 생명이라는 것은 분명히 어떤 종류의 에너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전파나 속도나 온도, 진동이나 빛 같은 것으로 나타나고 측정되는 기운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금 어떤 형태의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다. 그가 움직이고 잠자리에서 눈을 뜨고 밥을 씹고 국을 뜨고 쓰레기를 버리고 배설하는 행위들은 이미 지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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