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유재현 劉在炫

1962년 서울 출생. 1992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hyoo@imagenet.co.kr

 

 

 

시하눅빌 스토리 1

솜산과 뚜이인

 

 

캄보디아 시하눅빌.

새벽 세시 반이 지나기 전에 시하눅빌의 모또택시(영업용 오토바이) 운전사 솜산은 시내 서편의 시장 싸루(시하눅빌에서 가장 큰 시장)의 맞은편 골목에 있는 숫자 맞히기 도박판에서 마지막 이십 달러를 잃었다. 오른쪽 바지주머니를 더듬자 손때에 전 천 리엘짜리 지폐 두 장과 이백 리엘짜리 지폐 석 장이 손에 잡혀 나왔다. 구겨진 작은 지폐들이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 초라하게 붉고 푸른 빛을 띠었다. 모두 합해야 일 달러도 되지 않는 구겨진 지폐들을 다시 바지주머니에 넣고 솜산은 아직도 도박꾼 십여명이 남아 있는 도박판을 뒤로 했다. 싸루의 앞길에서 골목으로 새어들어오던 흙바람이 솜산의 힘없이 벌린 입안으로 들어와 으적 씹혔다. 사흘 동안 솜산은 숫자 도박판에서 천 달러를 탕진했다. 한달에 백 달러를 버는 솜산으로서는 일년을 모아도 만지기 버거운 돈이었다.

골목을 빠져나와 싸루의 넓은 앞길에서 솜산은 무거운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낮게 드리운 검은 하늘은 어둡고 무거웠다. 태국만에서 불어오는 눅눅한 바람이 얼굴을 불쾌하게 어루만지는 동안 솜산은 우두커니 서서 아가리를 크게 벌린 고양이의 목구멍처럼 깊고 어두운 싸루를 바라보았다. 이따금씩 일어나는 흙먼지의 소용돌이가 솜산의 발목을 휘감고 돌아갔다.

솜산은 잠시 망설이다 인적이 사라진 길을 건너 거대한 검은 장막에 덮인 것처럼 보이는 싸루로 걸어들어갔다. 깊게 팬 좁은 미로와도 같은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무거운 어둠속에 가라앉아 있던 시장 안의 정물들이 천천히 흐릿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익숙해져 마치 손바닥처럼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었지만 솜산은 싸루의 깊고 좁은 진창길에서 자꾸만 걸음이 엉켜 휘청거렸다.

솜산은 싸루의 한구석 길모퉁이, 어둠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사방 일미터 남짓의 아버지 좌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솜산이 인도네시아의 감옥에서 풀려나와 시하눅빌의 아버지를 찾아왔을 때 아버지는 도둑이 들끓어 좌판 뒤에 해먹을 걸어놓고 밤을 지새던 일을 그에게 넘겼다.

중국제 산양(三洋) 오토바이 한대를 구해 모또택시 운전에 나설 때까지 일년 동안을 솜산은 꼬박 싸루의 좌판 뒤에서 밤을 지새웠다.

─도둑은 사람을 무서워하느니.

아버지는 좌판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그렇게 말했지만 모든 도둑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솜산이 아버지의 좌판을 지키던 일년 동안 점포를 지키던 시장 상인 두 명이 총알에 구멍이 뚫려 실려 나갔고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도둑 중 한명은 상인의 총에 맞아 싸루를 떠났다.

떠날 때에는, 부스럭 소리에도 무시로 간담이 서늘해져 잠을 깨던 일이며 우기에 비가 새어들어 온몸이 흙탕물에 흠뻑 젖던 일이며 하나부터 열까지 그만 지긋지긋해져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으리라 했던 싸루였지만 그 뒤로도 솜산은 계모나 이복동생들과 다툰 날이거나 왠지 울적해지는 날이면 가끔씩 싸루의 이곳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다. 무엇보다 솜산은 이곳처럼 완벽하게 어둠속에 파묻혀버릴 수 있는 장소를 시하눅빌에서는 찾지 못했다.

솜산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솜산은 이리저리 엇대놓은 두껍고 거친 판자와 녹슨 쇠사슬과 아이 머리통 크기의 자물쇠로 뒤덮인 진열대 뒤를 더듬어 찾아낸 작은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잠을 자지 못해 자꾸만 흐려지는 정신을 애써 다잡았다.

솜산의 텅 빈 머리에 몇달 전부터 결혼을 보채던 뚜이안의 앙칼진 얼굴이 떠올랐다. 오래 전에 혼기를 놓친 서른살의 베트남 여자 뚜이안. 솜산의 아버지는 뚜이안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살아가는 것이 팍팍하기만 했던 민주캄푸치아 시절을 보낸 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난민수용소와 감옥에서 민주캄푸치아 시절보다 그리 나을 것도 없는 도합 십육년의 세월을 허송한 터라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솜산이었지만 아버지는 뚜이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하필 유온이냐?

베트남인의 다른 이름인 유온은 야만인을 의미했다. 수백년 동안 크메르족들을 밀어내면서 영토를 넓혀온 비엣족은 크메르족에게는 오랫동안 야만적인 침략자였다.

─숲속으로 멀리 들어가 놀지 마라. 유온이 잡아간다.

유온이 잡아간다. 크메르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겁을 줄 때면 늘 하는 말이었다. 유온이라는 말에는 막연한 공포심과 그만큼의 증오심이 배어 있었다. 민주캄푸치아 시절에 유온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그렇지 않으면 미국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인민의 적이었다.

민주캄푸치아가 무너졌지만, 모두들 유온이라면 노골적으로 내색은 하지 않아도 내심으로는 벌레를 보는 것처럼 싫어했다. 베트남이 십만의 군대를 끌고 들어와 민주캄푸치아를 무너뜨리고 캄푸치아인민공화국을 세우고, 또 십년의 세월이 지나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고 나서도 유온에 대한 크메르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이 유온을 백안시하는 것은 그만큼 뿌리가 깊은 것이었다. 절반은 중국인인 솜산의 아버지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솜산의 유온에 대한 생각은 그저 그랬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것이 유온이었다. 솜산은 이십여년 전 베트남의 캄보디아난민캠프에서 칠년을 지냈다. 불과 열다섯의 나이였음에도 숙모의 가족들이 오스트레일리아로 간다는 말에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따라나선 솜산이었지만 오스트레일리아 대신 쏭베의 난민수용소에 갇히고 말았다. 수용소 생활 칠년 만에 다시 프놈펜으로 돌아왔으니 허송세월을 한 것이나 진배가 없었지만 그 살벌한 내전통에 목숨을 건사했으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난민캠프 주변의 유온들은 처지가 캠프 안의 솜산보다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었다. 간혹 유엔이나 국제적십자사 따위의 기구들에서 원조물품이 들어오는, 그마저 절반이나 깎여 들어오는 난민캠프 생활을 부러워하는 유온들도 있었다.

유온에 대한 뿌리깊은 백안시말고도 솜산의 아버지에게는 뚜이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몸 팔던 유온을 마누라로 데리고 캄보디아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뚜이안은 몸 파는 베트남 여자였다. 시하눅빌의 베트남 여자는 대부분이 몸을 팔았기 때문에 솜산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솜산의 아버지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돈이건 집이건 땅이건 쥐뿔도 가진 것이 없는 자신에게 올 캄보디아 여자는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칠년을 베트남의 난민수용소에서 보낸 솜산은 유온이나 크메르나 별로 다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캄보디아를 베트남의 식민지쯤으로 여기는 콧대높은 유온들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함께 살아가는 법이니까 그닥 이상할 것도 없었다.

솜산은 침에 젖어 축축해진 필터 없는 담배를 고쳐 물고는 불을 붙였다. 성냥 불빛에 잠깐 동안 주변의 모든 것들이 환하게 드러났다가 이내 다시 무거운 어둠속에 묻혀버렸지만 검은 흙이 범벅이 된 싸루의 진창길과, 진열대의 잿빛 판자를 얽어매고 있는 붉게 녹이 슨 쇠사슬의 잔영은 한참 동안 솜산의 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잔영 너머 싸루의 어둠속 어디에선가 해먹 흔들리는 소리가 한숨소리처럼 들려왔다.

솜산이 도박장에서 날린 천 달러. 그건 뚜이안의 돈이었다. 좀처럼 피우지 않던 담배의 연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면서 솜산은 싸루의 진창 밑으로 끝없이 꺼져들어가고 있었다.

 

시하눅빌의 다른 베트남 여자들도 몸을 팔았지만, 뚜이안처럼 서른이 넘도록 몸을 파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대개는 스물다섯을 전후해 돈을 모아 베트남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모은 돈을 밑천으로 그럴듯한 땅과 집, 가게를 마련해 시하눅빌에 눌러앉았다. 뚜이안에게도 오년 전쯤에는 그럴 기회가 있었지만 그녀가 버는 돈을 맡아두고 있던 뚜이안의 어머니가 프놈펜에서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총에 맞아 죽고 난 후에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봤지만 뚜이안의 어머니가 프놈펜의 누구에게 돈을 맡겼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고 돈을 맡은 쪽이 자청해 그녀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림잡아 이만 달러에 가까울 것으로 짐작이 가는 그녀의 돈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어머니의 시신과 함께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졌다. 다시 시작하기에 뚜이안은 너무 나이가 많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뚜이안을 찾는 사내들의 발길은 줄어들었고 유곽에서 그녀는 퇴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서른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뚜이안은 유곽의 붉은 불빛 아래에서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적당히 탄력있는 가슴과 조금 처지기는 했지만 보기 드문 반 아름의 허리와 평평하지 않은 둥글고 푸짐한 엉덩이를 갖고 있었다. 뚜이안은 여전히 젊은 창녀들의 도도함과 불친절한 써비스 그리고 그녀들의 성적 무지에 지친 나이든 사내들을 이따금씩 손님으로 받을 수 있었다.

뚜이안은 십년을 넘긴 유곽생활에 지쳐 있었다. 서른이 넘은 뚜이안이 유곽생활을 계속한다는 것은 결국 마마상이 되는 길이었다. 뚜이안이 머물고 있는 유곽을 운영하는 마마상은 일생을 베트남과 태국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창녀와 마마상으로 지낸 여자였다. 마마상에게는 미군이 남베트남에 주둔하던 71년 싸이공에서 만난 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튀기 딸이 있었다. 지금은 미국의 텍사스 어딘가에 사는 마마상의 유일한 혈육인 튀기 딸은 이제 그녀가 살아 있는 유일한 이유인 듯했다. 그녀는 방안의 작은 불전 옆에 딸의 작은 사진을 담은 조그만 액자를 두고 있었다. 검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마마상의 딸은 한눈에도 미인이었다. 마마상은 그녀의 딸을 끔찍이도 사랑했지만 그녀의 딸은 그렇지 않았다. 십여년이 넘도록 마마상은 단 한장의 편지도 그녀의 딸에게서 받지 못했다. 우기에 접어들어 장대 같은 빗줄기가 유곽 앞길의 커다란 웅덩이를 채울 때면 마마상은 방 창문에 걸터앉아 주름으로 늘어진 볼을 일그러뜨리며 그녀의 딸이 보고 싶고 원망스러워 끅끅 흉물스러운 소리를 내며 울곤 했다.

뚜이안의 마마상은 때때로 유곽에 있는 젊은 창녀들의 손목을 담뱃불로 지지곤 했다. 마마상은 호텔이나 가라오께, 나이트클럽으로 창녀들을 보내곤 했다. 그녀들은 돌아와서 손님들에게서 받은 돈을 마마상에게 내놓곤 했는데, 그것이 충분치 않은 액수일 때 그녀는 자신의 방법으로 어린 창녀들을 응징하곤 했다. 뚜이안은 이제 그런 일을 당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짧은 대나무 막대로 발바닥을 맞거나 담뱃불로 지짐을 당하는 젊은 창녀들을 볼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뚜이안은 그런 마마상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럴 만큼 충분한 돈도 없었다.

이제 십여년을 유곽에서 보낸 서른살의 뚜이안이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뚜이안은 결혼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뚜이안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사내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그들 중의 대부분은 이미 한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갖고 있는 사내들이었고, 뚜이안보다는 그녀가 어딘가에 숨겨두었을 얼마간의 돈에 욕심을 부리는 무능한 사내들이었다. 캄보디아 여자와 베트남 여자들이 모두 그렇듯이 뚜이안도 그런 사내들을 경멸했다.

솜산은 그런 사내들 중에서 뚜이안이 가장 마음에 두는 사내였다. 대단하진 않아도 솜산은 돈을 버는 데 제법 수완이 있었으며, 늘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아니면 독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난민캠프와 감옥에서 십여년 이상을 보낸 솜산이기에 베트남 말과 인도네시아 말을 구사할 수 있었고, 아버지가 중국인이었기 때문에 중국 말, 그리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감옥에서 조금씩 배우기 시작해 이제는 그럭저럭 의사소통이 되는 영어를 할 수 있는 것도 돈벌이에는 아주 유리한 능력이었다. 솜산은 적어도 한달에 이백 달러 이상을 벌었다. 한달에 백 달러를 벌기가 급급한 모또운전사로서 이백 달러 이상을 손에 쥔다는 것은 이 사내가 남들보다 배 이상의 수완을 발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대부분의 수완은 버스터미널에서 프놈펜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의 등을 치는 데서 발휘되었는데, 솜산은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간차(대마초)건 헤로인이건 여자건 무엇이든 가능하게 해주는 댓가로 언제나 커미션을 챙겼던 것이다.

뚜이안은 이런 솜산의 수완을 그의 몸에 흐르는 중국인의 피 탓으로 여기곤 했는데, 그 빌어먹을 중국인의 피 때문에 솜산이 도박의 유혹에 약하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싸루에서 넋을 잃고 귀신처럼 어둠속에 웅크리고 앉아 한시간쯤을 보낸 솜산은 싸루를 빠져나와 이제 막 희부옇게 동이 트기 시작한 거리로 나와 에카리치의 집으로 향했다.  구름이 낮게 깔린 새벽하늘은 검고 어두웠다.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다섯명의 배다른 이복형제들만으로도 비좁기 짝이 없는 판잣집의 잡초가 무성한 마당에 발을 딛자 마당 한구석 어디에선가 도마뱀이 쩌국 울었다.

─비가 오려나.

도마뱀이 울면 비가 온다. 솜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때맞추어 빗방울 한점이 솜산의 이마를 때렸다. 솜산은 중국식 대나무 침상이 이리저리 놓여 있는 좁은 집안으로 들어가는 대신에 잡초가 무성한 뜰 한구석의 돌 위에 걸터앉아 웃옷 주머니에서 담배꽁초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쓰레기와 잡초들이 전부인 마당 한구석에 야자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판자를 잇댄 후 함석을 얹은 집은 솜산이 인도네시아의 감옥에서 돌아와 팔을 걷어붙이고 보수를 한 것이었지만, 삼년 만에 다시 흉물스러운 몰골로 변해 있었다. 찢어진 함석지붕에서는 무시로 물이 떨어졌고 흙바닥은 이곳저곳이 패어 집밖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우기가 돌아오기 전에 손을 보아주지 않으면 집은 제구실을 못할 것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솜산의 아버지가 하나 둘씩 판자와 각목 따위를 주워모아 뜰 한구석에 쌓기 시작한 것도 우기가 오기 전에 집을 손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렇게 손을 본들 그 집에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 땅이 내 땅이라면.

솜산은 담배연기를 한숨처럼 내쉬며 중얼거렸다. 지난 이년 동안 시하눅빌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한 변이 오십미터쯤인 이 땅도 이제는 십만 달러를 호가한다는 소문이었다. 십만 달러. 맹세컨대 아버지라도 죽일 유혹에 시달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땅은 이제 솜산의 아버지 소유가 아니라 프놈펜에 사는 쳔(陳)이라는 중국인의 소유였다. 그가 95년에 시하눅빌에 내려와 시내와 해변의 땅들을 사 모을 당시에 땅들은 고작해야 몇천 달러 이거나 몇 헥타르가 되어도 만 달러를 넘지 않았다. 솜산의 집이 들어서 있는 이 땅을 솜산의 아버지는 오천 달러에 프놈펜의 중국인에게 팔았다.

솜산의 아버지가 이 땅을 마련한 것은 폴포트의 민주캄푸치아가 베트남 군의 침공으로 무너진 후 내전이 일상화되어가던 북서부의 시소폰을 떠나 프놈펜을 거쳐 시하눅빌에 발을 딛은 직후였다. 강도에게 아들의 목숨을 빼앗기고 그래도 프놈펜이 나을 것 같아 프놈펜으로 떠난다는 땅주인에게 오백 달러인가를 주고 산 땅이었다. 솜산의 아버지는 이 땅에 캄보디아식이 아닌 중국식 목조가옥을 짓고 살았다. 베트남의 난민수용소에서 캄보디아로 돌아온 솜산이 이리저리 수소문을 한 끝에 아버지를 찾아 돌아온 곳도 바로 이 집이었고, 마음을 잡지 못하고 인도네시아로 떠나 난민수용소와 감옥에서 칠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곳도 이 집이었다. 그럭저럭 이번에는 삼년을 지낸 집이었다.

솜산의 아버지는 프놈펜의 중국인에게 오천 달러를 받고 그가 새 집을 건축할 때까지 이 집에서 계속 살아도 좋다는 조건으로 땅을 넘겼다. 소문에 사년 전에 아버지의 땅을 산 프놈펜의 중국인은 곧 이 땅에 호텔을 세운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솜산의 가족은 이 집에서도 쫓겨날 판이었다.

솜산은 아버지가 이 땅을 프놈펜의 중국인에게 판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도 절반은 중국인이 아니던가? 온전한 중국인과 절반 중국인의 안목이 그리도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솜산은 못내 아쉽고 화가 났다. 십만 달러가 아니라 그 절반인 오만 달러만 손에 쥐고 있었어도 솜산의 가족은 이렇게 구차하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원한다면 솜산의 아버지는 아편을 피우면서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솜산의 아버지는 싸루의 모퉁이에 사방이 고작 일미터인 점포에서 열쇠며 자물쇠, 일회용 라이터 따위를 팔면서 여섯이나 되는 가족들의 생계를 돌봐야 했다. 그나마 솜산은 계산조차 되지 않는 군식구였기에 여섯이었다.

솜산은 손끝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손가락으로 튀겼다. 잡초 사이로 떨어져 흔적이 사라질 때까지 붉은 불꽃은 긴 포물선을 그리며 어두운 허공을 날았다. 솜산은 집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뜰 한구석의 야자나무에 매달아놓은 해먹에 몸을 실었다. 해먹의 흔들림이 멍한 솜산의 의식을 더욱 몽롱하게 만들었다. 툭, 빗방울 몇점이 솜산의 얼굴에 떨어졌지만 솜산은 꼼짝도 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