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시험대 위에 선 한국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중요한 시험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세기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기를 실답게 열어나갈 역량이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되는가? 한창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정치개혁에서부터 이라크파병, 북핵문제를 포함한 남북관계 등 안팎의 정치적 문제들은 물론이고, 교육·환경·노동·호주제 등 일상적인 삶의 질과 직결된 여러 사안들이 슬기로운 판단과 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의 전개들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정치적’ 사안들의 경우에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서도 개선될 조짐을 보이거나 적어도 최악의 사태는 면하게 될 듯하다. 시계(視界) 제로의 재신임정국이 이제 정치개혁의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으며, 위기로 치닫는 것만 같던 북·미관계에도 새로운 조짐들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휴전협정을 대신하는 평화협정안을 제시하였다는 소식은, 아직은 전모를 알기 어렵고 북한의 핵개발 포기라는 선행조건을 달고 있느니만큼 향후 전개도 장담하기 어려우나 이제까지 미국이 내놓은 제안 가운데서 가장 전향적인 것임에는 틀림없으며, 현재 미국이 처한 여건으로도 마냥 강경노선으로 치닫거나 또 한차례의 모험을 벌일 여유는 없어 보인다. 이라크 추가파병에서도 정부가 결국 소규모 비전투병 파병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짐으로써 그나마 최악의 선택은 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구체적인 진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흐름들이 남한 내부의 축적된 역량과 광범위한 개혁욕구를 입증해주며 그에 추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라크 추가파병에서 정부가 이만큼의 신중함이나마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일방적이고 예속적인 한미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것을 요구하는 국민 다수의 염원과 자신감 덕분이다. 북·미문제에서도 6·15선언 이후 남북관계의 꾸준한 진전이 작지 않은 변수로 작용했으며, 앞으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대외적 문제들이 이럴진대, 대내적 정치개혁은 더욱이나 남한 시민사회의 개혁역량과 의지를 묻는 시험이 될 수밖에 없다.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수사 확대 앞에서 기존 정치세력들은 생존의 위기감마저 느끼게 되었으며, 선거공영제를 비롯한 묵은 개혁주제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내심이 무엇이든 한나라당이 지구당을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부터가 수구적인 정당들조차 일정한 개혁을 감수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회적 압력을 감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물론 특검 논란에서 보듯이 저항 또한 만만치 않다. 과연 이번의 회오리가 시늉뿐인 개혁으로 내실있는 개혁을 봉쇄하는 ‘방탄개혁’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정치질서를 구축하는 신호탄이 될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관건은, 정치에 대한 환멸과 절망이 아주 깊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한 정치권 스스로도 다른 길이 없음을 절감하게끔 사회적 감시와 압력을 늦추지 않는 일이다.

국내·국제 정치에서 이같은 일련의 재조정작업이 추진력을 얻으면서 개혁이 대세를 이루고 있음을 실감케 하지만, 그럴수록 이 흐름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몰아갈 것인가 하는 고민은 더욱 절실해진다. 정치개혁만 하더라도 아직은 보수정당들의 이합집산 차원을 넘어서는 전망이 생긴 것도 아니다. 이는 지금의 국면에서 개혁이라는 말의 함의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일 자체가 중요한 싸움의 계기가 됨을 말해준다. 즉, 좀더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다운 사회를 만든다는 전망에 의해 추동되는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 시장구조에 좀더 걸맞은 경쟁력있는 사회관계를 정비하는 수준에 머물며 그를 넘어서는 변화라면 오히려 배격하는 ‘개혁’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물을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지난 10월 한달 사이에만도 세 명의 노동자가 자살로 내몰리게끔 방치되어왔다는 사실은 매우 징후적이다. 환경·교육·주택 등 좀더 ‘일상적인’ 다른 부문들에서도 이미 불평등과 갈등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폭되고 있다. 물론 이런 갈등이 어제오늘 불거진 것은 아니며, 부패정치구조의 청산 같은 과제와는 달리 단시간에 가시적인 결과를 내기 힘든 일이기는 하다. 문제는 대개의 사안에 있어 정부는 정부대로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지 못하고 사회적인 합의 또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노동문제는 제대로 의제화되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냥 일반 시민이나 주민이 아니라 ‘계급’과 관련된 담론이 유독 억압되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는 주류언론에서 묵살되거나 피상적으로 다루어질 뿐이며, 대기업 노동조합을 표적으로 삼아 노동운동 전체를 경제개혁의 흐름에 역행하는 ‘기득권층’의 제몫 챙기기로 매도하기 일쑤였다. 물론 노동계 자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을 포함해 실천이나 이론에서 해결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국제경쟁력에서 뒤처지지 않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권리주장 자체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개혁에 걸림돌인 양 단순화될 때, 개혁이라는 것이 도리어 새로운 질곡으로 화할 위험은 늘 존재하는 것이다. 개혁의 방향과 진행에 대한 물음을 계속 물어나가야 할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으니, 그렇지 못할 때 개혁은 그들만의 개혁으로 끝나고 오히려 다수 민중의 소외만을 가중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에 걸쳐 연속기획으로 진행해온 ‘21세기의 한반도 구상’을 마무리짓는 이번호 특집은 그 자체가 개혁방략에 대한 모색이라 할 만하다. 이 연속기획 전체가 애초부터 한국사회의 진로와 관련된 주요과제를 점검하고 전략을 모색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지만,‘한국사회의 발전전략을 찾아서’를 주제로 한 이번 특집은 특히 구체적인 구상과 대안들을 둘러싼 치열한 탐색과 논의가 어우러지고 있다. 앞머리 좌담에서는, 백낙청 편집인의 사회로 김석철·박세일·성경륭 세 분이 ‘동북아시대 한국사회의 중·장기 전략과 단기적 과제’라는 주제로 각자의 현장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들을 교환한다. 이제는 세계화나 국가경쟁력이 민주적이고 균형잡힌 발전과 함께 가야 할 뿐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만 양자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다는 인식에 동의하는 가운데, 양자의 현실적인 조화를 이루어낼 다양한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세부적인 진단과 제안을 좀더 장기적인 맥락과 연결짓는 문제의식은 각론에 해당한다고 할 다른 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소국주의와 대국주의가 교차해온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반추하면서 양자를 지양한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고자 하는 박명규의 글은 그 자체로 중·장기적 전략과 곧장 이어지는 함의를 가지며, 이필렬의 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사회의 환경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면서 친생태적인 자원활용의 가능한 방안들을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전망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불평등 심화와 빈곤의 확대로 표상되는 계급문제를 되짚어보는 김왕배의 글과 지방대학의 위기 타개책을 모색하는 김종엽의 글은 상대적으로 세세한 분석과 처방이 두드러지는 편이나, 이들 역시 조심스럽게나마 사회체제의 문제를 건드리는 등 거시적인 분석을 소홀히하지 않는다. 좌담에서 논문들까지 구체적인 구상을 담고 있는만큼 토론거리도 적지 않다. 특집의 제안들이 개혁방략과 전망을 탐색하는 노력들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특집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그러다보니 다른 글들을 자세히 소개할 여유는 없어졌지만, 사실 이번호는 분량에서도 내용면에서도 매우 풍성하다. 논단에서 각기 유럽중심주의 극복론과 동아시아론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시도하는 유재건과 김경일의 글은 본지의 꾸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고 있다. 부안 핵반대투쟁을 전하는 박형진의 현장통신이나 이라크파병 논란을 검토하는 박순성의 시평은 우리 사회의 현안에 대한 점검을 겸하는 글로 특집의 주제들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또한 칠레의 아픈 경험을 되새기며 미국에서의 민주주의 후퇴를 경고하는 아리엘 도르프만의 음성과 지난 여름호에 이어 피스크 인터뷰를 통해 확인하는 이라크 현장상황 또한 변화하는 세계정세를 생생하게 접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문학은 별도의 기획을 하지 않더라도 늘 본지가 공력을 기울이는 분야인데, 이번호 문학란은 창작에서나 평론에서 모두 알찬 결실을 보여준다. 원로 홍윤숙을 비롯한 선배시인들의 노작과 이번에 창비신인상으로 등단한 김광선을 포함한 젊은 시인들의 작품, 그리고 그사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최영숙 시인의 유고작에 이르기까지 이번 시단은 고른 수준과 다채로움을 자부해도 괜찮겠다. 소설에서는 김원일의 중량감있는 신작과 이채로운 색깔의 윤영수·김연수의 작품을 선보이며, 창비신인상의 김주희 작품도 독자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호 평론란은 모두 작품이나 작가들에 대한 실제비평으로 꾸려졌다. 임홍배는 김수영(金洙暎)의 난해시에 대한 정밀한 읽기를 통해 시읽기의 방법을 사유하며, 창비신인평론상 출신들인 유희석과 서영인은 각각 기형도와 조경란의 작가론을 시도하면서 한국문학의 방향에 대한 성찰까지 겸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등단한 작가 박민규의 소설들을 읽는 염무웅을 비롯해 장철문, 백민석 작품을 다룬 박영근과 김영찬의 촌평들이 가세하여 비평의 현장감을 더해준다.

다른 촌평들을 비롯해, 미처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재일 조선학교의 이모저모를 전해주는 정병호의 현장통신, 영화 「바람난 가족」과 ‘다모폐인’ 현상을 다룬 문화평, 그리고 여러 ‘독자의 목소리’들도 귀한 생각거리를 전해줄 것이다. 이래저래 다른 호보다 두툼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옥고를 뒤로 미루는 수밖에 없어 저자들께 매우 죄송스럽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너른 양해를 부탁드린다.

끝으로 지난 9월 말부터 ‘창작과비평사’라는 회사명이 ‘창비’로 바뀌었음을 알려드린다. 기왕에도 정식명칭보다 더 자주 씌어온 약칭을 이번에 정식 회사명으로 택한 것은 주로 더 많은 독자와 좀더 친근하게 만나고자 하는 뜻에서였다. 독자 여러분의 한결같은 관심과 참여 그리고 질정을 바란다.

[김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