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시, 정치 그리고 성애학

 

이장욱 李章旭

시인, 소설가. 시집으로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장편소설로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이 있음.  oblako@hanmail.net

 

 

1. 시민과 시인

 

이 글은 지난호 『창작과비평』의 특집 중 주로 시장르에 관련된 진은영(陳恩英)의 논의를 잇는 글이다.‘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지난호 특집의 원론적인 질문에 기초하여 미학과 정치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살피는 일이 이 글의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진은영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 그리고 그 대답들”1에 한편의 글을 추가하는 일이 될 터이다.

“발본적인 문제”(5면)를 탐구하고자 하는 지난호 특집기획은 물론 원론의 안이한 반복이 아니라, 오늘의 문학현장에서 명멸하는 다양한 쟁점들을 좀더 근원적인 시각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미학과 정치 사이에 개입해 있는 긴장 혹은 (불)연속성에 대한 탐문은 오늘의 시대정황과 관련하여 특집 전반을 관할하는 주요 주제로 읽힌다. 미학과 정치 사이의 그 긴장은 백낙청(白樂晴)의 글에서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필연적으로 세상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40면)는 지점에서 발생하며, 한기욱(韓基煜)의 글에서는 “무엇이 새것다운 새것인지를 가리는 문제”(66면)에 연루되어 있다. 이에 비해 진은영의 경우는 최근의 시적 경향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하여 좀더 이론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플라톤적 이상주의에 의거한 교훈주의적 문학관(윤리적 예술체계)과 아리스토텔레스적‘공감’에 기초한 효용론적 문학관(시학적-재현적 예술체계)을 비판적으로 설명한 후 그는, “감각적인 것의 분배로서의 예술”(미학적-감성적 예술체계)을 제시한 랑씨에르(J. Rancière)의 논의에 의거하여‘삶/정치와 문학의 일치’라는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흥미로운 것은 진은영이 서문에서 제시한 문제의식이다. “(80년대의 민중시들에) 깊이 공감했고 그 시대에 그 시들의 존재 자체를 사랑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쓸 수 없었다”고 진술한 뒤 그는 이렇게 적는다.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거나 지지 방문을 하고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논문을 쓸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을 시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69면)

하긴 그렇다. 시민으로서의 사회참여가 곧바로 시인으로서의 시로 전이되지는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시의 무엇이 이 전이과정을 방해하는 것일까? 해답은 생각보다 자명한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시가 삶의 (표면적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잠재적인) 모든 부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은 아닌가? 김수영(金洙暎)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온몸’을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닌가? 이‘온몸’은 물론 엄숙주의나 감정의 과잉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다.‘온몸’은 시가 발생하는 일종의 장소다. 그곳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고 삶의 외부와 내부가 부딪친다. 그것은 미정형의 언어들이 시인의 몸을 통해‘사건’을 발생시키는 공간이 된다.2 표면적 의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발화, 시인의 몸에 기입된 감각과 정신이 최초의 언어로 육화하는 과정, 그래서 시는 삶 자체의 근저에서 형성된 언어를 요청하는 것이다. 시에‘윤리’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것일 터이다.

우리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으로서 촛불집회에 나간다. 정치적 신념으로서 진보적 정당을 지지하고 보수여당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직‘정치적인 시’를 쓸 수 없다. 시 외부에 완성되어 있는(이미 알려져 있는) 정치적 메씨지의 반복이나 그 감성적 보완에 그친다면 말이다. 현실정치의 퇴행이 명백한 오늘에조차,‘온몸’을 요구하는 시의‘윤리’는 많은 경우 시민적‘윤리’의 단선적인 시적 변용을 초과하는 무엇인가를 요구한다. 랑씨에르의 문장을 바꾸어 말하자면,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에는 제 미학이 있고, 시에는 자신만의 정치가 있다. 당연하게도 이 말은 시가 현실정치적인 주제를 다룰 수 없다거나 문학과 정치가 혼융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사정은 거꾸로다. 시는 정치의식의 표층적인 발화를 넘어서서 시로써 갈 수 있는 심층의‘정치’에 닿아야 한다.3

그런데 이것으로 된 것일까? 아직 질문은 더 필요해 보인다. 이 심층,‘시 자체의 정치’는 어떻게 실제의 삶/정치와 만나는가? “사회참여와 참여시 사이에서의 (자기)분열”에 대해 진은영이, “많은 시인들이 진실된 감정과 자신의 독특한 음조로 새로운 노래를 찾아가려고 할 때 겪는 필연적 과정일 거라고 믿고 싶다”(69면)는 희망을 피력했을 때, 자기분열을 넘어서고자 하는 이 희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의지이며 (동시에) 삶의 형식을 예술적 실천과 연결시키는 형식으로서의 모더니즘”과 함께, “문학 텍스트와 다른 사회적 텍스트의 끊임없는 접합”(83면)이 요청된다는 것. 결론은 이렇다. “삶과 정치가 실험되지 않는 한 문학은 실험될 수 없다.”(84면)

이 글은 진은영의 이 결론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주제항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소위‘새로움’을 근간으로 하는‘현대예술’의 역설적 상황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특히 지난호 한기욱의 문제의식, 즉 “새것다운 새것”의 역사적 조건과 미적 대응에 관련되어 있는데, 이는 최근의 문학논의에서 주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다. 둘째는‘삶과 정치를 실험하는 문학’이라는 진은영의 논점을 구체화하여 살피는 일이다. 이를 위해 서구문학사의 몇몇 사례들이 참조될 것이다. 이 논의들은 궁극적으로 “세상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물음”(백낙청 40면)에 연동되는데, 바꿔 말하자면 이는 문학의 자율적 영역이 세계와 만나는 절합지점에 대한 질문에 해당한다. 지난호 특집을 잇는 이 원론적인 논의는 일부‘젊은 시인들’을 둘러싼 우리 시의 다양한 쟁점들에 연루되어 있지만, 소위‘2000년대’라는 좁은 시대구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회적이다. 먼저 현대문학과 예술이 처한 역설적 상황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새로움에 대한 논의가 이와 관련이 있다.

 

 

2. 새로움이라는 역설, 혹은 한계의 체험

 

오늘날 어떤 시인도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실험을 수행하지 않으며, 어떤 비평가도 “전통의 부정만을 강조하는 상투적 의미의 미학적 실험”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새로움은 언제나 일종의‘조건’이자‘상황’이며 모종의 당대적 (무)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새로움이 추인되는 방식에 대해 지젝(S. Zizek)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새로운 이론은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것으로 치부된다. 다음 단계에서는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언젠가 다른 데서 이미 말해진 것을 단지 새로운 말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논평을 듣는다. 마지막으로는 그 이론의 새로움이 인정받는 단계이다.”4

지젝의 유희적 언급에 우리가 전적으로 동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새로움이 저‘부정적 승인’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보다 많은 새로움들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전도서(1장 9절)의 문장 속으로 사라진다.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며, 지금 생기는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다. 특히 교환가치(차이)가 지배하는 오늘날의‘새로움’은 “한 거울이 다른 거울에 비치듯이”(벤야민) 저 유구한 것을 반복하는 가상일 가능성이 높다. 주지하다시피, 이미 오랫동안‘모더니즘의 피로’를 겪어온 현대예술의 딜레마가 이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앞의 인용문을 통해 지젝이 의도하는 것은 새로움의 적

  1. 진은영 「감각적인 것의 분배」, 『창작과비평』 2008년 겨울호 69면. 앞으로 이 책에서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면수만 기재한다.
  2.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직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을 모조리 파산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말을 바꾸어 하자면, 시작은‘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몸’으로 하는 것이다.‘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 모험은, 자유의 서술도 자유의 주장도 아닌 자유의 이행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 『김수영 전집 2』, 민음사 1981, 250면.
  3. 이 글에서‘정치’는 샹딸 무페(Chantal Mouffe)가 『정치적인 것의 귀환』과 『민주주의의 역설』 등에서 구분한‘정치’(politics)와‘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개념적 대립항을 염두에 둔다. 무페에게‘정치’는 제도의 영역이며,‘정치적인 것’은 인간사회에 항상 내재해 있는 존재론적 조건의 층위(즉 갈등과 적대)를 일컫는다. 이‘정치적인 것’의 문학적 번안은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할 터인데, 조화로운 합의적 종결의 불가능성(무페의 용어로는‘경합적 다원주의’)에 기초해 있다는 점에서 바흐찐(M. Bakhtin)의‘대화’(dialogue) 개념에 상응하는 면이 있다. 언제나 다른 목소리들과의 갈등과 적대(그러므로 수평적인 사랑) 속으로 힘겹게, 때로는 파괴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투입시키는 시들(가령 김수영, 진이정, 황병승 등)은, 이 문학적 정치성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4.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인간사랑 2004, 14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