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식민성과 세계문학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을 중심으로
유희석 柳熙錫
문학평론가, 전남대 영어교육과 교수. 저서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 『한국문학의 최전선과 세계문학』, 역서 『지식의 불확실성』 『한 여인의 초상』(공역) 등이 있음. yoohuisok@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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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담론의 위력은 서구 인문학계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실감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석연하지 못한 쟁점들도 적잖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서구문명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때로 침탈의 무기로 오용된 반면, 너무도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바깥의 적’은 오히려 식민지 내부에 더 강력하게 숨어 있더라는 역설일 것이다. 이는 식민성(coloniality)의 극복을 명시적으로 내세우는 비서구 작가들일수록 더 난감하게 맞닥뜨린 문제이기도 했다.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염상섭 『만세전』, 1924)—‘내지(內地)’에서 식민지조선으로 귀환하여 내뱉은 이인화의 일갈은 독립 전후 ‘아프리카문학’의 회귀서사(narrative of return)에서도 착잡하게 되풀이된다.1 그 과정에서 당연시된 모든 이분법들은 서사의 용광로로 사라진다. 근대와 반근대, 전통과 반전통, 봉건과 민주, 계몽과 반계몽, 전통종교와 외래종교 등 온갖 종류의 반목은 주인공의 분열된 내면풍경을 형성하는바, 흑백논리가 들어설 여지가 없는 그곳은 잿빛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독자의 판단 정지를 조장하기 일쑤인 잿빛 내면풍경이 식민현실의 역사적 딜레마를 명징하게 되비추어 모종의 여명(黎明)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수단 출신 작가 타예브 쌀리흐(Tayeb Salih, 1929~2009)의 ‘와드 하미드 싸이클’(Wad Hamid Cycle) 가운데 하나인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1969, 이하 『계절』)이 바로 그런 사례가 아닌가 싶다.2 주인공의 타살(『모호한 모험』)이나 타락(『더이상 평안은 없다』) 또는 추락(『버려진 바오밥나무』)으로 귀결되는 회귀서사 중 가까스로 ‘숨통’을 틔운 예외적인 면모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탈식민문학’으로 분류되는 작품 가운데 드물게 식민성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복합적 통찰과 자기성찰이 통렬할뿐더러 되받아쓰기(writing back)의 탁월한 성취로도 손꼽힌다. 이런 『계절』에서 우리가 세계문학의 새로운 활로를 상상할 수 있다면 독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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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분단도 그렇지만 세계사에서 ‘해방’ 이후 오히려 식민지현실의 잠재된 모순이 더 폭력적으로 꼬이는 사례는 적지 않다. 독립(1956) 이후 장기 내전(1955~72, 1983~2005) 끝에 두 나라로 쪼개진 수단도 그렇다. 이집트를 하위파트너로 삼은 영국의 분리지배가 야기한 수단의 질곡은 식민지해방의 어둠이 어떤 것인가를 웅변한다. 이런 수단을 포함한 아프리카의 문학들이 자신의 존재를 ‘작품’으로 세계에 알린 것은 대략 1950년대 전후다. 세계문학 무대에서도 후발주자인 셈이다.3
하지만 이런 뒤늦음이 문학의 후진성인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저항문학’의 상투성을 넘어선 작품도 적지 않으려니와, 때늦음으로 인해 오히려 식민지근대를 주도한 서구문학과는 다른 차원에서 식민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더 절박하게 제기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지역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토착적인 것들이 철저하게 파괴된 상황에서, 그것도 모어(母語)가 아닌 식민제국의 언어로 창작한 아프리카의 작가들에게 ‘식민지근대’는 그 자체로 결코 안주할 수 없는 시대였을 법하다. 제국과 식민조국 모두에서 겪는 회귀서사 주인공들의 ‘이중의 소외/억압’도 안주할 수 없음의 시대적 징후인지 모른다.
이야기는 수단 독립 전후, 즉 1차 수단내전과 약간 겹치는 시기, 아랍계 이슬람이 주류인 수단 북부 나일강변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4
내가 고향 사람들에게 돌아오기까지, 여러분, 정말 오랜 시간이—정확히 7년, 그 기간 동안 나는 유럽에서 공부했습니다—지났습니다.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이 나를 스쳐갔습니다. 하지
- 필자가 살펴본 아프리카의 회귀서사는 68혁명의 제3세계적 전조로 읽을 수도 있는 텍스트들, 가령 깐(Cheikh Hamidou Kane, 쎄네갈)의 『모호한 모험』(Ambiguous Adventure, 1961), 아체베(Chinua Achebe, 나이지리아)의 『더이상 평안은 없다』(No Longer At Ease, 1960)를 비롯해 부글(Ken Bugul, 쎄네갈)의 『버려진 바오밥나무』(The Abandoned Baobab, 1982) 등이다. ↩
- ‘와드 하미드 싸이클’이라는 명칭은 쌀리흐의 작품세계 전체를 연구한 하싼이 (처음) 붙인 것으로 보인다. 와드 하미드는 가상의 마을 이름이고 『계절』의 배경 역시 그 마을이다. Waïl S. Hassan, Tayeb Salih: Ideology & the Craft of Fiction, Syracuse UP 2003, 10면. ↩
- 2016년 기준, 54개국 약 12억명의 인구와 2136개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아프리카 대륙의 문학들을 ‘아프리카문학’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반화일 듯하다. 달리 더 나은 말을 찾지 못하여 관행적 표현을 따를 뿐이다. ↩
- 필자가 텍스트로 삼은 것은 영역본 Season of Migration to the North; Mawsim al-Hijrah ila ash-Shamal (trans. Denys Johnson-Davies, NYRB Classics 2009)이다. 한역본으로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이상숙 옮김, 아시아 2014)을 참고하되, 영역본이 저자 쌀리흐와 역자의 긴밀한 공동작업의 결과물임도 감안한 것이다. 인용문의 번역은 영역본에 근거하여 필자가 했으며, 인용 면수는 영역본 기준이다. 『계절』 외에 지금까지 영어로 출간된 쌀리흐의 작품은 소설집 The Wedding of Zein (1968; New York Review Books 2009)과 미완성 장편 Bandarshah (Routledge 1996) 두권이고, 그외 단편들이 이런저런 잡지에 영역으로 실렸다. 자세히 소개할 지면은 없지만 아랍어원본과 영역본의 여러 차이에 관한 비판적 논의는 Lamia Khalil Hammad, “Cultural Colonialism in the Translation of Season of Migration to the North,” Trans-Humanities 9:1 (2016), 105~28면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