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신동엽 시의 ‘하늘’과 동학사상, 민중사관

 

 

김윤태 金允泰

문학평론가, 신동엽기념사업회 이사. 저서 『한국 현대시와 리얼리티』, 공편 『신동엽 시전집』 『신동엽 산문전집』 등이 있음.

windor2@hanmail.net

 

* 이 글은 기존의 『신동엽 시전집』(창비 2013)에 묶이지 않은 시 「우리가 본 하늘」 「복(伏)」과 미발표작 「백록담(白鹿潭)」에 대한 해설로 쓰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작품들을 395~403면(평론 뒷부분)에 별도로 수록하였다.

 

 

1

 

올해는 신동엽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그것을 기념하여 지난 4월 초에 발간된 『신동엽 산문전집』(창비 2019, 이하 『산문전집』)을 편찬하는 데 필자도 참여하였다. 이 일은 신동엽문학관의 개관(2013.5.3)에 맞추어 발간한 『신동엽 시전집』(이하 『시전집』)의 후속 작업이었다.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신동엽의 육필 원고들을 찾아 대조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시 세편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었다. 두편은 시인이 살아생전 『현대문학』에 발표했던 것이고, 한편은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이 세편을 소개하는 데 필자를 망설이게 했던 것은 미발표작 「백록담」이다. 시인이 살아생전 발표하지 않은 작품을 굳이 찾아내어 새 발굴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습작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고, 시인 스스로가 태작(—作)이라 여겨 발표를 미뤄두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이러한 염려는 신동엽의 전집들을 편찬하면서 느꼈던 감회에서 비롯한다. 시인의 20주기에 맞추어 미공개 자료들을 모아 엮어낸 시집 『꽃같이 그대 쓰러진』(실천문학사 1988)에 수록된 시들 때문이다. 여기 수록작들은 대체로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필자는 보았기에, 더욱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백록담」이 비록 발표되지 않은 것이긴 하나 비교적 완성도를 갖추었다고 생각되었고 관련 자료들과 비교할 만한 가치도 있어 보여서 공개를 결정하였다. 이 작품은 원고지 세장에 종서(縱書)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시인 자신이 어느 매체에 투고하기 위해 청서(淸書)해둔 것으로 짐작된다. 그동안 필자는 신동엽문학관의 개관과 운영에 관여하면서 수많은 육필 자료들을 살펴봐왔는데, 그 결과 습작은 공책이나 금전출납부같이 큰 장부책, 혹은 그냥 백지에 끄적거려놓은 것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반면 매체에 발표하였거나 투고하려 했던 글들은 대개 원고지에 잘 청서되어 있었다. 그 점에서 이 시는 혹시 어느 매체에 실렸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투고용 청서 상태의 글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

 

신동엽의 시들을 자주, 그리고 자세히 눈여겨 살펴본 사람이라면, 같은 표현이나 구절들이 여러편의 작품에 걸쳐 반복되거나 변주되고 있음을 쉬이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마도 시인 자신이 젊은 날의 습작들을 훗날 가필하거나 수정하면서 의식/무의식적으로 그리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시인의 사후 전집이나 시집들이 거듭 출판되는 과정에서 선자(選者)들이 습작들 가운데서 가려 뽑아 추가하면서 발생한 오류 아닌 오류 때문에 그리됐을 수도 있다. 특히 장시 「금강」에는 서정단시로 발표된 작품들이 다수 녹아들어가 있다. 한 작품이 통째로 다른 작품에 포함된 경우도 있고, 거의 비슷한 표현들로 짜이거나 확대·개작되어 삽입된 경우도 있다. 전자의 예로는 「빛나는 눈동자」와 「산사(山死)」가 있는데, 이것들은 첫 시집 『아사녀』(문학사 1963)에 실린 작품으로서, 훗날 각각 「금강」 제3장과 제24장에 그대로 다시 등장한다. 후자에는 「종로5가」(1967.6)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69.5)가 있는바, 이 두편은 각각 「금강」과 비슷한 시기(1967.12)에, 혹은 그 이후에 유고1로 발표된 것이란 점에서 전자와 차별된다.

이번에 새로 발굴된 시 「우리가 본 하늘」(『현대문학』 1967년 9월호)도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 시는 행갈이와 몇군데 표기를 빼고는 「금강」의 ‘서화(序話) 2’와 사실상 똑같은 작품이다. 아마 「금강」을 공개하기 전에 그 일부를 골라 미리 발표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시 「종로5가」가 「금강」의 ‘후화(後話) 1’의 변주인 것과 비슷한 꼴이다.

제목에서 드러났듯 이 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첫 구절 “우리들은 하늘을/봤다”이다. “하늘을 봤다”라는 언술은 「금강」뿐만 아니라 신동엽 시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상징이자 관념이다. 그 언술은 곧바로 “1860년 4월 5일/기름 흐르는 신록의 감나무 그늘 아래서/수운은,/하늘을 봤다.”(「금강」 제2장, 『시전집』 108면)로 이어지는바, 동학의 1대 교주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사람은 한울님이니라/노비도 농사꾼도 천민도/사람은 한울님이니라//우리는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사니라/우리의 내부에 한울님이 살아 계시니라/우리의 밖에 있을 때 한울님은 바람,/우리는 각자 스스로 한울님을 깨달을 뿐,/아무에게도 옮기지 못하니라./모든 중생이여, 한울님 섬기듯 이웃 사람을 섬길지니라.”(「금강」 제4장, 『시전집』 116면)

수운의 시천주 사상은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에서는 사인여천(事人如天), 3대 교주 손병희에서는 인내천(人乃天)으로 발전하는 동학사상의 뿌리인데, 여기서 ‘하늘(天, 한울)’은 장시 「금강」의 전편을 지배하는 핵심 시어가 아닐 수 없다. 「금강」 제9장은 바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시전집』 137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데, 거기에는 주인공 신하늬의 각성과정이 그려져 있다. 하늘을 가리는 먹구름과 쇠항아리를 하늘로 잘못 알고 일생을 살아가는 필부들의 시야를 넘어서 ‘영원의 하늘, 구원의 하늘’을 본 하늬는 ‘외경’과 ‘연민’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전봉준을 만나 개벽(開闢)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신동엽문학관 전시실의 작품 해설에는, “역사를 짓눌던, 검은 구름짱을 찢고” 나타난 그 ‘하늘’은 ‘희망적 세계의 표상’2이라고 씌어 있다. 그 ‘하늘’이 상징하는 바가 희망적 세계이든 평화공동체이든, 아니면 혹자의 주장처럼 한국인의 ‘영성’을 가리키든3, 그것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도래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시인의 열망과 혁명에의 의지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본 하늘」에서도 신동엽은 1960년 4·19혁명과 1919년 3·1만세운동과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하나의 역사적 흐름 위에 놓고 있다. 이 세 사건을 한국사에서 다수의 사회정치적 약자인 ‘우리’, 곧 민중이 가부장적 독재정권, 일제 식민지 권력, 조선 봉건왕조에 맞서 싸웠던 천지개벽적인 거사, 즉 “잠깐 빛났던/(…)/영원의 하늘”(『시전집』 104면)로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민중혁명의 커다란 물줄기를 한국사의 정통성으로 보고자 하는 신동엽의 역사관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으리라.

장시 「금강」에서는 이후에도 “하늘을 보았다”라는 언술이 농민봉기 장면(제17장), 우금치 전투 장면(제20장), 시공을 건너뛰어 4·19혁명의 순간(제22장)마다 나타나지만, 가장 절정인 대목은 아무래도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이 교수(絞首)되기 전 남겼다는 말 한마디, “하늘을 보아라!”(「금강」 제23장, 『시전집』 308면)일 것이다. 절명의 순간에도 하늘을 보라고 한 혁명 지도자의 외침을 통해 시인은 죽음이 단지 패배가 아니라 또 새로운 싸움의 시작임을 암시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애초 장시 「금강」의 제목을 “하늘을 보아라”로 하려고 했다는 것4은 공연한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