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경욱

김경욱 金勁旭

1971년 광주 출생. 1993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 『위험한 독서』, 장편소설 『황금사과』 『천년의 왕국』 등이 있음. zen-22@hanmail.net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이 도시에서만 수백개의 수도계량기가 동파된 월요일 아침, 김형태는 부동산중개업소 유리문을 열려다 흠칫 굳어버렸다. 손잡이 부근에 구멍이 나고 잠금장치가 풀려 있었다. 구멍 주위에는 불에 그슬린 흔적이 역력했다. 김형태는 뒷걸음으로 물러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은성부동산. 김형태의 미간에 팬 골이 깊어졌다. 김형태는 문을 밀치고 황망히 사무실로 들어갔다. 책상 서랍을 여는 손길이 다급했다. 십만원권 자기앞수표 일곱장이 얌전히 포개져 있었다. 지난 금요일 성사시킨 건으로 받은 돈이었다. 은행 영업이 끝나 임시로 넣어둔 것이었다. 안도의 숨을 내쉰 뒤 김형태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18K금을 입힌 홀인원 기념 트로피도, 새로 들여놓은 LCD텔레비전도 제자리 그대로였다. 뒤진 흔적도 없었다.

김형태는 소파에 주저앉아 정면을 바라보았다. 벽이 휑했다. 동네 지적도와 인근 아파트단지 상세도가 걸렸던 자리였다. 김형태는 탁자 아래 선반에서 전화번호부를 꺼내 펼쳐본 뒤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곳은 경찰서가 아니라 열쇠가게였다. 열쇠장이를 부른 뒤 김형태는 사설경비업체의 경비구역임을 알리는 표찰을 문에서 떼어냈다. 근처 저택 주차장 문에서 몰래 뜯어온 것이었다.

 

이 도시에서만 수백개의 수도계량기가 동파된 월요일 아침, 강지선은 누구보다 먼저 교정에 들어섰다. 먼저 온 사람이 한명 있었다. 교장이었다. 교장은 날마다 가장 일찍 출근해 제일 늦게까지 남았다.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은 교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이었다. 겨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교무실로 가기 위해서는 교장실 앞을 지나쳐야 했다. 교장은 누가 언제 출근하는지 제 손금 보듯 훤했다.‘그 일’이 있은 후 강지선은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다. 교장보다 먼저 나오지는 않았다. 교장이 자신의 출근시간을 확인할 수 없을 테니까.

교장실 앞을 지나기 전 강지선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심호흡을 했다. 교장실 안쪽을 돌아보며 인사도 했다. 교장은 책상 앞에 꼿꼿이 앉아 신문을 활짝 펼쳐 읽고 있었다. 흰 면장갑을 낀 채. 교장은 돋보기 너머로 눈을 치떠 출입문 쪽을 일별하고 곧장 신문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교무실에서 나온 강지선은 텅 빈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도 심호흡을 해야 했다. 아이들이 가득 찬 교실에 들어서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이들의 게으른 눈빛에서 강지선은 종종 지옥을 보았다. 서른두명의 아이들은 서른두개의 지옥을 의미했다. 강지선은 이번 학년이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어 또다른 지옥을 맞닥뜨릴지라도. 시간은 지옥불조차 견디게 하니까. 누군가의 말대로 신은 인간을 채찍이 아니라 시간으로 다스리니까.

기간제 교사인 강지선의 수중에는 채찍이랄 것도 없었다. 강지선에게 허락된 시간은 본래 담임이 출산휴가에서 돌아올 때까지뿐이었다. 아이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르는 것이 없었다. 애들이 뭘 알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그애들의 부모다. 모든 죄악의 근원. 아이들은 제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다. 저희가 안다는 걸 모르더라도 아는 건 아는 것이다. 아이들은‘강지선 땜’이라고 불렀다.‘쌤’을 잘못 발음하는 줄 알았다. 아이들은 혀가 덜 여물었으니까.‘땜’이‘땜방’의 약자라는 사실을 강지선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교실 문 자물쇠가 뜯긴 것을 본 강지선의 눈이 커졌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 제 책상서랍부터 뒤져보았다. 애당초 값나가는 물건은 없었다. 학생신상카드가 사라졌다. 강지선은 자신에게 들이닥친 또 하나의 불행 앞에서 이를 악물었다. 누가 무엇 때문에 훔쳐갔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교장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가면 안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도시에서만 수백개의 수도계량기가 동파된 월요일 아침,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서 열쇠를 꺼내던 고만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열쇠구멍이 휑했다. 숟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고 구멍 가장자리는 불에 그슬려 거뭇거뭇했다. 고만석은 황급히 문을 밀고 들어갔다. 책상은 서랍이 열려 있었지만 캐비닛은 멀쩡했다. 고만석은 캐비닛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리고 문을 열었다. 위스키 세병, 금 거북 한개, 홍삼쎄트 세개, 씨거 한상자. 캐비닛에 보관해두었던 것은 모두 무사했다. 아파트 시공사와 인테리어업자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아파트 관리비 지출에 관한 서류도 멀쩡했다. 공개되면 곤란한 은밀한 장부까지.

재작년말 신규 입주한 새 아파트단지였지만 하자보수 민원이 꼬리를 물었다. 지하주차장 벽에 금이 갔고 욕실 천장에서 물이 듣는 집이 적지 않았다. 급기야 입주자대표회의가 꾸려졌고 한달 동안의 실랑이 끝에 시공사가 1년 동안 무상보수해주기로 했다. 무상보수 기간 내내 공사소음 잦을 날이 없었지만 여태 고쳐야 할 것이 수두룩했다. 관리비에 특별수선비 항목을 추가해야 했다. 입주민들은 입이 튀어나왔지만 고만석은 재미가 짭짤했다. 업자가 공사비 부풀리는 것을 눈감아주는 댓가를 톡톡히 챙겼다.

캐비닛을 닫은 후 고만석은 외투 안주머니에서 로또복권을 꺼냈다. 옆동네 편의점에 일부러 들러 산 것이었다. 일등 당첨자가 세번이나 나온 곳이었다. 새로 산 로또복권 번호로 캐비닛 비밀번호를 바꾸고 책상서랍을 정리했다. 입주민 주차스티커 발급대장이 보이지 않았다. 돈이 될 리 없는 물건이었다. 고만석은 서랍을 다시 샅샅이 뒤졌다. 사라진 게 돈 되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철저히 체크했다. 찾을 수 없었다. 고만석은 가져간 사람보다 가져간 이유가 더 궁금했다.

 

이 도시에서만 수백개의 수도계량기가 동파된 월요일 아침, 사내는 두 통의 전화를 걸었다. 먼저 전화를 넣은 곳은 퀵써비스 사무실이었다. 몸이 불편해 오늘은 쉬어야겠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아니, 몸은 늘 불편했다. 오후만 되면 다리가 퉁퉁 붓고 눈이 침침했다. 요즘은 대낮에도 눈앞이 어둑어둑할 때가 있었다. 며칠 전 마포대교를 건널 때였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했다. 스쿠터를 세우자 경적과 욕설이 쏟아졌다. 차가 밀리는 다리 위라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니 몸이 불편하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었다. 연말이라 가뜩이나 일손이 달리는 판에 당신까지 그러면 어쩌느냐는 푸념이 따가웠다. 오후에라도 나와줄 수 없느냐고 물어왔다. 사내는 어렵겠다고 대답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언제 끝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이 벌이는 일에 과연 끝이라는 게 있을까?‘끝’운운하는 자를 사내는 믿지 않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시작한 분의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두번째로 전화한 곳은 학교였다. 아이가 아파서 갈 수 없겠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아니, 계집애는 늘 아팠다. 천식을 앓았고 감기를 달고 살았다.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물어왔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사내는 답이라도 구하려는 것처럼 계집애 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계집애는 잔뜩 웅크린 채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바비인형을 꼭 쥐고. 재작년 크리스마스에 아들이 선물로 사준 것이었다. 사내는 계집애가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눈을 감았지만 깨어 있기도 했고 눈을 뜬 채 졸기도 했다. 의사는‘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말했다. 어려운 말이었다.‘피티에스디’라고도 했다. 역시 어려운 말이었다. 가운을 입은 자들은 말을 어렵게 했다. 상대가 제 말을 단박에 알아들으면 권위가 땅에 떨어질 것처럼.

‘외상’거래는 일절 안한다고 사내는 항변했다. 거짓말이었다. 계집애는 외상을 밥 먹듯 했다. 하루는 동네 슈퍼 여자가 사내를 불러 세우고 외상값은 언제 갚을 거냐고 다그쳤다. 무슨 소리냐고 사내가 반문하자 슈퍼 여자는 두툼한 공책을 들이댔다. 외상장부였다. 이틀에 한번 꼴로 거래내역이 적혀 있었다. 초코우유, 꿀맛 꽈배기, 가나안 초콜릿, 딸기맛 캐러멜, 알프스캔디…… 단것 일색이었다. 일찍이 괴멸을 맞은 세상에 창궐했던 죄악의 이름 같았다. 사내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든 사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던 아이였다. 아이에게 어찌 외상을 터주었느냐고 사내는 버럭 소리쳤고 엄마가 갚을 거라 했다며 슈퍼 여자는 언성을 높였다. 사내는 말문이 막혔다. 며느리는 아이를 낳고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본래 약골이었다. 사내가 보기에 계집은 앓기 위해 태어난 족속 같았다. 그날밤 사내는 한동안 입에 안 대던 소주를 한병 비웠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 아버지, 오늘은 좀 취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아이에게 마귀가 들러붙은 것 같습니다.

 

사내는 전화를 끊고 계집애의 어깨를 흔들어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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