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신자유주의, 바로 알고 대안 찾기

 

신자유주의와 대안체제

복지국가혁명을 위하여

 

정승일 鄭勝日

‘복지국가 Society’ 정책위원. 주요 저서로 『쾌도난마 한국경제』(공저)가 있음. sijeong11@hanafos.com

 

 

87년 6월항쟁 20주년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10년을 맞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경제사회적 문제에 대해 개혁진보진영 내에서 나름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다음의 다섯가지 정도이다. 그것은 각각‘생태·평화 사회민주주의론’(조희연 등)‘노동중심 통일경제연방론’(손석춘 등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사회연대국가론’(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사회투자국가론’(유시민 김연명 양재진 등)‘신진보주의국가론’(이일영 정건화 조형제 등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이다. 이 글에서는 이들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함께 새로운 진보대안으로서‘복지국가혁명론’을 제시하고자 한다.1

 

 

신자유주의와 현 위기의 원인 진단

 

앞의 다섯가지 입장은 신자유주의와 관련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는 데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 먼저 생태·평화 사회민주주의론과 노동중심 통일경제연방론 그리고 사회연대국가론은 모두 현 위기의 원인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시장개방, 시장개혁에서 찾고 있으며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태도를 분명히한다. 가령 이들 세 입장 모두 주주자본주의와 한미FTA를 거부한다.

이에 반해 사회투자국가론은 지난 10년간의‘시장개혁’이 거둔 성과를 대부분 수용하며 사회양극화 등 현 위기의 원인을 IT기술이 야기한 일자리 축소 등 기술결정론적 요인과 인구고령화 같은 다른 점들에서 찾고 있으며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긍정성, 가령 주주자본주의와 한미FTA의 긍정성에 주목한다.

한편 신진보주의국가론은 이런 점들에 관해 절묘한 균형(?)을 취하는데, 재벌개혁과 금융개혁 등 신자유주의적 시장개혁의 긍정성을 대부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그것과 결부된 노동시장 유연화와 공기업 민영화나 그것이 초래한 단기주의 전략의 횡행과 고용의 질 저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또한‘능동적 세계화’를 주문하면서도 한미FTA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경제사회적 대안모델의 방향

 

이렇듯 다섯가지 입장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적 방향에 관해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조희연(曺喜昖) 등의 생태·평화 사회민주주의 국가론은 유럽형 사회민주주의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사회민주주의를 “국가주의와 성장주의의 한계에 갇혀 좌초한 20세기형 사회민주주의”로 규정하며 “생태·평화주의를 접목한 더욱 이상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를 우리 사회 진보의 대안으로 내놓는다. 하지만 과연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국가주의와 성장주의 때문에 좌초했는지는 의문이다. 먼저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1990년대 초반에 발생한 복지국가의 위기는, 1980년대 중후반 이들 나라에서 진행된 금융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적 금융개혁과 그로 인한 금융위기 때문이었지 국가주의 때문은 아니었다. 더구나 북유럽만이 아니라 독일, 프랑스, 심지어 영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도 전통적으로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을 추구해온 점을 고려할 때 유럽 사회민주주의가 성장주의의 한계에 갇혀 좌초했다는 지적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생태 및 평화의 가치는 이미 40년 전의 68혁명 이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좌파, 즉 북유럽의 집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독일 프랑스 이딸리아 영국 등의 사회민주주의 좌파의 핵심 아젠다로 자리잡아왔으므로 세계사적으로 별로 새로운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이에 비해 손석춘(孫錫春) 등‘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의 노동중심 통일경제연방론은 서구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인데, 왜냐하면 그것 역시 노동주도성 원칙이 소실된 기존의 자본주의체제와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사연은 IT기술의 가능성에 크게 주목하면서 현대적 IT기술을 통해‘경제의 지식기반화’와‘노동력의 지식노동자화’가 새로운 경제체제, 즉‘(지식)노동주도 경제’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새사연은 현대적 IT기술과 접목된 노동주도 경제야말로 지금까지의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 나아가 사회민주주의체제도 뛰어넘는 획기적인 체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IT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결부된 1990년대 말의 IT산업버블과 벤처버블 그리고 과장된 신지식인론 등의 폐해를 고려할 때, 그리고 IT기술과 결합된 오늘날의 금융세계화와 탈숙련 비정규직의 급증 등을 고려할 때, 새사연의‘(지식)노동주도 경제론’은 아직 미해결의 과제들을 많이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진보정치연구소가 제시한 사회연대국가론은 교육복지와 숙련·지식노동자화를 통한 하이로드(high road)형 성장전략, 노동자 경영참여 등 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의 복지정책과 노동정책을 대부분 수용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당강령 차원에서 자본주의 배격과 사회주의 도입을 천명하고 서구형 사회민주주의 역시 자본주의와의 타협이라며 거부해왔다는 점을 상기할 때,‘사회연대국가’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뜻하는지 아니면 사회주의 국가를 말하는 건지는 모호하다.2

이 세가지 입장이 서구 사회민주주의보다 더 좌파적인(?) 혹은 더욱 반시장적인 대안모델을 지향하고 있는 데 반하여, 사회투자국가론과 신진보주의국가론은 서구 사회민주주의보다 더 우파적인 혹은 더욱 친시장적인 대안모델을 모색한다.3 이 두 입장의 주창자들은 대체로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가 주장한 이른바 ‘제3의 길’사상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회투자국가론과 신진보주의국가론의 경제사상과 노동·복지사상 양쪽에서 다 관찰되는데, 먼저 두 모델 모두 지난 10년간 추진되어온 금융개혁과 기업지배구조 개혁 등 금융 및 기업 관련 개혁의 긍정적 성과를 인정한다. 이는 1990년대에 집권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 노동당이 마거릿 새처 보수당에 의해 80년대에 추진된‘금융빅뱅’의 성과를 전면 수용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전통적인 케인즈형 복지국가를 거부하고 실직자 직업훈련 등 스웨덴식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요소들을 도입하면서‘생산적 복지’를 주장했던 블레어의 노동당과 마찬가지로, 두 대안모델 공히 국가의 교육투자 등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와 지역혁신클러스터 같은 정책을 강조한다. 특히 신진보주의국가론의 주창자들은 한반도경제 및 동북아경제 구상 등의 지역경제 구상과 함께, 지역혁신클러스터 같은 지방균형발전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하지만 사회투자국가론과 신진보주의국가론은‘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표현되는 베버리지-케인즈형 복지국가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영국형 제3의 길에 대한 높은 관심에 대비되는 북유럽형 복지국가(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무관심 혹은 비판적 태도는 두 모델 모두에서 관찰되는 공통점이다.

이렇듯 사회투자국가론과 신진보주의국가론은 주요 논점들에서 매우 큰 상호친화성을 보여주지만 서로 다른 점들도 많다. 논

  1. 이 글은 필자도 참여하고 있는‘복지국가 Society’정책위원회가 저술한 『복지국가혁명』(밈 2007)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이 글의 후반부는 그 책에 실린 좌담‘왜 복지국가혁명인가’와 조원희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의 추천사를 대폭 인용한 것이다.
  2.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가 주창한‘사회연대국가’구상과는 별도로, 민노당의 권영길 심상정 노회찬 후보는 각각 독자적인 미래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특징적인 것은 권영길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사실상 신진보주의국가론 주창자들의 남북평화경제론 및 동북아경제론 그리고 지역혁신클러스터론과 매우 유사한 정책들을 핵심전략으로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신진보주의국가론자들이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조차 완곡히 거부하는 모습을 고려할 때 민노당도 실은 사회연대국가(복지국가)에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3. 따라서 다섯가지 입장 중 어떤 것도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모델을 그 자체로서 우리 사회의 진보적 대안으로 모색하기를 거부한다.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