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신자유주의와 중국 지식인의 대응

동아시아 연대를 위하여

 

 

왕 후이

한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 교수, 문학연구소 연구원

이욱연

영동대학교 외국어학부 교수, 중국문학

 

 

때: 2000년 9월 28일

곳: 창작과비평사 회의실

 

110-336

 

이욱연  먼저, 서울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처음으로 한국에 온 소감이 어떠신지요. 물론 온 지 며칠 되지 않았고, 게다가 매일 회의와 인터뷰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왕 후이 선생은 중국 지식인들 중에서도 한국 지식인들과의 교류가 비교적 활발한 편이고, 한국 지식인의 상황이나 한국 현실 등에 대해서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더구나 그동안 몇차례 방한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되기도 했었고요.

왕후이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두 가지 일 때문입니다. 하나는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국제적 잡지와 관련한 일들을 논의하기 위해서이고, 하나는 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다보니 백낙청 선생을 비롯하여 각국의 지인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전체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제는 잠시 틈을 내 전쟁기념관과 남산의 서울타워에 갔고, 어제는 「의형제」라는 연극을 보았는데, 그중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제가 어려서부터 배우고 익히 들어왔던 것과 매우 다른 해석, 다른 서사를 접한 점이 의미 있었습니다. 한강만 해도 내 기억 속의 한강은 어렸을 때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의용군들이 쓴 참전수기에 나오던 것입니다. 첫 방문이지만, 그동안 한국 친구들로부터 한국에 대해 익히 들어왔기 때문인지 그리 낯설지는 않아요.

 

 

중국 지식인사회의 분화: 신자유주의자와 비판적 지식인 그룹

 

이욱연  한국 방문은 처음이지만 『창작과비평』과는 이미 구면인 셈이죠? 『창작과비평』 1994년 겨울호에 「중국사회주의와 근대성 문제」라는 글이 실렸고, 그 글은 그동안 미국과 일본·대만·홍콩 등 각국의 주요 잡지에 전재되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지요. 중국에서는 4년이 지난 뒤에야 발표될 수 있었지만, 그 글이 발표된 뒤 이른바 신좌파와 자유주의 지식인들 사이의 논쟁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는 등 왕선생 자신의 표현대로 글 한편이 그야말로 ‘사건’이 되어버렸는데요. 그 글이 중국 지식인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그 글로 인해 여러가지 변화를 겪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루 쉰(魯迅) 연구자, 문학 연구자로서의 신분에 변화가 있었던 점도 그중 하나일 테죠? 물론 이번에는 문학평론가 신분으로 오긴 했지만 말이죠.

 

汪暉 중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화 과정에서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민중의 일상생활  영역에까지 민주주의가 확장되지 않는다면 결국  특정 세력이 이를 지배할 것입니다. 1959년 양져우(揚州)생. 1988년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 졸업.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 교수 및 문학연구소 연구원, 『뚜슈』 주간. 주요 논저로 『절망에 대한 반항─루 쉰 및 그 문학세계』 『왕후이 자선집』 등이 있음.

汪暉
중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화 과정에서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민중의 일상생활 영역에까지 민주주의가 확장되지 않는다면 결국 특정 세력이 이를 지배할 것입니다.

 

1959년 양져우(揚州)생. 1988년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 졸업.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 교수 및 문학연구소 연구원, 『뚜슈』 주간. 주요 논저로 『절망에 대한 반항─루 쉰 및 그 문학세계』 『왕후이 자선집』 등이 있음.

 

왕후이  그 점에 관해서는 먼저 그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제공해준 『창작과비평』에 감사를 표해야겠습니다. 이전부터, 그리고 6·4 톈안먼(天安門)운동을 겪은 뒤부터는 더욱더 중국의 현실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내 주요 연구분야는 청말(淸末)과 중화민국 초기의 사상사였습니다. 때문에 중국 당대 현실에 관한 연구는 극히 적었는데, 8,90년대 문제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근대성의 각도에서 중국현대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를 검토한 그 글이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지요. 그 글이 근대성에 관한 토론을 촉발시키는 한 계기가 되었고, 나도 거기에 직접 참여하여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토론은 지금도 진행중이고요.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에 중국 지식인들은 세계화에 극단적인 환상을 지니고 있었는데, 금융위기를 겪고 난 뒤 그런 환상이 무너졌거나 적어도 타격은 받았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내 글을 둘러싼 토론은 세계화 문제를 포함하여 중국이 직면해 있는 문제를 다시금 사고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내 개인적으로도 물론 그렇구요.

이욱연  90년대 중국의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지식인 대오의 분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글로 인해 본격화된 이른바 자유주의와 신좌파 사이의 논쟁이 그같은 분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80년대 중국 지식인들이 반문화대혁명·반봉건이라는 점에서 일치된 사상적 대오를 이루었지만, 1989년 6·4 톈안먼사태 이후, 즉 개혁·개방의 제2기라 할 이른바 ‘포스트 신시기’에 이르러 시장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경제적 이해관계 그리고 중국사회의 변혁 전망과 중국 현실에 대한 인식 등과 관련하여 중요한 분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해 왕선생이 현재 중국 지식인사회를 자유주의와 신좌파의 대립구도로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을 보았는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중국적 상황에 대해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대립이 이미 현실로 존재하는만큼, 그러한 대립과 모순을 확인하고, 그것들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일이 오히려 더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것이죠. 최근 들어 왕선생이 쓴 글들을 보면 자유주의와 신좌파라는 구도보다는 신자유주의자와 비판적 지식인 그룹이라는 구도를 설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李旭淵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거의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국적 차원의 저항은  물론 전지구적 차원의 저항, 구체적으로는 동아시아 연대가 한층 강화되어야 합니다.

李旭淵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거의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국적 차원의 저항은 물론 전지구적 차원의 저항, 구체적으로는 동아시아 연대가 한층 강화되어야 합니다.

 

1963년생. 고려대 중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현재 영동대학교 외국어학부 교수, 중국문학 전공. 주요 논저로 「노신의 소설 창작과 기억의 서사」 「중국 지식인사회의 새로운 동향─‘신좌파’를 중심으로」 등이 있음.

 

왕후이  저는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와 신좌파라는 이원대립으로 중국 지식인사회를 묘사하는 데 반대합니다. 그들이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데 동의하지 않는 겁니다. 중국에는 많은 비판적 지식인들이 있지만, 그들 모두를 신좌파라 칭한다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욱연  비판적 지식인이란 급진적 자유주의자를 말하는 건가요?

왕후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자유주의의 우익이 신자유주의자들이고, 자유주의의 좌익을 신좌파 혹은 비판적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허 칭롄(何淸漣)도, 저는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유주의 좌파와 자유주의 우파, 즉 신자유주의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죠. 사회운동 혹은 사상투쟁의 측면에서 볼 때 비판적 지식인들이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녔는데, 그들 중에는 좌익이론을 지닌 사람도 있고, 계몽적 지식인도 있고, 자신을 자유주의자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중국에서 자유주의가 정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