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사회, 대안은 있다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 국가와 생활정치

 

 

김현미 金賢美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저서로 『글로벌시대의 문화번역』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공저) 『“근대”, 여성이 가지 않은 길』(공저) 등이 있음. hmkim2@yonsei.ac.kr

 

 

1. 들어가며

 

우리는 2008년 여름의 촛불시위를 분석하는 많은 글들을 통해‘생활정치’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김호기는 촛불시위가 제도정치나 대의정치와는 달리 참여에 기반한 생활정치로의 이동을 보여준 사건이라 규정했고,1 홍성태는 온갖 문명의 위험에 포위된‘위험사회’상황에서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이 분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2 촛불시위는 이러한 의미에서 생태위기와 이에 대한 불안을 표현했던 생활정치가 본격화된 것이고, 생태적 차원의 민주주의의 심화를 촉구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과 불안이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것을 알게 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이에 대항하려는 사람들을 결집시켰다. 여기서 생활정치는 인간의 근원적 가치인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치를 의미한다. 정태석은 생활정치의 확산이 소비사회의 도래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3 소비, 문화, 여가생활이 점차 일상적 삶과 정체성이 형성되는 중심적인 공간으로 자리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생태환경 문제와 먹을거리의 불안이 심화되자 사람들은 삶의 질에 관심을 갖고 연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태석은 이에 근거하여 생활정치가‘노동자-시민’보다‘소비자-시민’이 중심적 주체가 되는 정치라는 점을 지적한다.

한편 이기호에 따르면 생활정치는 지금까지 가족이나 개인이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요구되어온 사적 영역 내부의 미세한 지점들을 공동의 관심사로 복원시키는 것이다.4 즉 생활정치는 사적 공간에 갇혀 있는 개인들이 광장으로 나와 공동체성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에 대화와 협력의 채널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과 자기 삶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므로 기존의 민중·민주운동 같은 조직운동과 구별된다. 따라서 생활정치의 주요한 행위자는‘시민’이며, 이때 시민은 얼마간 삶의 안정성을 획득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또한 시민 개개인의‘헌신’과‘자발성’을 지향하는 과정적 운동이기 때문에 기존의 운동조직에 의해 주도되지 않는다.

촛불시위를 분석한 많은 학자와 운동가들은 100만 이상의 시민이 참여한‘광장의 생활정치’를 한국 시민사회의 성장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후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무엇을 목격하고 있는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강화되어온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이명박정부 집권 이후 더욱 강력한 집행과 체현을 위한 다양한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와,‘강력한’집권자에 의존하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결합된 현재의 통치체제는 엇갈린 시간대가 어정쩡한 상태로 겹쳐진 것 같다. “좌편향”이란 레토릭으로 근원을 알 수 없는 구시대적 편가르기를 강화하면서 시민사회의‘문화적 피로감’을 누적시키고 있다. 또한 정치적 의사표현이나 시위에 대한 소송이 급증하면서‘표현의 공포’가 일어나고 있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군사작전들을 통해 경제적 주변자들을 몰아내고 억압하는 물리적 폭력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러한 통치체제는 한국사회가 오랫동안 투쟁하여 만들어낸 탈냉전, 민주주의, 인권, 시민사회의 공동체적 아젠다를 위협하면서 우리의 일상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물리적, 경제적, 문화적, 상징적 폭력들 앞에서 생활정치의 상상력을 갖기란 힘든 일이다. 국가가 휘두르는 공포감 조성전술이 활발하면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거나 위축된 개인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생활정치는 공공적 이익을 함께 만들어낸다는 신념을 가진 민주적이고 소통지향적인 개인의 자발성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대적 맥락은 생활정치의 발현에 매우 위협적인 환경이다. 또한‘생존권을 넘어선’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이라는 생활정치의 신(新)중산층적 계급성도 점차‘허위적인 신화’가 되고 있다. 삶 자체가‘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계층적‘몰락’을 경험하고 있다. 고용 불안정과 예측 불가능한 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일상생활이 곧 삶의 지속과 멈춤이라는‘죽고 사는’문제로 환원되기 쉽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라 불리는 이러한 새로운 통치질서하에서 생활정치를 어떻게 상상해야 하는가? 이 글은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논리와 권위주의적 가부장제의 문화논리가 결합된 통치질서하에서 생활정치의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활정치는 중산층 중심의 시민운동이라는 편협한 정의에서 벗어나‘인간의 삶 능력’을 증진하는 운동이라는 광의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 생활정치의 가능성과 그 구현을 위협하는 조건들,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문화적 상상력은 무엇인지 탐색하고자 한다.

 

 

2. 정치적 자유와 지불능력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장공관 앞에서 욕설을 퍼부으며 시위를 벌이던 상가 철거민 등을 상대로 낸 가처분신청에서 1회 위반당 50만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법원 결정이 내려진 이후 시장공관 앞 철거민 시위는 사라졌다. (조선일보 2008.8.25)

 

소위‘불법’시위자들에게‘배상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간접강제제도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은 촛불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광우병국민대책위 등을 상대로 3억 3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시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집단소송법’도 추진되고 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1800여개 시민단체는‘불법폭력시위에 참여한 관련단체’로 규정되었고, 이들에 대한 정부 보조금의 지급을 제한하라는 문서가 발견됐다. 금년에 보조금을 받은 단체들은 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각서’를 써야 했다.

이런 변화들은 재력에 따라 정치적 권한이 부여되는‘금권정치적’지배가 한국에서 현실화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예전에도 금권정치라는 말은 심심찮게 사용되었다. 정경유착이나 재벌비리, 부패정치를 비판할 때 쓰던 용어였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자리잡게 된 노무현정부 이후 이명박정부에 이르기까지 기업친화적, 시장중심적 공기업 민영화 정책과 사교육을 부추기는 정책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왔지만, 최근 등장하고 있는 금권정치는 정치적 의사표현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르다. 비판세력을 제압하는 새로운 통치방식으로 등장한 금권정치는 모든 정치적 이견과 대립을 소송으로 해결한다. 촛불시위 관련 소송의 당사자는 대통령을 비롯한 공공기관과 상가 주인들이 원고이고, 시위참여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피고이다. 이명박정부 집권 이후 강화된‘법치’라는 이름의 통치성의 핵심은 정치적 자유와 지불능력의 유무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재력에 따라 국민을 분리하여 위계적으로 범주화하고 그에 맞게 정치적 자유의 허용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한국만의 고유한 현상이 아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세계자본주의의 중심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부와 정치적 자유를 효과적으로 연결해왔다. 하비(D. Harvey)는 신자유주의가 대중적 동의를 얻게 된 것은‘개인의 자유’라는 슬로건이 관료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개인들에게 매력적인 언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5 신자유주의의 문화이데올로기는 이처럼 선택의 자유, 정부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자유,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추구할 자유를 강조함으로써 역사상의 다른 어떤 시기보다‘개인’의 자유를 역설해왔다. 그러나 여기서 호명되는 개인은 보편적인 휴머니즘에 근거하여

  1. 김호기 「촛불집회, 거리의 정치, 제도의 정치」, 경향신문 외 주최‘촛불집회와 한국 민주주의’제1차 토론회 자료집, 2008.6.16.
  2. 홍성태 「촛불집회와 민주주의」, 『경제와사회』 2008년 겨울호 10~39면.
  3. 정태석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에서 사회구조적 변화 읽기」, 『경제와사회』 2009년 봄호 251~72면.
  4. 이기호 「생활정치의 관점에서 본 한일간 시민운동의 비교연구」, 『시민사회와 NGO』 2003년 상반기호 173~264면.
  5. 데이비드 하비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 최병두 옮김, 한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