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신자유주의 대안 구현의 정치제도적 조건

 

 

최태욱 崔兌旭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저서로 『세계화시대의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경제』 『정부개혁의 5가지 방향』(공저) 『한국형 개방전략』(편저) 등이 있음. eacommunity@hallym.ac.kr

 

 

『창작과비평』 2007년 가을호(이하 지난호) 특집은‘신자유주의, 바로 알고 대안 찾기’였다. 그 “특집을 주의깊게 읽은 독자라면 신자유주의는 결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아니며 그것의 문제는 대안모델을 통해 극복해갈 수 있다는 메씨지에 공감”했을 것이다.1 또한 분단체제라는 불안정 상황을 감안하면 대안모델에는 반드시 수직적 및 수평적 분업관계 구축 등을 통한 남북경제의 연계발전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에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의문이 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대안모델의 실현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이 생겼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의문은 아마도 다음 두가지 중 어느 하나와 관련돼 있을 것이다.

첫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현상황에서 한국 혹은 한반도 수준만의 독자적 대안모델 채택과 그 실현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다시 말해서 상대적 약소국인 한국이 일국경제나 민족경제 방식만으로 특히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센 압력을 버텨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복지와 사회적 연대 등을 강조하는 대안모델이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제도, 규범, 정책 등으로 구성되는 체계적인 사회경제적 구조가 먼저 (혹은 적어도 병행하여) 한국 그리고 더 나아가 한반도에 구축돼야 한다. 그런데 취약하기 마련인 일국적 대응으로는 예컨대 한미FTA등을 통한 경제 및 사회 영역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침투를 막아내기 어렵고, 따라서 대안모델을 위한 기반 구축 자체부터가 지난한 과제이기 십상이다. 지역주의적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유럽 국가들이 그러해왔던 것처럼 그리고 중남미 국가들이 현재 추진하고 있듯이, 남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도 공동체적 연대를 통하여 자신들의 대응능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대안모델은 의당 지역공동체 형성을 시야에 넣은 것이어야 한다.

두번째 의문은 첫번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아무리 대안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리하여 거기에 국내는 물론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 차원의 해법까지 포함돼 있다 할지라도, 현실에서 그 실천을 누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추진해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번째 의문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는 것은 결코 그 중요성이 덜해서가 아니다. 다만 지면의 제약을 고려할 때 좀더 근본적인 의문을 우선 다루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 정당정치 활성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미리 밝힐 점이 있다. 여기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신자유주의의 대안모델들이 시장경제를 부정하거나 세계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들은 아니란 점이다. 즉 시장경제체제의 발전과 세계화의 흐름은 긍정적 측면이 존재하는 엄연한 대세로 인정하되, 다만 그것들이 신자유주의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경계하는, 따라서 그 방지책을 제시하는 모델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논의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유럽식 사민주의 모델도 포함된다. 이에 대해선 약간의 추가설명이 필요하다.

초기의 사민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체제로서 사회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혁명에 의한 자본주의 전복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개혁을 통한 점진적 사회주의 건설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맑스-레닌주의와 구별될 뿐이었다. 그러나 전후 서유럽 사민주의는 이러한 수정주의적 태도마저 점차 버리게 된다. 이른바‘신사민주의’의 등장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핵심요소인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시장 경쟁을 인정하고, 다만 조세 및 복지정책 등에 의한 재분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약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함으로써 사회적 정의와 연대를 지켜가고자 하는‘(자본주의)체제내’모델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민주의는 이제 사회주의 이념에서 사실상 벗어난 것이며 자본주의를 타도가 아닌 “교정(correction)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체제내의‘충성된 반대자’(loyal opposition)”로 진화한 것이다.2 그렇다면 신정완(辛貞玩)의 지적대로 “현재의 사민주의는 사회주의 우파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유주의 좌파에 가까운 이념”으로 봐야 한다.3

유럽식 사민주의를 포함한 신자유주의 대안모델들의 공통된 주장은 한국형 혹은 한반도형 조정시장경제체제를 갖추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영미식 자유시장경제체제로 갈 경우 그‘자유시장’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양극화 심화나 비정규직 급증 등의 문제는 우리에게 특히 매우 심각한 사회통합의 위기로 다가올 것이며, 따라서 방임시장이 아닌 우리 나름의‘조정시장’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4 대안모델들이 강조하는 분배와 사회복지 수준의 제고, 중소기업 중심의 부품 및 소재산업 육성, 사회써비스부문 강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나 평생교육제도 등을 통한 노동의 유연안정성 확보 및 혁신주도형 혹은 지식기반형 경제로의 전환, 그리고 국가연합의 틀을 전제로 한 남북한경제의 선순환관계 창출 등은 모두 국가의 적절한 개입과 조정을 전제로 하는 처방들이다. 즉 대안모델들은 공히 시장조정자로서의 국가의 역할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우리의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국가가 시장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헌법 제9장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경제조항들과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천명한 헌법 제23조 2항 등도 공공의 복지와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가 시장과 자본의 자유를 일정부분 조정하고 제한할 수 있다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정신을 담고 있다. 결국 우리 헌법은 조정시장경제체제를 한국이 선택할 자본주의 유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다. 시장 조정의 주체로서 대안모델이나 헌법이 지시하고 있는‘국가’라는 것의 실체는 집권정당이란 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가의 역할은 정권을 잡은 정당이 수행한다. 현재의 집권당이 정권을 놓치면‘국가’는 다른 정당에 넘어간다. 지난호에서 정승일(鄭勝日)은 “복지를‘정책’의 차원(즉 사회복지정책)에서‘국가체제’의 차원(즉 복지국가)으로 격상”5시키는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혁명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그 복지국가혁명의 주체도 실상은 국가가 아닌 정당임을 명심해야 한다. 요컨대 시장 조정은 사실상 집권당에 기대해야 할 기능이란 것이다. 아무리 좋은 처방을 내놓을지라도 집권정당에 그것을 실현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면, 모든 대안모델은 그저 종이 위의 구상으로만 남을 뿐이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적 정당정치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과연 한국형 조정시장체제를 구축해갈 의지와 능력을 지닌 정당을 갖고 있는가?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한국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정도 발전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한심한 수준에 있다. 헌법이 당부하고 있는 “경제의 민주화”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아직 적당한 시장조정기제를 작동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무엇보다 그것을 가능케 할 이념 및 정책 정당들이 없거나 있더라도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한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들은 군소정당에 불과한 민주노동당 외에는 모두 기본적으로 정책이나 이념적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인물 혹은 지역 중심의 선거전문 정당들이다. 지역 기반이 튼튼하거나 대중적 인기가 상당한 인물을 확보하고 있으면 선거정치에서 충분히 유리하다고 믿는 이들 정당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시장조정기제 마련에 큰 노력을 기울일 인쎈티브가 애초부터 약하다. 결국 지금 같은 정당구조로는 한국의 경제민주화는 앞으로도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혹자는 대통령의

  1. 지난호 특집, 졸고 「기획의 말」에서 인용.
  2. 고세훈 「세계화와 블레어 노동당의 사민주의」,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엮음 『세계화와 사회민주주의』, 사회와 연대 2002, 134면.
  3. 신정완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한국사회에서의 착근 가능성」, 참여사회연구소 발제문, 2005년 10월.
  4.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의 유형에 대해서는, 졸고 「한미FTA와 한국형 개방발전모델 모색」, 『창작과비평』 2007년 봄호 참조.
  5. 정승일 「신자유주의와 대안체제」, 1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