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신자유주의, 바로 알고 대안 찾기
신자유주의, 세계화, 한국경제
유종일 柳鍾一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제학. 저서 External Liberalization in Asia, Post–Socialist Europe, and Brazil(공저), 논문 「노사관계 변화의 정치경제학」 등이 있음. jyou@kdischool.ac.kr<
1. 신자유주의 논란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이르렀고 주가는 2,000을 돌파하기까지 했는데도 경제현실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불만이다. 불과 몇해 전만 해도 꿈같이 여겨지던 수치들이 현실화되었는데 말이다. 그 까닭은 양극화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어 총량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서민대중의 삶은 쪼들려만 간다. 최근 발생한 이랜드 농성사태에서 보듯이 고용불안 또한 서민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그렇다고 경제성장이 잘되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수년째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기업들도 부활한 일본경제와 맹렬하게 추격해오는 중국경제 사이에 낀‘쌘드위치 신세’를 호소하며 힘겨워한다.
그래서 좌우를 막론하고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기는‘잃어버린 10년’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소위 민주화정권 혹은 개혁정권이라는 이들 정부를 거치면서 조세부담과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복지지출이 증가했으며 재벌규제가 강화되는 등 경제정책이 포퓰리즘, 심지어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띤 탓에 경제가 활력을 잃고 성장이 둔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일자리 창출이 저조하고 양극화도 심화되었다는 게 우파의 진단이다. 좌파의 시각은 정반대다. IMF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정부는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격인 IMF의 요구에 충실히 따라서 개방을 가속화하고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민영화정책 등에서 약간의 궤도수정은 있었지만 노무현정부도 대체로 동일한 정책기조를 유지했고 한미FTA추진에서 나타난 것처럼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더욱 강화했다고 본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되었음은 물론 외국자본의 공세 앞에서 기업투자가 위축되고 성장의 침체까지 야기되었다는 게 좌파의 시각이다.
과연 누구의 얘기가 더 정확한 것인가? 과거 10년간의 경제정책을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것이 성장동력 약화와 분배악화의 근본원인인가? 세계화시대에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견해는 타당한가? 신자유주의의 미래는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들에 답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크게 세갈래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먼저 신자유주의란 무엇인지 개념 규정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흔히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기능을 확대하는 정책을 무조건 싸잡아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스웨덴, 독일, 프랑스 등 사회민주주의적 경제정책을 추구해온 유럽국가들에서 우파가 정권을 잡게 되자 이를 신자유주의의 승리로 보는 시각이 대두했다. 하지만 경쟁과 시장의 역할을 조금만 강화하거나 복지를 조금만 축소해도 이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면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신자유주의의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신자유주의가 서구에서 등장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 성격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관련성을 살펴보고, 이러한 현상들의 미래전망을 논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특히 80년대 후반부터 급속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 양자를 거의 동일시하거나 둘이 반드시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사실 신자유주의는 급진적인 개방을 추구하기 때문에 세계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세계화가 필연적으로 신자유주의와 결합되는 것은 아니며 꼭 신자유주의를 촉진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세계화는 우여곡절은 있을지라도 분명 계속해서 진전될 것임에 반해, 신자유주의는 이미 생명력을 소진해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세계화에 대응하는 자세도 이러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경제에서 신자유주의가 차지하는 의미를 짚어볼 것이다. 우리가 10년 전에 겪었던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는 과연 신자유주의로 인한 것인가? 위기 이후 추진된 경제개혁은 과연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나? 분배를 강조한 노무현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떠한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개혁정책을 단순히 신자유주의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음과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이 결코 무시할 수 없이 세를 더해가고 있음을 지적할 것이다. 시장의 왜곡을 시정하고자 하는 개혁정책이 시장의 과잉을 낳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그 본질이 퇴색되고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2.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란 시장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전제로 시장이 경제문제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문제에서도 최선의 대안이라는 시장만능주의 혹은 시장근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현대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장만능주의적 사조는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 시대에 등장한 자유방임주의를 비롯해서 하이에크(F.A. Hayek) 등 오스트리아학파의 전통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로 재등장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주요 정책아젠다는 규제완화와 개방을 통해 무역·투자·금융을 비롯해서 기업활동을 자유화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축소하는 것과, 거시정책에서 인플레 통제를 우선시하는 통화정책과 건전재정주의를 내세운 재정정책, 그리고 복지 및 노동보호 정책을 축소함으로써 경제규율을 강화하는 것이다.
원래 2차대전 이후 서구의 경제정책 사조는 국가의 경제개입을 중시하는 케인즈주의가 지배했다. 매우 보수적인 미국 대통령으로 여겨지는 닉슨조차 “우린 모두 케인즈주의자야”라고 했던 것처럼 좌우를 막론하고 대체적으로 케인즈주의에 공감했다. 케인즈주의는 경기변동에 대처하는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주장했고, 따라서 금본위제 같은 상품화폐제도와 달리 신축적 통화공급이 가능한 신용화폐를 당연시했으며, 국가간 자본이동을 포함하여 투기적인 거래에 부정적이었다. 1930년대의 대공황을 겪으면서 과거의 정통이 부정된 것이다. 정치적인 지형의 변화 또한 케인즈주의적 정책과 잘 맞아떨어졌다. 대중민주주의의 확산과 노동자들의 발언권 강화는 완전고용을 중요한 국가목표로 정착시켰고 복지국가의 팽창을 불러왔는데, 이는 케인즈주의의 총수요 관리정책과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가 경제정책의 지배적인 사조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다. 1980년 영국의 새처 수상과 1981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의 집권이 이러한 변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나, 실제 정책변화의 결정적인 계기는 1979년 가을 미국 연방준비은행 이사장에 폴 보커(Paul A. Volker)가 취임한 후 소위 통화주의(monetarism)에 입각한 금융통화정책을 실시한 것이었다. 인플레이션과 달러화 약세를 반전시키고자 통화팽창을 강력히 억제한 결과 이자율이 천정부지로 솟았고, 이것이 80년대 초의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외채위기를 초래했다. 경제의 확장보다는 규율을 중시하는 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통화주의 거시경제정책은 규제완화, 민영화 등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축소하는 미시경제정책들과 결합하여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발전했다.
80년대에는 영국, 미국, 뉴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