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촛점 │ (속) 팔레스타인 노트

 

실패에 이르는 길

 

 

토니 저트 Tony Judt

미국 뉴욕대학 역사학과 교수, 유럽사. 저서로는 『맑스주의와 프랑스 좌파』 『거대한 환상: 유럽에 관한 에쎄이』 『응보의 유럽 정치: 2차 세계대전과 그 후과』 등이 있으며, 『뉴욕 서평』(The New York Review of Books)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 등을 통해 우리 시대의 민감한 주제들에 관한 글을 활발히 발표하고 있음. 이 글은 2002년 5월 9일자 『뉴욕 서평』에 실렸으며 원제는 “The Road to Nowhere”(http://www.nybooks.com/articles/15340)임.

ⓒ T. Judt 2002 / 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2

 

 

알제리 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1958년, 아랍인들이 알제(알제리의 수도––옮긴이)의 프랑스 까페에 폭탄을 터뜨리고 빠리 정부가 프랑스 점령군의 고문 사용을 묵인하는 한편 공수부대 대령들이 테러를 끝장낼 재량권을 요구할 때, 프랑스의 철학자 레이몽 아롱(Raymond Aron)은 『알제리와 공화국』(L’Algérie et la République)1이라는 자그마한 책을 출간했다. 양측의 감정적이고 역사적인 주장을 거두절미하고 아롱은 그 특유의 냉정한 문체로 왜 프랑스가 알제리를 떠나야 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프랑스는 아랍인들에게 프랑스의 지배를 강제하거나 아니면 프랑스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부여할 의지와 수단 모두를 가지고 있지 않다. 프랑스가 머문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따름이고 어차피 떠날 수밖에 없는데 나중에는 더 나쁜 조건에서 더 쓰라린 유산을 안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 프랑스가 알제리인에게 입힌 손상보다는 공화국이 스스로에 가한 해가 오히려 더 크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선택은 사실 매우 단순하다. 프랑스는 물러나야만 한다.

여러해 후에 아롱은 고문, 테러리즘, 프랑스가 지원하는 정치적 암살정책, 아랍 민족주의의 주장들, 프랑스의 식민주의 유산 등 당시의 열띤 쟁점들에 왜 한번도 관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대답하기를,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논하고 있는데 자기까지 목소리를 보탤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문제는 더이상 비극의 기원을 분석하거나 누구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중동지역의 참화를 둘러싸고 논평과 비난의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안타깝게도 바로 아롱이 보여준 얼음장 같은 명료함은 빠져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책 역시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존재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다른 아랍인들도 결국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大)이스라엘’에서 지워질 수도 또 그 속에 통합될 수도 없다. 만일 그들을 실제로 요르단으로 추방한다면 요르단은 폭발할 것이고 이는 이스라엘에 파멸적인 결과를 안겨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진정한 그들 자신의 나라가 필요하고 또 이를 갖게 될 것이다. 두 나라의 경계는 2001년 1월의 타바 협상(이집트와 이스라엘 접경의 타바Taba에서 분쟁의 당사자들이 영토와 난민 귀환권 문제를 놓고 협상한 결과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합의에 이르렀음―옮긴이)에서 그려진 지도대로 그어지고 그에 따라 1967년의 경계가 조정될 것이지만 거의 모든 점령지역이 팔레스타인 통치권 아래 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점령지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은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에 있었던 셈이고 대부분 해체될 것인데 이는 다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적으로는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아랍인에게 귀환의 권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유태인도 시대착오적인 귀환의 권리를 버릴 때이다. 예루살렘은 이미 대체로 종족의 구분에 따라 나눠져 있으며 궁극적으로 두 나라 모두의 수도가 될 것이다. 이들 나라는 안정 및 안보문제의 공유에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머잖아 협력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테러조직망에서 정당으로 변모할 기회가 제공된다면 하마스(Hamas)같이 공동체에 근거한 조직들은 그 길을 택할 것이다. 수많은 전례가 있지 않은가.

 

만일 이것이 이 지역의 미래라면 거기까지 가기가 왜 이토록 비극적으로 힘겨워야 하는가? 아롱의 글이 씌어진 지 4년 후 드 골(De Gaulle)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알제리에서 자국민을 데려왔다. 50년 동안의 악독한 억압과 착취 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들은 절대다수인 흑인들에게 권력을 넘겼고 흑인들은 폭력이나 복수 없이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중동이라 해서 많이 다를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식민지배와 유사한 면이 많고 따라서 외국의 선례가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르다고 고집한다.

대다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들만은 특별하다는 서사 속에 갇혀 있다. 이런 특별함은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에 고대 유태국가가 존재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특별함은 옛 유태와 사마리아 땅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신이 부여하였다는 데에서도 기인한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유태인 대학살과 그로 인해 유태인들이 국제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보상의 권리를 상기시킨다. 그런 특별한 주장을 안하는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특수성을 옹호

  1. Paris: Plon 1958. 그의 다른 책 La Tragédie algérienne (Paris: Plon 1957)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