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1세기 과학, 낙관과 비관 사이

 

실험실 속의 모반자들

과학에서의 최근 혁명에 관하여

 

 

한스 마그누스 엔쩬스베르거 Hans Magnus Enzensberger

독일의 대표적인 시인·평론가. 1929년 출생. 『쿠어스부흐』(Kursbuch) 편집인 역임. 1963년 뷔히너문학상 수상. 주요 시집으로 『양들에 대한 늑대들의 옹호』(Die Verteidigung der WBlfe gegen die LCmmer, 1957) 『국어』(landessprache, 1960) 『미래음악』(Zukunftsmusik, 1991) 등과, 평론집으로 『정치와 범죄』(Politik und Verbrechen, 1964) 등이 있음. 이 글의 원제는 “Putschisten im Labor: Über die neueste Revolution in den Wissenschaften”(Der Spiegel 23/2001)이다.

ⓒ H.M. Enzensberger 2001/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1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가 사라진 데 대해 이구동성으로 아쉬움과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한 것은 요 얼마 전의 일이다. 유토피아란 개념은 창안된 이후 줄곧 인류의 정신 살림살이 부분을 풍요롭게 채워주는 ‘하늘의 양식’(Manna)으로 간주되어왔다. 인간의 운명을 완벽하게 개선하기 위한 이 기획은 합리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동화적 소망과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작성된 유럽의 청사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약속의 땅’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사람은 더이상 낡은 인간(der alte Adam)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이었다. 그러나 결국 유토피아를 현실화하려던 모든 시도는 이내 의기소침한 후회로 끝이 나고 말았는데, 이런 일은 1989년 그 ‘기적의 해’(anno mirabili)에 마지막으로 일어났다.

우리는 정신병리학의 여러 실례들을 통해서 얼마나 쉽게 인간의 우울한 정신상태가 광기의 단계로 급변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함을 보아왔다. 혹자는 이러한 갑작스런 돌변이 환자 개개인뿐만 아니라 거대한 집단 전체에서도 관찰될 수 있다는 데 동감을 표시한다. 지난 세기 70년대와 80년대는 우울한 저기압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던 시대처럼 보인다. 세계 도처에서 몰락의 씨나리오가 다채롭게 시험되었다. 봉쇄정책과 세계패권 다툼으로 일관해온 냉전체제는 국제정치를 완전히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러 형태의 환경재앙이 세계 도처에서 출몰하기 시작했음은 물론, 로마클럽(Club of Rome)은 조만간 모든 유한한 자원들이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게다가 ‘핵겨울’이란 말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종말론적인 시대 분위기는 단지 할리우드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넓게 퍼져간 것은 아니었다. 서구사회는 너무 일찍 파국을 맞아들이려 했다. 주지하듯 새천년이 시작되기 이미 오래 전부터 광기의 조짐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인류에게 새로운 구원의 약속을 내놓은 쪽은 역사철학이 아니었다. 어떤 정당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새로운 유토피아의 설계도를 그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공산주의의 붕괴는 구좌파 혹은 신좌파, 그 어느 쪽 이념으로도 메워질 수 없는 이념의 진공상태를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새로운 유토피아의 약속들은 자연과학자들의 연구소와 실험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하나의 환상적 낙관론이 사람들의 이목을 다시 사로잡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인간이 직면한 모든 위기와 궁핍, 무지와 몽매, 그리고 고통과 죽음에 대한 승리 같은 유토피아적 사고의 동인(動因)들이 갑작스레 다시 돌아온 것이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을 개량시킬 수 있는 ‘그날’이 멀지 않았다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생식(生殖)·출산·죽음과 같은 아주 오래된 생리적 굴레들이 사라지고, 진화된 로봇이 노동이라는 신성한 악업(惡業)으로부터 인간을 완전히 해방시켜주며, 인공지능(KI)의 혁명적인 발전으로 인해 불완전한 인간 종(種)이 흔적을 감추게 될 그날이 오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먼 옛날부터 인간이 품어온 전능(全能)에 대한 꿈은 이제 과학이라는 씨스템 안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들어앉았다.

그렇다고 새로운 유토피아의 꿈을 부화시킬 수 있는 자격이 모든 학문에 부여된 것은 아니다. 자본과 관심 같은 요긴한 밑천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몇몇 학문들의 위상은 더욱 또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데 반해, 신학·문예학·고고학 그리고 철학과 같은 전통적인 인문학들은 부차적인 역할, 좀 심하게 말하자면 장식적인 역할만을 떠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분히 국가와 경제 쪽에서 뒤집어씌운 그 천진한 무해함 덕분에 오늘날 인문학은 허용될 뿐 아니라 인정까지 받고 있다. 이들 학문들에서 유토피아적 구원의 메씨지를 기대하기 힘든 까닭은 여기에 있다.

또한 자연과학 내부에서도 지구물리학이나 기상학과 같은 몇몇 학문들은 이른바 주류학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