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기호 李起昊

1972년 강원 원주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김 박사는 누구인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장편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등이 있음.

antigiho@hanmail.net

 

 

장편연재 2

싸이먼 그레이

 

 

4-5. 대학원 시절

· 싸이먼 그레이가 대학원에 입학한 2001년엔 뉴욕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다. 10월엔 ‘벨파스트 협정’에 의거 IRA가 1차 무장해제를 시작했지만 그게 뭔 상관이냐는 듯 북아일랜드 곳곳에서는 연일 신교도와 구교도가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그해에만 경찰관 11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기도 했다.1 아일랜드 출신 그룹 U2의 「Beautiful Day」가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한 것도 이해의 일이었다.

 

· 아일랜드 경제가 사상 유례없이 꿀을 빤 성장을 한 것도 2001년의 일이었다. 당시 아일랜드 1인당 국민소득은 EU 평균의 115%에 달했다.2

 

· 경제만 성장한 게 아니고 집값이나 물가 또한 덩달아 성장하여, 2000년부터 2008년 사이 아일랜드 집값은 두배로 뛰어올랐다. 2001년 아일랜드 물가상승률은 4.9%로 유럽 평균의 두배에 달했고, 2002년 역시 4.6%로 압도적인 선두를 유지했다. 여담이지만 이래서 만국의 집 없는 서민들은 서로서로 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값도 오르고 월세도 오르고, 맨날 듣는 소리라곤 ‘연봉을 한푼도 안 쓰고 14년간 고스란히 모으면 더블린에 작은 집 한채를 살 수 있다’ 이딴 말들뿐이니, ‘어라, 너흰 14년이니? 우리 서울은 18년이야. 반갑다, 친구야. 우리도 나중에 집주인 되면 서로 에어비앤비 해볼래?’ 저절로 이런 마음이 되는 것이다.

 

· 2001년 10월 싸이먼 그레이는 골웨이 국립대학교 자체 장학제도 중 하나인 ‘하디만(Hardiman) 장학금’의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대학원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면제해주는 이 장학 프로그램으로 덕에 싸이먼 그레이는 주중에 하던 게스트하우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주말에만 주유소 일을 하게 되었다. 이후 박사과정에 진학했을 땐 아일랜드 연구위원회(Irish Research Council)의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그 모든 절차를 알아봐주고 추천서를 써준 사람이 윌리엄 캐리 교수였다고 한다.

 

· 싸이먼 그레이와 함께 석사과정에 입학한 학생은 모두 열네명이었는데, 대니얼 놀란처럼 골웨이 국립대학교 출신이 여섯명이었고, 더블린과 코크, 리머릭에서 온 학생이 다섯명이었다. 다른 세명은 각각 불가리아와 스위스, 스페인에서 온 유학생들이었다. 아일랜드는 그해부터 본격적으로 유로화를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 석사과정 한학기 등록금은 3천2백 유로였다고 한다. 자국 학생은 2천 유로.3

 

· 골웨이 국립대학교 ‘작문’ 석사과정은 1년 풀타임 과정으로 대부분의 강의는 창작 워크숍과 세미나로 진행되었다. ‘작가연구 세미나’는 필수 교과목이었고, ‘시창작 워크숍’ ‘소설창작 워크숍’ ‘극작 워크숍’ 등은 선택 교과목이었다. 8월에 제출하는 최종 창작 포트폴리오를 통해 졸업 여부가 가려졌다.

 

· 싸이먼 그레이는 ‘소설창작 워크숍’ 시간에 생애 처음 소설을 써서 제출했다고 한다.4

 

· 소설 제목은 ‘부고 이메일’(Obituary Email).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늦은 밤, 캐런은 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대학 때 같은 강의를 들었던 브라이언에게서 온 것이었다. 브라이언? 브라이언 오 마틴? 캐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얘가 무슨 일이지? 캐런은 브라이언의 얼굴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이름도 기억나고, 그와 함께 펍에서 술을 마신 기억도 선명했지만, 얼굴은 마치 불투명한 창 너머에 서 있는 사람처럼 흐릿하기만 했다. 물론 대학을 졸업한 지 벌써 십삼년이나 지났으니까, 그럴 수도 있었다. 친하게 지냈다고는 하지만 그때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따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 없는 사이였다. 하긴, 그건 브라이언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녀 주변에 남아 있는 대학 동기라곤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캐런은 그 모든 것을 그저 그날 자신의 컨디션 탓으로 돌렸다. 캐런은 그런 사람이었다.

 

캐런은 삼년 전부터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한 기획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영화 개봉 이벤트와 신차 출시 기자간담회, 블루크랩 축제, 보트 회사들의 컨퍼런스와 수산물 박람회 등 온갖 이벤트와 축제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총괄 운영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직원은 인턴인 로버트를 포함해서 여섯명에 불과했다. 부부이자 회사의 공동 대표인 터너와 레이첼은 주로 계약 성사에만 목을 맸고, 나머지 일, 그러니까 세금 관련 문제나 행사 프로그램을 짜는 일, 출연자 섭외와 홍보는 거의 다 캐런이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선박 회사 관계자들에게 박람회 부스 홍보 팸플릿을 나눠주고 돌아와선 곧장 미식축구 홍보팀 직원과 함께 마스코트가 쓸 헬멧의 치수와 갈까마귀 위치를 확인해야만 했다. 캐런이 사람을 더 뽑아야 한다고, 웹사이트 같은 문제는 자신도 잘 모르는 분야라고 말하면 터너와 레이첼은 항상 같은 말을 했다. ‘캐런, 그런 건 외주를 주면 되잖아? 우린 그냥 플랫폼 같은 회사라고. 플랫폼에 사람 많이 세워둘 필요 있어? 기둥만 많이 세우면 되는 거야.’

그날도 캐런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파티 준비를 하느라 밤 11시가 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터너와 레이첼이 주최하는 그 파티는, 이름만 파티일 뿐 사실 비즈니스 미팅이나 다름없었다. 메릴랜드 주지사 부부와 볼티모어 시의원들, 항만노조위원장과 지역문화예술인들을 초대한 그 파티에서 터너와 레이첼은 내년 메릴랜드에서 열리는 비어 페스티벌의 운영권에 대해서 처음 운을 뗄 생각이었다. 다른 누구보다 주지사 부부의 호감을 사는 것이 중요했다. 주지사가 뽀르뚜갈 와인에 문어요리를 좋아한다는 것과 주지사 부인이 선호하는 색깔이 코발트블루라는 것, 백장미로 정원을 꾸며놓았다는 것과 까나뻬를 즐겨 먹고 듀크 엘링턴의 재즈를 자주 듣는다는 것, 그 밖의 다른 사소한 것들. 캐런의 노트에는 그런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그에 따라 파티가 열릴 이너하버 옆 컨벤션센터 스카이라운지를 세팅했다. ‘캐런, 우리도 하루 종일 전화만 붙잡고 있었다고. 빌어먹을 노조위원장이 자기 아이들까지 다 데려가면 안 되냐고 졸라대는 통에 임시 보모까지 따로 알아보고 있다고. 그러니 어떡해? 캐런이 애써줘야지. 파티가 그럴싸해 보여야지 주지사도 비어 페스티벌이든 채식주의자 페스티벌이든 맡길 마음이 들 거 아니야.’ 캐런은 그 앞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캐런에게 그다음 일들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지금 해치워야 할 일들과 지금 손에 느껴지는 감각들, 당장의 문제들. 캐런에겐 오직 그런 것들만이 중요했다. 캐런에겐 터너와 레이첼 또한 지금의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런 캐런에게 과거의 한 사람이 마치 코너를 돌자 느닷없이 나타난 호수처럼 등장한 것이었다. 브라이언은 이메일에서 간단한 안부를 건넨 후 콜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 채 육개월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고 했다. 장례식은 이틀 후, 더블린 교외에 위치한 한 성당에서 열린다는 안내도 함께였다.

‘너한텐 그래도 알려야 할 거 같아서 이메일을 보내. 참석하든 그렇지 않든, 그건 너의 선택이겠지만, 그래도 알고 오지 않는 것과 모르고 오지 않는 것의 차이는 있을 테니까. 콜린도 이런 내 마음을 원망하진 않을 거야. 콜린은… 마지막까지도 네 생각을 많이 했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야.’

캐런은 이메일을 다 읽고 난 후 기분이 상했는데, 그건 브라이언의 문장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무언가 섣불리 단정 짓고, 또 어떤 비난까지 서둘러 내린 듯한 태도들이, 그 여백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캐런은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것이 바로 그때, 그녀가 느낀 감각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감각이 캐런에겐 도움이 되었다. 캐런은 답장을 보내지 않은 채 그대로 컴퓨터를 끄고, 와인을 한잔 마시고, 양치질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계속 브라이언의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잠시도 그 생각을 놓으면 안 된다는 듯, 캐런은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그녀는 잠깐,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콜린의 부고로부터 멀리 달아나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그 생각으로부터도 멀리 달아나고자 침대 옆 탁자에 놓아두었던 수첩을 펼쳐 들었다. 나는 내일 아침 8시 30분에 화원에 가야 해, 주문한 백장미와 화병을 확인해야 하니까. 그러고 나선 곧바로 로버트와 함께 컨벤션센터 지배인과 미팅을 해야 해. 테이블 배치도도 확정해야 하고… 그녀는 펜을 든 채 내일 만나야 할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브라이언에게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내가 뭘, 어쨌다고…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 생각을 했고, 그러자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캐런은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하늘색 계통의 블라우스를 차려입고 파티에 참석했다. 메릴랜드 주지사 부부도 예정대로 참석했고, 시의원들도 늦지 않은 시간에 도착했다. 터너와 레이첼 부부는 작년에 은퇴한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투수 부부와 함께 파티에 참석했는데, 그게 마치 무슨 히든카드처럼 주지사 부부의 눈길을 빼앗았다. 주지사는 명예의 전당에까지 오른 그 투수 곁을 한시도 떠나려 하지 않았고, 터너와 레이첼 부부도 그 곁을 맴돌았다. 로버트가 뉴욕에서 공들여 불러온 흑인 재즈 연주자의 피아노곡도 나무랄 데 없었다. 캐런은 파티가 시작된 후에도 출판사 관계자들, 선박회사 임원들 사이에서 예의를 갖추면서, 또 웃을 때 웃어주면서, 그러면서도 계속 곁눈질로 주지사 부부를 살폈다. 파티는 별다른 문제 없이 터너와 레이첼 부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주지사 부인은 앉은자리에서 연어와 리꼬따치즈 까나뻬를 열개도 넘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캐런은 볼티모어 지역유권자연맹 사람들 근처로 다가가다가 저도 모르게 한자리에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창가 기둥 앞이었다. 멀리 창밖으로 이너하버에 정박한 배들과 가로등, 그리고 화력발전소 굴뚝의 점멸등이 내려다보였다. 그 사이를 흐르는 검은 대서양의 물결들… 그 물결들 속에서 무언가 자꾸 튀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캐런은 창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피아노 연주는 계속 경쾌하게 들려왔고, 누군가 과장되게 웃는 소리, 의미없는 말들이 서로 엇갈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구둣발 소리, 와인잔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어떤 커다란 담요처럼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 담요 안에서 캐런은 계속 쪼그려 앉아 있었고, 그러다가 이내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우는 얼굴이 고스란히 유리창에 비쳤지만, 그녀는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콜린의 이메일이 멈춘 것은 육개월 전의 일이었다. 오년 내내 이어지던 이메일이 어느 한순간 그렇게 그친 것이었다. 읽어보지도 않고 삭제한 그 이메일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걸 쓰던 콜린의 시간은 이제 어떻게 잴 수 있을까…? 캐런은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캐런을 보면서 웅성거렸고, 로버트가 황급히 달려와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캐런의 울음소리는 더 커져갔다. 물기 가득한 그녀의 두 눈엔 어두운 물결 속에서 무언가 계속 튀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빛이었고, 누군가의 숨이었으며, 또한 종을 알 수 없는 물고기였다.

 

· 싸이먼의 소설은 윌리엄 캐리 교수로부터 ‘문장은 괜찮으나 구성과 캐릭터, 핍진성의 차원에선 문제가 많다’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아울러 같은 석사과정 동기들에게도 ‘감상적이고 단순하며, 독창적이지도 않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5

 

· 하지만 그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후 싸이먼 그레이는 박사과정 2년 차 때까지 모두 38편의 소설을 새로 썼다고 한다. 채 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쓴 소설이 그렇다고 한다. 가장 긴 것은 5만 2천자를 넘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소설은 글자 수 2만자 미만의 단편소설들이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윌리엄 캐리 교수는 몹시 환장했는데 힘들어했는데, 거의 매주 한편씩 싸이먼의 소설을 읽어주느라 많은 시간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6

 

· 싸이먼 그레이는 주로 학교 도서관과 기숙사에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기숙사에선 주로 노트에 초고를 썼고, 도서관에선 그것을 다시 컴퓨터로 옮겨 적는 방식으로 한편 한편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주로 새벽 시간에 글을 많이 썼는데, 꼭 헤드랜턴을 착용한 채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싸이먼 그레이와 같은 방을 썼던 대니얼 놀란은 그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 싸이먼을 부르면 항상 빛이 먼저 응답했다고 한다. ‘이건 뭐, 마치 꼭 하느님과 같은 기숙사 방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고도 한다. 이후로도 싸이먼은 글을 쓸 땐 항상 헤드랜턴부터 머리에 착용했다고 한다. 불이 들어오든 그렇지 않든. 심지어는 도서관에서도 그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게 어떤 모습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냉장고에서 달걀 한알을 꺼내 삼분의 일 되는 지점에 사인펜으로 굵은 줄 하나를 그어보면 된다.

 

· 당시 싸이먼 그레이가 썼던 소설 제목들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민물장어낚시’ ‘민물장어의 눈’ ‘죽은 민물장어 두마리’ 이건 무슨 수산물 삼부작도 아니고… ‘네 이웃의 수모’ ‘죽은 자의 목소리’ ‘가을, 쏠트호’ ‘스팀 펍의 오후’ ‘빌링스게이트의 민물장어’ 사부작… ‘돌아온 교사 해리 아터’ ‘클리프덴 35번가’ ‘지질박물관 앞 사거리엔 별이 뜨지 않는다’ ‘민물장어는 말이 없다’ 우리도 더이상 할 말이 없다… ‘부러진 자전거 페달’ ‘코리브강의 침묵’ 등등.

 

· 소설 쓰기에 한창 몰입했던 시기, 싸이먼은 방학 때도 클리프덴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이브 때나 잠깐 들렀다가 그다음 날 서둘러 올라갔다고 한다. 싸이먼의 할머니인 제럴딘 셰이스 그레이는 그런 그를 위해 오랜 시간 기도해주었다고 한다. 매번 직접 만든 빵을 싸주기도 했다고 한다. 모교의 키어런 제퍼슨 선생님과는 계속 이메일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자신이 쓴 소설 몇편을 직접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키어런 제퍼슨은 그 소설을 모교의 후배들에게 육성으로 읽어주었는데, 그때마다 ‘곧 작가가 될 너희들의 선배가 쓴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