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기호 李起昊

1972년 강원 원주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김 박사는 누구인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장편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등이 있음.

antigiho@hanmail.net

 

 

 

장편연재 4

싸이먼 그레이

 

 

 

· 싸이먼 그레이의 일생을 추적했던 최영근 교수는 후에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말하자면 그의 젠더적 한계와 무지를 지적한 것이다.1

 

· 동명의 소설 「싸이먼 그레이」를 쓴 소설가 이기호 또한 같은 젠더적 비판을 피할 순 없었는데2 이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소설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서 이런저런 주석을 달지 않는 법이죠. 언제나 소설로 말할 뿐입니다.3

 

· 싸이먼의 동료이자, 광주외국어대학교 기초교양학부 초빙교수인 서환희는 김주희의 블로그를 다 둘러보고 난 후 ‘싸이먼은 어땠는지 몰라도 김주희는 싸이먼을 연인으로서 사랑한 것은 아닌 것 같다’라는 의견을 냈다. 그로 인해 소설가 이기호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4

 

· 실제로 김주희의 블로그엔 직접적으로 싸이먼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문장은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 김주희는 싸이먼의 스튜디오에서 이틀 밤낮을 꼬박 누워만 있다가 사흘째 되는 날 알리아와 함께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로 돌아갔는데, 그때도 그녀는 짧게 ‘앓았다’라고만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해놓았다고 한다.

 

· 하지만 싸이먼의 글을 살펴보면 그날 이후 두사람은 분명 이전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눴고, 더 잦은 만남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4월이 되면서부터 어학원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매주 월요일마다 새로운 신입생이 꼬박꼬박 두세명씩 도착했고, 금요일엔 과정을 모두 끝낸 수강생들의 간이 졸업식이 열렸다. 학생들은 계속 들어오고 또 떠나갔지만, 어학원은 그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워졌다. 커튼 틈 사이로 이상한 열기 같은 것이 계속 밀려들어 왔다. 강의실 유리창들이 마치 긴 줄에 연결된 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4월이니까, 아무래도 날씨 탓이 크겠지. 몇몇 태풍이 더 다가올 테고, 찬바람과 이슬비도 여전했지만, 공기 자체가 확연히 달라졌다. 그늘에 있다가 양지로 나오면 목덜미가 간지러워지는 계절. 수강생들은 처음 만난 신입생들을 보고도 자주 웃었고, 졸업식을 끝낸 친구들과는 우르르 오코넬 펍으로 몰려가 밤늦도록 기네스를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쏠트힐 비치에 있는 다이빙대에 올라가 차례차례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들기도 했다… 그들 사이에서도 줄리는 언제나 혼자였다. 감청색 파카를 입은 채 강의실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멀거니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기만 했다. 월요일 오전에 있었던 어학원 강사 미팅에서도 줄리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줄리는 요즘 어때요?” 원장이 묻자 마이클 맥거번이 짧게 대답했다. “그래도 빠지진 않고 있어요.” “다른 문제는 없구요?” “테스트에서 자꾸 떨어지는 거 빼곤…” “그럼 된 거 아닌가요?” 그 말에 마이클 맥거번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줄리는 매일 밤 코리브강에 나오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어느 땐 나와 또도르보다 먼저 와서 기다릴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녀 주변엔 담배꽁초가 여러개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낚시의자에 앉아 내가 싸온 샌드위치로 저녁을 먹었다. 주로 양상추와 치즈, 계란과 햄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줄리는 아주 천천히 맥주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었다. 비가 많이 내린 날엔 내 스튜디오에서 감자튀김과 냉동피자, 수프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내가 음식을 만들 동안 줄리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 탁자에 놓여 있던 예이츠나 히니의 시집을 뒤적거렸고, 또도르는 노트북으로 불가리아 뉴스를 검색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평안했던 한때였을 것이다.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됐고, 무엇을 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으니까. 대신 내 마음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튀겨지는 감자처럼, 피자의 도우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머지 세계는 잠시 멈춰 섰다.

줄리는 나와 함께 설거지를 하다가 말고 짧게 물었다.

“그쪽이 대신 낸 거 맞죠?”

나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척 말없이 줄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유서 말이에요. 어학원에 낸.”

또도르가 슬쩍 우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게 다른 사람이 대신 낼 수도 있는 서류더라구요.”

나는 프라이팬을 닦으며 말했다.

“그냥 형식적인 거예요.”

내가 셰인 더피에게 줄리의 사유서를 건네자,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곤 서류를 쓱 책상 서랍에 넣어버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럼 난 이제 쫓겨나지 않는 거예요?”

“누구도 함부로 쫓겨나진 않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럼 왜 사유서를 낸 거예요?”

“걱정할까봐요.”

줄리는 손에 들고 있던 스펀지를 거칠게 개수대에 집어 던졌다.

“젠장!”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아랫입술을 깨문 채 잠시 서 있었다. 나도 멈춰 서 있었다. 또도르 또한 노트북 앞에 허리를 편 채 가만히 멈춰 있었다. 이윽고 다시 그녀가 스펀지를 들고 접시를 닦기 시작했다. 줄리의 표정은 이전보다 훨씬 더 나아 보였다.5

 

· 그해 5월 17일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아일랜드를 국빈 방문했다. 메리 매컬리스(Mary McAleese) 대통령과 함께 아일랜드 독립추모공원(Garden of Remembrance)에 헌화한 여왕은, 그러나 더블린성에서 열린 만찬에서는 ‘험난했던 과거의 결과로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감회와 깊은 연민을 보낸다’라는 도대체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언뜻 들으면 사과 같기도 한,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 더러워지는, 아직도 자기가 아일랜드를 다스리는 여왕인 줄 아는, 모호한 표현을 써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반발을 샀다. 실제로 여왕의 방문 보름 전부터 6천여명의 경찰이 주요 도로에 배치돼 검문검색을 강화했고, 골웨이에서 더블린으로 향하던 버스에선 사제폭탄이 발견되기도 했다. 아일랜드 정부의 승인 아래 영국의 무장경찰들이 대거 더블린으로 들어온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 싸이먼과 또도르, 김주희가 낚시를 하는 코리브강 인근에도 새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무장경찰들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경찰들은 싸이먼 일행의 낚시를 막진 않았지만, 두명씩 짝을 지어, 개도 한마리 데리고, 가끔씩 플래시를 비춰가며, 계속 그들 뒤편을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경찰은 그들 세명을 몹시 수상하게 여겼는데,6 낚시하러 나올 때마다 그들 세사람의 소지품 검사를 했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한명은 뚱뚱하고 또 한명은 과묵하고 또 한명은 한손에 맥주병을 들고 있었으니, 낚시도 제대로 하지 않고 멀거니 앉아 있기만 했으니… 싸이먼과 또도르, 김주희는 사흘 연속 검문을 받고 나서 여왕이 다녀갈 때까지 낚시를 하러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싸이먼의 스튜디오에 앉아 노트북으로 다운받은 영화를 보거나 각자 책을 보면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 여왕이 다녀간 바로 그 주 주말에 싸이먼과 김주희, 또도르는 골웨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던귀에어성(Dunguaire Castle) 근처로 1박 2일 캠핑을 떠났다고 한다. 골웨이에서 버스로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 그곳은 낮은 구릉과 강이 맞닿아 있는 초원지대였다고 한다. 군데군데 염소똥만 많이 쌓여 있고, 나무 한그루, 사람 한명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텐트를 쳐놓고 낚시를 했다고 한다. 그때의 일에 대해서 싸이먼은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았다.

 

—점심을 먹고 각자의 낚시의자에 앉았을 때부터 줄리는 조금씩 조금씩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다.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날씨는 좋았다. 강물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찌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또도르는 이년 전 이곳에 혼자 낚시를 왔다가 민물장어 두마리를 잡은 적 있다고 말했다. 바다와 맞닿은 강이니까, 수풀 또한 적당한 곳이니까. 하지만 나는 계속 줄리에게만 시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