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나리오

 

 

3

조영수 曺姈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3. 1985년생. ddongnu198@hanmail.net

 

 

 

상처에 바르는 사랑

 

 

씨놉씨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남고생 연진과 여대생 성아에게는 남 모르는 상처가 있다. 연진은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미혼모의 아들이고, 그나마 유일한 식구인 엄마에게서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성아의 상처는 부모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자식에게 엄청난 폭력이라고 믿는 성아. 늘 도망가려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붙잡으려는 아빠 사이에서 상처는 깊어만 간다.

성아의 스물한번째 생일, 성아의 아빠 병수는 성아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좋아하는 곰인형을 사가지고 귀가한다. 즐거운 날이지만 생일상 앞에서도 아빠 병수와 엄마 연희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 성아만 바라본다. 둘이 대화를 나누거나 시선을 맞추는 일은 없다.

엄마 연희는 가장 친한 친구인 도희와 함께할 때는 늘 밝은 표정이다. 오랜 시간 단장을 하고 집을 나서는 연희의 뒤를 밟는 성아. 엄마가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고 믿는 성아는 연주회장 앞에서 도희와 만나는 연희를 보고 안심한다. 그리고 연주회장 앞에서 우연히 연진과 마주친다. 연진은 성아에게 왜 남의 엄마를 훔쳐보고 있느냐고 묻고, 성아는 저기 우리 엄마도 있다고 말한다.

연진은 수업이 없는 토요일에는 요리학원에 간다. 아줌마들이 곁에 몰려와 어린 남학생이 왜 요리를 배우냐고 호기심을 보인다. 연진은 도희와 둘이 살면서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거의 먹지 못했다. 그래서 요리를 배웠고 식사준비는 항상 연진의 몫이 되었다.

어느날 아침, 연희는 쪽지 한장을 성아에게 남기고 사라진다. 병수는 또다시 연희를 찾기 위해 나서고, 도희도 연락이 끊긴 연희를 백방으로 찾기 시작한다. 성아는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간다. 연희의 급작스런 죽음을 확인하는 성아. 먼저 와 있던 도희는 병수도 중환자실에 있다고 말한다.

성아는 꿈을 꾼다. 언제나처럼 누군가와 도망치는 연희, 그들을 쫓아 달리는 병수의 모습이다. 꿈에서 깨어난 성아. 둘러보니 낯선 방이다. 밖으로 나가자 죽을 끓이고 있는 연진의 모습이 보인다. 연진은 성아의 앞에 죽을 놓아준다. 성아는 울음을 터뜨린다. 연진은 별말 없이 묵묵히 성아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된다. 그리고 도희를 사랑하는 경비원 지훈은 이런 세 사람을 늘 지켜봐준다.

고통과 외로움 속에 도희의 집에서 지내면서 겨우 회복해가는 성아는 여전히 기운이 없고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연진은 자신이 차려준 밥상 앞에서 축 처진 모습으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성아에게 불쑥 청혼한다. 그런 연진에게 성아는 자신은 여자를 사랑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3년 후, 연진과 성아는 친구 같은, 남매 같은, 연인 같은 부부가 되어 있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치유하기 위한 결혼이다. 그저 함께 밥이나 먹으며 위로하며 살기 위해서다. 연진은 원하던 대로 식품영양학과에 다니게 되었다. 성아는 유치원 선생님의 꿈을 버리고 경호원이 되고 싶은 마음에 경호학과를 목표로 태권도나 유도 같은 무술을 배우고 수능준비에 전념한다. 성아의 꿈을 위해 도희와 연진은 정성을 다해 뒷바라지를 해준다. 한창 대학생활을 즐길 시기에 연진은 성아를 위해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함께 밥을 먹어준다. 성아는 병수를 자신의 아버지처럼 좋아하는 연진이 고맙다.

성아는 결혼과는 별개로 여자를 사랑하고자, 스스로 동성애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만큼 자신의 엄마가 사랑했던 남자, 아빠 말고 다른 남자를 사랑했던 엄마를 증오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마음 먹은 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연진과 성아는 서로 의지하고 지탱해주며 살아간다. 연진은 성아가 만나는 여자들을 보면서 질투를 하고, 성아가 길에서 맞는 여자를 구해준다고 나섰다가 싸움에 휘말려 경찰서까지 가게 되는 것을 보며 화를 내기도 한다. 성아는 연진의 보살핌이 고맙지만 미안할 뿐이다. 사랑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운 감정들을 가지고, 늘 그렇게 함께 밥을 먹고 서로를 찾고 상처를 보듬어주며 시간을 보낸다.

세 사람에게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은 도희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원 지훈이다. 도희, 연진, 성아는 각자 힘들거나 고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지훈을 찾는다. 그럴 때마다 지훈은 따뜻하게 이들을 감싸준다. 그는 추운 겨울에도 맨손으로 도희의 차를 깨끗하게 닦아주는 남자다. 세 사람 모두에게 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성아는 무사히 입학시험을 치르고 경호학과 학생이 된다.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흘러가다 어느날 병원에서 전화가 온다. 그나마 살아 있던 병수가 죽게 되자 성아는 또 한번 큰 상처를 받는다. 밥을 먹을 수도 웃을 수도 없어진 성아. 연진은 최선을 다해 성아를 보살펴준다. 연진의 관심 덕분에 성아는 예전보다 잘 버텨내고 연진을 위해 밝아지려고 애쓴다.

집안 청소를 시작하는 성아, 처음으로 도희의 방에 들어가본다. 기분 좋게 도희의 방을 청소하던 성아는 우연히 상자 하나를 발견한다. 상자 속에는 도희와 연희의 옛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나 편지, 일기장이 들어 있다. 미소를 지으며 일기를 읽어보던 성아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진다. 일기장에는 연희와 도희, 즉 엄마와 시어머니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때마침 방으로 들어온 도희는 상자를 열어본 성아의 모습에 놀란다. 성아는 도희를 뒤로하고 짐을 꾸려 집을 나선다.

성아는 여관에 방을 잡고 며칠 동안 앓는다. 성아가 떠난 것을 알게 된 연진은 큰 충격을 받는다. 연진은 여기저기 돌아다녀보지만 성아를 찾을 수 없어 절망한다. 얼마 후 사연을 알게 된 연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에 누워만 있게 된다. 회복할 수 없이 큰 상처를 받은 성아는 겨우 몸을 추스르고 태권도장에서 유치부 가르치는 일을 맡기로 한다. 성아는 집을 나와서 거의 밥을 먹지 못한다. 무언가를 먹으려고 할 때마다 연진이 떠올라 먹을 수 없다. 물로 밥알을 삼켜보기도 하지만 다 게워낼 뿐이다. 연진 역시 밥을 먹지 못한다. 또 요리를 하지도 않는다. 도희네 집 부엌은 고요하고 쓸쓸해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날 연진은 겨우 일어나 학교에 간다. 친구와 헤어져 걷던 중 교문 앞에서 풀썩 쓰러지고 마는 연진. 같은 시각, 성아도 유치부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쓰러진다. 성아와 연진은 각각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한다. 친구의 간호를 받으며 응급실에 누워 있는 성아. 친구를 등지고 누워 그동안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의 커튼이 확 젖혀지며 누워 있는 연진의 모습이 보인다. 둘은 마주 보고 웃는다.

다시 시간이 흘러, 행복한 얼굴로 봄나물을 무치고 있는 연진. 가족들을 부르자 살짝 배가 부른 성아가 나오고, 도희가 나온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지훈이 웃으며 나온다. 해맑게 웃으며 서로의 의자를 빼주는 가족들. 식탁 옆 벽에는 연희와 병수 부부의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다.

 

* 지면사정으로 장편 씨나리오의 일부만 싣습니다. 전문은 대산문화재단 홈페이지(www.daesan.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등장인물

 

윤성아(여) 21세. 유아교육과 학생. 긴 머리의 청순한 학생이었으나 계속되는 상처로 머리를 자르고 경호원이 되기 위해 다시 입시를 준비한다. 원래는 밝은 성격이었으나 부모를 잃고 난 후부터 점점 내성적이고 조용해진다. 윤병수, 김연희의 외동딸.

최연진(남) 19세. 식품영양학과를 지망하는 고등학생. 엉뚱하고 생각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속 깊고 배려심 많은 남자다. 애써 상처를 모르는 척하면서 살다보니 밝고 귀여운 성격이 되어버렸다. 편도희의 외아들.

윤병수(남) 46세. 성아의 아빠. 무역회사 중역. 평생 다른 곳을 보는 아내를 지켜내느라 무진 애를 쓰며 살아온 남자.

김연희(여) 44세. 성아의 엄마. 가정주부. 평생 남편 병수와 행복해하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이지 않는다. 늘 소녀 같은 이미지.

편도희(여) 44세. 연진의 엄마이자 연희의 친구. 미혼모로 연진을 키웠다. 항상 도도하고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의 화려한 외모. 작은 까페 사장.

모지훈(남) 48세. 도희가 사는 아파트 경비원. 도희를 사랑하지만 묵묵히 바라보기만 한다.

 

 

#1 성아 집 부엌. 정오

 

햇살이 테이블 위를 가득 비추고 있다. 그 위에 하얀 밀가루 반죽, 달걀, 쿠키틀 등과 알록달록 예쁜 색깔 식기들이 있다. 성아와 연희의 웃음소리가 집 안을 메운다. 인상적인 성아의 새까만 긴 생머리. 성아는 테이블 의자에 쪼그려 앉아 있고 연희는 서 있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똑같은 티셔츠를 입은 성아와 연희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밀가루로 장난을 치는 모녀. 얼굴에 밀가루가 살짝 묻어 있는 성아. 쿠키틀로 밀가루 반죽을 정성스럽게 찍어낸다. 눈사람 모양, 별 모양, 하트 모양 등.

 

연희 곰 노래 불러줘.

성아 (입을 삐죽) 곰 노래라니. 제목 까먹었어? 배신! 배신! 이 윤성아가 재롱잔치에서 일등 먹은 명곡인데.

(성아, 옆 의자에 앉아 있는 커다란 하얀 곰인형을 쥐어박으며 못살게 군다. 심술부리는 성아를 보며 웃는 연희.)

연희 (미소) 뭐였지?

성아 맨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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