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영숙 姜英淑

1966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흔들리다』가 있음. bbum21@hanmail.net

 

 

 

씨티투어버스

 

 

공항 폐쇄조치가 예고된 그 여름, 밤이 되면 나는 온몸의 상처를 죄다 가리는 검은색 터틀넥 원피스를 입고 씨티투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내다보는 여름밤의 도심은 뜨거운 황색의 물결을 이루어 일렁거리다가 어느 순간 정지된 홀로그램 화면처럼 차갑게 얼어붙곤 했다. 밤이면 가끔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그때의 바람은 거대한 시멘트 건물들 사이를 휘돌던 복사열의 불규칙적인 충돌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은 여름의 정점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항 폐쇄조치가 예고된 날, 사람들은 모두 길거리로 나와 삿대질을 해가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 없는 나라에 사는 국민들은, 모든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폐쇄된 자국 영토 내에서 꼼짝할 수 없으며, 어쨌든 우리들끼리 잘 지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표면적으로는 잘 받아들였다. 처음엔 거리로 나와 흥분하던 사람들도 달팽이가 더듬이를 감추고 껍질 속으로 쏙 들어가듯, 시간이 흐르자 집으로들 들어가 틀어박혔다.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가까운 이웃나라에서 급히 날아온 비행기들이 궁둥이는 땅에 대지도 않은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을 투하하고는 도망치듯 날아갔다. 자국에는 더이상 놔둘 수 없는 오만가지 배양 세균들, 실험 도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버려 용도폐기된 일단의 희귀동물들,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 시각이 적나라한 화질 나쁜 섹스비디오 테이프들. 무엇보다 관심의 대상이 됐던 것은 썩은 밧줄에 묶여 내려온 미친개 한마리였다. 개는 낯선 나라의 드넓은 공항에서, 해가 기울고 달이 뜨고 새벽이 오는 걸 보며 고국에서의 지나간 추억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공항 관계자들이 그 이상한 것들을 모두 어떻게 처리했는지 저녁 뉴스에서는 더이상 다루지 않았다.

내 남편이었던 R–그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다–과는 예전의 햇살 따뜻하고 몸 튼튼하고 경제적으로 호황이던 시절에 만나, 길고 긴 불황의 피크였던 그 시절에도 함께 살고 있었다. 순리대로라면 늙고 병들어 상대가 죽는 순간까지 지켜봐야 했으나, 그와 나는 상대가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 집안의 공기조차도 참을 수 없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과 나는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일했다. R은 포크와 나이프와 접시를 만들어 파는 식기 제조판매회사에 성실하게 다녔으며, 나 또한 최신식 복덕방인 부동산 임대회사에 열심히 다녔다. 그는 늘 흥얼거리던 유행가의 한 소절에서 착안하여 보라색 나팔꽃 모양의 접시를 생산하자고 제안하기도 했고, 옛날 고무신 모양의 그릇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서 ‘그해의 우수직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십분 동안 모든 전기가 끊긴 최초의 정전사태가 일어난 날 밤이었다. 아파트 밖에서 긴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텔레비전 화면이 먼저 꺼졌고 실내의 모든 전기가 툭툭 꺼졌다. 올 것이 왔네. R이 말했다. 그 십분 동안 그는 베란다로 나가 서 있었고 나는 접시에 있던 참외껍질을 씹어먹으며 씽크대 앞에 서 있었다. 전기가 다시 들어오자 목운동을 하며 거실에 앉아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미리 겁을 주는군, 이제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달리 할말이 없었다. 겁이 나지만 죽기야 하겠어. 그렇게 대답하며 평소같이 그의 머리를 가볍게 툭 쳤다. 근데 왜 머리를 때리냐? 그가 과민하게 반응했고 우리는 장난삼아서 서로의 몸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팔뚝을 꼬집자 그가 방바닥에 있던 신문을 반으로 접어 내 얼굴을 때렸다. 점점 더 힘이 들어간 터치가 몇번이나 오갔다. 아니 이게 진짜. 그가 갑자기 한쪽 다리에 힘을 주고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에서 내 뺨을 갈겼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예의 없이 이게라니! 나도 화가 나서 그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 그리고 계속 돌진, 그를 의자 아래 바닥으로 넘어뜨리고 재빨리 배 위에 올라탔다. 그는 내가 깔고 앉자 꼼짝도 못하고 한숨만 휘휘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는 용케도 몸을 빼 벌떡 일어나앉더니, 내 팔과 다리를 뒤로 모아 활 자세를 만들고는 마구 발로 차기 시작했다.

너 꼭 소 같다. 싸움이 일시 중지됐을 때 그가 말했다. 하긴 밥을 그토록 처먹어대니 기운도 좋겠지, 처먹고 또 처먹고. 그의 말은 다 맞았다. 내가 그렇게 소처럼 기운이 좋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자신감을 갖고 일어나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나 소다, 소답게 행동해주지. 그렇게 싸움은 계속됐고 우리가 그러는 동안 거실 어항 속의 물고기는 동서로 빠르게 왔다갔다했다.

액체 근육진정제를 듬뿍 바르고 온몸의 상처를 죄다 가리는 검은색 터틀넥 원피스를 입었다. 전보다 살이 쪄서 옷이 몸에 꽉 끼었다. 그는 오래 전에 사다 냉장고에 넣어둔 훈제족발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허기가 지긴 마찬가지였지만 유통기한이 한참 지났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미련이 없어졌다.

그날 서점이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것이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던 씨티투어버스였다. 버스는 외국 여행객들의 시내관광을 위해 운행하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탈 수 있다고 했다. 삼십분 가량 정류장 앞에 서 있었는데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서류가방을 들고 양복을 입은 남자 하나와 외국인 노부부가 승객이었다. 버스 안은 냉방장치가 잘 되어 있어 시원하고 쾌적했다. 한밤중에 도심을 뱅글뱅글 돌아 처음 탔던 자리까지 데려다주는 버스가 있다니 참 신기했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서류가방을 그러안은 채 잠이 들었고, 외국인 노부부는 빼빼 마른 팔로 창밖을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오른쪽 갈비뼈 부근과 등이 아팠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맑아졌다. 가끔씩 눈을 뜨고 해가 지는 거리를 내다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때 갑자기 들소떼가 보였다. 천둥과 번개가 동시에 몰아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무섭게 살이 찌고 흰 뿔이 달린 들소들이 대평원의 한 지점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는 게 보였다. 멀리서 들리던 북소리 행렬을 눈앞에서 맞닥뜨린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온몸이 움츠러들어 눈을 꼭 감았다.

날이 갈수록 그와 나는 자주 싸웠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 싸움도 꼭 육박전으로 이어졌다. 그는 나를 무섭게 때렸다. 그렇다고 얻어맞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속전속결일 때는 그의 주먹이 효과가 있었지만, 말꼬리를 잡느라 한 말 또 하고, 뚜렷한 이유도 승산도 없고, 점점 지리멸렬한 싸움이 될수록 내가 더 오래 버텼다. 그렇게 싸우고 나면 구운 식빵에 딸기잼을 바르고 그 위에 또 땅콩잼을 발라 대여섯 개쯤 먹어야 조금은 느긋하고 아둔한 기분이 되었다.

어느 금요일 밤, 아홉시에 출발하는 씨티투어버스를 탔다. 시에서는 공항 폐쇄조치가 내려지는 날까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의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 씨티투어버스의 운행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외국인들은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대규모 건물 테러와 교통수단 운행 마비 등을 우려해, 낮에는 호텔방에 들어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밖으로 몰려나와 산책을 하거나 맥주를 마셨다. 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지역인가를 실감한다며, 무사히 빠져나갈 날만 기다린다고 말했다.

발목 끝까지 내려오는 똑같은 디자인의 일자 원피스를 입고, 하나같이 헤어밴드를 두른 뚱뚱한 아프리카 여자들 네 명이 버스에 올라탔다. 또 콧날이 오똑하고 키가 큰 외국인 남자 두 명과 엉덩이와 가슴만 겨우 가린 과다노출 상태의 외국인 여자 두 명이 함께 올라탔다. 아프리카 여자들은 자기 나라 이름을 주문처럼 외면서, 오랜 불황에 빠진데다 공항폐쇄 예고조치까지 내려진 이 나라에 자기들이 오게 된 건 명백히 신의 저주라며 울상을 지었다.

또 남편과 싸우고 황색의 밤거리로 나오다!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손에는 소주를 담은 생수병을 들고 통로 왼쪽 자리 중간에 앉아 있었다. 화장품과 영화 카탈로그, 지하철 노선안내도와 머리핀이 뒤엉켜 있는 가방 한구석에서 은박지에 싼 햄을 꺼냈다. 생수병을 입에 대고 조심스럽게 마신 후 햄을 한입 베어먹고 창밖을 내다봤다. 세상이 뒤집혀 이런저런 것들의 생산이 중단되면, 분홍색 햄덩어리의 특이한 생김새와 짭짜름한 맛이 그리워질 것 같았다.

버스가 남대문시장에 도착했을 때 검은 비닐봉지를 든 젊은 남녀 외국인들이 무리지어 버스에 올라탔다. 짐작하기로는 용산 미군기지에서 내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너 어제 돈 잃었지? 이제 나한테 돈 빌려달라고 하지 마, 이제 나 돈 없다. 그 일행이 얼마나 큰 소리로 떠드는지 앞에 앉은 아프리카 여자들도 뒤를 돌아보며, 정말 교양 없는 애들도 다 있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앞쪽에 앉아 있던 두 쌍의 외국인들조차도 그들의 거침없는 소란에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냈다.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