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주혜 李柱惠

1971년 전북 전주 출생.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leestori@hanmail.net

 

 

 

아무도 없는 집

 

 

몸이 열리나보다. 반듯이 누운 몸 위로 차가운 메스가 Y자를 그리며 움직인다. 통증 없이 싸한 느낌만 드는 걸 보면 아마도 카데바가 된 모양이라고 녕은 짐작한다. 평생 시체나 주무르며 살 거냐는 어머니의 힐난이 저주가 된 걸까. 몇년 전 캠페인 차원에서 신문기자들을 불러놓고 동료 교수들과 시신기증 서약서를 쓰고 사진을 찍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제 녕의 몸에는 양쪽 어깨에서 시작해 복장뼈까지 비스듬히 내려왔다가 복부를 따라 치골까지 수직으로 곧장 내리긋는 칼자국이 생기겠지. 곧 어떤 손이 Y자의 줄기 부분을 비집고 들어가 녕의 몸을 열어젖힐 것이다. 마흔을 넘기면서 뱃살이 두둑해졌으니 그 손은 누렇게 끈적거리는 지방질을 처리하느라 곤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이 와중에 녕은 조금 고소한 기분이 든다. 해부학 교수로 일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카데바가 녕의 손을 거쳐갔던가. 메스 쥔 손에 자꾸만 엉겨 붙는 미끄러운 지방질은 해부실습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존재 중 하나였다. 가끔은 아이고 어르신, 뱃살 관리 좀 하지 그러셨어요, 시신을 향해 농 아닌 농을 던지기도 했더랬다. 지금쯤 저 손의 주인도 녕의 누런 지방질을 향해 똑같은 농을 던지고 있지 않을까? 아이고 교수님, 너나 잘하지 그러셨어요.

눈은 떠지지 않는데 몸의 감각만 오롯해진다. 그런데 어느새 죽어 카데바가 된 걸까. 명색이 의대 교수에 의사 면허까지 있는 과학자가 이렇게 사후세계를 또렷이 경험해도 되는 건가. 늘 유물론자에 합리주의자를 자처했기에 왠지 겸연쩍다. 얼굴이 슬며시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카데바도 얼굴이 달아오르나? 포르말린에 푹 절여진 단백질 덩어리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순간적으로 후각이 되살아나며 알싸한 냄새가 훅 끼쳐온다. 아는 냄새다. 녕은 뇌 주름마다 저장된 온갖 냄새의 기억을 재빨리 훑어본다. 화한 휘발성의 이 느낌은, 멘톨. 누군가 멘소래담 로션을 쓰고 있다. 후각이 살아나며 촉각마저 돌아온다. 어떤 손이 녕의 몸을 ‘주무르고’ 있다. 어깨부터 시작해 가슴을 지나 치골까지 이어지는 야무진 손길. 근육 갈피를 정확히 짚어내며 녕의 몸을 매만지고 있다. 사람의 몸을 속속들이 아는 손이다. 순간 현실감각이 쏴아아아 밀려오며 자잘한 기억의 포말을 들씌운다. 따끔하게 녕의 피하를 뚫고 들어오던 날카로운 주삿바늘. 작은 유리병에 담겨 있던 젖빛 액체. 낯선 방으로 녕의 등을 떠밀던 K. 카데바가 된 게 아니구나, 생각하는 순간 비로소 눈이 떠진다. 수증기가 자욱한 공간의 천장에 별 가루를 뿌려놓은 듯 자잘한 전등이 박혀 있다. 수면마취에서 깨어나 처음 목도하는 풍경이 조악하게 흉내 낸 밤하늘이라니, K의 미적 감각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여기 누워 죽음 같은 잠에 빠졌다가 눈을 뜬 사람들은 저 모조 밤하늘을 보고 드디어 천상에 왔구나, 감격할까. 시꺼먼 저승사자를 그려놓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걸핏하면 죽고 싶지만 정작 죽을 용기는 없어 깨어날 보장을 하고 죽음의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K의 은밀한 고객들일 테니. 그런데 녕은 이렇게 깨어나버린 게, 왠지 서운하다.

천장 아래로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 녕의 팔뚝에 수면마취제를 주사하던 그 여자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쨌든 여자는 열심히 녕의 몸을 주무른다. 그 카데바 냄새부터 좀 씻어라. K는 가엾은 동생 대하듯 녕을 이곳으로 밀어 넣었다. 해부학 교실에서 살다보면 특유의 냄새가 몸에 밴다. 시신의 부패를 막으려고 넓적다리와 목 뒤쪽 혈관을 통해 온몸을 채운 포르말린과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진행되는 부패의 기운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독특한 냄새. 그 어떤 것과 싸워도 이겨낼 지독한 냄새가 옷이며 머리카락 사이에 끈끈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해부학자가 된 후로 녕은 그 냄새에 익숙해졌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은, 특히 녕의 직업을 모르는 사람들은 형용하기 어려운 그 냄새에 당황했다.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가 냄새의 습격에 놀라 마구 흔들리는 그 눈빛들.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녕은 집에 들러 샴푸질과 비누칠을 두번이나 하고 병원에 가 아이의 탯줄을 끊었다. 아기를 집에 데려온 첫날 장모는 퇴근하는 녕의 몸에 굵은소금을 뿌렸다. 자식 위한 일이니 이해하게. 영 찜찜해서 말이야.

K에게 등을 떠밀려 들어온 곳은 작지만 고급스러운 사우나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피부과 한쪽에 이런 밀실이 숨어 있다니, 녕은 K의 수완에 내심 놀랐다. 의대 시절 성적은 바닥이었던 K가 동창 중 가장 돈을 잘 버는 것도 이러한 감각 때문이리라. 일단 샤워부스에 들어가 샴푸를 하고 나와 웬 꽃잎이 둥둥 떠 있는 욕조에 들어가 몸을 담갔다. 조금 있으니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들어와 욕조에서 나온 녕의 젖은 몸에 가운을 입혀주고 침대로 안내했다. 녕은 이런 시중에 익숙한 듯 짐짓 여유를 부렸다. 침대는 푹신하고 공기는 적당히 안온했다. 여자가 젖빛 액체가 든 유리병에 주삿바늘을 꽂고 주사기를 채웠다. K 녀석, 이런 걸로도 돈을 벌어왔구나, 피싯 웃음이 터졌다. 한숨 주무시고 가실게요. 여자가 복화술처럼 입도 거의 벌리지 않고 말했다. 순간 여자와 눈이 마주쳤고 순식간에 잠에 들었다.

수면마취제를 놓아주었던 여자와 같은 여자인지 모르겠는 여자가 녕의 뒷목을 주무른다. 단단히 뭉쳐 늘 화를 내는 녕의 뒷목을. 녕의 근육을 화로 다져놓는 것들은 많았다. 카데바 앞에서 킬킬거리며 셀카를 찍어대는 어린 학생들, 해부학 실습이 시작된 지 한두달이 넘도록 새로운 장기를 만날 때마다 매번 토악질하며 실습실을 뛰쳐나가는 습자지 같은 정신머리들, 사흘에 한번꼴로 전화를 걸어 온몸의 통증을 호소하는 장모까지. 카데바를 향해 예의를 지키지 않는 학생들에겐 단호하게 낙제점을 주었고 약해빠진 정신머리를 착한 심성으로 착각하는 무지렁이들에게는 일부러 두개골 톱질과 근막 제거 같은 가장 어려운 일을 맡기는 것으로 보답했다. 걸핏하면 우는소리를 해대는 장모에게는 침묵으로 벌을 주었다. 당신 딸도 어떻게 못하면서 감히 나에게. 어쩌면 녕의 화는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있어서 뒷목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지도 몰랐다.

뒷목을 주무르던 여자의 손길이 어깨를 거쳐 가슴으로 올라온다. 이제 마사지와 애무의 경계가 흐려진다. 어디로 간단 말도 없이 나라 밖을 돌아다니는 아내를 향해 분노가 솟구칠 때면 녕의 근육은 이음매 없이 한 덩어리로 똘똘 뭉친 듯 도무지 풀어지지가 않았다. 평생 해본 적 없는 욕도 튀어나왔다. 그 도저했던 여자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어떻게, 사랑해드려요? 여자의 물음이 녕을 현실로 잡아끈다. 녕이 거친 손길로 여자의 손목을 잡아챈다. 생각보다 가느다란 손목이다. 여자가 흠칫 놀란다. 조금만 더 자겠습니다. 녕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온다. 수면마취제 없이 한번 더 깊은 잠에 빠지고 싶다. 녕이 여자의 손을 놓아준다. 여자가 몰래 안도하는 기색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사랑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녕은 생각한다. 눈을 감는다. 녕의 근육은 마사지나 사랑 같은 걸로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

 

여자의 몸이 열린다. 선 채로 힘을 주던 여자의 아랫도리로 주르륵 따스한 물이 쏟아져 내린다. 무릎을 꿇은 채 여자의 아랫도리 쪽을 살피던 규의 얼굴에 핏물 섞인 양수가 쏟아진다. 규는 수술용 장갑을 낀 손으로 무심히 쓱 얼굴을 훔친다. 이곳은 선 채로 아기를 낳는 여자나 양수를 뒤집어쓰는 의사의 모습이 전혀 특별할 게 없는 곳이므로. 규는 큰 소리로 네모를 불러 급히 임시침상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한다. 사바나 한가운데 설치한 임시진료소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순으로 부족한 침상을 배치하다보면 임산부가 맨바닥에 누워 혹은 계단 옆에 서서 몸을 푸는 일은 고통 축에 끼지도 못했다. 여자는 무사히 출산에 성공했고 규의 손으로 탯줄을 끊은 사내아기는 매끄러운 양막에 싸여 가느다란 울음을 토해낸다. 깨끗이 씻긴 아기를 안겨주자 열여덟살 산모는 새하얀 잇바디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교전의 소식이 30킬로미터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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